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경석

 


'''청주 KB 스타즈 코치'''
'''CHEONGJU KB STARS'''
'''진경석
Kyung-Suk Jin'''
<colbgcolor=#f8b500> ''' 출생 '''
1979년 5월 13일 (45세)
''' 국적 '''
[image] 대한민국
''' 신체 '''
189cm
''' 직업 '''
농구선수(스몰 포워드 / 은퇴)
농구코치
''' 학력 '''
성남초등학교 (졸업)
낙생중학교 (졸업)
낙생고등학교 (졸업)
성균관대학교 (졸업)
''' 프로입단 '''
2002년 드래프트 (1라운드 3순위, 여수 코리아텐더)
''' 소속 '''
<colbgcolor=#f8b500> ''' 선수 '''
[image] 여수 코리아텐더-부산 KTF (2002~2008)
[image] 창원 LG 세이커스 (2008~2009)
[image] 원주 동부 프로미 (2009~2013)
'''코치'''
안양고등학교 (2013~2014)
성남중학교 (2015)
[image] 청주 KB 스타즈 (2015~ )
1. 개요
2. 선수 시절
2.1. 고교-대학 시절
2.2. 프로 시절
3. 지도자 경력
4. 관련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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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의 前 농구선수로, 2000년대 초반 성균관대학교 농구부의 짧디 짧은 전성기를 이끌었다. 現 여자 프로농구단 청주 KB 스타즈의 코치.

2. 선수 시절



2.1. 고교-대학 시절


낙생고 1학년때부터 탄탄한 수비에 외곽슛이 좋은 슈터로 주목받았고, 고 3때 청소년 대표팀 출신 장신포워드 정훈이 박성근 감독(前 명지대 감독)과 함께 합류하면서 기존의 이한권, 전병석 등과 함께 낙생고를 고교 최강의 자리로 이끈다.[1] 이들 중 특히 3학년 트리오 진경석-정훈-이한권은 '''낙생고 3인방'''이라 불리며 당시 아마추어 농구팬들의 주목을 한몸에 받았는데, 이들 낙생고 3인방 모두가 대학농구 하위팀이던 성균관대학교에 동반 진학하기로 결정하면서 농구계에 파장을 일으키기도 했다.[2]
[image]
낙생고 3인방 중 진경석과 정훈은 1학년때부터 팀의 주전을 차지했고, 특히 폭발적인 3점슛과 탄탄한 수비력을 자랑하던 진경석은 단숨에 팀의 주득점원으로 올라섰지만, 진경석의 대학시절은 김주성-송영진 트윈타워가 이끄는 중앙대가 아마농구 최강자로 군림하던 때라 우승타이틀이라곤 2000년 전국체전과 2001년 MBC배 2번이 전부였고, 당시 연고대를 위시한 소위 명문대들의 텃세 탓에 대학 최고의 득점원이었던 진경석은 그 흔한 대학선발팀에 몇번 뽑히지 못하는 아쉬움을 겪는다.[3] 그래도 4년간 꾸준히 팀의 핵심득점포로 활약한 덕분에, 2002년 KBL 드래프트에서 전체 3순위로 여수 코리아텐더 푸르미의 지명을 받는다.

2.2. 프로 시절


[image]
[image]
02-03 시즌 개막전부터 팀의 주전 스몰 포워드 자리를 꿰차며 팀의 주득점원 에릭 이버츠-안드레 페리를 보좌하는 역할을 맡았으나, 대학시절 장기였던 3점슛이 시즌이 갈수록 무뎌진데다, 팀내에 변청운, 김기만 등 비슷한 스타일의 선수들이 많아 시즌 중반부터는 아예 플래툰 시스템으로 출장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비록 시즌 3점 성공률은 20%대까지 떨어졌지만(29.9%) 탄탄한 신체조건을 바탕으로한 수비가 좋아 상대 득점원을 묶는 역할은 충분히 했고, 루키 시즌 평균 7.3득점-2.6리바-1.5어시-1.2스틸의 기록을 올리며 헝그리군단 여수 코리아텐더를 플레이오프 4강까지 진출시켰다. 이후 상무에서 제대한 현주엽의 합류로 백업으로 밀려난 진경석은 3점슛감을 완전히 잃어버리면서[4] 출장기회 자체가 줄었고 04-05 시즌 종료 후 공익근무요원으로 입소한다.
소집해제 후 07-08 시즌 원소속팀으로 복귀했으나 팀에는 이미 김영환, 박상오 등 젊고 활력넘치는 포워드들이 잔뜩 합류해 있었고, 그에 반해 진경석은 40경기에 출전해 3점슛률 20.0%를 찍는 극악의 슛감을 선보이며 추일승 감독의 신뢰를 완전히 잃어버린다. 시즌 종료 후 창원 LG김현중과 트레이드되어 당시 우승을 노리던 신선우 사단의 창원 LG 세이커스에 합류, 루키 기승호조상현의 백업요원으로 한 시즌을 보낸다.
[image]
08-09 시즌 종료 후 FA가 된 진경석은 창원 LG와 연봉 4500만원에 재계약을 맺지만, 곧바로 강대협 등과의 2:2 트레이드를 통해 원주 동부 유니폼을 입게 되고,[5][6] 2002 드래프티 1, 3, 4위(김주성-박지현-진경석)가 한 팀에서 뛰는 진풍경이 펼쳐진다. 하지만 박지현이 입단 직후부터 주전 포인트 가드로 자리매김하며 09-10 시즌 플옵 4강 진출을 시작으로 이후 팀을 10-11, 11-12 2시즌 연속 챔피언결정전에 진출시키는 데 기여한 데 반해, 진경석은 당시 동부산성으로 불리던 윤호영-김주성-로드 벤슨의 틈바구니를 비집고 들어가지 못한데다 윤호영, 이광재 등의 백업 역할조차 못하면서 2번의 챔프전 시리즈에서 무득점에 그치는 등 활약이 아쉬웠고, 원주 동부도 2년 연속 챔프전 준우승에 머문다.
12-13시즌 들어 벤슨[7]윤호영[8]이 떠나고 김주성마저 시즌내내 부상으로 신음하면서 진경석은 식스맨으로서 출장시간이 소폭 늘긴 했지만, 이 시즌엔 팀 전체가 아쉬운 모습만 보인 탓에 플레이오프 진출에도 실패했고 진경석은 시즌 종료 후 은퇴했다.
프로 통산 9시즌(공익근무 복무기간 제외)을 뛰었지만, '''루키시즌이 커리어 하이 시즌'''일 정도로 프로에서 빛을 보지 못한 케이스다. 대학 시절 그렇게 잘 들어가던 3점 슛은 결국 통산 성공률 29.85%를 기록, 30%에도 못 미친 채 커리어를 마무리하고 만다.

3. 지도자 경력


은퇴 후 개인사업을 하다 안양고등학교 농구부의 어시스턴트 코치로 부임, 조신영 코치[9]를 보좌한다.
이후 모교 성남중학교 코치로 부임해 후배들을 지도하다가, 2015년 5월, 서동철 감독의 부름을 받아 청주 KB 스타즈의 신임 코치로 임명된다. 15-16 시즌 종료 후 서동철 감독이 사퇴하고 2016년 4월 안덕수 감독이 새로 부임했지만 진경석 코치는 유임되어 현재까지 팀을 맡고 있다.

4. 관련 문서


[1] 정훈의 전학으로 인한 징계로 1997년 하반기부터 출전했음에도 불구, 하반기에 열린 모든 대회를 휩쓸며 3관왕(종별선수권, 쌍용기, 전국체전)에 오르는 성과를 거둔다.[2] 당시 PC통신 농구 커뮤니티에는 이들 3인방의 성균관대 동반 입학을 크리스 웨버-주완 하워드-제일런 로즈의 FAB Five 결성에 비하는 글들이 올라올 정도였다. 물론 성과물은 천지차이;;;;[3] 물론 2000년대 초 대학농구는 때아닌 장신포워드 풍년이 불어, 진경석 외에도 오용준, 김동욱(이상 고려대), 김동우, (이상 연세대), 박종천(경희대) 등 좋은 3번들이 즐비했다. 진경석은 3학년때 국내에서 열린 2000년 코맥스배 대표팀에 뽑히긴 하는데, 이땐 A, B 2팀을 뽑았었기에 가능했다.[4] 03-04 시즌: 31.7%, 04-05 시즌: 28.5%[5] 원주 동부 get: 박지현, 진경석 ↔ 창원 LG get: 강대협, 박진수. (누가 봐도 창원 LG의 Big Lose;;)[6] 참고로 이 때 LG는 우려 3팀과 6명의 트레이드를 시행했다. 상술한 동부와의 2대2 포함 오리온스 이현준. 백인선박광재, 석명준과 트레이드, 전자랜드 임효성한정원을 트레이드, 김현중의 임대 복귀.[7] 외국인선수 트라이아웃 재개로 인해 울산 모비스로 이적.[8] 상무 입대[9] 안양 SBS 스타즈 선수 출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