이쓰쿠시마 신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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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물 때는 신사의 본전까지 이렇게 바닷물이 차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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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일본 히로시마현 이츠쿠시마에 위치한 신사. 세토내해의 수많은 섬들 중 미센산(弥山 535 m)[5] 이 있는 이츠쿠시마섬을 일본인들은 예부터 신성한 곳으로 여겼다. 미센산이 '미센(弥山)'이라 불리는 이유도, 불교 우주론에서 세계의 중심에 있다고 설명하는 수미산(須彌山)과 이 산의 형상이 닮았다 하여, 수미산의 일본식 발음 슈미센(しゅみせん)에서 한자 표기와 발음을 따왔기 때문이다.[6] 불경에 따르면 수미산 정상은 정사각형으로 평평한데, 네 귀퉁이에 조그만 봉우리가 솟았다고 한다. 미센산은 정상이 일그러진 직사각형 모양이고 네모진 바위가 많긴 하지만, 딱히 수미산이 연상되는 부분은 없다. 불교를 접한 옛 일본인들이 전통적인 성산을 수미산과 닮았다며 좀 어거지로 연결지은 듯하다.
미센산 정상에 있는 거대한 바위는 일본의 옛 민속에서 숭배받던 산악신앙의 대상이었다. 지금의 이쓰쿠시마 신사도 미센산 자체를 신령이 깃드는 대상, 즉 신체(神体)로 간주하고 경배한다. 즉 이쓰쿠시마 신사에서 기도하는 사람은 미센산 신령에게 참배하는 셈이다. 미센산 정상의 바위로 내림하는 신령을 후대의 신토는 이치키시마히메(市杵嶋姫) 여신이라 여겼다.
기록에 따르면, 지역호족 사에키노 쿠라모토(佐伯鞍職)가 이치키시마히메 여신으로부터 신탁을 받은 뒤 593년에 이쓰쿠시마 신사를 창건했다고 전한다. 현재의 모습을 어느 정도 갖춘 것은 12세기 헤이안 시대 말기의 최고 권력자 타이라노 키요모리가 후원하면서부터이다. 그는 이츠쿠시마의 신이 헤이케를 도와준다고 믿어, 중요한 일이 있을 때마다 신사를 자주 찾으며 강력한 후원자가 되어주었다. 이런 이유로 현재 신사 앞에 키요모리의 동상을 세웠다.
타이라 가문이 몰락한 후에는 다소 힘든 시기가 있었다. 특히 가마쿠라 시대에는 큰 화재가 두 번 일어났는데 1207년의 화재는 복구까지 8년이 걸렸고, 1223년 화재 때는 1241년을 넘겨 복구되었다. 그밖에 해일, 태풍의 피해도 많이 받았는데, 그때마다 막부가 지원하여 복구하면서 현재의 모습이 완성되었다. 그리고 이츠쿠시마 전투에서 승리해 주고쿠의 패자가 된 모리 모토나리의 비호 아래 1571년에는 현재의 본전을 세우는 등 다시 과거의 영광을 되찾기도 했다.
무로마치 시대 이후로는 막부 차원의 지원은 끊겼지만, 그럼에도 오랜 시간에 걸쳐 건물들을 계속 세우며 신사는 계속 규모가 커졌다. 그렇게 주변이 개발되고 사람들의 접근이 쉬워졌기 때문에 후대로 갈수록 더 많은 참배객이나 관광객이 찾아왔다. 그리하여 신성한 섬과 사원에서 경관이 아름다운 관광지가 된 것이다. 에도 시대에도 이미 미야기현의 마쓰시마(松島), 교토부의 아마노하시다테(天橋立)와 함께 일본삼경(日本三景)이라 불렸을 정도였다.
2. 도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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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쓰쿠시마 신사를 넘어 일본을 대표하는 랜드마크 중 하나인 도리이.
높이 16 m, 용마루의 길이 24 m, 기둥 사이 길이 11 m, 기둥의 둘레가 10 m인 거대한 도리이로 오오도리이(大鳥居)라고도 부른다. 도리이를 바다 위에 세우다보니 자연재해를 많이 겪어 새로 만드는 일이 잦다. 현재의 도리이는 1875년에 세운 것으로, 첫 도리이로부터 8번째로 세운 것이다. 이 도리이가 특이한 점은 보통의 도리이처럼 땅 속에 박지 않고 그냥 세워뒀다는 것이다. 대신 물에 강한 녹나무로 기둥을 만들고 양쪽 앞 뒤로 삼나무로 만든 보조기둥 4개를 붙인 다음 용마루를 무겁게 하여 무게중심을 잡았다. 이렇게 한 이유는 땅 속에 박았을 경우 태풍이나 해일 등이 왔을 때 쉽게 부러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럴 일은 별로 없겠지만 이런 이유로 물에 뜰 수도 있다. 기둥 하부는 바닷물에 잠기는 일이 잦기 때문에 나무가 썩는 것을 피할 수 없으므로 썩은 부위를 잘라내고 새로운 목재를 채워넣는 방식으로 해결해왔고 최근에는 합성수지로 코팅하여 보강한다. 도리이를 대대적으로 보강할 예정이라고.
메이지 시대 초기인 1868년에 신불분리령이 내려지면서 붉은색이 불교적 색채라고 도리이를 흰색으로 칠한 적이 있었는데, 1910년에 다시 현재처럼 붉게 칠했다. 그리고 섬 자체를 신으로 모시다보니 신불분리령이 내려졌을 때 잠시 이쓰키시마라는 이름을 사용했는데, 나중에 복구하는 과정에서 이름이 2개가 되어 바다 쪽에는 이쓰쿠시마 신사(嚴嶋神社), 신사 쪽에는 이쓰키시마 신사(伊都岐島神社)라고 서로 다른 편액을 걸었다.
도리이는 썰물 때는 걸어서 접근할 수 있고 밀물 때는 작은 배를 타고 접근할 수 있는데 2019년 6월부터 보수 공사를 시작해 가림막을 씌운 상태라 지금은 도리이를 볼 수 없다.(2020년 6월 기준)
3. 찾아가는 길
히로시마 시내에서 출발할 경우 전철을 타고 미야지마구치역까지 가는 방법, 히로덴니시히로시마역에서 출발하는 노면 전차를 타고 히로덴미야지마구치역까지 가는 방법이 있다. 전철은 2~30분, 노면 전차는 4~50분 가량 소요된다.
미야지마구치의 선착장에서 섬으로 들어가는 페리는 미야지마 연락선과 미야지마 항로의 두 가지가 있는데 가격은 둘 다 편도 180엔, 15분 간격으로 운행하며, 섬까지는 10분 가량 소요된다. 미야지마 연락선은 JR 계열이고 미야지마 항로는 히로시마 전철 계열이므로 JR패스나 청춘 18 티켓을 샀다면 미야지마 연락선을, 히로시마 전철의 원데이 여행 카드를 샀다면 미야지마 항로를 타면 된다. 패스가 있다면 페리는 무료로 이용할 수 있다.
섬의 선착장에서 신사까지는 도보로 10분 정도 소요되며 입장료는 300엔이다.
[1] 인간의 창의성으로 빚어진 걸작을 대표할 것[2] 오랜 세월에 걸쳐 또는 세계의 일정 문화권 내에서 건축이나 기술 발전, 기념물 제작, 도시 계획이나 조경 디자인에 있어 인간 가치의 중요한 교환을 반영[3] 인류 역사에 있어 중요 단계를 예증하는 건물, 건축이나 기술의 총체, 경관 유형의 대표적 사례일 것[4] 사건이나 실존하는 전통, 사상이나 신조, 보편적 중요성이 탁월한 예술 및 문학작품과 직접 또는 가시적으로 연관될 것[5] 弥자를 '미'라, 山자를 '센'이라 읽는다. 한자문화권 지명에서 산이나 강 등을 제외한 부분이 한 글자라면 산이나 강을 붙여 음역하도록 한 외래어 표기법에 따라, '미산'이 아니라 '미센산'이라 하였다.[6] 彌의 일본식 간화체가 弥이므로 한자표기도 수미산의 '미산'과 동일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