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코하마 F. 마리노스

 





'''요코하마 F. 마리노스 '''
'''Yokohama F. Marinos '''
'''정식 명칭'''
横浜F・マリノス
'''애칭'''
Marinos, Tricolore
'''라이센스'''
J1
'''구단 형태'''
기업구단
'''모기업'''
닛산자동차 (80%)
시티 풋볼 그룹 (20%)
'''소속 리그'''
J1리그
'''창단 연도'''
1972년
'''연고지'''
가나가와현 요코하마시, 요코스카시
'''구단명 변천'''
닛산자동차 축구부 (1972~1992)
요코하마 마리노스 (1993~1998)
'''요코하마 F. 마리노스[1] (1999~현재)'''
'''홈 경기장'''
닛산 스타디움 (72,327명 수용)[2]
닛파츠 미츠자와 구기장 (15,454명 수용)
'''회장'''
쿠로사와 류지
'''감독'''
엔제 포스테코글루
'''킷 스폰서'''
아디다스[3]
'''홈페이지'''

'''우승 경력'''
'''J1리그
(4회)'''
1995, 2003, 2004, 2019
'''천황배
(2회)'''
1992, 2013
'''J리그컵
(1회)'''
2001
'''아시안 컵 위너스컵
(3회)'''
1992, 1993, 1995
'''아시안 슈퍼컵
(1회)'''
1995


1. 소개


'''PRIDE'''
'''OF'''
'''TRICOLORE'''
요코하마 F. 마리노스는 J리그 축구팀이다. 4번의 리그 우승이 있고 J리그에서 성공한 구단으로 손꼽힌다. 닛산자동차 축구부가 전신이다. J리그 출범 당시 클럽 명칭은 요코하마 마리노스였으나 1998년 요코하마 플뤼겔스의 스폰서였던 ANA와 사토공업이 경영난으로 구단 후원을 포기하자[4] 이 구단을 흡수합병하여 지금의 이름으로 바꿨다. 팀명에서 추가된 이니셜 F는 플뤼겔스를 뜻한다. 마리노스는 '선원'이라는 뜻의 스페인어이며 국제항구도시인 요코하마를 상징한다.
2020년 기준으로, J리그의 오리지널 10(J리그 출범 당시 10팀) 이면서 동시에 단 한번도 하위리그 강등을 경험하지 않은 최후의 두 팀 중 한 팀. 다른 한 팀은 마찬가지로 J리그 전통의 강호인 가시마 앤틀러스이다.
시티 풋볼 그룹이 소유하고 있던 지분 20%를 매각한다고 한다. 후속보도로는 계약연장에 관해 협의중이라고 #
[image]
마스코트 마리노스군과 마리노스케

2. 초창기


1970년대 당시 닛산은 야구부가 있었지만 야구 이외에 응원할 수 있는 스포츠 구단이 필요하다고 판단해 1972년 닛산자동차 축구부를 창단했다. 2년 후인 1974년 얀마 디젤 축구부[5]선수 출신이었던 가모 슈를 감독으로 임명해 본격적인 팀 전력 강화에 들어간다.
이렇게 착실히 팀을 가다듬은 닛산자동차 축구부는 2년 연속으로 가나가와현 사회인 축구리그 우승을 이뤄냈고 1976년 관동 축구 리그에서는 승격 첫 해에 우승을 차지했고 그 해 전국 사회인 축구 선수권 대회에서 우승하며 1977년 JSL 2부로 승격했다. 승격 첫 해부터 2위를 차지하며 선전했지만 후지쯔 축구부[6]와의 승강 플레이오프 2경기 모두 져 아쉽게 1부리그 승격을 놓친다. 가모 슈 취임 5년차인 1978년 다시 2위를 차지했고 후지쯔와의 리벤지 매치에서 승리하며 JSL 1부 승격을 달성했다.
하지만 1부 승격 첫해인 1979년 1부 최하위인 10위에 그친다. 이 시기 JSL 승강 방식은 1부 10위와 2부 1위와의 승강 플레이오프로 결정하는 방식이었기 때문에 2부 1위팀 도시바 호리카와쵸 축구부[7]와의 승강 플레이오프를 치뤘다. 닛산 입장에선 다행스럽게도 승강 플레이오프에서 이기며 1년 만에 2부리그 강등은 면했지만 1980년에도 최하위를 기록하게 되며[8]3시즌 만에 2부리그로 강등된다.
1981년 2위에 그쳐 1부리그 다이렉트 승격은 놓쳤지만 신일본제철 야하타 축구부와 승강 플레이오프에서 승리하며 1부리그 재승격을 이뤄낸다. 1982년 시즌 이후 J리그 출범 전까지 닛산자동차 축구부는 2부리그로 강등된 적이 없었다.
1부리그 승격 후 가모 슈는 기존에 자신이 중시하던 수비적인 축구에서 공격적인 축구로 전환을 꾀한다. 1980년 주오대학에서 가네다 노부토시, 1981년에는 메이지대학에서 기무라 카즈시, 1982년 후지타에서[9] 마리뉴를, 1983년에는 미즈누마 다카시까지 대표급 선수를 입단시키는 공격적인 영입을 단행했다. 이러한 공격적인 보강이 결실을 맺어 1983년, 1984년 JSL에서 2위, 1983년과 1985년 천황배 우승을 달성한다.
또한 여기서 그치지 않고 팀 내 환경 개선을 적극적으로 추진했다. 당시 닛산은 신코야스 내 훈련장을 사용하고 있었지만 1980년에 자체적으로 시시가야에 새로운 훈련장과 클럽하우스를 건설했다.
오랜 세월 회사와 교섭한 결과 1985년에 기무라 카즈시, 마리뉴가 계약선수로서 인정되어 다음 해인 1986년 기무라는 스페셜 라이센스 플레이어로서 국내 프로 1호 선수가 되었다. 그 해 닛산 풋볼 클럽이 설립해 장기적인 선수 육성을 목표로 고등학교, 대학교와 협약한 유스팀과 여자팀인 닛산 FC 레이디스[10]를 창설하며 향후 프로리그 참가 발판을 마련했다.
1987년에 전 브라질 대표팀 주장 출신 주세 오스카르 베르나르지를 영입했다. 오스카르는 닛산에 수비진 개선과 프로의식을 가져왔다는 평가를 받을 정도로 좋은 모습을 보여줬고 1988-89 시즌에는 JSL, 천황배, JSL컵 3관왕을 달성했다. 다음 시즌인 1989-90시즌에도 우승을 차지하며 2연속 우승을 기록했고 JSL컵 1988, 1989, 1990년 3연속 우승, 천황배 또한 1988, 1989, 1991년에 우승을 차지하며 닛산의 천황배 통산 5회 우승을 달성하게 된다.
이 시기 라이벌인 요미우리 축구 클럽[11]과의 일전은 양 팀 모두 공격적인 축구를 지향한 점과 향후 프로화를 노리는 클럽 간의 대결이라는 점에 있어 흥행 요소로 자리잡아 일본 축구팬의 주목을 끌었고 1992년 3월 22일 국립 카스미가오카 육상 경기장에서 열린 1991-92시즌 21라운드 요미우리와의 경기에서 6만명의 관중을 모았다.
1991년 10월 J리그 창립멤버로 가입이 승인되었고 1993년부터 J리그에서 활동하게 된다.

3. J리그



3.1. 1990년대


J리그에 참여한 이 후에는 1993년 4위 1994년 6위를 기록하게 된다. 1992년과 1993년에는 아시아컵 위너스컵 우승을 차지하게 된다. 이때부터 요코하마 마리노스로 활약 하게 되고 1995년에는 J리그 챔피언결정전 우승을 차지한다.
1996, 1997 3위를 기록하게 되지만 1998년엔 4위를 기록하고 요코하마 플뤼겔스와 합병한 1999시즌[12]에는 5위를 기록하며 순위는 한단계 더 내려가게 된다.

3.2. 2000년대


2000년도에는 준우승을 기록하면서 부활하나 싶더니 2001년 13위로 수직하락하게 된다. 위안거리라면 이때 J리그컵을 우승했다는게 위안.
2002년도 부터 팀을 개편하기 시작했고 때맞춰 가시마 앤틀러스가 몰락하면서 팀은 우승 기회를 얻게되지만 주빌로 이와타에게 우승을 내주고 만다.
하지만 이에 굴하지 않고 2003년도에는 사상 두 번째로 J리그 전후기 리그 스테이지 통합 우승을 달성하며 숙적 주빌로 이와타를 밀어내고 J리그 2번째 우승을 달성하게 된다.
2004년도에는 '''안정환'''이 영입되고 팀은 전기리그 우승 뒤 J리그 챔피언결정전에서 우라와 레즈를 꺾고 2연패를 달성하게 된다. 이때 안정환은 25경기 출전 12골을 넣는 준수한 활약을 보인다. '''그리고 요코하마 마리노스는 10년 넘게 우승을 하지 못했다.'''
우승 이후 성적은 내리막길을 걸어 2005년 9위 2006년 9위 2007년 7위 2008년 9위 2009년에는 이리치고 저리 치이다가 신인왕을 수상한 와타나베 가즈마의 활약으로 겨우 겨우 10위를 기록하였다.

3.3. 2010년대


2010년은 8위로 마치고 2011년 5위로 마치는 등 어정쩡한 순위를 기록하다가 2012년 리그 최종전에서 사간 도스를 1:0으로 꺾고 4위를 기록해 점점 나아지는 모습을 보였다.
2013년도에는 승승장구 하면서 1위를 차지해 리그우승에 다가섰지만 시즌 막판 2연패를 하면서 준우승, ACL출전권에 만족해야 했다. 그래도 천황배를 우승하면서 체면치레를 했다.
설욕을 다짐하며 나선 2014 시즌에는 주 득점원인 마르키뇨스가 비셀 고베로 이적한 공백을 매우지 못하고 득점력 부족에 시달렸고, ACL 출전으로 인한 초반 부진을 극복하지 못하고 7위로 시즌을 마감했다.
2스테이지 제도가 도입된 2015 시즌에는 신임 에릭 몽바에르 감독 체제로 임하여, 전반기 6위 후반기 5위 통산 7위의 성적을 기록하였다.
2016시즌은 전기리그 11위, 후기리그 8위를 기록하며 통합 10위로 성적이 하락했다.
단일리그로 복귀한 2017시즌에는 시즌을 5위로 마치며 오랜만에 상위권으로 돌아왔고 천황배에서 결승까지 진출하지만 세레소 오사카에 패배하며 무관으로 시즌을 마친다.
2018 시즌에는 호주 대표팀 감독이었던 엔제 포스테코글루 감독이 부임한다. 그러나 유소년 시절부터 뛰었고 팀의 주장이었던 사이토 마나부가 라이벌인 가와사키 프론탈레로 이적료 한푼없이 자유계약으로 이적해버린다. 팀도 계속 부진에 허덕이고 있는데 19경기를 치룬 현재 강등권인 16위와는 승점 동률을 이루고 있다.
이후에 성적을 서서히 올리면서 나름 안정권까지 갔다. 33라운드에서는 패하더라도 강등을 다투던 쇼난, 토스, 나고야중 한팀이라도 패배하면 잔류가 확정되는 유리한 상황이었다. 33라운드 상대는 사간 토스였고 1대0으로 앞서나가고 있었지만 후반에 페널트킥을 내주면서 동점이 되고 마지막에 먹튀소리를 듣던 페르난도 토레스에게 극적인 골을 먹히면서 패배하고만다. 쇼난과 나고야 역시 승리를 거두면서 승점차가 1점 차이까지 좁혀졌지만 마지막 라운드에서 쇼난과 나고야가 맞붙게되고 골득실차도 큰 편이라 잔류는 사실상 확정적이다.
2019 시즌은 부진했던 전 시즌과는 다르게 우승을 노리는 위치까지 올라왔다. 선두 FC 도쿄를 많이 따라잡았지만, 17라운드 맞대결에서 패하면서 승점이 6점차로 벌어졌다. 11월 23일 32라운드에서 FC 도쿄를 1점차로 따돌리며 1위에 다시 올랐다. 그러나 다음 상대가 챔피언스리그 진출을 노리는 강팀 가와사키 프론탈레이고 마지막 라운드의 상대는 우승 경쟁을 펼치는 FC 도쿄다보니 아직은 부담이 있는 상황이다.
그런데 가와사키 원정에서 1-4라는 큰 점수차로 대승을 거뒀고 이 날 도쿄는 우라와와 비기면서 승점차는 3점차가 되어 다음 경기에 이기거나 비기면 우승 확정이다. 또한 득실차를 7골 차까지 벌려 놨기에, 마지막 경기가 우연히도 FC 도쿄 전인데, 이 경기에서 지더라도 4골차로 패하지만 않는다면[13]우승하기 때문에 매우 유력한 상황이다. 그리고 마침내 FC 도쿄를 3-0으로 잡으며 2004년 이후로 무려 15년만의 우승을 이뤄냈다. 요코하마 FC도 오래간만에 J1 승격에 성공해서 2019년에 오래간만에 치뤘던 요코하마 더비도 2020년에는 리그에서 다시 볼 수 있게 되었다.

3.4. 2020년대



3.4.1. 2020년


2020년 포스테코글루 3년차를 맞는다.
마리노스의 원클럽맨 구리하라 유조가 현역에서 은퇴했고 마테우스가 나고야로 복귀했다. 히로세 리쿠토가 가시마에, 리 타다나리, 나카가와 가자키가 교토로 이적했고 스기모토 다이치가 주빌로 이와타에, 이즈미사와 진이 반포레 고후로 임대된다.
영입으론 세레소 오사카 소속이었던 미즈누마 고타, 작년 오이타에 임대 이적한 우라와 레드 다이아몬즈 소속 오나이우 아도, 교토 상가 센토 게이야, 가나자와 야마모토 노리미치, 도쿠시마 보르티스에서 가지카와 유지와 스기모토 류지, 야마구치 마에 다카유키를 영입했다.
지난 시즌 히로시마에서 임대 이적했던 와다 타쿠야, 나카바야시 히로츠구, 2018년 여름 파우메이라스에서 임대해온 치아구 마르틴스, 무앙통 유나이티드 FC에서 임대 영입했던 티라톤 분마탄은 완전 이적으로 영입했다. 에지가르 주니오와 에리크는 임대 연장으로 잔류했다.
후지 제록스 슈퍼컵에서는 천황배 우승팀 비셀 고베를 상대한다. 3점차를 따라잡는 집념을 보이며 승부차기까지 끌고 간다. 마르틴스와 주장 오기하라는 성공했지만 에지가르, 미즈누마, 마쓰바라, 와다, 엔도가 전원 실축해 고베에 우승컵을 내주었다. 이로써 요코하마 마리노스 시절까지 후지 제록스 슈퍼컵은 5연속 준우승에 머물렀다.

3.4.2. 2021년


지난 시즌 부진을 딛고 재도약하려는 포스테코글루 체제 4년차가 되는 해이다.
우선 오쓰 유키가 주빌로 이와타에, 박일규가 사간 도스로, 에지가르 주니오르가 나가사키로 이적했다. 에리크, 주니오르 산투스가 임대 기간 만료로 팀을 떠났다.
한편 오이타 트리니타에서 이와타 토모키, EC 바이아에서 에우베르, EC 비토리아에서 레오 세아라를, 마츠모토 야마가에서 임대로 영입했던 마에다 다이젠을 완전 영입했다.

4. AFC 챔피언스 리그


1988~1989년 우승으로 1989-1990년 아시안 클럽 챔피언쉽에 참가 하게 된다. 예선라운드 6조에 속해 랴오닝 FC[14], 북한 찬동체육단, 마카오 합콴과 경기하게 되었다.
랴오닝에게 5:0으로 깨진거 외에는 나머지 경기를 모두이겨 2승1패 조2위로 조별예선에 올라가게 된다. 조별예선에서 무난히 2승을 하고 결승전에 진출하게 되는데 결승전은 5:0대패를 선물해 줬던 랴오닝 FC와 다시만나게 되었다.
요코하마는 예선라운드 5:0복수를 돌려주겠다며 이를 갈았지만... 홈에서 열린 1차전에서 2:1패배를 당해 2차전에서 2골이상 넣아야 하는 부담에 중국 선양으로 떠나게 된다. 2차전선양에서는 1:1무승부를 기록해 총 3:2스코어로 우승을 내주게 된다.
1989-1990년 JSL 우승 자격으로 2연속 AFC 대회를 참가했지만 예선라운드에서 북한 4.25체육단 그리고 또다시 '''랴오닝 FC'''를 만나게 되었다. 요코하마팬들은 속이 뒤집어 질지경이고 게다가 전경기를 북한에서 치루게되 이래저래 부담을 안고 떠나게 되었다. 이러한 부담이 원인이 되었는지 2패를 하고 광탈하게 된다.
1995년 J리그 우승자격으로 1996-97대회에 참가해 동아시아 1라운드 부전승 2라운드 말레이시아 클럽팀 상대로 3:1승리를 거두고 동아시아 조별예선에서 포항 스틸러스, 성남 일화 천마, 몰디브 뉴 래디언트와 속하게 되었고 모든경기를 대구에서 치루었다.
1차전 포항 스틸러스 상대로 2:2로 비기고 2차전 성남 일화 상대로 3:2패배를 하게 된다.
최종 라운드 남겨 놓고 성남은 2승으로 4강을 확정지었고 포항은 1승1무로 성남과 경기에서 반드시 비기거나 이겨야 하는 상황이였다. 이때 요코하마에게도 기회가 있었는데 포항과 무승부 관계로 포항이 지고 요코하마가 이기면 1승1무1패 동률이 되는데 이때는 승자승이 아닌 골득실을 따지게 된다. 그러므로 요코하마는 마지막 희망을 걸고 몰디브팀 상대로 10:0 대승을 거두나 '''포항과 성남이 0:0으로 비긴 바람'''에 4강 진출 꿈은 물거품이 된다.
2003년 J리그 우승팀 자격으로 AFC 챔피언스 리그 2004년도 대회 참가하게 된다. G조에 배정받아 성남 일화 천마, 페르식 케디리(인도네시아), 베트남 빈딘과 속해 경기를 치루게 되었다.
G조는 성남과 요코하마의 싸움으로 가게 되었는데 성남과 1차전 홈경기는 2:1패배 2차전 원정은 1:0승리를 거둠으로써 1승1패를 기록해 골득실로 조1위가 갈리는 상황이였다. 골득실은 5차전 까지 요코하마가 유리했지만 성남이 페르식 케디리를 상대로 '''15:0'''대승을 거둬 골득실에 앞서면서 순위가 역전되어 버렸다. 최종전에서 페르식 케디리를 상대로 4:1 대승을 거두었고 성남도 빈딘을 상대로 3:1승리를 거두었지만 성남은 24득점 4실점 +20을 기록하고 요코하마는 19득점 3실점 +16을 기록해 골득실차에 의해 조1위를 내주게 된다. 그리고 성남은 승승장구해 결승전까지 가지만 결승상대는...
2005년 대회에서는 F조 산둥 루넝, 태국 BEC 테로 사사나, 인도네시아 PSM 마카사르와 속해 경기를 치루게 되었다. BEC 테로 사사나, PSM 마카사르 상대로 전승을 거두었지만 산둥 루넝 상대로 1차전 1:0 2차전 2:1패를 당해 4승2패를 기록 6전 전승한 산둥에게 조1위 티켓을 넘겨주고 탈락했다.
2014년 J리그 준우승, 천황배 우승자격으로 9년 만에 AFC 챔피언스 리그에 출전 G조에 속해 전북 현대 모터스, 광저우 헝다, 멜버른 빅토리와 경기를 치루게 되었다. 1차전 전북 현대와 원정경기에서는 0:3으로 패배 하였으나 2차전 광저우와 홈경기에서는 1:1로 비겼다. 3차전 멜버른 빅토리 상대로 원정경기에서는 0:1로 패배했으나 4차전 홈경기 에서는 3:2로 이겼다. 5차전 전북과 홈경기에서도 2:1로 역전승을 거두었으나 마지막 6차전 광저우 헝다 원정경기에서는 1:2로 패하면서 2승 1무 3패 승점 7점 조 4위로 탈락했다. 여담으로 5차전 종료때까지만 하더라도 4팀 다 승점 7점 동률을 이루어 피 말리는 경쟁을 했으나 전북은 멜버른과 비기면서 골득실차로 광저우는 요코하마를 누르면서 조 1위로 16강에 진출했다.
2019년 J리그1 챔피언 자격으로 2020 AFC 챔피언스 리그에 출전 H조에 속했는데 전북 현대 모터스를 또 다시 만나고 말았다. K리그1 챔피언 전북 현대 모터스, 중국 슈퍼리그 3위 상하이 상강, 호주 A리그 18-19 정규시즌 준우승, A리그 그랜드 파이널 우승팀 시드니 FC와 한 조를 이루었다. 전북 현대는 K리그 1강, 상하이 상강은 광저우 헝다와 함께 중국 슈퍼리그 2강인 팀들이다. 1차전 전북 현대 원정에서 2:1로 승리를 거두면서 순조롭게 출발했다. 2차전인 시드니와의 홈경기에서는 4골을 맹폭하면서 조 선두로 치고 나갔다. 3차전 상하이 상강 전부터는 코로나19의 위험으로 인해 홈앤드어웨이가 아닌 중립지역에서 모든 경기를 하는 것으로 합의하였다. 중립지역은 카타르로 정해졌다. 3차전 상하이 상강과의 경기에서 1대0으로 이기며 3연승으로 조 1위 경쟁에서 한발 앞서나갔다. 하지만 4차전 상하이 상강전에서 4경기만에 패하면서 연승이 끊겼고 상강에게 추격을 허용하였다. 5차전 전북 현대전은 전북 또한 이 경기에서 승리하지 못할 경우 AFC 챔피언스리그 조별리그 탈락이 확정되기에 힘든 경기가 될 것으로 예상되었다. 그러나 뚜껑을 열자 전북 현대는 요코하마의 역습에 맥을 추지 못하며 요코하마의 4:1 승리로 끝났다.
그러나 16강에서 수원 삼성 블루윙즈를 만난 요코하마는 수원이 활용한 일본팀들 상대로의 파훼법인 피지컬을 활용한 전방압박[15]에 고전하고, 2000년생 신성 김태환의 플레이에 휘말리며 2:3으로 패배, 아쉬운 발걸음을 돌렸다.

5. 유니폼


중간에 나이키 시절도 있었지만 클럽 역사에서 대부분을 아디다스재팬과 함께 보냈다. 청, 백, 적의 트리콜로를 메인색상으로 하는 구단이다.
전면 스폰서는 닛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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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아디다스 저지 입은 요코하마 F. 마리노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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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아디다스 유니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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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아디다스 유니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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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아디다스 유니폼
맨체스터 시티를 포함한 시티풋볼그룹의 일원들이 다음 시즌부터 푸마의 스폰서를 받게 됐으나 요코하마의 경우 지분의 20%만 가지고 있을 뿐 여전히 소유주이자 대주주는 닛산자동차이기 때문에 시티풋볼그룹이 주도하거나 영향력이 약하기 때문에 별개로 계속 아디다스 유니폼을 입는다.

6. 선수 명단




7. 영구결번


2011년 8월 2일 훈련 도중 심근경색으로 쓰러져 세상을 떠난 '''마쓰다 나오키'''의 3번이 영구결번으로 지정되어 있다. 당시 소속팀은 마쓰모토 야마가 FC였으나, 1995년부터 2010년까지 요코하마 F. 마리노스에서 활약한 공로를 인정하여 영구결번으로 지정되었다.
'''요코하마 F 마리노스 영구결번'''
No.3 마쓰다 나오키
요코하마에서 10번의 의미는 팀의 에이스이자 팀을 대표하는 선수의 등번호이다.
25번[16]은 차기 10번 후보선수들이 맡는 등번호이다.

8. 기타


  • 중국 슈퍼 리그팀에 매우 약하다. 역대 아시안 챔피언스리그에서 랴오닝 훙윈에 1무3패 산둥 루넝에게 2패를 기록 총 1무5패를 당했다.
  • 요코하마시를 연고지로 하는 J리그 클럽에는 요코하마 FC, YSCC 요코하마도 있다. 그러나 요코하마 FC는 2007년과 2020년을 제외하면 줄곧 J2에 머물고 있고, YSCC 요코하마는 3부 리그에서 벗어난 적도 없는지라 크게 라이벌 구도는 형성되지 않고있다. 오히려, 가나가와현 내의 이웃 도시인 카와사키시[17]를 연고지로 하고있고, J1 상위권을 다투는 가와사키 프론탈레와 미묘한 신경전이 있다. 특히, 2013년 가와사키 프론탈레와의 최종전에 패하면서 우승이 좌절된 이후로 이러한 경향이 뚜렷해지고 있다. 2018년에는 8살부터 요코하마에서 뛰었던 팀의 주장 사이토 마나부가 이적료 없이 가와사키로 이적하면서 둘의 관계는 더욱 악화됐다. 2018년 4월 8일 가나가와 더비에서 부상복귀한 사이토 마나부가 교체출전했는데 그 순간 엄청난 야유가 쏟아져나왔다. 경기가 끝나고 팬들에게 소심하게 인사를 했지만 역시나 야유를 받고 씁쓸하게 퇴장했다.
  • 로스타임에서도 구태양이 속한 다롄 FC 16강전 상대로 등장한적이 있다. 역시 홈인데도 중국팀에게 약한 모습 보이면서 탈락했다.
  • 이 구단의 유소년팀에서 활동한 유지하는 성인팀의 꿈을 이루지 못하고 K리그 포항 스틸러스에 들어갔지만 2020시즌이 시작하기 전 방출되었다.
  • 예전 요코하마 주전 선수였던 유상철의 췌장암 투병 소식이 전해지자 팬들은 할 수 있다, 유상철형!![18]이라는 한글 걸개를 걸고 경기 중에 유상철의 이름을 연호했다. 해가 지남에도 전북 현대와의 ACL 전주 원정 때에도 마찬가지로 걸개를 걸었고 유상철은 이에 보답하듯 감바 오사카와의 J리그 홈 개막전을 보기 위해 요코하마를 방문했다. #

9. 한국 선수


유상철, 안정환 등의 스타 플레이어들이 거쳐갔으며, 이후에도 2008년 제주 유나이티드 소속으로 뛰고 은퇴한 신병호가 있다. 그 외 울산 현대 소속의 정동호, 경남 FC 소속의 김근환, 가시와 레이솔 소속의 박정수 등의 현역 선수들이 거쳐갔던 팀이고 2018년에 윤일록이 뛰었지만 무득점으로 부진하여 K리그로 임대되면서 돌아왔다. 2019년에는 재일교포 박일규리 타다나리가 새로 합류했다.[19]

10. 둘러보기






[1] 요코하마 플뤼겔스와 합병 이후[2] 2002 한일 월드컵 결승전이 열린 구장이다.[3] 아디다스 재팬[4] 사실 이 시기에는 마리노스의 모기업 닛산도 도산 직전이었다. 1999년초 프랑스 르노의 출자를 받으면서 간신히 생존했다.[5] 세레소 오사카의 전신.[6] 가와사키 프론탈레의 전신.[7] 홋카이도 콘사도레 삿포로의 전신[8] 이 해는 최하위가 다이렉트 강등이 되는 것이 규정이었다.[9] 쇼난 벨마레 전신.[10] 1993년을 끝으로 해체.[11] 도쿄 베르디 1969의 전신[12] 이때 요코하마 플뤼겔스를 흡수해 요코하마 'F' 마리노스라는 이름으로 재탄생하게 된다. 여기서 'F'가 바로 플뤼겔스를 뜻하는 이니셜이다.[13] 득실차 다음 순위는 다득점으로 정하는데 득점은 20골 가까이 차이가 난다. 다만 마지막 경기가 직접 대결이라 골득실차가 좁혀지면 두배로 좁혀진다.[14] 랴오닝 훙윈 전신[15] 일본팀이 잘게 패스와 드리블을 하다가 러프한 플레이와 단단한 수비에 걸려 자신들의 리듬이 깨지고 파워 플레이 같은 속공에 당하는건 이미 10년 전부터 한국팀을 상대로 패배할때 보여온 패턴이다.[16] 25번은 같은 연고지를 쓰는 야구단 요코하마 디엔에이 베이스타즈에게도 의미가 있는 번호로 무라타 슈이치, 츠츠고 요시토모 등 팀 내에서 가장 기대치가 높은 기대주에게 부여하는 번호다.[17] 도카이도 본선 기준으로 한 정거장이다. 소요시간 8분[18] 유상철의 일본 별명이 상철아니키(상철형)이다.[19] 다만 이충성은 리 타다나리라는 이름과 함께 일본으로 귀화한 일본인이며 박일규는 대한민국 국적을 가지고 있어서 차이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