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천웅/선수 경력

 


1. 개요
2. 아마추어 시절
3. 프로 선수 시절


1. 개요


이천웅의 선수경력을 다룬 문서이다.

2. 아마추어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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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남서고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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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대 시절. 이때나 지금이나 상당히 잘생겼다.
아마추어 시절 때 SK 와이번스김광현과 붙어서 완봉승을 거둘 정도로 김광현의 라이벌로 유명했으며, 2007년 신인 드래프트에서 SK의 2차 6순위 지명을 받았지만[1] 할아버지의 권유로 고려대학교에 입학하게 된다.[2] 이 해부터 1차지명 대상에서 전학생제외규정이 고교에서 중3으로 확대 적용되었는데 이천웅은 중3 때 군산에서 전학을 했던 관계로 1차 지명 대상에서 제외된 상태였다. 당시 두 장의 1차 지명권[3] 중 한 장은 김광현 확정이었고, 나머지 한 장은 이천웅이 유력했으나 막판에 전학생제외규정 확대로 1차지명을 받을 수 없었다.[4]
고려대에 진학한 뒤 당시 고려대 감독이던 양승호롯데 자이언츠 감독과의 면담을 통해 외야수로 전향하게 된다. 하지만 별로 두각을 못 나타냈고, 3학년 때 다시 투수로 전향했지만 부상으로 인해 여전히 부진했다. 그러나 고려대 시절 1학년 때부터 4번 타자를 치는 등 타격에 재능이 뛰어났다.
2005년에 열린 제59회 황금사자기 전국고교야구대회 4강에서 김광현과 맞대결을 했는데 이천웅은 9이닝 9탈삼진 무실점을 기록했고 김광현은 낫아웃 포함 8과3분의2이닝 14탈삼진 1실점을 기록했다.
성남서고는 9회 말 2사 주자 2루 상황에 신민철의 끝내기 안타로 안산공고에게 1:0승리를 거뒀으나 결승에서 강호 광주제일고한테 0:10으로 패하며 준우승에 만족해야 했다. 결승전 상대팀인 광주제일고의 선발투수는 강정호였다.
프로에서는 투수로 시작해서 외야수로 전향했다지만, 고등학교 때도 투수로 선발 출장하지 않는 날[5]에는 외야수로 출장하기도 했다. 2006년 청소년 국가대표에 발탁될 당시에도 투수가 아닌 외야수로 발탁된 바 있다.

3. 프로 선수 시절


당연히 2011 신인 드래프트에서 지명되지 못했고, LG 스카우트의 요청에 따라 LG신고선수로 입단했다.
입단 당시 포지션은 투수였으나 이렇다 할 활약을 보이지 못하고 방출될 위기에 놓였다. 그러다 당시 2군에서 선수들을 지도하던 차명석 코치의 조언에 따라 다시 타자로 전향한다.

3.1. 2012 시즌


2군에서 뛰어난 성적을 올려서 2012년에 정식 선수로 전환되었다. 그 후에 외야수 이진영이 햄스트링 파열 부상으로 말소되자 당시 신고선수를 포함한 몇몇 2군 선수들을 1군에 올려서 테스트 중이던 김기태 감독이 그를 1군으로 불러들였다. 이대형과 함께 1군으로 콜업된 후 다음 경기에 바로 선발 출전하여 멀티히트를 기록했다.
투수 출신인 만큼 당시 LG 외야에서 이진영손인호에 버금갈 정도로 강견이었지만, 수비 능력은 부족했다는 평을 들었다.
6월 7일 넥센전에서 김영민을 상대로 1군 등록 후 첫 홈런을 앞서나가는 투런 홈런으로 때려냈다. 하지만 곧바로 문제점으로 지적되었던 타구 판단 미스로 1점을 내줬다.
2군에서 A형간염이 발병해서 그해는 다시 1군 콜업을 받지 못했다.
여담으로 김풍기 심판의 어이상실한 스트라이크 판정으로 프로 첫 도루를 '''걸어서''' 기록했다. 영상그나마 이병규가 볼넷으로 걸어나가 망정이지 아니었으면.....

3.2. 2013 시즌


A형간염의 여파로 스프링캠프에 못가고 진주에서만 훈련하던 중, 4월 4일 김기태 감독이 넥센전에서 김영민 저격용으로 기용했으나 4타수 무안타로 부진했다. 그리고 4월 7일 두산전에서도 정의윤의 대타로 2타석에 섰으나 모두 무안타를 기록했다.[6] 그래서 야구 관련 커뮤니티에서는 김기태 양아들 김천웅이라는 드립이 나왔다.
결국 2013 시즌 후 경찰청에 합격하여 2014~15 시즌은 경찰청에서 군 복무를 하게 되었다.

3.3. 경찰청 복무


경찰청 복무하면서 가장 많이 발전한 선수다. 그리고 잘 생겼다. - 유승안 [7]

2014 시즌에는 경찰청에서 외야수로 뛰면서 타격으로 2군을 학살했다. 2014시즌에는 87경기에 출장하여 275타수 106안타 타율 0.385(1위), 장타율 0.553(10위), 출루율 0.480(2위), OPS 1.033(4위), 사사구 52개(5위) 등의 성적을 기록하였다. 타율 1위로 북부리그 수위타자 타이틀을 가져갔으며, LG 선수에게 찾아보기 힘든 눈야구로 출루율도 높은 등 팬들을 설레게 했다.
유승안 감독은 수비가 불안한 이천웅을 중견수로 꾸준히 기회를 줬다.

3.4. 2016 시즌


이천웅/2016년 참조.

3.5. 2017 시즌


이천웅/2017년 문서로.

3.6. 2018 시즌


아쉽게도 규정타석을 채우진 못했지만 채은성, 김현수와 함께 팀 타선을 살려먹은 숨은 공신.
이천웅/2018년 문서로.

3.7. 2019 시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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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리어하이. 원래는 대타자원이었으나, 이형종이 부상으로 이탈한 사이 1번 타자로 자리잡으며, 최다안타 3위에도 오르는등, 좋은 활약을 했다.
이천웅/2019년 문서로.

3.8. 2020 시즌


지난해의 활약으로 올해도 붙박이 1번 타자로 나올것으로 예상했으나, 오히려 커리어 로우를 찍고 말았다. 소포모어 징크스라도 걸렸는지 공수주 모두 이렇다할 활약을 펼치지 못하며 1년 만에 팀내 최다안타 타자에서 외야수 5옵션으로 전락했다. 선발출전할 때 승률이 5할도 안 되어 패배의 아이콘이 됐다. 그럼에도 류중일의 무한총애를 받았으나 이천웅 본인도 못하고 팀도 추락하자 결국 주전에서 완전히 밀렸다. 그나마 엘지 팬들에게 위안이 될만 한 것은 홍창기라는 숨은 보석을 발견했다는 점이다.
이천웅/2020년 문서 참조.

3.9. 2021 시즌


지난 시즌 커리어로우를 찍으며 외야수5옵션으로까지 전락하며 다시 트레이드글이 넘쳐나고 있다. 지난시즌의 부진을 잊으려는건지, 등번호를 오랫동안 달았던 32번에서 24번으로 바꾼다.
이천웅/2021년 문서 참조.

[1] 이천웅이 고려대를 진학하겠다는 의사를 미리 밝혔으나 SK가 못 먹는 감 찔러 보기로 이천웅을 하위픽 했다. 비슷한 사례로 나성범(LG 지명 거부 이후 연세대 진학)이 있다.[2] 잘 안 알려져있는 사실로 이때 지명받고 대학간다는 글을 써서 SK 팬들의 분노를 사기도 했다.[3] 2007년 한 해만 1차 지명권이 두 장이었다.[4] 결국 SK김광현 외에 뽑은 1차 지명 선수로 야탑고 투수 나현수를 선택했지만 계약에 실패해 1차지명을 받았음에도 SK에 입단하지 않았다.[5] 당시 성남서고는 김혁민,이천웅,임치영이 주로 마운드에 올랐다.[6] 그나마 허경민의 실책으로 한 번 출루하긴 했다. 바로 대주자로 바뀌긴 했지만...[7] 유승안 경찰청 감독이 이천웅에 관한 코멘트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