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파키스탄 국경
1. 개요
'''인도-파키스탄 국경'''은 인도와 파키스탄간의 국경이다. 1947년 영국이 인도를 탈식민화 할때 인도 제국을 종교에 따라 국경선을 그렸기에 대부분 자연적인 방벽은 없는 편이다.
2. 상세
인도-파키스탄 국경은 영국의 탈식민화 정책으로 인도가 독립을 준비하던 시기였던 1947년에 인도 제국을 분리하며 그려졌다. 현 인도-파키스탄 국경은 래드클리프라는 한 변호사를 필두로 한 위원회에 그려졌다. 하지만 이 래드클리프는 이 국경을 그리기 전 인도에 와본 적도 없었고 이 국경으로 인해 분단될 인도의 민족들이나 역사에 관한 지식 혹 경험이 전무하였고 힌두교도들과 무슬림들이 북인도 전역에 고르게 분포하고 있어 명확한 국경선을 그리는 것이 매우 힘들고 유혈 사태를 동반할 것이란것도 모르고 있었다. 더군다나 영국의 노동당 정부는 인도에서의 탈식민화 정책을 밀어붙였고 래드클리프는 5주만에 인도-파키스탄 국경을 그리게 된다. '''그렇게 유혈 사태가 시작되었다'''.
당장 1000만에서 1200만여명이 자신의 종교에 맞는 땅으로 반강제적 이주를 당했으며 이 도중 사망한 이들도 적게는 20만에서 많게는 200만까지 추정된다. 거기에다 펀자브 각지에 살던 시크교도들과 암리차르와 같은 힌두교 성지들은 분단되었으며 국가가 종교에 따라 둘로 나뉘어 이산가족들도 다수 발생하였다. 거기다가 래드클리프 라인에서는 카슈미르와 같은 번왕국들에 관해서는 상세히 정해진 것이 없었기에 무슬림들이 다수였던 카슈미르의 힌두교도 번왕이 인도의 지원을 요청하며 제1차 인도-파키스탄 전쟁이 촉발되었고 영토 분쟁으로 인해 인도-파키스탄 국경은 악화일로를 걷게 되었다. 오늘날도 인도-파키스탄 국경은 세계에서 가장 군사화된 국경 중 하나로 남아 있다.
거기에다 1947년 독립 직후 제1차 인도-파키스탄 전쟁, 1965년 제2차 인도-파키스탄 전쟁, 1971년 제3차 인도-파키스탄 전쟁/방글라데시 독립전쟁 과 1999년 카길 전쟁, 그리고 그 외에도 2019년 인도-파키스탄 분쟁과 같은 무력 대치 상태가 수차례 벌어졌고 뭄바이 연쇄 테러와 같은 사건도 일어난 덕에 현재 인도-파키스탄 국경을 건너는 것은 5곳의[1] 정해진 위치 외에는 금지된 상태이다.[2] .
또한 카슈미르 지역은 지금도 영토 분쟁 지역이고 제1차 인도-파키스탄 전쟁 이후 카슈미르는 LAC(Line of Actual Control)이라는 군사분계선으로 나뉘어져 있으며 양국 모두 이 경계를 인정하지 않고 카슈미르 전체[3] 를 주장하고 있어서 비인정 국경으로 남아 있다. 또한 카슈미르 내에서도 (특히 남부 지역에서는) 간간히 무력 충돌이 일어나고 인도령 카슈미르에선 특히 힌두교도 다수 국가의 무슬림 다수 지역이기에 테러도 일어나고 있는 매우 불안정한 상황이다. 특이한 점이 있다면 카슈미르 북부 국경 지대의 시아첸 빙하는 워낙 험준하여 군사들의 주둔이 사실상 불가능하기에 군사 분계선도 세우지 못하는 무주지가 되어버렸다.
더군다나 인도-파키스탄 관계 때문에 인도인들에게는 파키스탄 관광비자가 발급되지 않으며 인도인들이 파키스탄 비자를 받을 수 있는 경우는 외교관이거나 친지 방문, 통행과 성지순례 뿐이다, 또한 파키스탄인들에게도 인도 비자는 외교관, 사업, 학생용 외에는 매우 까다로우며 도착비자 발급도 1년에 두번으로 제한된다.
워낙 졸속으로 지역에 대한 정보 없이 한 변호사가 단독적으로 그린[4] 국경이다 보니 많은 험지들을 가른다. 남쪽 라자스탄과 신드 지역에는 타르 사막을 가르면서 그어져 있고 중부에는 펀자브 지역을 반으로 가르며 평원 한가운데를 가로지르고 북쪽에서는 험준한 산 지형을 가로지르며 주둔도 불가능한 시아첸 빙하에서 멈춘다.
3. 기타
이렇게 군사화되었고 전쟁이나 분쟁도 자주 일어난 국경이지만 카슈미르를 제외한 다른 지역의 국경 지대는 꽤 안정적인 편이다.
인도 암리차르와 파키스탄 라호르 사이 펀자브의 와가-아타리 국경 검문소에서는 매일 국기 하강식을 하며 양쪽 군대 모두 묘기를 부리며 자존심 대결 을 하는데 인도인들과 파키스탄인들이 서로 각자의 국가들을 응원하며 하는 행사의 특수성 덕에 많은 외국인 관광객들도 찾는다.
펀자브 지역은 시크교도들의 전통적 강역이었는데 이 국경 때문에 암리차르 황금사원[5] 과 카타르푸르 구루 나나크 영묘[6] 를 포함한 많은 성지들이 국경 양쪽에 존재하게 되었고 분단 후 두 나라들의 관계가 악화되고 국경을 건너는 것이 더욱 어려워지자 우리나라 통일전망대와 비슷한 '성지전망대'가 생겼었고 지금까지도 인도와 파키스탄을 왕래하는 것은 매우 어렵기에 아직도 남아있다.
여담으로 인도 펀자브 주와 하리아나 주[7] 의 공동 수도이자 르 코르뷔지에의 계획도시 찬디가르가 생긴 것도 이 국경과 밀접한 연관이 있다. 인도와 펀자브의 분단 후 펀자브의 중심도시 라호르를 비롯한 많은 펀자브 주요도시들이 파키스탄으로 넘어갔는데, 이로 인해 인도의 펀자브 지역의 주도를 맡을 마땅한 도시가 없자 건설된게 계획도시 찬디가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