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가토모 유토

 


'''올랭피크 드 마르세유 No. 25'''
'''나가토모 유토
(長友 佑都 / Yuto Nagatomo)
'''
'''생년월일'''
1986년 9월 12일 (38세)
'''국적'''
[image] 일본
'''출생'''
에히메사이죠
'''신장'''
170cm[1]
'''주발'''
'''양발'''
'''포지션'''
풀백
'''유스팀'''
동부 후쿠오카 고등학교 (2002~2004)
메이지대학 (2005~2007)
'''소속팀'''
FC 도쿄 (2008~2010)
AC 체세나 (2010~2011)
'''FC 인테르나치오날레 밀라노 (2011) (임대)'''
'''FC 인테르나치오날레 밀라노 (2011~2018)'''
갈라타사라이 SK (2018) (임대)
갈라타사라이 SK (2018~2020)
올랭피크 드 마르세유 (2020~ )
'''국가대표'''
123경기 4골
'''소셜 미디어'''

1. 개요
2. 클럽 경력
2.1. 유스
2.4.1. 2010-11 시즌
2.4.2. 2011-12 시즌
2.4.3. 2012-13 시즌
2.4.4. 2013-14 시즌
2.4.5. 2014-15 시즌
2.4.6. 2015-16 시즌
2.4.7. 2016-17 시즌
2.4.8. 2017-18 시즌
3. 국가대표 경력
3.1. 우승 기록
3.2. 개인 수상 경력
4. 플레이 스타일
5. 기타
6. 같이 보기


1. 개요


일본축구선수이며 현재는 올랭피크 드 마르세유 소속이다. 국가대표팀과 소속팀에서의 포지션은 레프트백이며, 인테르 소속이었던 2014-15시즌에는 팀의 부주장을 맡기도 했다.

2. 클럽 경력



2.1. 유스


외할아버지 형제가 경륜 선수로 유명한 스포츠 일가에서 태어난 나가토모는 소학교 1학년 때부터 축구를 시작했다. 소학생 시절에 에히메 FC의 유스팀 입단을 노렸지만 실패했고, 시립 중학교 축구부에서 활동하던 2001년에 U-15 전일본 청소년 선수권 대회에 참가해, 현 3위의 성적을 거두기도 했다. 그 후 축구 명문고인 동부 후쿠오카 고등학교에 진학해 주전 멤버로 활약하기도 했지만 전국적으로는 무명선수 신세를 벗어나지 못했다.
결국 체육특기자 전형 지명을 받지 못한 채 지정추천제도를 통해 메이지대학 정치경제학부에 입학했고, 축구부에 들어가긴 했으나 추간판 탈출증에 걸려 부상 이탈하게 되면서 벤치 붙박이가 되었다.[2] 졸업하면 그냥 샐러리맨이 되기로 마음을 먹었을 정도로 나가토모에게는 힘든 시기였으며, 어쩌다보니 축구 실력보다도 응원석에서 큰북을 두드리는 사람으로 유명했던 모양. 당시 대학축구계에서 상당히 유명했다고 한다. 그냥 일정한 리듬으로 크게 두드리는 다른 큰북과는 달리 아프리카의 정열을 담아(…) 드럼을 두드리듯이 리드미컬한 리듬으로 화제가 되었다고.# 프로팀[3] 서포터즈 집단인 IN.FIGHT에서 '우리 팀에 와서 북을 두들겨주게!'라는 오퍼도 받았다는 모양(…). '''이게 인테르 입성 기준으로 불과 5년 전의 일.'''[4]
하지만 고학년에 진학하면서 척추 부상을 극복하고 강인한 체력으로 주목을 받기 시작했고 비로소 주전 멤버의 위상을 갖게 되었다. 3백에서의 센터백으로도 출장하기도 했으며, 유니버시아드 대회와 전일본 대학 선수권에도 주전으로 활약하며 명성을 쌓았다.

2.2. FC 도쿄


2007년 5월부터 특별지명선수로 지목받아 FC 도쿄와 함께 훈련을 소화하더니 2008 베이징 올림픽 아시아 예선전에 국가대표로 출장, 말레이시아전에서 골을 기록하면서 완전히 축구선수가 되는 것으로 진로를 잡고, 같은 해 8월 메이지 대학 축구부를 퇴단한 후 FC 도쿄에 입단했다. 나가토모 본인은 '''혼자 힘으로 3남매를 키워주신 어머니에게 보은하고 편하게 사실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입단을 결정했다'''고 소감을 밝혔다. 입단 첫 해에는 주로 레프트백으로 출장했으나 감독의 스위칭 지시에 의해 라이트백으로도 몇 차례 출장하기도 했다.
2009년에는 피지컬 코치와 함께 주법 개량에 매진하여 기량을 끌어올렸고, 결과 같은 해 팀의 J리그 컵 우승에 혁혁한 전공을 세워 J리그 베스트 일레븐에 지명되는 영예를 누렸다. 이후 2010 월드컵에서의 활약까지 더해지며 20년만에 세리에 A 승격을 확정지은 AC 체세나로의 이적이 확정되었고, 나가토모는 세계 최고의 수비수가 되어 언젠가 다시 FC 도쿄의 유니폼을 입고 싶다는 퇴단 소감을 밝히며 눈물을 흘렸다.

2.3. AC 체세나


국가대표팀에서도 애용하는 등번호 5번을 받고 이탈리아에 입성한 나가토모는 곧장 레프트백 주전 자리를 확보하며 체세나에 없어선 안될 선수로 자리매김했다. 인테르로 이적하게 되는 1월 이적시장 직전까지 모든 경기를 선발로 뛰었으며, 감독은 그를 라커룸을 단결시키는 존재라며 극찬했다. 2011년 12월 ESPNSTAR.com가 발표한 '''2011년 세계 수비수 Top 5''' 중 한 명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2.4. FC 인테르나치오날레 밀라노


[image]

2.4.1. 2010-11 시즌


2011년 겨울 이적시장 막바지에 동양인 최초로 인테르에 입단하여 화제가 되었다. 우선 다비데 산톤과 맞임대되는 형식으로 팀을 옮겼다.
[image]
그리고 팀의 코파 이탈리아 우승에도 기여했다.

2.4.2. 2011-12 시즌


130억원에 완전이적에 성공하였다. 그리고 7월 29일, 셀틱과의 더블린컵 경기에서 어깨가 탈구되어 2개월 아웃판정을 받았다. 그리고, 몇 달 사이에 처지가 확 달라졌다. 무엇보다 팀이 부진한 점도 있지만(2011년 11월초까지 리그 17위로 강등을 겨우 모면 중이다.) 이탈리아 일간 '가제타 델로 스포르토'는 10월 30일 인테르 밀란이 유벤투스에 1대 2로 석패한 2011~2012시즌 세리에A 10라운드를 분석하며 나가토모에게 "잊혀진, 불쌍한 일본인"이라는 평과 함께 팀 내 최저인 4.5점의 평점을 매겼다.
사실 전 시즌에서 괜찮은 모습을 보였던 것도 오버래핑을 무리하게 나가더라도 캄비아소, 마이콘 등의 수비력이 좋은 동료들이 그 빈 자리를 커버를 해주었기 때문. 여태까지는 잘 되었기에 문제가 없었지만, 안 되면 위험해질 수 있는 일이다. 그것이 드러난 대표적인 예가 각주에서 언급된 센터백에게 역관광당한 샬케전. 그리고 2011~2012 시즌, 챔피언스리그 CSKA모스크바와의 원정경기에서 어시스트를 하며 활약한 것을 제외하면 인테르가 전체적으로, 특히 수비에서 불안한 책임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 없는 처지가 되었다.[5]
그러나 그 동안의 부진을 털어내고 인테르와 함께 귀신같이 부활했다. 피오렌티나를 상대로 시즌 첫 골을 뽑아낸지 3일만에 제노아전에서 2경기 연속골을 몰아치고 2개의 어시스트까지 달성하며 부활의 신호탄을 쏘았고, 아시아인 최초로 밀란더비에 풀타임 출장해 무실점으로 경기를 마쳤다. 나가토모의 활약과 함께 강등권을 왔다갔다하던 인테르는 11/12시즌 후반기 리그 4위까지 치고 올라왔으며 7연승 행진을 달리고 있고 현재까지 준수한 활약을 펼치는가 했더니 이후로 후반기에 들어서 리그 다섯경기 1무 4패로 8위로 다시 곤두박질쳤다. 이 과정에서 뛰어난 공격력에 비해 수비적으로는 약점을 보이는 나가토모의 딜레마가 다시 제기되기 시작했고, 이후 주전경쟁에서 밀리면서 PSG 등의 팀이 관심을 보인다는 이야기과 함께 이적설도 나돌았다.
하지만 인테르 수비진의 부진이 계속되자 다시 기용되었고, 그가 뛴 경기에서 성적이 잘 나오면서 선발진에 복귀하였다. 그리고 2012년 5월 인터밀란과 재계약 성공. 최종적으로는 2016년까지 계약을 연장했다고 한다. 이후 꾸준하게 활약을 보여주면서 2012년 겨울 이적시장 즈음부터 맨체스터 시티, 레알 마드리드, 유벤투스 등으로의 이적설이 지속적으로 나오고 있다.

2.4.3. 2012-13 시즌


12-13시즌 인테르는 그야말로 희대의 부상병동이었는데 나가토모도 예외가 아니었다(...). 2013년 초에 왼쪽 무릎의 반월판이 손상되는 부상을 당했고, 2달 정도 휴식을 가진 뒤 4월 중순에 복귀하였다. 하지만 후반 교체투입된 복귀전에서 투입된지 8분만에 부상이 재발하여 다시 교대되면서 시즌 종료.

2.4.4. 2013-14 시즌


13-14시즌에는 개막전에서 골을 터뜨린 것을 시작으로 왼쪽 풀백과 윙으로 중용되면서 커리어 최다인 5골을 기록하는 등 좋은 활약을 보여줬다. 타 팀으로 이적설이 계속 뜨고 있는데 심지어 FC 바르셀로나까지 링크가 걸릴 정도.

2.4.5. 2014-15 시즌


하지만 14-15시즌에는 부주장으로 선임되었지만 잦은 부상과 더불어 브라질의 영건 도도에게 주전 경쟁에서 밀려 벤치로 밀려났다. 부상이 그냥 부상이 아니고 햄스트링(...) 비록 가제타라곤 하지만 방출명단에 들었다는 루머가 있고, 일본 국대 소집도 안됐다. 인테르에서의 입지가 위태로운 상황이다. 5월에서야 전열에 복귀해면서 후반기를 통으로 날렸다.

2.4.6. 2015-16 시즌


2015-16시즌을 앞두고 2015년 8월 1일,터키에서 갈라타사라이와 벌인 친선경기(0-1로 인테르 패)에서는 아예 25인 주전 명단에 들어가지 않았으며 만치니 감독은 인터뷰에서 나가토모를 내보낼 예정이라는 말을 하며 방출될 전망이었으나, 이적 협상이 지지부진하며 결국 남았다. 현 상황에서는 그저 일본에 인테르 경기를 중계하게 만드는 브로커(....) 역할만 하는 중.
그러던 중 로마전에 출전하여 준수한 활약을 보여준 이후 출전 회수가 점차 늘어나고 있다. 이전만큼은 아니라도 괜찮은 모습을 보여주어 한동안 쩌리 취급받던 인식을 약간이나마 반전시키는 중이다. 반대쪽 라인의 담브로시오와 마찬가지로. 그러나 나폴리전에서 빅 똥을 싸면서 재계약 가능성을 스스로 붕괴시켰다. 포지션 경쟁자인 텔레스가 레드카드 먹고 퇴장당한 나가토모를 뒤이어 나와서 공백을 훌륭하게 메꿨기에 더더욱 안습.
하지만 그 뒤로는 준수한 폼이었다고 여겨졌는지 2019년 6월 30일까지 재계약에 성공했다! 연봉은 150만 유로(약 20억원)로 추정. 27경기에 출장해서 나쁘지 않은 폼을 보여준 것은 사실이나, 활동량 대비 저조한 크로스 성공률이 사실 주전 보장을 발목잡고 있기는 했다. 그럼에도 나가토모가 재계약할 수 있었던 것은, 만치니가 산톤을 우측에 가져다 꽂으면서 고정적인 왼쪽 주전이 없었던 점이 크며, 또한 만치니가 나가토모를 선수단에게 감독의 의지를 전해줄 수 있는 파이프 라인이 될만한 선수로 판단해서 계약 연장을 추진했다고.
좀 더 자세히 말하면, 만치니는 인테르 팀에 에너지를 불어넣어주는 선수 + 이카르디 외에도 감독과 선수단 간의 파이프 라인을 하나 더 놓기를 원했었는데, 그 대상으로 인테르 팀내에 잘 녹아들어 있으면서도 왼쪽 풀백 로테로서 나쁘지 않은 폼을 보여주는 나가토모를 낙점한 것으로 보인다.

2.4.7. 2016-17 시즌


만치니가 떠난 이후 점점 설 자리를 잃어가고 있다. 전반기 현재 3경기 출장에 그쳤으며 안살디에게 주전경쟁에서 밀려 맞임대 신세를 지기도 했던 산톤과 사이좋게 벤치를 지키고 있다. EPL로의 이적설도 있지만 적극적인 구단은 없다.
한국시간으로 5월 1일 나폴리와의 리그 홈경기에서 나폴리의 로렌조 인시네가 올린 평범한 크로스를 어설프게 처리하다 호세 카예혼에게 결승골을 헌납해 0-1 패배의 주범이 되었다. 이로인해 팬들은 나가토모를 당장 방출해라고 구단에 엄청나게 항의하고 있다. 곧 방출될 가능성이 높아보인다.

2.4.8. 2017-18 시즌


'덤보토모'라며 팬덤에서는 여전히 조롱거리로 불리지만 프리시즌동안 여전히 부동의 주전으로 풀백자리를 잡고 있다. 이 자리에 뛸 사람이 없어서...
다우베르치의 영입으로 입지가 위축되고 있다. 일단 오래 호흡을 맞춰왔고 프리시즌 내내 기용되었으며 다우베르치가 늦게 팀에 합류한 탓에 개막전인 ACF 피오렌티나 전과 AS 로마 전 두 경기 연속으로 주전 출장했다. 그러나 인상적인 경기력을 보여주진 못했다. 오히려 AS 로마전에서 교체 투입된 다우베르치가 어마어마한 슈퍼세이브를 보여주면서 확실히 눈도장 찍은 상황. 3라운드인 SPAL 2013 전 부터는 백업이 될 것으로 보인다.
..였는데 다우베르치의 공격력이 예상보다 더디고, 루치아노 스팔레티이반 페리시치에게 횡폭이 넓은 움직임을 가져가도록 요구하면서 풀백의 공격가담이 중요해지자 다시 주전으로 쓰이고 있다. 경기력은 그닥 신통치 못하지만 어쨌든 스팔레티가 풀백에 요구한 것은 수비가 아닌 공격이고, 그 공격을 더 잘 해내는 쪽은 현재까진 다우베르치가 아닌 나가토모라 아쉬운대로 계속 기용되었다.

2.5. 갈라타사라이 SK


결국 2018년 1월 31일, 겨울이적시장 마지막 날 터키 쉬페르리그 우승 경쟁을 벌이고 있는 갈라타사라이 SK에 6개월 단기 임대로 이적하였다.
갈라타사라이에서는 바로 주전 풀백으로 뛰면서 준수한 활약을 펼쳐 팬들 사이에서의 평가가 바로 높아지면서 갈라타사라이 우승에 큰 보탬이 되었다. 현지에선 성실한 플레이와 자기관리로 인기가 급상승중. 감독 파티흐 테림이 같이 가고 싶다고 한 선수 중 한명으로 뽑기도 했다. 그 후 이적료 250만 유로(약 32억원)에 완전 이적했다. 계약 기간은 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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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2017/2018 시즌, 2018/2019 시즌 '''2년 연속 리그우승'''에 성공했으며 터키 리그컵에다 슈퍼컵까지 쓸어담는데 성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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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0 시즌에도 레프트백 자리에서 주전으로 출전하지만 노쇠화로 인해 예전보단 폼이 많이 떨어진 상태. 결국 겨울 이적시장에 갈라타사라이가 RB 라이프치히의 레프트백 마르셀로 사라치를 임대영입하면서 외국인 등록명단을 초과하게되어 명단에 등록할수 없게 되었다. 때문에 볼로냐 FC 1909로 이적이 점쳐졌으나 겨울이적시장 기간이 지나 실패하게된다.
결국 남은 반시즌을 경기출전없이 갈라타사라이에서 남게 되었는데, '받을 자격이 없으므로 주급을 받지 않을 것'을 선언하여 1억가량의 급료를 포기하였다고 밝혔다.
결국 시즌 종료후 계약 만료로 2년 반시즌동안 몸담은 팀을 떠나게되었다. 갈라타사라이에서 2번의 리그 우승, 1번의 리그컵과 슈퍼컵 우승 트로피를 들어올렸다.

2.6. 올랭피크 드 마르세유


현지시간으로 2020년 8월 31일, 프랑스 리그앙올랭피크 드 마르세유에 FA로 합류하였다. 계약기간은 1년.
하지만 최근 자책골을 넣는 등 부진한 모습을 보여주면서 많은 비난을 받고있다. 나이가 나이인지라 노쇠화의 기점이 된듯

3. 국가대표 경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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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 베이징 올림픽조별예선 에서부터 국가대표에 모습을 드러낸 나가토모는 2010년 남아공 월드컵에서 크게 활약하여 세계 레벨의 윙백이라는 평가를 받게 되면서 유럽 축구 관계자들의 눈에 띄게 되고, 세리에 A 입성의 계기를 마련했다.
2010년에 벌어진 일본과 아르헨티나와의 평가전에서는 리오넬 메시를 지워버리며 일본의 승리와 16강 진출에 일조했고, 2011년 AFC 아시안컵에서는 구멍난 일본 수비진에서 혼자 날아다니며[6] 사실상 이번 대회의 MVP라는 평가를 받기까지에 이른다. 실제로 4강 한일전만 보더라도 이청용은 나가토모에게 완전히 지워지면서 교체당해 결국 양팀 통틀어 최하평점을 받았고, 차두리는 나가토모의 오버래핑에 뚫리며 어시스트를 내주고 말았다.
2014 브라질 월드컵에도 국가대표로 선발되어 왼쪽 풀백으로 기용되었는데, 탈탈 털린 일본 대표팀 내에서 오른쪽 풀백인 우치다 아쓰토와 더불어 그나마 선전하는 모습을 보여주며 체면치레를 했다.
2017년 11월 10일, 브라질 대표팀과의 친선경기를 통해 일본 축구 국가대표팀 선수로선 7번째 센추리 클럽을 달성하였다. 이 경기에서 임시로 주장을 맡았지만, '주장은 하세베 마코토'라고 겸양하였다.# 이 여세를 몰아 러시아 월드컵 본선 조추첨에선 일본국가대표팀을 대표하는 인터뷰 영상을 촬영하였다.Welcome to Russia
2018년 러시아 월드컵 일본 대표팀에 선발되었고 전경기 선발 출장하였다. 아시안 '''마르셀로'''란 별명이 붙을 정도로 공수 양면에서 엄청난 활약을 하며[7] 일본 대표팀의 16강 진출을 이끌며 자신의 통산 2번째 월드컵 16강 진출을 달성했다.
2019 AFC 아시안컵 아랍에미리트에서도 최종 엔트리에 올라 조별리그 3차전을 제외한[8] 전 경기에 선발 출전하여 일본의 준우승에 기여했다. 사실상 일본의 베테랑 선수들이 대거 빠지고 신인 선수들이 주를 이루고 있는 세대 교체 시즌에 유일하게 나가토모 혼자 엔트리에 이름을 올렸고[9] 노련미 어디 안간다는 것을 증명하듯 공수 측에서 최고의 활약을 보여주었다.

3.1. 우승 기록



3.2. 개인 수상 경력


  • J1리그 베스트 일레븐: 2009
  • AFC 아시아 베스트 일레븐: 2011, 2012
  • AFC 올해의 국제 선수상: 2013
  • AFC 아시안컵 베스트 팀: 2011

4. 플레이 스타일


빠른 스피드와 강철 같은 체력으로 역습시 상대 풀백이 오버래핑 한 뒷공간을 노려 침투하는 것이 트레이드마크로 상당히 공격적인 측면수비수.
상대 측면을 부수는 칼날같은 타이밍의 라인브레이킹은 높은 레벨의 스루패스를 제공하는 일본산 미드필더들과 시너지를 일으키며 역대 아시아인 풀백중 최고레벨의 라인브레이킹능력을 자랑한다.[10]
전후반 내내 탑스피드로 뛰어다닐 수 있는 체력과 이를 살린 활동량이 가장 큰 특징이다. 100m 런닝 기록은 10.8초. 키는 크지 않지만 여타 일본 선수들에 비해 단단한 체격이라 몸싸움에서도 쉽게 밀리지 않는 것도 장점. 테크닉 면에서는 톱클래스라고 하기엔 다소 부족하지만, 이를 피지컬로 커버하는 타입이다.[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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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리에A 출신 수비수답게 지능적인 더티플레이에도 능해서 위와 같이 상대 선수를 담궈버리는 수준의 살인태클을 쓰면서도 카드는 전혀 수집하지 않는 비범함을 보여준다. 여러모로 일본에선 찾아보기 힘든 스타일.
주 포지션은 풀백이지만, 인테르에서는 팀이 3-4-3 포메이션 사용시 공격력을 살리기 위해 왼쪽 미드필더로도 종종 기용되기도 했다.
낮게 깔아차는 런닝 크로스는 일품이지만, 높은 크로스는 그냥 적당히 차올리는 경향이 강하다. 애초에 오른발잡이[12]가 왼쪽 풀백에 뛰면서 생기는 한계이기도 하다. 그래도 인테르 이적 이후 감독의 특명으로 집중훈련을 받아서 향상되긴 했다. 주세페 바레시 수석코치를 끼고서 훈련을 하는지라 나가토모가 크로스로 어시스트를 하면 가장 기뻐한 것도 주세페라고(…).

5. 기타


  • 메이지대학 정치경제학부 재학 시절 교직과정을 이수했는데, 졸업논문은 영국 문화 연구였다.
  • 세리에 A에서 첫 골을 기록할 당시 하비에르 사네티와 같이 한 인사 세레머니가 유명세를 탔다.
  • 인테르의 행사 때, 인테르 팬들에게 너네 뛰지 않으면 AC 밀란이라고 하기도 했는데, 사실 이건 원래 인테르에서 자주 쓰던 응원 챈트 중 하나다. 나가토모가 유독 이 챈트를 좋아한다고 한다.
  • 관련 유행어실질 나가토모(実質長友)라는 것이 있다. 인테르의 골에 직/간접적으로 나가토모가 연관돼있기만 하면 '실질적으로 나가토모가 넣은 골이나 마찬가지다'라는 식으로 일본 언론들이 떠들어댔기 때문. 이탓에 유행어가 되어 나가토모가 출전하지 않은 시합은 물론, 나가토모와 전혀 관계가 없는 쌩뚱맞은 팀이 골을 넣기만해도 '실질 나가토모'라는 식으로 사용되고 있다(…).
  • 나가토모의 고향인 에히메 현의 천체 관측관 직원 한 사람은 스스로 발견한 소행성(등록 번호 158241) 이름을 Yutonagatomo라고 등록하며 팬심을 과시하기도 했다.
  • 2015년 4월부터 자국 일본에서 본인 이름을 그대로 딴 나가토모 유토 축구 아카데미를 운영하고 있으며, 같은 시기 주식회사 Cuore를 개업하여 CEO로써의 사업도 벌이고 있다. 사업 분야는 스포츠, 요식, IT 등으로 제법 다양하다.
  • AKB48의 1인자였던 오오시마 유코가 그의 열렬한 팬이다. 그의 축구 인생을 다룬 다큐멘터리에 나레이션 성우로 참여했을 정도. 그래서인지 나가토모는 2010년 12월 16일 후지TV의 인기 프로그램 '와랏테 이이토모'[13]의 '텔레폰 쇼킹'에 그녀가 출연했을 때 화환을 보낸 적이 있다.[14]
  • 2016년 12월 24일 장거리 연애 끝에 일본의 여배우 타이라 아이리와 결혼을 발표했다. 무려 스타디오 주세페 메아차의 경기장 한복판에서 청혼을 했다는 점과 예비 신부를 저의 아모레라고 불렀다는 점 등 여러 가지로 화제를 불러일으켰는데, 저 저의 아모레라는 말이 잠깐 유행세를 타기도 했다. 이후 아이리는 배우 생활을 정리하고 이탈리아로 이주했다.

6. 같이 보기




[1] 일본 축구 협회 공식 프로필[2] 그 때 쌓인 스트레스 때문에 한 때는 노는 데 열중했으나 누나와 동창생들의 격려로 다시 일어설 수 있다고 한다.[3] 그 프로팀이 가시마 앤틀러스다.[4] 그리고 결국 북치는 CM까지 찍었다.링크[5] 대표적인 예가 나폴리와 유벤투스와의 홈경기. 나폴리전은 마크를 최악으로 하여 실점의 직접적인 원인이 되었고 유벤투스전에선 유벤투스의 효과적인 공략에 속수무책으로 당했다. 챔피언스리그 트라브존스포르와의 홈경기에서도 수비수들 전체의 잘못이긴 하지만 흘러나온 볼의 처리를 미루다가 결국 실점하는 빌미를 제공했다.[6] 4강 한일전, 그리고 결승 호주전에서는 어시스트까지 기록.[7] 조별리그 2차전 세네갈전에서 1어시스트를 기록했다.[8] 토너먼트 진출을 확정지은 상태라서 장시간 휴식 보장을 하기 위함이었다.[9] 요시다 마야도 있긴 하지만 이번 아시안컵에 발탁된 선수들중 2010년 남아공 월드컵때부터 꾸준히 출전하여 일본 축구 국가대표팀의 위상을 전세계에 각인시킨데 기여한 선수는 나가토모밖에 없다.[10] 2011 AFC 아시안컵 4강 한일전에서 남아공월드컵을 통해 각성하며 약점이 없어보이던 차두리를 연장전포함 120분내내 괴롭히며 차두리 본인 뿐만 아니라 대한민국 축구팬들을 충격에 빠트리게 한 경기가 대표적. 전후반 내내, 연장전에서까지 팔팔하게 뛰어다니며 한국 수비진의 오른쪽을 말 그대로 박살을 내어놓았다.[11] 다만 원래 나가토모는 공격에 집중하는 경우가 많은데, 전성기 때는 주력과 체력이 좋아서 조금 공간을 비워놓아도 그 곳으로 공이 오면 득달같이 돌아와서 커버할 수 있었다. 그러나 나이를 먹고 체력이 전성기 때보다 떨어진 30대 이후에도 여전히 공간을 비우고 전방압박이나 협력수비에 열을 올리다보니 최근에는 본인이 맡은 지역에서 열리는 공간을 커버하지 못하고 뚫리는 모습을 곧잘 보여주고 있다.[12] 왼발 사용빈도도 양발잡이에 가깝게 높은 편이나, 위력이 오른발에 비해 확실히 떨어진다.[13] 1982년 ~ 2014년 26년 동안 주 5일 1시간씩 생방송을 했던 유명 예능 프로그램이다. 타모리가 진행을 맡았다.[14] 이 코너는 그 날 출연자가 다음날 출연자를 전화로 추천하는 형식의 코너인데, 스타가 출연할 때마다 지인, 관계자들이 화환을 보낸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