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태종

 

문태종의 수상 및 명예
[ 펼치기 · 접기 ]

KBL 챔피언결정전 우승 반지
2016
2019









[ 펼치기 / 접기 ]
1997-98 시즌
1998-99 시즌
1999-00 시즌
2000-01 시즌
2001-02 시즌
문경은
삼성 / 포워드
문경은
삼성 / 포워드
문경은
삼성 / 포워드
문경은
삼성 / 포워드
문경은
빅스 / 포워드
2002-03 시즌
2003-04 시즌
2004-05 시즌
2005-06 시즌
2006-07 시즌
데이비드 잭슨
TG / 가드
문경은
전자랜드 / 포워드
양희승
SBS / 포워드
조우현
LG / 가드
단테 존스
KT&G / 포워드
2007-08 시즌
2008-09 시즌
2009-10 시즌
2010-11 시즌
2011-12 시즌
문경은
SK / 포워드
김효범
모비스 / 가드
방성윤
SK / 포워드
박지현
동부 / 가드
전태풍
KCC / 가드
2012-2013 시즌
2013-14 시즌
2014-15 시즌
2015-16 시즌
2016-17 시즌
양동근
모비스 / 가드
변기훈
SK / 가드
문태종
LG / 포워드
조성민
kt / 가드
전준범
모비스 / 포워드
2017-18 시즌
2018-19 시즌
2019-20 시즌
2020-21 시즌*
2021-22 시즌
전준범
모비스 / 포워드
조성민
LG / 가드
최준용
SK / 포워드
양홍석
kt / 포워드

* 온라인 콘테스트 팬투표로 진행.




대한민국의 前 농구선수
문태종
文泰鐘
Jarod Cameron Stevenson

출생
1975년 12월 1일 (만 48세)
서울특별시
국적
[image] 미국, [image] 대한민국(복수국적)[1]
학력
리치몬드 대학교 (졸업)
가족
동생 문태영
배우자 니콜
장남 캐머런
차남 제이린
장녀 나오미
신체
신장 196.5cm | 체중 96kg
포지션
스몰 포워드, 슈팅 가드[2]
등번호
4
KBL 입단
2010년 귀화혼혈선수 드래프트 1번 (전자랜드)
소속[3]
[image] 인천 전자랜드 엘리펀츠 (2010~2013)
[image] 창원 LG 세이커스 (2013~2015)
[image] 고양 오리온 오리온스 (2015~2018)
[image] 울산 현대모비스 피버스 (2018~2019)
국가대표
2011 우한 ABC[4]
2014 스페인 월드컵 / 인천 아시안 게임
수상
해외 커리어
LNB Pro A(프랑스 1부 리그) Final MVP
LNB Pro B(프랑스 2부 리그) 외국인 MVP
FIBA EuroCup MVP
FIBA EuroChallange 올스타
KBL 정규리그 MVP 1회 (2014)
KBL 베스트 5 2회 (2011, 2014)
2014 인천 아시안 게임 금메달

[clearfix]

1. 개요


한국프로농구에서 활약했던 농구 선수. 인천 전자랜드 엘리펀츠, 창원 LG 세이커스, 고양 오리온 오리온스, 울산 현대모비스 피버스에서 뛰었다. 포지션은 스몰 포워드.
미 공군으로 일했던 아버지(아프리카계 미국인)와 한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혼혈이다. 한국으로 오기 전에 유럽 무대에서도 뛰어난 활약을 펼쳤으며, 동생 문태영 역시 한국에서 활약했던 농구 선수이다.

2. 기록


KBL 이전 기록
역대 기록
시즌
소속팀
경기수
2점슛
3점슛
자유투
득점
리바운드
어시스트
스틸
블록슛
2010-11
전자랜드
54
231/399
(57.89%)
97/221
(43.89%)
188/221
(85.07%)
941
277
173
56
17
2011-12
53
233/421
(55.34%)
88/263
(33.46%)
178/218
(81.65%)
908
259
153
75
28
2012-13
46
152/274
(55.47%)
75/219
(34.25%)
93/113
(82.30%)
622
220
109
51
30
시즌
소속팀
경기수
2점슛
3점슛
자유투
득점
리바운드
어시스트
스틸
블록슛
2013-14
LG
54
161/316
(50.95%)
94/225
(41.78%)
127/149
(85.23%)
731
214
136
46
30
2014-15
50
133/243
(54.73%)
84/226
(37.17%)
86/109
(78.90%)
604
205
126
43
23
2015-16
54
126/191
(65.97%)
96/245
(39.18%)
77/90
(85.56%)
617
207
89
47
28
시즌
소속팀
경기수
2점슛
3점슛
자유투
득점
리바운드
어시스트
스틸
블록슛
2016-17
모비스
52
67/118
(56.78%)
60/167
(35.93%)
45/54
(83.33%)
359
149
40
24
13
2017-18
41
84/137
(61.31%)
36/110
(32.73%)
48/64
(75.00%)
324
145
60
37
28
2018-19
48
43/102
(42.16%)
51/154
(33.12%)
30/44
(68.18%)
269
165
57
21
9
<color=#373a3c> KBL 통산
(9시즌)
452
1230/2201
(55.88%)
681/1830
(37.21%)
872/1062
(82.11%)
5375
1841
943
391
192

3. 행적



3.1. KBL 이전


Seventy-First 고교를 거쳐 리치몬드 대학에 입학한다. 리치몬드 대학에서의 마지막 해였던 1998년에 19.1점 5.9리바운드 2.5어시스트를 기록, 컨퍼런스(CAA, 2016년 현재 리치몬드는 A-10 소속) 올해의 선수에 뽑히고 소속팀을 NCAA 토너먼트 32강까지 이끄는 등 맹활약했다. 이후 피닉스 선즈의 트라이아웃에도 참가했지만, NBA 입성에 실패한 후에는 유럽으로 건너가서 농구 선수로서 경력을 이어갔다. 동생 문태영보다 더 화려한 경력을 자랑하는 선수다. 프랑스, 이탈리아, 이스라엘, 터키, 그리스, 러시아를 거쳐 한국에 들어오기 직전에는 세르비아에서 뛰었다. 프랑스에서 1999년 리그컵 결승전 MVP(팀은 당시 2부리그였고, 이해 2부리그 MVP를 수상하기도 했다)에 다음해엔 1부리그에서 기량발전 세컨팀, 러시아에선 2005년 유럽컵 파이널 포 올스타, 터키에서 2006년 유로컵 올스타(3점슛 컨테스트 우승)에 올랐을 정도로 화려한 경력을 자랑하는 선수다. 유럽 무대에서도 정상급의 슈터로 명성을 떨쳤다.
유로컵은 총 41경기 출전 11.6점 3.5리바운드 1.4어시스트를 기록했는데 3점슛 성공률이 무려 48.3%이다. 해외 리그에서도 3점슛 성공률이 40%가 넘는 시즌이 무려 8번이나 될 정도로 3점슛이 일품이었다.

3.2. KBL



3.2.1. 인천 전자랜드 엘리펀츠


귀화혼혈선수 드래프트가 처음으로 시행된 2009년에도 참가가 유력했지만, 소속팀의 반대로 참가하지 못했다. 하지만 2010년 드래프트에는 소속팀과 계약을 해지하면서까지 참가하여 인천 전자랜드 엘리펀츠에 1순위로, 그리고 유일한 계약자가 되며 한국 무대에 입성하게 되었다. 그 역시 어머니의 나라에서 뛰고 싶다는 소원을 밝혔고, 연봉이 1/3 가량 삭감되었지만 그것마저 감수하고 한국으로 들어왔다.
[image][image]
한국 무대에서는 클러치 슈터로 명성을 얻었다. 나이가 30대 후반이라 체력적인 면이나 움직임에서는 과거 유럽 무대에서 수준급 외국인 선수로 군림하던 전성기 때와 거리가 멀다는 평가지만, 승부처에서의 대담한 슈팅과 성공률에 있어서는 국내 선수들을 넘는다는 것이 중평. 실제로 전반에 부진하다가도 후반, 4쿼터 승부처에서 미친듯한 슛을 꽂아넣어 팀을 위기에서 구한 적이 많다. 그래서 붙여진 별명이 타짜, 4쿼터의 사나이. 개그랜드라 불리며 놀림받던 인천 전자랜드가 문태종이 가세한 2010-11 시즌 팀 역대 최고 승률을 올리며 정규리그 2위를 차지한 것을 보면, 문태종의 위력이 어느 정도인지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비록 박상오에게 밀려 정규시즌 MVP 수상에는 실패했으나, 문태종이 뛰어난 선수라는 점은 누구도 부정하지 않는다. 문태종이 혼혈선수라 MVP를 주지 않았다는 여론도 상당했다.

3.2.2. 창원 LG 세이커스


[image][image][image]
2012-13 시즌이 끝난 후 규정에 의거해 유일하게 귀화혼혈선수 선발 우선권을 갖고 있던 서울 SK 나이츠박승리를 영입하기 위해 문태종 영입을 포기하면서 FA로 풀렸다.
FA 영입을 두고 원 소속팀이었던 전자랜드를 포함해서 오리온스와 KT 그리고 LG가 경합했다.
그 결과 LG는 무려 6억 8,000만원이란 압도적인 거액을 써내면서[5] LG행이 확정되었다. 사실상 FA 대박계약이었다.
1년이지만 30대 후반이라는 나이를 감안하면 이 정도의 샐러리를 주기 어려운데 엄청난 계약이었다. 단, 단년계약이라 선수의 선택권이 제한되는 KBL의 FA 제도를 두고 비판의 목소리도 높다.[6][7]
그렇긴 하지만 2013-2014 시즌의 문태종은 그야말로 나이를 잊은 활약을 보여주고 있다. 팀 내 최고령 선수임에도 불구하고 적극적인 플레이와 득점을 보여주면서 슈터로 맹활약중이다.
2013-2014 창원 LG 세이커스의 창원 홈 개막전에서 공교롭게도 자신의 KBL 데뷔를 했던 친정팀인 인천 전자랜드 엘리펀츠를 상대로 극적인 3점포를 터트리면서 친정을 울리면서도 LG의 새로운 슈터이자 해결사의 등장을 알렸다. 이로인해 12-13 시즌 주전이었던 김영환은 벤치로 물러나면서 식스맨으로 출장중이다.
김시래김종규 콤비에 데이본 제퍼슨까지 합류한 창원 LG는 문태종이라는 최고의 슈터와 함께 무섭게 비상하기 시작했다. 출전 대비 효율성이 매우 좋았으며, 덕분에 창단 이후 한시즌 최다 정규리그 13연승이라는 대기록까지 만들어졌다. 이로인해 창원 LG를 17년만에 창단 첫 정규시즌 우승으로 이끌게 되었다.
2013-2014 KBL 파이널에서도 나쁘지 않았지만 결국 우승은 동생이 뛴 모비스에게 내줬고, 챔피언결정전 MVP도 동생 문태영이 받았다. 그래도 2013-2014 시즌 KBL 정규리그 MVP에 선정되면서 활약을 인정받았다. 조성원에 이어 LG 출신으로 13년만에 정규리그 MVP로도 역사에 남게 되었다.
2014 인천 아시안게임 대표로 금메달을 했지만 2014-2015 시즌 초반 체력문제로 인해 고전했지만 주장이었던 12-13 시즌 3점슛 왕에 오른 김영환과 함께 메가 세이커스포를 가동하며 8위까지 추락했던 전년도 정규리그 우승팀을 4위로 이끌면서 2년 연속 4강 플레이오프 진출에 공헌했다.

3.2.3. 고양 오리온 오리온스


[image][image]
2014-15 시즌 후 사인 앤 트레이드로 고양 오리온 오리온스로 이적하게 되었다. 계약규모는 1년 3억 8,500만원이며, LG는 문태종에 대한 대가로 2015년 드래프트 1라운드 지명권을 받는다. 시즌 중에는 애런 헤인즈와 함께 더블 에이스로 나이를 잊은 활약을 펼쳤다. 이후 챔피언결정전 1차전에서는 김민구가 문태종에게 도발을 했는지 신경전이 일었었다. 그러나 나머지 경기에서 눈부신 활약을 보여주었고 3차전에서는 2쿼터의 사나이가 돼서 KCC를 초토화시켰다. 챔피언결정전 6경기에서 평균 21분 가량 출전하여 10.2득점(필드골 54.5% 3점슛 60.7%)[8] 4.5리바운드로 활약하며 KBL 무대에서 첫 우승을 차지했다.
2015-16 시즌이 끝난 이후, 고양 오리온과 재계약에 성공했다! 그러나 나이에 따른 경기력 저하가 온 모양인지 작년보다는 불확실성이 조금 커진 느낌이다. 물론 40% 언저리의 3점 성공률을 보여주고 있긴 하지만 문태종이란 네임밸류를 생각했을때 좀 안타까운 것도 사실. 그러나 높은 BQ 때문에 경기 막판 수비를 위해 기용할 정도로 추일승 감독의 신뢰가 두텁기 때문에 승부처에선 계속 문태종을 볼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4강 PO에서는 노쇠화를 피할 수 없었는지 저조한 야투 성공률을 기록했고, 팀은 외곽포의 집단 버로우 속에 5차전까지 시리즈를 끌고 갔으나 삼성에게 패하였다.
2016-17 시즌이 끝나고 1년간 2억 5,000만원에 재계약을 했다.
그러나 2017-18 시즌은 기량의 하락세가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다. 간간히 득점은 해주고 있지만 지난 시즌부터 평균 득점이 한자리로 떨어졌다. 무엇보다 승부처에서 사라지는 것이 가장 치명적이다. 문태종의 최대 장점은 승부처의 클러치 능력이다. 그러나 승부처에서 자신감을 잃은 모습을 보이고 있다. 승부처가 되면 예전처럼 직접 해결하기보단 동료들에게 미루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같은 시즌이 끝나고 다음 시즌에 선수 생활을 이어 갈 수 있을지에 대해서 주목을 받고 있지만, 결국 2018년 5월 15일에 열린 FA 협상 결과 이견차를 좁히지 못하고 결렬이 되면서 시장으로 나오게 되었다. 기사 참조

3.2.4. 울산 현대모비스 피버스


[image]
향후 행선지에 대해서 많은 말들이 나왔는데, 2018년 5월 21일 울산 현대모비스 피버스와 1년 2억 7,000만원에 계약을 체결하였다. 현대모비스는 동생이 2012년부터 2015년까지 3년간 뛰었던 팀이기도 하다.
2018-19 시즌 개막전에서 12득점 4어시스트 3점슛 4/4로 쏠쏠하게 활약했다.
10월 16일, 고양 오리온과의 홈 경기에서 43세의 나이에 덩크를 꽂아 넣으며 모두를 놀라게 했다. 그것도 노마크 찬스가 아닌 경합 과정에서 덩크를 성공시켰다. 덩크 성공 이후 본인도 놀랐는지 살짝 미소를 짓기도 했다.[9] 그리고 11월 16일 경기에서 또 한번 덩크를 꽂아 넣었다.
챔피언결정전 5차전에서는 승부에 쐐기를 박는 3점슛을 넣으며 16득점으로 맹활약, 소속팀 현대모비스도 통합우승에 성공했다. 현대모비스 구단이 재계약을 희망하고 있기 때문에 선수 본인이 원한다면 현역 생활을 계속해서 이어갈 수도 있겠지만, FA 원소속팀과의 계약 마감 기한을 하루 앞둔 2019년 5월 14일 공식적으로 은퇴를 선언하고 9년간의 한국 생활을 마무리하게 되었다. 그동안 한국에서 선수 생활을 하면서 가족과 함께 할 수 있는 시간이 적었던 부분도 있었고, 앞으로는 가족에게 집중하고 싶었기 때문에 고심 끝에 은퇴 결정을 내렸다고 한다. #1, #2

3.3. 대한민국 농구 국가대표팀


[image]
2011년 7월 동생 문태영과 함께 한국 국적 취득에 성공했다. 그리고 2012 런던 올림픽 출전권이 걸린 아시아 선수권 대회 대표팀에 발탁되어 국가대표로 뛰고 싶다던 소망을 이룰 수 있었다.[10] 큰 소원은 동생인 문태영과 같이 뛰는 것이지만, 아쉽게도 FIBA 규정상 귀화한 선수의 출전은 1명으로 제한되기 때문에 불가능하다. 아시아 선수권 대회에서 대표팀의 주포로 활약했지만, 나이가 나이인지라 수비에서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였고 슛도 기복이 있었다. 하지만 아시아 선수권에서 문태종만큼 해줄 수 있는 선수도 없는 게 현재 대표팀 상황이라 팀의 에이스로 3위를 차지하는데 크게 기여했다.
2014 FIBA 농구 월드컵에서는 상대가 상대인지라 아주 큰 활약은 못했지만[11] 아시안 게임에서는 대표팀의 에이스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는 중이다. 특히 필리핀과의 8강 조별리그전에서는 양동근, 김태술 등의 앞선 선수들이 필리핀의 노장 가드 알라팍을 막지 못하면서 위기에 빠졌었는데[12] 문태종이 중요할 때마다 득점을 해주면서 역전승에 성공하였다. 이 경기에서 문태종은 38점을 기록했다. 더군다나 유재학 감독은 문태종이 수비수를 달고도 신기에 가까운 슛을 계속 성공시켰음에도 못마땅한듯 고개를 젓기도 했는데, 백코트의 막장 활약 속에서 혼자서 대표팀을 하드캐리해 승리로 이끌었으니 가히 구세주나 다름없는 활약이었다. GQ Korea: 맨투종의 마지막 승부
그 뒤 카타르전도 승리하고 4강 진출에 성공한다. 4강 상대는 일본인데 한국보다 한 수 아래라 평가 받는지라 승리가 예상된다. 다만 결승 상대가 될 이란은 아시아 최강이라 평가받는 수준이라 금메달이 쉽지 않은 상황.[13] 그러나 쉽지 않을거란 예상을 뛰어넘고 19득점 3점슛 3개 3어시스트로 김종규, 조성민[14]과 득점 트리오를 이뤄 맹활약, 12년만의 농구 아시안 게임 금메달과 한국 농구 사상 남녀 동반 우승의 쾌거를 이룩했다.[15]
2014 인천 아시안 게임 남자 농구 종목에서 대한민국이 금메달을 획득하자 일각에서는 문태종에게 외국인 용병한국인으로 둔갑시켜서 내보낸 거 아니냐고 따지자 문태종 본인은 "난 100% 한국 사람이고 다른 국적을 가진 적이 없다."고 일축했다.

4. 기타


  • NBA급 선수들이 상당수 포진해 있는 유럽 빅리그에서 A급으로 통하던 용병이었으며, 남들은 은퇴하고도 남을 노장의 나이에 한국에 와서 국대 에이스로 금메달까지 따낸 대단한 선수. 때문에 전태풍과 더불어 '전성기때 KBL에 왔으면 어땠을까?'라는 상상을 하게 해주는 선수이다. 적어도 문태종의 커리어를 아는 사람이라면 그가 KBL 올타임 NO.1이 되었을 것이라는 데에 이견을 보이지 않는다.
    • 그도 그럴게 문태종이 유럽을 돌아다니며 쌓은 커리어는 국내농구 기준으로는 말이 안나오는 수준이다. 세계에서 손꼽히는 농구 강국인 프랑스의 LNB에서 파이널MVP를 수상한데 이어, 유로리그 다음가는 클럽대항전인 유로컵에서도 MVP를 수상하고, 유로챌린지 올스타에도 선정이 되는 등 역대 국내 레전드들 보다 몇차원은 높은 수준에서 놀던 인물이라는 소리. 이정도면 사실 다른 국내선수들과는 아예 다른 카테고리에서 평가를 받아야 하며, 자유계약 시절의 몇몇 거물급 용병들은 되어야 그나마 비교가 성립한다.
    • 사실 거물급 용병이래봤자 대부분 문태종의 커리어에는 훨씬 못미친다. 단테 신드롬으로 안양sbs시절 15연승을 몰아치며 역대급 인기를 구가하던 단테 존스나 모비스에서 양동근과 함께 첫번째 전성기를 열어낸 크리스 윌리엄스 등을 보면, 유럽의 여러 리그를 돌며 좋은 활약을 했지만 LNB 등 빅리그의 특급 용병들에 비하면 아무래도 떨어지는 편이다. 당시의 거물급 용병들조차 문태종의 전성기 시절의 커리어에는 훨씬 못 미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는 소리. 문태종을 확실하게 능가하는 용병은 딱 한명이 있는데 바로 KBL 역사상 최강의 외국인 선수와 최고의 시즌을 뽑을때 항상 뽑히는 피트 마이클.[16] 이후 러시아 리그 MVP+득점왕 출신에 기량도 아직 전성기였던 데이본 제퍼슨그나마 비교대상이라도 되었는데, 이쪽은 쓰레기같은 인성과 멘탈때문에 존재 자체가 흑역사인지라...[17]
  • 언제까지 선수 생활을 할 것 같냐는 질문에, 본인이 정하는 게 아니라 아들이 정하게 될 것 같다고 대답했다. 둘째 아들이 농구에서 뛰어난 기량을 보이고 있어 미국에서 엘리트 코스를 밟도록 하려는 듯.
  • 정규리그에서는 동생 문태영이 속한 팀과의 맞대결에서 우세를 기록한 적이 몇 번 있었지만 플레이오프에서는 동생이 속한 팀에게 매번 패배했다. 2012-13 시즌 4강 PO에서 문태종의 전자랜드는 문태영이 있던 모비스에게 3:0으로 셧아웃당했고, 다음 시즌 LG에서는 팀을 창단 첫 정규리그 우승으로 이끌었지만 챔피언결정전에서는 문태영의 모비스에게 4:2로 패했다. 그 다음 시즌 4강 PO에서도 모비스를 만나 5차전까지 간 끝에 3:2로 패했다. 문태영이 삼성으로 이적한 후 문태종도 오리온으로 가게 되었고, 2016-17 시즌 4강에서 다시 만났지만 오리온은 삼성에게 3:2로 패했다. 그리고 2019년에 은퇴하면서 플레이오프에서 동생 한 번 이기지 못하고 떠났다.

5. 관련 문서


[1] "외국인 우수 인재"에 해당하는 '특별귀화'를 통해 한국과 미국 복수국적자이다. 이는 동생 문태영도 마찬가지.[2] 과거 유럽 시절 슈팅 가드로 뛴 적이 있었다고 한다.[3] KBL 경력만 기재.[4] 이때 이미 만 36세였지만 2010-11 시즌 전자랜드 소속으로 MVP급 시즌을 보냈다. 이때 대표팀 내 포지션 경쟁자였던 양희종이 연습 도중 문태종의 플레이를 보고 멘붕이 와서 슬럼프에 빠졌었다고 인터뷰 하기도 했다.[5] FA 제도상 최고액 제시구단이 2위 고액 제시구단액과 제시액이 10% 넘게 차이가 나면 무조건 그 구단에서 선수를 영입할 수 있도록 규정되어 있었다. 당시 연 5억 5,000만원이던 FA 최고 몸값 기준에 10%를 올리면 6억 500만원이라 6억 1,000 정도면 10% 초과를 할 수 있었는데, 이걸 예상하고 여기다 한 번 더 10% 룰을 적용해서 그보다 더 높은 6억 8,000만원을 제시한 것이다.[6] KBL의 FA 제도는 영입 희망팀들의 연봉 제시를 받은 뒤 최고액의 90% 이상 써낸 팀 가운데서만 선수가 팀을 선택 가능하도록 하고 있다. LG가 2013-14 시즌 샐러리캡이 많이 비는 점을 이용해 타 구단이 감히 쳐다보지도 못할 액수를 단년으로 제시했기 때문에 문태종을 영입할 수 있었다.[7] 당시에 문태종도 각종 인터뷰에서 금액보다도 계약 기간을 보장받고 싶다고 했었고 대부분의 구단이 2~3년에 5억원 수준의 계약을 준비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게 KBO 리그식 계산이면 최대 15억인 셈인데 KBL은 계약 기간에 상관없이 단일년도 연봉만을 기준으로 삼아 6억 8,000의 LG가 단독 계약권을 따낸 것이다.[8] 경기를 절반만 뛰면서 평균 10득점을 하는 것도 대단하지만, 3점슛 60.7%는 경악할만한 수치다. 성공률이 40%만 넘어가도 체감상 쏘기만 하면 들어가는 수준인데 1년 중 가장 중요한 경기에서 60%를 찍었다면 상대편 입장에선 거의 절망적인 수준이다.[9] 원래는 레이업을 할려고 했는데, 점프를 생각보다 높게 뛰어서 덩크로 이어진 듯 하다. 바로 다음 공격에서 스틸로 인한 노마크 찬스가 왔지만 이번엔 레이업슛을 했다.[10] 다만 이승준, 이동준 형제나 전태풍이 한국어를 열심히 배우고 한국 문화에 적응하기 위해 노력한 것과는 달리 문태종과 문태영은 여전히 한국어가 서툰데다가 완전한 한국 귀화가 아닌 이중국적 보유자여서 선수 생활이 끝나면 도로 미국으로 돌아가려는 것이 아니냐는 따가운 시선을 받기도 한다.[11] 만일 전성기 문태종이었다면 커리어나 실력 면에서 슬로베니아의 드라기치 형제 정도는 되어야 능가하는게 가능했을 것이다.[12] 그나마 김태술은 16점을 넣으면서 공격 쪽으로는 제 몫을 하고 있었다.[13] 하지만 주축 멤버 몇명이 빠진 베스트 전력은 아니라는 평가는 있다. 하지만 당대 아시아 최강 SF인 니카 바라미와 최강 C인 하메드 하다디가 건재해 객관적으로 한국보다는 더 강했다고 봐야할 것이다.[14] 김종규: 17득점 5리바운드 2어시스트 2스틸, 조성민: 16득점 3점슛 3개 3리바운드 4어시스트[15] 경기종료 버저가 울린 이후 오세근이 광속전역에 기뻐한 나머지 문태종을 뒤에서 끌어안기도 했다.[16] 문태종이 프랑스 LNB에서 파이널 MVP를 수상했다면, 이쪽은 유럽 NO.1 리그인 스페인 리가 ACB에서 파이널 MVP를 수상했다. 거기에 문태종이 유로컵 MVP로 유명하다면 이쪽은 아예 유로리그 MVP를 자랑하는지라 커리어에 있어 확실히 문태종을 앞서는 편.[17] NBA 경력 있는 걸로 따지자면 KBL에 뛰다가 나중에 NBA에 진출했던 아비 스토리, 아이반 존슨, 그렉 스팀스마, 디온테 버튼 등이 있고, 아예 NBA 출신으로 KBL에 입성했던 단테 존스 등도 있지만 이들 모두 NBA 경력 자체는 대단하지 못하다. 역대 KBL에 뛰었던 선수 중 커리어 끝판왕이라 할 수 있는 에메카 오카포의 경우 전성기가 다 지난 상태에서 KBL에 왔고 경이적인 수비력을 보여줬음에도 2개월 정도만 뛰고 부상으로 시즌아웃되는 바람에 KBL에 남긴 족적은 비교적 미미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