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산시/역사

 


'''익산시 행정구역 변천사'''
건마국
(원삼국시대, 마한)

금마저
(삼국, 백제)
옥야현
(삼국, 백제)

금마군
(통일신라~고려)

익주
(고려 후기)

전라도 익산군
전라도 금마군
(조선)

전라북도 익산군
(益山郡, 1896)
전라북도 함열군
(咸悅郡, 1896)
전라북도 용안군
(龍安郡,1896)
전라북도 여산군
(礪山郡, 1896)

익산군
(1914)

익산군
이리부
(裡里府, 1947)

익산군
이리시
(裡里市, 1949)

'''익산시
(益山市, 1995)'''


1. 개관


통일신라 이래로 크게 여량현, 낭산현, 함열현, 금마군, 옥야현으로 나뉘어 있었다. 각각의 관할구역을 현재 행정구역에 따라 분류하면 다음과 같다.
  • 여량현: 여산면
  • 낭산현: 낭산면, 망성면
  • 금마군: 금마면, 춘포면, 왕궁면의 서부 지역[1]
  • 옥야현: 이리, 오산면
  • 함열현: 함라면, 함열읍, 용안면, 용동면, 웅포면, 성당면, 황등면, 삼기면

2. 각 시기별 역사



2.1. 철기 시대 ~ 남북국시대


삼한 시대에는 마한의 영역에 속하였다.
백제의 시조 온조왕이 마한을 병합하고 지모밀지(枳慕密地) 또는 금마저(金馬渚)라 하였다. 한편 함열 지역은 감물야현(甘勿阿縣), 여산 지역은 지량초현(只良肖縣)이었다.
서동요로 유명한 무왕의 출신지로 추정되는 지역이기도 하며, 무왕 치세때 백제가 수도를 사비성(현재의 부여군)에서 익산으로 천도하려 했다는 가설도 존재한다. 실제로 익산에선 왕궁리 유적이 발견되기도 했다.
삼국통일전쟁문무왕은 금마에 보덕국(報德國)을 세우고 고구려의 유족인 안승(安勝)보덕국왕으로 임명했다. 그러나 신문왕 때 보덕국을 폐하였다. 이 때 감물야현이 노산(魯山)으로 개칭되었다.
통일신라 경덕왕 대에 금마군은 옥야현, 낭산현(과 우주현)을 속현으로 두었다. 노산은 함열현으로 개칭되어 임피군의 속현이 되었다. 여량현은 덕은군[2]의 속현이 되었다.

2.2. 고려


고려 초 금마군을 제외한 다른 모든 현이 전주의 속현으로 들어갔다.
함열현은 1176년에 현령이 파견됨으로써 독립된 현이 되었고, 1321년에 현내의 도내산은소가 용안현으로 승격되었다.(지금의 용안면, 용동면) 금마군은 1344년에 익주가 되었으며, 여량현은 1391년 현령이 파견되면서 인접한 낭산현도 같이 다스리도록 하였다.

2.3. 조선


익주는 조선 태종 시기에 익산군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여량현은 1396년에 정식으로 낭산현을 병합한 뒤 1399년에 이름을 여산현으로 바꾸었다. 이후 1436년에 원경왕후의 외가쪽 관향이라는 이유로 군으로 승격되고, 1699년 노산군이 신원되면서 왕후의 관향이라는 이유로 도호부로 승격되었다. 용안현과 함열현은 태종 때 안열현으로 합쳐졌다가 다시 분리되었다.
따라서 조선 건국 당시 지방관이 파견되어 있었던 여산, 함열, 익산, 용안은 독립된 행정구역으로 남았다. 그러나 옥야는 전주의 속현이었던 것이 폐지되어 조선시대 내내 전주부의 월경지로 남아 있었다. 1899년과 1906년에 걸쳐 월경지와 두입지 정리 칙령에 의해 옛 옥야현 지역과 왕궁면 동부 지역이 익산군으로 편입되었다.
기자조선의 마지막왕 준왕이 쌓았다는 기준성(箕準城)이 조선시대까지 남아있었다고 전해진다.

2.4. 일제강점기


1914년 부군면 통폐합으로 여산군, 용안군, 함열군을 익산군에 편입하고 군청을 금마에서 익산면[3] 이리로 옮겼다.
본래 익산의 본방은 동부지역의 금마였으나 일제강점기에 호남선 개통과 이리역 부설로 구 이리 지역, 그러니까 현재의 중앙동과 창인동 지역이 시가지로 급격하게 성장했다. 현재까지도 익산의 주요 시가지는 구 이리시 일대에 밀집되어 있다. 대전광역시, 김천시와 같이 철도교통으로 성장한 도시가 이리였다. 그래서 일제강점기 때 이리 지역에는 일본인 거주자가 전북 지역에서는 군산 다음으로 인구밀집도가 높았던 지역이기도 하다.
이리가 속했던 익산면이 1931년 익산읍으로 승격하였다가, 곧 이리읍으로 개칭하였다.

2.5. 대한민국


해방 후인 1947년 이리읍이 이리부(府)로 승격되고, 1949년 이리시(市)로 개칭되었다.
1963년 황화면이 논산군으로 편입되어 논산군 구자곡면과 함께 연무읍이 되었다. 1970년 용안면 용동출장소가 설치되었다. 1974년 북일면이 이리시로 편입되었다. 1979년 함열면이 함열읍으로 승격되고 익산군청이 함열읍으로 이전되었다. 1983년 팔봉면과 춘포면 석탄리가 이리시로 편입되었다. 1986년 용안면 용동출장소가 용동면으로 승격되었다.
1995년 익산군과 이리시가 익산시로 통합되어 다시 하나가 되었다.[4]
[1] 완주군에 접해 있는 동부 지역은 우주현이라는 이름으로 완주군 삼례읍 서부 일부와 봉동읍 서부 일부와 같은 구역으로 묶여 있었다.[2] 후에 은진군. 지금의 강경읍 일대.[3] 1906년 이전에는 전주부 동일면과 남일면.[4] 원래는 시+군이 통합을 하게 되면 명칭은 시의 이름을 쓰는 편인데, 익산의 경우는 반대로 진행되었다. 어쩌면 1977년에 벌어졌던 이리역 폭발사고의 여파라는 얘기도 있다는데, 자세한 건 해당 사건 문서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