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한권
1. 소개
한국의 전 프로농구 선수. 별명은 이름인 이한권에서 유래한 책한권, 책란트가 있다[2] .
2. 선수 시절
2.1. 아마추어 선수 시절
잠실고등학교 1학년 때까지는 평범한 학생으로 취미로 길거리 농구를 즐기던 이한권은, 농구의 유혹(!)을 도저히 뿌리치지 못한 채 농구부가 있는 낙생고등학교로 전학을 시도했고, 전학 절차가 여의치 않자 다니던 학교를 자퇴하고 재수(;;)를 통해 낙생고에 입학하게 된다.[3] 낙생고등학교 3학년 시절, 새롭게 부임한 박성근 감독의 지도 아래 이한권은 진경석, 정훈과 함께 고교무대를 휩쓸며 최강트리오로 불렸고, 이후 이들 낙생고 트리오는 대학 중하위권팀이던 성균관대학교에 98학번 동기로 다같이 입학하게된다.[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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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한권-진경석-박성근 감독-정훈(사진 왼쪽부터)
성균관대 시절 팀내 존재감으로는 정훈, 진경석에 밀렸으나, 센터임에도 다양한 플레이에 능한데다 외곽슛도 좋아 프로에서 재평가받을 만한 장신 포워드 유망주로 이름을 알렸고, 이를 바탕으로 서울 SK 나이츠에 1라운드 5순위로 지명된다.
2.2. 프로 선수 시절
첫 해에는 조상현의 군 입대와 팀 내 포워드진의 약해진 뎁스등으로 무주공산이 된 스몰포워드자리에서 주전으로 활약했다. 신인치고는 준수한 활약이었지만, 주전으로는 부족한 성적인데다 전임자가 워낙 대단한 선수여서 상대적으로 묻혔다. 그리고 다음해에 SK는 전희철을 영입하게 됨으로서 식스맨으로 전락했고, 이후 군입대를 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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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에서 복무하던중 SK는 조상현과 이한권, 황진원을 내주고 방성윤, 김기만, 정락영을 영입하는 3:3 빅딜을 행하게 되었고, 이 대형트레이드로 인해서 이한권은 부산 KTF 매직윙스로 이적하게 된다. 2006-2007시즌을 앞두고 제대했고, 이후 팀에 합류해서는 시즌 초 송영진의 국가대표 차출로 인한 빈자리를 맡기도 했지만, 역시 식스맨으로 활약했다. 그러나 한시즌만에 이홍수와 묶여서 신인인 김영환, 박세원과 2:2 트레이드로 인천 전자랜드 블랙슬래머로 또 팀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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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입 당시 다양한 플레이가 가능하고, 외곽슛이 괜찮은 식스맨으로 활용하려는 목적이었으나, 김성철의 부상공백을 틈타서 주전으로 도약했고, 정영삼과 함께 팀을 이끄는 큰 활약을 펼쳤다. 전년도 평균 4.0득점에서 평균 10.4득점으로 발전을 해냈고, 모비스를 이끈 김효범을 제치고 기량발전상을 수상했다. 다만 이후에는 공격력이 좋은 김성철, 수비력이 좋은 이현호, 신인 송수인, 블루워커 이병석, 태종대왕 문태종등에게 쭈욱 밀리며 식스맨으로 계속 활동했다. 2012-2013시즌은 게다가 팀에 신예 포워드인 김상규, 차바위와 베테랑 문태종, 이현호 등이 팀에 포진해있어서 더더욱 출전기회가 줄어들었다. 그러나 프로아마최강전에서 평균 12득점가량을 넣으며 괜찮은 활약을 보였고, 이 활약으로 당시 베테랑선수가 필요하던 전주 KCC 이지스로 트레이드 되었다. 다만 이 트레이드는 자신의 출전시간 보장을 위해 직접 요청한 트레이드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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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 KCC 이지스에 시즌 중 트레이드되었다. KCC는 선수진이 붕되되면서, 최하위권을 달리고 있는 와중에 득점을 이끌어줄 국내선수가 필요했는데, 허재 감독의 요청에 따라 당시 전자랜드에서 뛰지 못하고 있던 이한권이 이적해 온 것이다. 이적후 허재 감독의 기대치에 맞게, KCC 선수단을 혼자서 캐리하며 맹활약을 펼치고 있다. 서울 SK 나이츠전에서 대패하는 와중에도 팀의 공격을 이끌며 16득점을 하고, 5경기동안 15득점 가까이 해주며, 듀란트의 이름에서 딴 별명인 '''책란트'''라는 별명으로 극찬받는 등 팀의 공격의 핵으로 자리잡았다. 이후 아쉽게도 시즌아웃을 당하고 말았다. 2013-2014시즌에는 다시 식스맨으로 활동하고 있다. 그리고 시즌이 끝난 뒤 은퇴를 선언했으며, 현재는 삼일중학교에서 코치를 맡고 있다.
[1] 누군지 몰라도 이전 버전의 문서에서 180/73으로 적었는데 이 분은 키가 2m 가까이(...) 되는 분이시다.[2] 실제로 선수 시절 시즌 중에 관중들 중에 추첨하여 책을 한 권 선물하는 이벤트를 한 적도 있다(...). 이벤트 이름은 '''이 한권의 책(...)'''.[3] 이바람에 1살 어린 진경석과 같은 학년이 된다. 또 다른 낙생고 3인방 정훈의 경우, 명지고 시절 이미 1년 유급한 상태로 이한권과는 동갑이다.[4] 이 트리오의 활약에 힘입어 1998년 농구대잔치에서 당대 최강 연세대학교에 13년만에 승리를 거두는 쾌거를 달성한다. 성균관대가 연세대를 격파한 건 1985년 농구대잔치에서 73-48로 승리한 이후 처음있는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