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학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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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鶴林
1907년 5월 5일 ~ 1972년 1월 10일
대한민국의 교육자, 기업인, 정치인이다. 본관은 전주 이씨[1] 다. 그의 장인어른은 신성모 전 대한민국 국방부장관이다.
1907년 충청북도 음성군에서 태어났다. 청주공립농업학교(현 청주농업고등학교), 경성사범학교(현 서울대학교 사범대학) 강습과를 졸업사였다. 이후 일제강점기 후기 음성보통학교(현 음성초등학교) 교사를 지냈다.
1945년 8.15 광복 후 만방기업주식회사 사장, 중앙사과공사 사장, 주식회사 삼흥사 광업회장, 한국해양개발주식회사 회장 등을 지내며 기업인으로 활동하였다.
1950년 제2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무소속으로 충청북도 음성군 선거구에 출마하여 현역 지역구 국회의원인 대한국민당 이의상 후보를 꺾고 당선되었다. 1952년 자유당에 입당하였다.
1954년 제3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자유당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1956년 군수용 원면 부정처리 사건인 원면 사건의 진상 조사에 노력하였다. 같은 해 자유당을 탈당하였다.
1958년 제4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무소속으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민주당 김주묵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1960년 제5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도 무소속으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무소속 이정석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1963년 제6대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민정당 창당에 참여하였다. 그 이후로는 정계에서 은퇴하였다.
李鶴林
1907년 5월 5일 ~ 1972년 1월 10일
대한민국의 교육자, 기업인, 정치인이다. 본관은 전주 이씨[1] 다. 그의 장인어른은 신성모 전 대한민국 국방부장관이다.
1907년 충청북도 음성군에서 태어났다. 청주공립농업학교(현 청주농업고등학교), 경성사범학교(현 서울대학교 사범대학) 강습과를 졸업사였다. 이후 일제강점기 후기 음성보통학교(현 음성초등학교) 교사를 지냈다.
1945년 8.15 광복 후 만방기업주식회사 사장, 중앙사과공사 사장, 주식회사 삼흥사 광업회장, 한국해양개발주식회사 회장 등을 지내며 기업인으로 활동하였다.
1950년 제2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무소속으로 충청북도 음성군 선거구에 출마하여 현역 지역구 국회의원인 대한국민당 이의상 후보를 꺾고 당선되었다. 1952년 자유당에 입당하였다.
1954년 제3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자유당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1956년 군수용 원면 부정처리 사건인 원면 사건의 진상 조사에 노력하였다. 같은 해 자유당을 탈당하였다.
1958년 제4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무소속으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민주당 김주묵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1960년 제5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도 무소속으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무소속 이정석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1963년 제6대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민정당 창당에 참여하였다. 그 이후로는 정계에서 은퇴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