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탑고등학교 야구부
[clearfix]
1. 연혁
성인고 시절에 1997년 창단되어 학교가 교명을 야탑고로 바꾼 2002년 이후에도 쭉 야구부를 유지하고 있다. 처음 이름을 날린 것은 2002년과 2003년 연속으로 봉황대기 8강에 진출하면서부터였다. 특히 2003년에는 선수단 13명[3] 만으로 봉황대기 8강까지 진출하는 작은 기적을 보여주면서 깊은 인상을 남겨준 바 있다. 당시 3학년으로 팀의 리더 역할을 했던 선수가 바로 오재원.[4] 8강전에서 공수겸장 유격수 김재호가 이끄는 서울 중앙고에 리드하다가 역전을 허용하며 결국 패했다.오재원에 대한 추억
그리고 이 때 잠재된 능력은 2004년에 폭발했다. 창단 후 첫 결승전 진출이자 첫 우승의 기회를 잡은 광주 무등기에서 광주일고[5] 에 무릎을 꿇었으며 # , 바로 한 달 후 개최된 황금사자기에서 에이스 윤석민과 중심 타자인 오재일을 앞세워 결승까지 진출했지만, 우승 경험이 더 많던 덕수정보고에게 패하면서 첫 우승의 기회를 날렸다. [6]
그 뒤로 꾸준히 우수한 선수들을 수급하면서 4강권에 자리를 위치하면서 정상을 노리는 팀이 되었다. 2010년 봉황대기 4강, 2011년에는 신유원과 강구성, 미국으로 건너간 포수 김성민을 앞세워 정상을 노렸지만 다시 4강 1회와 준우승에 만족해야 했고, 2013년 청룡기에서도 북일고에게 5-18로 무너지면서 역시 준우승에 만족해야 했다. 2014년 시즌도 뉴욕 양키스와 계약한 박효준을 필두로 다시 정상에 도전했지만, 청룡기 4강 한 차례로 만족해야만 했다.
그래도 신도시 개발 이후 창단된 팀들 중에서는 가장 좋은 성과를 꾸준하게 내는 팀이다. 경기권 야구부중에서는 유신고와 더불어 가장 전국구적인 인지도를 갖고 있으며 경기도 뿐 아니라 서울에서도 꾸준히 진학을 위해 테스트에 도전하고 있다고 한다.[7]
2017년 주말리그 전반기에서는 신흥고에 밀려 황금사자기 티켓 획득에 실패했으며 후반기에서는 조 2위로 청룡기에 진출했으나 제주고에 져 초반에 일찌감치 탈락했다. 전국체전을 제외한 정규 대회 마지막인 봉황대기에서는 8강전에서 대통령배 우승 팀 서울고를 이겼고 준결승에서 전통 강호 광주일고에 승리하며 결승에 진출, 결승에서 충암고에 2-1로 힘겹게 승리하며 창단 첫 전국대회 우승을 달성했다.
2. 야탑고 야구부원 투신자살 사건
자세한 사항은 해당 문서 참고
- 2013년 5월, 한 야구부원이 아파트 14층 복도에서 투신자살한 사건이 있었다. A군은 수첩에 "아빠와 삼촌(아버지 지인)이 하는 말을 이해 못 하는 건 아니지만, 코치와 선배들 눈치 보여 학교 못 가겠어요. 코치와 선배들 무서워요" 라는 유서를 남겼고, 경찰은 모든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수사를 진행했다...고 되어 있으나 흐지부지된 건지, 아니면 그냥 묻혀버린 건지 사건 이후에는 관련 내용을 거의 찾아볼 수 없는 상태다.
3. 이모저모
- 2015년 9월 운동장이 무너져서 운동장 연습을 중단하기도 했다. 2016년 6월 완공되어 다시 훈련을 재개한 상태이다.
- 2017년 3월 신민혁 선수가 고교야구 주말리그 유신고와의 경기에서 노히트 노런을 달성했다!! 주말리그 노히트노런은 2014년 용마고 김민우(한화 이글스)가 기록한 이후 3년만이라고.
- 김성용 감독은 1997년 11월 성인고(야탑고로 개명) 창단 감독부터 계속 한 팀에서 근무하여 팀을 이끌었고 마침내 2017년 봉황대기 우승으로 결실을 맺었다.관련기사.
4. 출신 선수[8]
[1] 4대 메이저 + 협회장기[2] 나무위키 등록 선수만. 졸업 연도 순.[3] 선수들 상당수가 춘천고로 전학을 갔다.[4] 전학으로 인해 3학년은 2명만 남았다. 유격수 오재원과 포수 이중훈. 이 둘은 경희대와 동의대로 진학했다.[5] 곽정철, 여건욱, 나승현, 강정호, 김성현 등이 로스터에 있었다.[6] 투수진은 윤석민 뿐만 아니라 백자룡, 배우열, 김성준 등이 뒤를 받치고 있었다. 대회 최우수선수는 4번타자 겸 좌익수로 활약한 김문호가 선정되었다.[7] 야탑고등학교 자체는 초창기에는 분당에서 수준이 높은 학교는 아니었다. 야탑고등학교로 처음 교명을 바꿨던 해에 입학한 학생들의 과반수 이상이 얼마 안 가 타 학교로 전학을 가 버리는 사상 초유의 사태가 발생했었을 정도로 학교 이미지가 굉장히 시궁창이었었다 . (어느 한 졸업생의 증언) 이런 학교에서 야탑고의 자존심인 야구부를 해체하는 것은 말이 안 된다. 하지만 지금은 명문대학교로 높은 진학율을 보이며 경쟁력 있는 학교로 탈바꿈했다. 사실 높은 명문대 진학율만으로 그 학교의 질을 판단하는 게 다소 무리이긴 하지만... [8] 나무위키 등록 선수만. 졸업 연도 순.[9] 지명은 롯데가 했으나 장성호와의 트레이드로 입단은 한화 이글스에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