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경읍

 



강경읍
Ganggyeong-eup / 江景邑


국가
대한민국
광역자치단체
충청남도
기초자치단체
논산시
면적
7.01 km²
인구
8,492명[1]
행정리
28 리
법정리
13 리
읍소재지
남교리
홈페이지
강경읍사무소
1. 개요
2. 관할 리
3. 역사
4. 관광
5. 특산물
6. 행정기관
7. 교육
8. 교통
9. 관련 문서


1. 개요


충청남도 논산시의 서쪽에 있는 . 그리고 대한민국에서 면적이 두 번째로 좁은 읍.[2] 읍소재지는 남교리이다.

2. 관할 리


  • 남교리
강경읍의 동쪽에 위치하며, 강경읍사무소, 논산경찰서, 강경고등학교, 강경상업고등학교 등이 위치해있으며, 계백로가 통과한다.
  • 중앙리
강경읍의 북쪽에 위치하며, 옥녀봉로가 통과한다.
  • 홍교리
강경읍의 북쪽에 위치하며, 계백로219번길이 통과한다.
  • 북옥리
강경읍의 북쪽에 위치하며, 옥녀봉, 옥녀봉공원 등이 위치해있고, 옥녀봉로73번길이 통과한다.
  • 서창리
강경읍의 북쪽에 위치하며, 강경우체국 등이 위치해있고, 계백로, 금백로, 강경포구길이 통과한다.
  • 황산리
강경읍의 서쪽에 위치하며, 금강이 중심부를 관통하여 흐르고, 금강3경이 있으며, 부흥로가 통과한다.
  • 채산리
강경읍의 서쪽에 위치하며, 채운산이 위치하고,강경중학교가 위치하며, 여강로가 통과한다.
  • 대흥리
강경읍의 중앙에 위치하며, 강경역, 강경시외버스터미널 등의 교통시설이 위치하고, 법원/검찰청이 위치하며. 대흥로, 계백로가 통과한다.
  • 태평리
강경읍의 중앙에 위치하며, 강경농협이 위치하고, 옥녀봉로19번길이 통과한다.
  • 염천리
강경읍의 중앙에 위치하며, 계백로147번길, 계백로153번길, 옥녀봉로27번길이 통과한다.
  • 산양리
강경읍의 중남부에 위치하며, 강경산양초등학교가 위치하고, 동안로가 통과한다.
  • 채운리
강경읍의 남쪽에 위치하며, 한국폴리텍대학 바이오캠퍼스가 위치하고, 동안로가 통과한다.

3. 역사


과거 군산, 부여, 공주 등을 연결하는 수상 교통의 요지여서 크게 번성하였던 곳이다. 서쪽으로 금강이 흐르고 곡창지대인 논산평야, 호남평야와 가까운 지리적 특성 때문에, 수운을 통한 상거래가 발달하여 대구, 평양과 함께 조선의 3대 시장이라고 불릴 정도로 번성했다. 1896년 충청도남·북도로 분도될 때, 동서로 나뉘어 있음에도 '남북'이라 명명된 이유이기도 하다('북'은 충주).
특히 강경이 크게 번성한 때는 구한말 1900년대부터다. 일본인의 유입으로 상업이 발달하면서 1910년 한일은행 건물이 지어졌고[3], 충청남도에서 처음으로 전기가 들어왔다. 전성기에는 인구가 3만 명에 육박했다. 심지어는 전남여수처럼 강경 와서 자랑하지 말라는 말이 있을 정도였다.
1914년 호남선이 개통된 이후 화물들이 철도로 운송되기 시작되면서 수운의 메리트가 없어졌고, 청주공주가 강경 상권에서 이탈했으며, 돈 있는 사람들이 물밀듯이 공주나 대전으로 빠지기 시작했지만, 애지당초 강경 위치가 수탈 목표였던 논산ㆍ호남 평야들의 중심지이며, 호남선 철도가 강경읍을 통과했고, 그리고 도로 교통이 당시에는 매우 열악했기 때문에, 일제강점기 시절 대량의 물량 수송은 대부분 철도나 수운(혹은 해운)으로 이루어졌다. 일제강점기에 군산항과 목포항이 최대 항구 중 하나였다는 것을 생각해보면 강경은 이 때까지만 해도 명줄은 붙잡고 있었다고 볼 수 있다.
강경읍의 본격적인 몰락은 1960년대~1990년대에 이루어진 국토 개발 정책에서 비롯되었다. 당시에는 대한민국이 6.25전쟁의 폐허에서 벗어나기 위해, 여러가지 산업 발전과 경제 개발을 하고 있었는데, 주로 미국과 일본 등의 교역을 위해, 부산시에 있는 부산항을 중요하게 여겼으며,[4] 여기서 서울과 부산을 이어주는 경부선이 제일 각광을 받게 되었다.[5]
그래서 1960년대~1990년대에는 주로 경인선과 경부선일대를 중심으로 여러가지의 산업단지들을 유치해 가면서 개발해 나갔으며, 여기에는 경인고속도로경부고속도로가 더해 나가면서, 더더욱 부산항과 인천항으로 온갖 물류들이 집중되었고, 경부라인과 경인라인을 중심으로 경제 개발이 이루어졌다.
이와 달리 강경읍은 이 두 라인에서 해당되지 않았고, 더군다나 강경읍을 통하는 호남선은 2003년 전까지는 단선 상태였으며,[6] 그나마 수운의 경우에는 대부분 화물선들이 부산항이나 인천항으로 도착했기 때문에, 수운을 통한 물류 운송이 급속도로 줄게 되어서 완벽하게 타격을 입었고, 여기에는 1990년에 완공된 금강하굿둑의 영향으로 인해 수운 운송이 정지되었다.
그 때문에 강경읍은 1960년대부터 도시의 활기가 잃어가면서 경제 활동이 쇠약해졌고, 인구도 줄어드면서 강경읍은 물론 여기에 해당되었던 논산시의 인구 유출과 쇠락을 가져오게 되었으며, 현재는 강경읍과 논산시는 충청남도에서 평범한 시골이나 소도시가 되었다.[7]
참고로 강경읍은 조치원읍, 철원읍과 함께 1931년 4월 제도의 시행과 함께 설치된 유서깊은 읍이다.[8]
지금 지형을 보면 오히려 전라북도에 편입해도 될 정도지만 예전에는 강경천이 강경읍 동쪽이 아닌 남쪽으로 흘렀다.[9]

4. 관광


옛날 건물들이 많이 보존되어, 강경읍 내를 돌아다니다 보면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1950~1960년대로 워프한 느낌이 들기도 한다. 대표적으로 강경중앙초등학교는 논산에서 가장 오래된 학교인데(1905년 4월 2일 개교), 이 학교 강당은 1937년에 지어진 모습으로 보존되어 있어 문화재로 등록되었다. 또한 근대식 절충형 한옥인 남일당 한약방이 등록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다.
그러나 예산 부족 때문인지, 대부분의 문화재 지정 건물들은 거의 방치된 상태이다.
과거에 번성했던 곳이기 때문에, 곳곳에 천주교 등 종교사와 관련된 성지순례지도 있다.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가 프랑스인 선교사제들과 함께 2번째로 상륙한 곳인 나바위 성당[10], 조선 최초의 침례교회인 강경 침례교회, 신사참배를 거부한 강경 성결교회가 주요 성지.

5. 특산물


특산물로는 젓갈이 유명하며, 매년 10월 중순에 젓갈 축제가 열린다. 도리어 한 때의 번영이 지나고나서부터 이 곳의 젓갈 유통이 활발해져서, 지금은 전국 젓갈 유통의 70%를 차지한다.
충청 방언 으로 갱갱이라고 불린다. 그래서 젓갈집 이름 중에 갱갱이 젓갈이라는 이름도 있다
우어회, 혹은 우여회로 부르는 웅어(Coilia nasus) 회무침도 별미이다.

6. 행정기관


논산경찰서, 대전지방법원 논산지원, 대전지방검찰청 논산지청은 논산 시내에 없고 강경읍에 있다.[11] 강경읍이 논산 서쪽 끝에있는 것을 생각하면 독특한 배치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 관공서들을 논산 중심부로 이전한다는 논의가 지속적으로 나와서, 강경읍 주민들이 반발하고 있다.

7. 교육


강경상업고등학교(줄여서 강경상고, 더 줄여서 강상)는 예전에 경제 엘리트를 배출하는 학교로 유명했다. 금융 쪽으로 상당히 잘 나갔던 학교여서, 관련 업계에 빵빵한 인맥을 형성하고 있다. 2015년 출범한 KEB하나은행의 초대 행장인 함영주 씨도 강경상고 출신이다. 웅진씽크빅[12] 등을 가진 웅진그룹도 강경이 모태다.[13] 현재는 그저 그런 시골 학교.
탤런트 겸 前 대한민국 국회의원(통일국민당) 강부자가 이 곳 출신인데, 강경중앙국민학교와 강경여자고등학교를 다녔으며 장학금을 쾌척하기도 했다.[14] 덧붙여, 강경여자고등학교는 우리나라 스승의 날의 발상지이다. 이후 남녀공학 학교인 강경고등학교로 바뀌었다.
강경중학교 출신으로 영화배우 고수가 있다. 논산시 강경읍 남교리 출생으로 후에 논산대건고등학교로 진학하였다.

8. 교통


호남선이 읍의 중앙부를 지나가며, 강경역강경시외버스터미널이 있었다. 하지만 강경시외버스터미널은 현재는 논산행과 일부 대전서남부행을 제외하곤 운행하지 않는다. 따라서 고속/시외버스를 이용하려면 논산 버스 101번을 타고 논산고속/시외터미널로 가야 한다. 고속철도 KTX를 이용할 경우에도 동일하게 논산역으로 가면된다.

9. 관련 문서


[1] 2020년 7월 주민등록인구[2] 2019년 10월 21일자로 퇴계원읍이 설치되면서 2위로 내려왔다. 3위는 조치원읍, 4위는 물금읍이다. 그런데 이 세 읍은 읍치고는 인구가 굉장히 많은 편인데 강경은 안습.[3] 지금도 남아 있다. 현재는 강경역사관으로 운영 중이다.[4] 유럽 쪽의 교역은 주로 당시 인천시였던 인천광역시에 있는 인천항을 주로 사용했다.[5] 그리고 1978년 대전~이리 구간 호남선 복선화와 1980년 충북선 복선화 이전 복선으로 이루어진 철도는 경부선과 경인선 밖에 없었다.[6] 그나마 강경읍에 있는 강경역은 1978년에 호남선 대전~이리(익산)구간이 복선화가 되지만, 완벽한 복선화는 최소한 송정리까지 복선화가 완공된 1988년부터이며, 완전한 복선화는 호남선 종점인 목포까지 이루는 2003년이였다.[7] 그 대신 충청권에서 발전한 도시는 당연히 대전광역시, 청주시, 천안시로 이들은 경부라인에 속해서 1960년대부터 이루어진 경제 개발 정책에 혜택을 받았고, 인구가 유입되면서, 현재는 충청권에서 주도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8] 참고로 이외에도 1931년 4월 설치된 읍은 동래, 대전읍, 영등포읍, 광주읍, 전주읍 등이 있다.[9] 더욱 정확히는 기존 강경천을 너머 강경읍이 확장하였다. 또한 치수사업으로 강경천의 흐름을 바꿔놓았다.[10] 행정구역상으로 논산시가 아닌 익산시 관할이고, 교구 역시 강경(천주교 대전교구)과 달리 천주교 전주교구 관할이지만, 강경읍 시가지와 인접해 있다. 참고로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가 1번째로 상륙한 곳은 현 제주특별자치도 한경면 용수리. 제주도의 대표적 천주교 성지로, 기념관까지 건립되어 있다.[11] 충청남도의 비슷한 예로 서천군 장항읍이 있다.[12] 코웨이는 2013년에 매각.[13] 윤석금 회장은 공주시 출신(이 때문에 그룹 이름도 공주시의 옛 이름인 웅진을 따왔다)인데, 집이 가난해서 은행원을 하려고 강경상고를 다녔다고 한다.[14] 강경여자고등학교는 1991년에 강경고등학교로 바뀌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