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센 왕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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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북독일 연방과 독일 제국을 구성했던 왕국이었으며 수도는 드레스덴이었다.
1910년 기준으로 면적 14,993 km², 인구 481만 가량이었다.
2. 역사
베틴 가문이 다스리던 왕국이었으며, 오늘날 작센 영역과 대체로 비슷하다.[1] 원래 작센 선제후국이었으나 1806년 왕국으로 승격했다. 그러나 라이프치히 전투까지 끝까지 나폴레옹의 편을 드는 등 줄타기를 잘못한 죄로 국왕이 자국군에게 버림받고 프로이센에게 포로로 끌려가는 안습한 처지가 된다. 프로이센은 작센을 전체를 합병하고 싶어했지만 오스트리아의 비롯한 타국의 견제로 인해 1815년 빈 회의에서 프로이센에게 국토의 60%를 잃는 수준에서 마무리되었다. 1866년 보오전쟁에서는 오스트리아 제국 편에 가담했으나 오스트리아가 전쟁에서 패배한 후 프로이센 주도의 북독일 연방을 거쳐 1871년 독일 제국에 가맹했다.
신민의 95%는 프로테스탄트였는데, 정작 왕실은 가톨릭이었다. 1697년에 작센 선제후 프리드리히 아우구스트가 가톨릭 국가인 폴란드-리투아니아 국왕 아우구스트 2세로 선출되기 위해 개종했기 때문. 개종과정에서 호엔촐레른 가문 아내가 평생 별거를 선언하고[2] 신하들이 퇴위하라고 반발한 흑역사도 있다. 이 프리드리히 아우구스트는 아우구스트 2세라는 이름으로 즉위했는데 별칭이 '강건왕' (der Starke)이다. 다른 이유도 아니 무시무시한 여성 편력 때문이다. 확인된 사생아의 수만 300명이 넘고, 애인 중에는 그의 친딸(...)도 있었다. 애인 중 올제스카라는 여인이 나중에 알고 보니 그의 사생아였던 것. 게다가 자신을 지원해 준 러시아의 표트르 1세에게 선물이랍시고 포르노 그림을 선물하기도 했다. 정작 표트르는 화를 내기는 커녕 유쾌하게 받아들였다고.[3]
1918년 독일 제국이 붕괴하면서 작센 왕국은 작센 자유주(Freistaat Sachsen)로 개조되었고, 이 이름은 동독 통치기(1952년~1990년)를 제외하고는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3. 왕사(王史)
- 프리드리히 아우구스트 1세 (1806-1827) - 별명은 정의왕(der Gerechte).
- 안톤 (1827-1836) - 별명은 친절왕(der Gütige)
- 프리드리히 아우구스트 2세 (1836-1854)
- 요한 (1854-1873)
- 알베르트 (1873-1902)
- 게오르크 (1902-1904)
- 프리드리히 아우구스트 3세 (1904-1918)
독일의 다른 왕조들은 엄밀히 말해 작센 왕실이 단절된 것으로 보는데 알렉산더는 여계 후손인데다 아버지가 레바논계 멕시코인이고 뤼디거는 아버지인 티모 왕자가 귀천상혼때문에 작센 왕조에서 제명되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두 후보 모두 정통성에 결함이 있어 독일 귀족연감에 등록되지 못하고 있다. 이 때문에 계승권 분쟁에 에른스트 계통도 끼어드는데 작센 왕국 이전 베틴 가문의 구 상속법이 준살리카법[8] 에 엄격한 귀천상혼 원칙을 적용하는 것을 구실로 삼아 알렉산더와 뤼디거를 모두 부정하고 에른스트 계통의 수장인 작센바이마르아이제나흐가 작센의 왕위계승권을 주장하고 있다.
[1] 1990년 작센 주를 재구성하면서 구 작센의 영역과 조금 달라졌다. 그리고 동부 극히 일부 지역은 지금 폴란드이다.[2] 남편이 왕이 되면서 그녀도 왕비가 되었지만 평생 폴란드에 발 한발자국도 딛지 않았고 국왕 대관식까지도 참석하지 않았다.[3] 사실 표트르 대제도 성격이 별나기로 유명했다. 항목 참조.[4] 마리아라는 이름이 세컨드네임도 아니고 당당히 첫머리에 나왔지만 당연히 남자다.[5] 1997년에 마리아 에마누엘이 양자로 들여 후계자로 선언했다. 게사페 가문은 레바논의 마론파 출신으로 멕시코로 이민한 성공한 사업가 가문이다.[6] 어머니가 평민으로 정육점 집 딸이어서 아버지가 왕실에서 절연당했다.[7] 호엔촐레른 왕조의 가톨릭 분파이다.[8] 모든 남성 후손이 단절됐을 때만 여성에게 계승권이 돌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