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혀진 전쟁
Forgotten War
America's Forgotten war이라 하면 미영전쟁을 칭하는 호칭이 된다. 미영전쟁은 전쟁을 벌인 당사자인 미국과 영국 둘다 관심 밖이고 오히려 캐나다에서 훨씬 관심이 높다.
6.25 전쟁은 참전국의 수나 사상자의 규모, 전투기간으로 따지면 2차대전 이후의 전쟁 중에서는 매우 커다란 전쟁이었으며, 베트남 전쟁에도 크게 뒤떨어지지 않는 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잊힌 전쟁"으로 불릴 정도로 미국에서 관심이 없는 것에는 몇 가지 분석이 나오고 있다.
어쨌든 미국에서 인식이 이렇게 미비한 탓에 정작 참전 미군들은 PTSD 등 전쟁 후유증으로 고통받으면서도 제대로 된 사후관리나 주변의 이해를 얻지 못해 힘든 삶을 산 이들이 많다. 참혹한 전쟁이기도 했던 탓에 귀국한 후에도 악몽에 시달리거나 혼자 살아남았다, 혹은 전쟁이지만 같은 사람을 죽였다는 식의 죄책감에 시달리는 경우도 흔한 듯. 이때의 기억 때문에 귀국한 후에 한국에 대해 일절 관심을 끊고 산 참전군인들도 많다고 한다. 감사해야 할 한국으로서도 이러한 이들에 대해 뒤늦게 관심을 가졌기에[3] 무관심과 전쟁 후유증에 고통받다 죽은 참전 미군이 많다.
한국 정부에서는 6.25 전쟁에 참전한 미군과 다른 UN군 참전국가 군인들을 초청해서 한국 관광을 시켜주는 등의 정책을 펴고 있다. 그깟 관광 따위라고 생각할 수도 있긴 하지만 이게 의외로 도움이 되는 듯한데, 이전까지 몇십 년간 전쟁의 악몽으로 괴로워하던 참전군인이 한국에 와서 그 발전상을 보고 한국의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한 자신과 동료들의 희생이 가치 있는 것이었다는 것을 알고 전쟁 후유증에서 벗어나는 경우가 꽤 있다고 한다. 많은 참전용사들이 한국 정부가 시행하는 보은 행사에 초청되어 한국의 현재 상황을 보고 '정말 목숨 바쳐 지켜낸 보람이 있는 나라다'라며 감격해 한다고 한다. 아울러 참전용사 가족들에게도 그들의 할아버지나 아버지들이 존경을 받게 되는 자리이기도 하다. K-POP이나 한류의 나라로만 알고 있던 후세대로서는 자신들의 할아버지가 청춘을 바쳐 지켜냈던 나라였다는 사실에 다시 한번 감동먹은 것. 어떤 군인은 수십 년간 6.25 전쟁의 악몽으로 정신과 치료를 받으며 생활하다 의사의 권유로 한국 정부의 관광 프로그램에 참여해서 한국을 방문한 뒤 놀랄 만큼 병증이 좋아져 의사가 놀랄 정도였다고. 수십 년간 자신이 죽인 적군의 악몽을 꾸던 한 군인도 마찬가지로 더 이상 악몽을 꾸지 않게 되었다고 하는 일화도 있다.
2020년 5월에 한국 정부는 22개국 참전용사들에게 코로나 19 대응을 위한 마스크 100만장[4] 을 지원한다고 밝혔다.#
픽션에서도 그다지 소재로 쓰이지 않아서 조명을 제대로 받지 못했다. 특히 하필이면 오! 인천이라는 괴작의 존재가 있어서…[5]
물론 그래도 영화에서 꽤 다뤄졌다. 하지만 서부전선, 태평양 전쟁, 베트남 전쟁을 배경으로 한 걸작들에 비해서는 인지도나 완성도가 한참 떨어지는 경우가 많고, 중심소재가 아닌 경우도 많다.
원한의 도곡리 다리와 Heartbreak Ridge(단장의 능선)[6] 는 수작이지만 최고의 전쟁영화 반열에는 오르지 못하며 야전병원 매쉬(M.A.S.H)는 배경만 6.25 전쟁이지 실은 베트남 전쟁을 풍자한 것이다. 맨츄리안 캔디데이트(1962년판)는 오프닝에만 한국전이 아주 짧게 나오고 대부분 배경은 미국이며, 그저 공산주의와 대립을 위해 설정으로만 나왔을 뿐이다.
대한민국 공군 재건을 위한 바우트 원(Bout One)작전의 책임자인 딘 헤스의 자서전을 기반으로 제작된 1957년작 영화 배틀 힘(Battle Hymn, 전송가)의 경우 위의 영화들과는 달리 본격적으로 6.25 전쟁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다만 수익금을 한국 고아들의 복지 확충을 위해 기부하기로 하고 만든 영화라 일반적인 상업영화는 아니다.
2014년에 영국에서 간만에 한국 전쟁 관련 영화가 하나 나왔다. 제목은 퀸 앤드 컨트리이다. 하지만 주인공인 로한은 한국으로 안 온다... 존 부어맨 감독.
한국과 중국에서는 당연히 강하게 박혀 있다. 2004년 한국 최초 천만 관객 영화 2편 중 하나인 태극기 휘날리며도 있고, 2007년 중국 영화 순위 1위를 차지했던 영화 '집결호'에서도 국공내전에 이어 6.25 전쟁이 다뤄지고 있다.[7]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그랜 토리노는 주인공이 한국전 참전경력이 있고 중요하게 나오지만 역시 직접 나오지는 않는다. 같은 감독의 라스트 미션(2018) 또한 주인공이 한국전 참전용사로 나오는데 실제로 모델이 된 실존인물이 한국전 참전용사이기도 하다. 이렇게 드라마나 영화에서 멀쩡한 노인에게 '알고보면 한국전쟁에 참전했었다.'고 해두는 설정은 의외로 자주 나오고 있다.[8] 아무래도 참전자들이 대부분 죽을 때가 된 제2차 세계 대전보다는 덜 오래되었고, 베트남 전쟁과는 달리 '우울한 측면' 혹은 '부끄러운 측면'이 없는 전쟁이기 때문인듯 하다. 또한, 한국 자체의 인지도가 높아지면서 나타나는 경향도 있다.
러브크래프트 컨트리에서 중요하게 언급된다. 주인공이 한국 전쟁 참전용사인데다, 조역 중 하나로 6.25 전쟁으로 피난온 한국계 미국인 여성이 등장하기 때문에.
지금까지 세계사적으론 잊혀진 전쟁이었으며 끝나지 않는 한반도안에서의 냉전의 잔재 정도의 취급이었지만, 최근 미중갈등의 확대로 다시금 6.25 전쟁이 복기되는 경향을 보고 있다. 이러한 움직임은 중국이 첫발을 끊고 있으며, 미국에 대항해 자국민을 결집시키고 반미감정을 환기하는데 활용되고 홍보되고 있다. 중국은 공식적으로 6.25 전쟁을 '항미원조전쟁'이라 하여 미제에 대항해 북한을 도왔다고 인식하고 있지만 한동안 한중관계를 의식해 이를 강조하지는 않았는데, 2010년대 후반부터 항미원조전쟁 프로파간다를 적극적으로 퍼뜨리고 있으며, 이 과정에서 한국인과의 갈등이 벌어지고 있다. 중국과 미국의 대립이 앞으로도 계속 격화되고, 신 냉전수준으로 치닫는다면 영미권에서도 중국을 확실한 잠재적 적국으로 두고 한국전쟁을 복기할 가능성이 있다.
콜 오브 듀티 2021년작이 한국전쟁이 배경이라는 루머가 있다.
1. 개요
6.25 전쟁의 별칭. 한국은 물론 수많은 UN군과 미군의 피를 흘리게 만든 전쟁이지만, 베트남전과 2차대전에 비하여 주목을 받지 못해 생겨난 별칭이다.'''우리가 귀국했을 땐 퍼레이드 따위가 전혀 없었다. 그냥 제대해서 직장으로 갔다.''' - 한국전참전용사협회 회장 샐 스칼래토
America's Forgotten war이라 하면 미영전쟁을 칭하는 호칭이 된다. 미영전쟁은 전쟁을 벌인 당사자인 미국과 영국 둘다 관심 밖이고 오히려 캐나다에서 훨씬 관심이 높다.
2. 원인
6.25 전쟁은 참전국의 수나 사상자의 규모, 전투기간으로 따지면 2차대전 이후의 전쟁 중에서는 매우 커다란 전쟁이었으며, 베트남 전쟁에도 크게 뒤떨어지지 않는 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잊힌 전쟁"으로 불릴 정도로 미국에서 관심이 없는 것에는 몇 가지 분석이 나오고 있다.
- 사실 가장 큰 이유는 이 전쟁이 제2차 세계 대전을 마치고 나서 5년도 지나지 않아 터졌고, 잘못하면 3차 대전으로 갈 가능성이 매우 컸기 때문이다. 미국도 엄청난 전비를 써서 나치 독일에 이겼기 때문에 지옥같은 2차 대전에서 벗어난 미국인들이 이제야 여유를 찾았으며 더 이상 전쟁같은 건 하지 말자라는 반전주의가 일어나던 마당에 또 해외에서 전쟁을 크게 치른다고 하면 전비 지출이 막혔을 가능성이 크다. 그래서 해리 트루먼 대통령이 이 참전을 Total War이 아니라 Police Action으로 축소했고, 소련조차도 확전을 막으려고 개입을 숨겼을 정도. 그런 것 치고는 미국도 상당한 전비를 치러야 했고, 결과적으로 승리라고도 할 수 없는 상태로 휴전이 선언되어 뭐라 자랑할만한 여지도 못 만든 전쟁이 되었다.
- 미디어의 발달이 아직 미흡해, '미디어 전쟁'으로까지 불린 베트남 전쟁에 비해서 언론의 관심이 적었다. 전쟁 보도의 대부분은 여전히 2차대전때와 마찬가지로 영화관 뉴스와 신문, 라디오가 주력이었다. 당시에는 텔레비전이 대중화 되기 이전이라서 주요 보도매체로써의 가치는 약했고, 이미 1920년대에 일반화된 라디오 뉴스면 몰라도 화면까지 보이는 다른 영상뉴스는 영화관 상영이 주였다. 대한뉴스도 이런 식으로 방송되었다. 1950년대에는 TV가 일반 가정에 막 보급될 무렵이었다. 사실 TV방송이 시작된건 1939년이었지만 2차 세계대전과 높은 TV가격으로 보급이 미진했다. 컬러방송은 1950년에 시작되었기는 하지만 컬러방송이 중단되다가 송출방식을 변경하여 1954년에 재개하는 등의 우여곡절을 겪다가 1960년대가 되어서야 전국적인 보급이 이루어졌다.
- 2차대전이나 베트남전에 비해 지속기간이 짧았다. 2차대전은 미국이 직접 참전하기 전부터 유럽에서 소식이 쏟아져 들어와 비상한 관심을 끌었던 전쟁이었으며 베트남전은 6.25 전쟁의 6배 이상[1] 오래 끈 전쟁이다. 그리고 유럽은 유럽계 이민자들이 주류를 이루는 미국인들 입장에서 관심이 안 갈래야 안 갈수 없었던 지역이였고, 베트남전도 처음 수년간은 크게 세간의 이목을 끌지 않았으며 6.25 전쟁처럼 참전 3년 즈음에 끝났으면 관심은 훨씬 덜 했을 것이다. 지속기간과 관련해서 전쟁의 경과 또한 영향을 끼쳤을 수도 있다. 6.25 전쟁의 진행 양상을 보면 1950년 6월 말 북한의 남침으로 시작돼서, 9월에는 낙동강 방어선까지 전선이 밀렸다가, 10월에는 서울을 포함한 기존 영토를 거의 수복하였고, 11월에는 중국의 국경선까지 밀고 올라가는 둥 처음 수개월은 상황이 매우 급박하게 돌아갔다. 그러다가 중공군의 참전으로 다시 밀리기 시작해서 이듬해인 1951년 2~3월경에 1.4후퇴 이후 최남단까지 밀렸다가 다시 반전되어서, 전쟁이 발발한지 만 1년이 지난 1951년 여름 경에는 전선이 완전히 고착화되어 버린다. 실제로 이때부터 휴전까지 약 2년간은 전선에 거의 변화가 없이 능선과 고지를 뺏고 빼앗기는 지리한 소모전이 계속되었다. 물론 치열한 전투도 여럿 있었으나, 전쟁에 연루되지 않은 일반 외국인들의 이목을 끌 만한 전개(대대적인 진격, 또는 후퇴 등 큰 전황 변화)는 3년간의 전쟁에서 뒤의 2년간은 거의 없었던 셈. 개전 초 월 1~2천명대였던 미군 사상자 수도 1951년 이후부터는 월 700명 선으로 내려간다.# 베트남전에서 미군 사상자가 해가 지날수록 늘어났던 것과는 큰 차이점.
- 초기 1년의 극과 극을 달리던 전장 상황도 미국 시민들의 입장에서는 드라마틱하지도, 그렇다고 분노를 표출하기도 애매한 상황의 연속이어서 이야기 거리가 되기에 어려운 면이 많다. 많은 전투가 드라마가 될만한 치열한 공방전보다는 모랄빵이나 상대를 가볍게 여긴 전략적인 판단 실수에 따른 일방적인 결과로 끝나버렸고[2] , 그렇다고 베트남 전쟁 수준으로 미군의 전쟁범죄나 프래깅 문제가 드러난 것도 아니니 보통 사람이 한국전쟁에 관심을 가질만한 매력이 떨어진다. 미국 입장에서는 기껏해야 장진호 전투 정도나 졌지만 잘 싸웠다 정도로 다룰법한 전투다.
- 휴전으로 '어정쩡하게' 끝나버렸기 때문에 승패가 명백한 2차 세계대전, 베트남 전쟁과는 달리 다루기가 애매하다. 흔히 2차대전은 미국의 영웅같은 면모가 부각되고, 베트남전은 미국의 자성하는 성찰이 부각되어 다루기 쉬우나, 6.25 전쟁은 감동으로도 성찰용로도 다루기 어쩡쩡하다. 이기지 못한 전쟁을 미화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이 전쟁에 미국이 참전한 것은 별로 비판받을 건덕지가 없다.
- 미국 입장에서 본 한국은 경술국치 이전에는 민간교류가 전무했고, 일제강점기 중에는 일본의 식민지였고, 해방 후에는 가난한 극동의 듣보잡 나라여서 대다수 미국인들에게는 사실상 '처음 보는 나라' 취급. 게다가 6.25 전쟁 이후에도 미국 사회에 대해 한국이 끼치는 영향은 다른 나라에 비해서 상대적으로 미미해서 관심을 가질 이유가 많지 않았다.
- 제2차 세계대전이라는 세계구급 대전쟁을 겪은지 5년밖에 되지 않았었던 점도 크다. 2차대전은 총력전이었던 만큼 사회 전반적인 참여도나 관심도가 타 전쟁들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 미국이 6.25 전쟁에 투입한 병력(30만)은 2차대전 미군의 전사자(40만)보다도 적다. 2차대전의 기억이 채 가시지 않았던 미국인들에게 6.25 전쟁은 큰 관심거리가 못되는 '국지전'이었던 셈이다. 이는 한국, 북한, 더글러스 맥아더 개인을 제외한 모든 당사자(미국, 중국, 소련)가 공통적으로 인식하는 것으로, 한국 전쟁은 무슨 외교적 수를 쓰건 한반도 밖으로 확전시키지 않는다라는 자세로 전쟁에 개입했었다. 동아시아 밖에서는 아예 2차대전의 부속 전쟁 취급하는 경우도 있을 정도(...)
- 규모 면에서는 베트남 전쟁과 비교할 만 한데, 참전병력/전사자는 각각 30만/3만7천, 54만/5만8천으로 베트남전쟁이 약 두배 많지만 수백만명 참전/40만명 전사인 2차대전과는 확실히 다른 급임을 알 수 있다. 문제는 베트남 전쟁은 위에 언급된 것과 같이 6.25 전쟁의 5배는 더 끌었던 전쟁이라는 점. 6.25 전쟁의 3년 1개월에 비해, 베트남 전쟁은 무려 19년 반동안 계속되었던 전쟁이다. 6.25 전쟁에 30만 병력을 3년간 투입하는 동안 130만명이 자원, 150만명이 징집됐었는데, 그 두배의 병력을 대여섯배의 기간동안 유지하려면 총 징집된 인원수는... 베트남전쟁은 전장에서 돌아온 베테랑들이 PTSD로 고생하면서 사회문제화 되고, 전쟁의 참혹함과 무의미한 살육을 비판하는 평화 반전주의 운동이 일어나며, 이게 또 동시대의 문화적 미디어의 발달로 끊임 없이 음악, 영화 등을 통해 재생산 되면서 비로소 제대로 기억되게 된 전쟁이다. 특히 동시대에 일어난 히피문화가 베트남전쟁을 사람들의 뇌리에 각인시키는데에 큰 기여를 했다. 베트남전쟁이 6.25 전쟁처럼 2~3년안에 끝났더라면 충분히 잊혀진 전쟁 취급을 받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 베트남 전쟁도 종전 후 40년 가까이 지난 지금은 그다지 미디어에서 다뤄지지 않고 있다. 즉 오래돼서 자연히 묻힌 감도 있다. 베트남 전쟁이 미디어에서 활발하게 다뤄지던 시절은 주로 8~90년대, 즉 종전 10~20년 뒤 쯤이었다.
3. 사후 관리
어쨌든 미국에서 인식이 이렇게 미비한 탓에 정작 참전 미군들은 PTSD 등 전쟁 후유증으로 고통받으면서도 제대로 된 사후관리나 주변의 이해를 얻지 못해 힘든 삶을 산 이들이 많다. 참혹한 전쟁이기도 했던 탓에 귀국한 후에도 악몽에 시달리거나 혼자 살아남았다, 혹은 전쟁이지만 같은 사람을 죽였다는 식의 죄책감에 시달리는 경우도 흔한 듯. 이때의 기억 때문에 귀국한 후에 한국에 대해 일절 관심을 끊고 산 참전군인들도 많다고 한다. 감사해야 할 한국으로서도 이러한 이들에 대해 뒤늦게 관심을 가졌기에[3] 무관심과 전쟁 후유증에 고통받다 죽은 참전 미군이 많다.
한국 정부에서는 6.25 전쟁에 참전한 미군과 다른 UN군 참전국가 군인들을 초청해서 한국 관광을 시켜주는 등의 정책을 펴고 있다. 그깟 관광 따위라고 생각할 수도 있긴 하지만 이게 의외로 도움이 되는 듯한데, 이전까지 몇십 년간 전쟁의 악몽으로 괴로워하던 참전군인이 한국에 와서 그 발전상을 보고 한국의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한 자신과 동료들의 희생이 가치 있는 것이었다는 것을 알고 전쟁 후유증에서 벗어나는 경우가 꽤 있다고 한다. 많은 참전용사들이 한국 정부가 시행하는 보은 행사에 초청되어 한국의 현재 상황을 보고 '정말 목숨 바쳐 지켜낸 보람이 있는 나라다'라며 감격해 한다고 한다. 아울러 참전용사 가족들에게도 그들의 할아버지나 아버지들이 존경을 받게 되는 자리이기도 하다. K-POP이나 한류의 나라로만 알고 있던 후세대로서는 자신들의 할아버지가 청춘을 바쳐 지켜냈던 나라였다는 사실에 다시 한번 감동먹은 것. 어떤 군인은 수십 년간 6.25 전쟁의 악몽으로 정신과 치료를 받으며 생활하다 의사의 권유로 한국 정부의 관광 프로그램에 참여해서 한국을 방문한 뒤 놀랄 만큼 병증이 좋아져 의사가 놀랄 정도였다고. 수십 년간 자신이 죽인 적군의 악몽을 꾸던 한 군인도 마찬가지로 더 이상 악몽을 꾸지 않게 되었다고 하는 일화도 있다.
2020년 5월에 한국 정부는 22개국 참전용사들에게 코로나 19 대응을 위한 마스크 100만장[4] 을 지원한다고 밝혔다.#
4. 미디어
픽션에서도 그다지 소재로 쓰이지 않아서 조명을 제대로 받지 못했다. 특히 하필이면 오! 인천이라는 괴작의 존재가 있어서…[5]
물론 그래도 영화에서 꽤 다뤄졌다. 하지만 서부전선, 태평양 전쟁, 베트남 전쟁을 배경으로 한 걸작들에 비해서는 인지도나 완성도가 한참 떨어지는 경우가 많고, 중심소재가 아닌 경우도 많다.
원한의 도곡리 다리와 Heartbreak Ridge(단장의 능선)[6] 는 수작이지만 최고의 전쟁영화 반열에는 오르지 못하며 야전병원 매쉬(M.A.S.H)는 배경만 6.25 전쟁이지 실은 베트남 전쟁을 풍자한 것이다. 맨츄리안 캔디데이트(1962년판)는 오프닝에만 한국전이 아주 짧게 나오고 대부분 배경은 미국이며, 그저 공산주의와 대립을 위해 설정으로만 나왔을 뿐이다.
대한민국 공군 재건을 위한 바우트 원(Bout One)작전의 책임자인 딘 헤스의 자서전을 기반으로 제작된 1957년작 영화 배틀 힘(Battle Hymn, 전송가)의 경우 위의 영화들과는 달리 본격적으로 6.25 전쟁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다만 수익금을 한국 고아들의 복지 확충을 위해 기부하기로 하고 만든 영화라 일반적인 상업영화는 아니다.
2014년에 영국에서 간만에 한국 전쟁 관련 영화가 하나 나왔다. 제목은 퀸 앤드 컨트리이다. 하지만 주인공인 로한은 한국으로 안 온다... 존 부어맨 감독.
한국과 중국에서는 당연히 강하게 박혀 있다. 2004년 한국 최초 천만 관객 영화 2편 중 하나인 태극기 휘날리며도 있고, 2007년 중국 영화 순위 1위를 차지했던 영화 '집결호'에서도 국공내전에 이어 6.25 전쟁이 다뤄지고 있다.[7]
5. 언급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그랜 토리노는 주인공이 한국전 참전경력이 있고 중요하게 나오지만 역시 직접 나오지는 않는다. 같은 감독의 라스트 미션(2018) 또한 주인공이 한국전 참전용사로 나오는데 실제로 모델이 된 실존인물이 한국전 참전용사이기도 하다. 이렇게 드라마나 영화에서 멀쩡한 노인에게 '알고보면 한국전쟁에 참전했었다.'고 해두는 설정은 의외로 자주 나오고 있다.[8] 아무래도 참전자들이 대부분 죽을 때가 된 제2차 세계 대전보다는 덜 오래되었고, 베트남 전쟁과는 달리 '우울한 측면' 혹은 '부끄러운 측면'이 없는 전쟁이기 때문인듯 하다. 또한, 한국 자체의 인지도가 높아지면서 나타나는 경향도 있다.
러브크래프트 컨트리에서 중요하게 언급된다. 주인공이 한국 전쟁 참전용사인데다, 조역 중 하나로 6.25 전쟁으로 피난온 한국계 미국인 여성이 등장하기 때문에.
지금까지 세계사적으론 잊혀진 전쟁이었으며 끝나지 않는 한반도안에서의 냉전의 잔재 정도의 취급이었지만, 최근 미중갈등의 확대로 다시금 6.25 전쟁이 복기되는 경향을 보고 있다. 이러한 움직임은 중국이 첫발을 끊고 있으며, 미국에 대항해 자국민을 결집시키고 반미감정을 환기하는데 활용되고 홍보되고 있다. 중국은 공식적으로 6.25 전쟁을 '항미원조전쟁'이라 하여 미제에 대항해 북한을 도왔다고 인식하고 있지만 한동안 한중관계를 의식해 이를 강조하지는 않았는데, 2010년대 후반부터 항미원조전쟁 프로파간다를 적극적으로 퍼뜨리고 있으며, 이 과정에서 한국인과의 갈등이 벌어지고 있다. 중국과 미국의 대립이 앞으로도 계속 격화되고, 신 냉전수준으로 치닫는다면 영미권에서도 중국을 확실한 잠재적 적국으로 두고 한국전쟁을 복기할 가능성이 있다.
콜 오브 듀티 2021년작이 한국전쟁이 배경이라는 루머가 있다.
[1] 6.25 전쟁 3년 1개월(휴전일 기준), 베트남 전쟁 19년 6개월[2] 일단 미군/연합군이 참전한 시기부터만 따져도 스미스대대의 전멸, 대전전투로 인한 사단의 궤멸, 장진호 전투에서의 전멸 위기는 미군 최상층부의 과신과 적을 얕잡아 본 전략적인 실수가 원인이었다. 여기에 초기에 경남 지역까지 밀렸다 반대로 단 두달 남짓만에 압록강변에 도달했다 다시 두 달도 되지 않아 1.4 후퇴로 서울을 빼앗긴 그 과정에서 벌어진 많은 전투가 초기 한국군, 인민군, 인민해방군의 모랄빵으로 인한 전선붕괴가 주요 원인으로 작용했다.[3] 국가 차원으로서 미국에게 감사를 표한 적이야 많지만, 군인 개개인에 대해 관심을 기울인 것은 전쟁이 끝난 한참 뒤이다.[4] 미국 50만 장, 그 외 국가 50만 장[5] 공교롭게도 이 영화를 기점으로 6.25 전쟁을 배경으로둔 영화들이 끊겼다는 괴소문도 생겼다.[6] 국내 개봉명은 승리의 전쟁으로 클린트 이스트우드주연/감독작이다. 한국전쟁 참전 경력이 있는 베테랑 하이웨이 중사가 해병대 캠프에 배정되어 전사로 키워내 그레나다 침공에 투입된다는 내용이다.[7] 하지만 중국 영화 소재를 보면 국공내전과 중일전쟁이 압도적으로 많은 편이며, 드라마와 소설도 빠지지도 않는다. 한국전쟁과 두 전쟁을 비교하면 너무 대조적.[8] 실제 미국 대도시 교외의 공동묘지에 가면 한국전 참전용사들이 의외로 있는 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