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하라 마사미

 

'''가시와 레이솔'''
'''柏レイソル'''

''' 이름 '''
'''이하라 마사미'''
'''井原 正巳|IHARA Masami'''
''' 출생 '''
1967년 9월 18일 (57세) /
일본 시가현 고카시
''' 국적 '''
일본
''' 신체 '''
182cm | 체중 74kg
''' 직업 '''
축구선수(수비수[1] / 은퇴)
축구감독
''' 소속 '''
''' 선수 '''
쓰쿠바대학(1986~1989)
닛산자동차
/ 요코하마 F. 마리노스(1990~1999)
주빌로 이와타(2000)
우라와 레드 다이아몬즈(2001~2002)
''' 감독 '''
가시와 레이솔(감독대행, 2009, 2013)
아비스파 후쿠오카(2015~2018)
''' 국가대표 '''
122경기 5골(일본 / 1988~1999)
1. 개요
2. 선수 경력
2.1. 플레이 스타일
3. 지도자 경력


1. 개요


일본축구선수 출신 감독. 현역 시절 아시아를 대표하는 리베로 중에 한 명으로 꼽혔으며 현재는 J1리그 가시와 레이솔에서 수석코치로 활동중이다.
일본 대표팀의 1990년대를 이끈 명 수비수로 단신 투성이였던 일본에서 보기 드물게 182cm의 제공권을 갖춘 수비수였다. 이후 일본 대표팀의 (나름 장신) 센터백 계보는 마쓰다 나오키, 나카자와 유지,[2] 요시다 마야로 이어진다. 통산 대표팀 출장 122경기로 일본 최초의 FIFA 센추리 클럽 멤버이며, 엔도 야스히토가 2012년 추월하기 전까지는 역대 A매치 최다 출장자였다. 현재는 엔도, 나가토모 유토에 이어 3위.

2. 선수 경력


고향인 시가현 고카시에서 초등학교부터 축구부에 소속되었으며, 고등학교까지는 공격수였다. 명문 쓰쿠바대학에 입학한 후 수비수로 전향하여 대학 2학년 때부터 대표팀에 소집되었다. 첫 A매치 출전은 1998년 1월의 UAE 친선경기였다. 대학 동기로 나카야마 마사시가 있었는데, 이 때는 나카야마가 수비수로 활약하던 시기여서 센터백 콤비를 이루었다.[3]
이하라는 대학 졸업 후 당시 실업팀이던 닛산자동차에 입단하여 첫해부터 수비수로 주전을 꿰찼으며, 프로화 후에도 계속 후신인 요코하마 마리노스에서 활약했다. 불명예스러운 기록 한 가지는 1993년 5월 제프전에서 J리그 통산 1호 자책골을 기록한 것이다.[4] 그러나 1995년에는 시즌 챔피언전에서 베르디 가와사키 상대로 골을 넣어 마리노스의 연간 우승을 이끌었다.
대표팀에서는 1989년부터 부동의 주전 센터백으로 기용되었다. 일본에서는 나름 장신 센터백으로서 빼놓을 수 없는 선수였으며, 슈팅도 좋은 편이어서 1993년 월드컵 예선에는 UAE 상대로 2골, 1994년에는 아시안 게임 8강전 한국 상대로 중거리 동점골을 기록하였다. 다만 한국전에서는 경기 막판에 황선홍에게 페널티킥을 내주어 패배의 원흉이 되기도 하였다. 대표팀에서는 1998년 일본의 첫 월드컵 본선 진출까지 주전 자리를 지켰다. 이후에는 새로 대표팀을 맡은 필립 트루시에가 강력한 세대교체 드라이브를 걸면서 자국에서의 월드컵까지 가지는 못하였다.
2002 시즌에는 친정팀 요코하마 F. 마리노스 상대로 프로 마지막 경기를 치렀다.

2.1. 플레이 스타일


상기한 바와 같이 1990년대 일본에서는 흔하지 않은 180cm 대의 신장과 피지컬, 스피드를 함께 갖춘 수비수였다. 당장 1998 월드컵 때 이하라와 같이 짝을 이룬 수비수는 170cm대 후반의 오무라 노리오, 아키타 유타카 등이었으며, 2002년에 이하라의 자리를 차지한 센터백 또한 176cm에 불과한 미야모토였다. 때문에 대표팀에서는 통상 센터백 페어를 짜는 수비수에게 상대 센터 포워드에 대한 맨마킹을 맡기고 이하라는 공중볼 다툼이나 클리어링을 하는 역할분담이 많았다.
1998 월드컵을 앞두고는 마침 한국과 예선을 같은 조에 편성된 것도 있고 하여 함께 전성기를 맞은 한국의 홍명보와 함께 아시아를 대표하는 리베로 경쟁자로 부각을 받았으나, 실제 홍명보가 본인의 플레이 스타일 상 미드필드의 여러 포지션을 넘나든 것과 대조적으로[5] 이하라는 붙박이 센터백이었으며, 홍명보처럼 경기중 수시로 미드필드로 침투하는 움직임이 많지는 않았다. 특히 J리그에서는 센터백이 올라가는 변칙 포진이 적기 때문에 J리그 통산 득점도 6점에 그친다.[6]

3. 지도자 경력


은퇴 후 주로 해설자로 활동하다가 2006년 일본축구협회 S급 지도자[7] 자격을 취득하고 가시와 레이솔에 수석코치로 합류하였다. 2014년까지 가시와에 재직하면서 두 번에 걸쳐 감독 경질에 의한 대행을 맡았다.
2015년에는 J2리그 아비스파 후쿠오카에서 정식 감독에 취임하였다. 2015년에는 팀을 J1리그로 승격시키는 성공을 거두었으나, 2016 시즌에는 끔찍한 퍼포먼스 끝에 재강등을 맛보고 이후 J2 상위는 유지했으나 승격을 이루지는 못하였다. 2018 시즌 후 아비스파 감독을 퇴임하였으며, 다시 이전 상사인 넬싱요 밥티스타 감독이 재부임한 가시와 레이솔에 복귀하였다. 넬싱요 감독이 70대의 고령이기 때문에 여차하면 정식 감독 취임을 염두에 둔 것일 수도 있다.

[1] 주 포지션은 센터백.[2] 마쓰다와 나카자와는 이하라의 요코하마 F. 마리노스 후배이기도 하다.[3] 여담으로 이 둘은 유스 대표팀에서도 센터백 콤비를 이뤘지만 이 때는 일본 축구가 그야말로 바닥을 기던 시기로, 이들이 출전한 1986년 AFC 유스 선수권 예선에는 한국에게 지고 아시아 본선조차 못나갔다.[4] 영상(3:50부터)[5] 당장 당시 소속되어 있던 J리그 벨마레 히라쓰카에서도 주로 미드필더로 기용되었다.[6] 물론 예외는 있다. 다나카 마르쿠스 툴리오 항목 참고.[7] 아시아 축구 연맹 P급에 해당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