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상현

 


'''조상현의 수상 및 영예 '''
[ 펼치기 · 접기 ]

'''KBL 챔피언결정전 우승 반지'''
'''2000
(선수)
'''
'''2016
(코치)
'''











'''대한민국 농구 국가대표팀 코치'''
'''KOREA NATIONAL BASKETBALL TEAM'''
'''조상현
趙相賢'''
<colbgcolor=#ffffff> ''' 출생 '''
1976년 7월 8일 (48세)
[image] 대전광역시 중구
''' 국적 '''
[image] 대한민국
''' 신체 '''
189cm|체중 93kg
''' 직업 '''
농구선수(스몰 포워드, 슈팅 가드 / 은퇴)
농구코치
''' 종교 '''
천주교 (세례명: 베드로)
''' 학력 '''
서대전초등학교 (졸업)
대전중학교(졸업)
대전고등학교 (졸업)
연세대학교 (졸업)
''' 프로입단 '''
1999년 드래프트 (1라운드 1순위, 광주 골드뱅크)
''' 병역 '''
[image] 상무 농구단 (2002~2004)
''' 현역시절 등번호 '''
9[1], 11[2]
''' 소속 '''
<colbgcolor=#ffffff> ''' 선수 '''
[image] 광주 골드뱅크 클리커스 (1999)
'''[image] 서울 SK 나이츠 (1999~2005)'''
[image] 부산 KTF 매직윙스 (2005~2006)
[image] '''창원 LG 세이커스 (2006~2011)'''
[image] 고양 오리온스 (2011~2013)
'''코치'''
[image] '''고양 오리온 오리온스''' (2013~2018)
[image] 대한민국 농구 국가대표팀 (2018~)
''' 가족 '''
쌍둥이 동생 조동현
1. 소개
2. 고교-대학 시절
3. 프로 시절
4. 지도자 시절
5. 관련 문서

[clearfix]

1. 소개


대한민국의 농구인. 조동현과 쌍둥이 농구 선수로 유명하다. 현역으로 뛰는 동안 은근히 기록을 쌓아간 KBL의 포워드이자 슈터.
현재 KBL에서 선수(99-00 SK 나이츠)와 코치(15-16 오리온 오리온스)로 플레이오프 우승을 해본 몇 안 되는 인물.

2. 고교-대학 시절


대전고 시절 쌍둥이 동생을 비롯하여 동기 황성인, 1년 선배 구본근과 함께 대전고를 전국 강호의 반열에 올려놓았고,[3] 고교시절의 활약을 바탕으로 연세대 1학년이던 1995년에는 황성인, 조우현, 김성철, 이규섭 등과 함께 청소년대표에 뽑혀 필리핀 마닐라에서 열린 FIBA Asia U-18 대회 결승에서 중국을 꺾고 우승하는데 크게 기여했다. 이어 열린 1995 아테네 FIBA U-19 대회에서는 팀은 비록 순위결정전으로 밀려났지만 조상현은 평균 22.1점을 폭발시키며 대회 득점 3위에 오를 정도로 맹활약을 펼친다.(이 때 경기당 3점슛 메이드가 무려 '''4.0개'''!! 3점슛률은 '''43.8%'''(32/73)이었다.)
쌍둥이 동생 조동현과 함께 연세대학교 신입생으로 입학하여 농구대잔치의 열기를 체험한 마지막 세대로, 1학년때부터 대학선발(범태평양 대학농구대회)에 뽑힐 정도로 기량이 탁월했다. 1995-96 농구대잔치에서는 선배 우지원, 김훈과 함께 연세대 3점포 군단의 일원으로 맹활약하며 당시 서장훈이 미국 유학중이던 연세대를 1995-96 농구대잔치 4강으로 이끄는데 기여한다. 우지원, 김훈이 졸업한 2학년때부터 팀의 스몰 포워드로서 확실한 주전으로 자리잡아 서장훈이 가세한 1996-97 농구대잔치에서 연세대가 이상민이 이끄는 상무를 꺾고 사상 두번째 우승을 차지했다. 이처럼 농구대잔치의 열기를 체험한 마지막 세대이자, 연세대의 주포로 명성을 떨치게 된다.

3. 프로 시절


1999년 드래프트에서 전체 1번으로 광주 골드뱅크 클리커스에 입단했다.
1999-2000 시즌 신인상을 수상하지 못해서 신인 시절에 그가 못한 줄 아는 사람이 많은데, 사실 신인 시절 성적이 상당히 준수하다. 골드뱅크 시절에는 평균 18.4점을 넣으면서 팀의 주포로서 활약했다. 이런 활약을 눈여겨 본 SK최인선 감독이 현주엽과의 포지션 중복을 해소하기 위해 현주엽과 조상현의 교환을 제안했고, 마침 팀을 대표하는 특급 스타가 필요했던 골드뱅크가 이를 수락하면서 1999년 12월 24일, 일명 "크리스마스 이브의 빅딜"이 단행되어 조상현은 팀을 이적하게 된다.
[image]
팀을 이적하고 나서도 팀의 외곽을 책임지는 슈터로서 활약하며, SK에서도 평균 18.4점을 넣으며 활약했다. 서장훈, 황성인, 재키 존스, 로데릭 하니발과 같은 좋은 동료들과 함께 하기 때문에 오히려 슛 찬스가 더 많이 나며 슛을 집중시킬 수 있었다. 챔피언 결정전에서도 평균 15.5점을 넣으며 팀 우승에 기여했다. 그런데 신인상을 못 받은 것은 초창기 KBL이 한 팀에게 MVP와 신인상을 모두 주는 것을 꺼려했기 때문. MVP서장훈에게 돌아가면서, 신인상은 SK 선수들을 배제하자는 쪽으로 암묵적인 분위기가 형성되었고, 이 때문에 조상현은 다소 억울하게 신인상을 놓쳤다.
하지만 조상현의 전성기는 이제 막 시작이었다. 젊은 시절의 조상현은 돌파력과 슈팅을 모두 겸비한 재능 있는 포워드였다. 2000-01 시즌에 평균 20.6점을 넣으면서 팀의 주포로서 활약하더니, 2001-02 시즌에는 다시 SK를 챔피언 결정전에 올리는데 기여하면서 팀을 대표하는 선수로 자리잡았다. 그리고 한국 남자라면 피할 수 없는 군대로 가서 두 시즌의 공백기를 가졌다. 2002 부산 아시안게임 대표팀에 선발되어서 20년만에 금메달을 함께하면서 병역면제를 바라보게 되었으나 당시 병역법에 발목이 잡히면서 상무에 입대하게 되었다.
2년간 공백기를 마치고 돌아와 SK의 주포로서 변함없이 활약했지만, 그 사이 팀 사정은 많이 달라졌다. SK는 좀 더 강한 스타를 원했고, 건실하지만 화려한 모습은 적었던 조상현은 좋은 선수지만, 팀의 간판은 아니었다. 결국 새로운 팀의 간판을 원했던 SK의 전략으로 인해 조상현은 트레이드 카드로 쓰이는데, KTF와의 3:3 트레이드를 통해 그는 황진원, 이한권과 함께 KTF로 건너갔다. 대신 SK가 받은 것이 방성윤김기만, 정락영이었다. 지금도 KBL 역사에 손꼽히는 빅딜이고, 그러고 보면 KBL의 빅딜에 꼭 조상현이 끼어있다.
[image]
반 시즌을 KTF에서 보낸 조상현은 그러나 FA가 되자 팀과의 협상이 결렬되고, 이적을 하게 된다. 이 때, 그에게 러브콜을 보낸 것이 당시 창원 LG 세이커스 감독이었던 신선우FA 영입을 위해 기발한 시간차 트레이드[4]를 이용해 손실없이 그를 영입했다. 영입 첫 해에는 평균 12.0점을 넣으며 부족하지만 그래도 쏠쏠했고, 팀도 퍼비스 파스코의 폭행 사건이 아니었다면, 챔프전 진출도 노려볼 정도의 전력을 보여줬다.
하지만, 이 2006-07 시즌 이후로는 쭉 하향세를 그리고 있다. 나이가 들고, 3점슛 길이가 길어지면서 점차 장기였던 3점슛의 적중도는 떨어지고, 돌파력도 예전같지 않은 것. 2006-07 시즌에 올스타전 MVP를 차지하면서 활약한 것은 2012년 시점에서 볼 때, 최후의 불꽃에 가까웠다. 그 뒤로는 사실상 준주전이나 식스맨에 더 가까운 상황이다. 즉, 결론적으로 LG의 조상현 영입은 성공했다고 보기 어렵다는 뜻.
결국 2011년 오용준과 맞트레이드 형식으로 팀을 옮겨 고양 오리온스로 이적하게 되었다. 젊은 팀이고, 경험이 부족한 선수들에게 멘토의 역할을 하고 있다. 그리고 팀에 부족한 3점 슈터로서 식스맨으로 나와 활약하고 있다. 오랜 선수 생활 동안 꾸준히 기록을 쌓아서 3점슛 1,000개 돌파, 통산 6,000득점 돌파를 이뤘다.
2012-2013 시즌을 끝으로 선수에서 은퇴를 발표하면서 정들었던 코트와 이별을 하게 되었다. 이해 은퇴경기에서 마지막 3점슛으로 팬들에게 강한 인상을 남기면서 코트를 떠나게 되었다.

4. 지도자 시절


[image]
2012-2013 시즌을 끝으로 은퇴를 한 고양 오리온 오리온스의 신임 코치로 부임했다.
상무와 KTF 매직윙스 시절 자신의 재기를 도와준 은사였던 추일승 감독님과 대표팀 선배로서 동료이자 오리온스의 레전드인 김병철 수석코치의 뒤를 받치면서 임재현 선수-코치와도 함께 호흡을 했다.
오리온의 고양 시절 재건과 성장 그리고 정상을 함께했다.
주로 김병철 수석코치와 함께 슈팅훈련을 도왔으며 허일영,최진수,이승현의 슈팅 기량향상을 도왔다.
2015-2016 시즌 고양 오리온 오리온스의 14년만에 플레이오프 우승을 함께하면서 지도력을 인정받았다.
하지만, 2017-2018 시즌 종료 후 오리온은 이해 성적부진과 함께 임재현 코치와 재계약하지 않기로 결정했고 선수에서 은퇴한 김도수를 신임 코치로 두면서 선수로서 2년이자 코치로서 5년간 정들었던 오리온을 떠나게 되었다.
이후 2018년 10월 8일, 김상식 감독이 부임한 대한민국 남자 농구대표팀 코치에 선임되었다.

5. 관련 문서


[1] 군 입대 이전 청주/서울 SK 시절[2] 광주 골드뱅크, 군 제대 이후 서울 SK, 부산 KTF, 창원 LG, 고양 오리온스 시절[3] 2학년 때 협회장기 우승, 3학년때 춘계연맹전/대통령기를 제패하며 시즌 2관왕[4] 인천 전자랜드 엘리펀츠에 먼저 현금을 받는 조건으로 조우현, 정선규, 정종선을 보냈다. 그리고 FA 영입을 하자마자 1+현금:4 트레이드로 황성인을 내주고, 전자랜드로부터 박지현, 박훈근, 박규현, 임효성을 받았다. 이 때문에 KTF는 보상 선수로 평균 득점 0.9점의 임영훈을 찍어야 하는 안습한 상황이 되어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