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독일 연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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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프로이센-오스트리아 전쟁이 끝난 1866년에서 프로이센-프랑스 전쟁이 끝난 1871년까지 북독일 지역에 존속했던 연방 국가.
기존의 독일 연방이 국가라고 불러주기 민망한 정도[5] 에 덴마크[6] 나 네덜란드[7] 같은 완전한 외국도 난잡하게 존재했던 것과는 달리[8] 북독일 연방은 미국이나 스위스 같이 완벽한 연방 국가로서 기능을 다했다. 또한 독일 제국의 전신이 되는 국가이기도 하다.
북독일 연방은 편의상 '연방'이라고 번역하고는 있으나 사실은 연방 국가(federation)보다는 국가연합(confederation)에 가까운 존재였다. 실질적으로는 연방 국가로서의 기능을 완벽히 수행했지만, 명목상으로는 아직 완전한 연방 국가로서 완성되어 있지는 않았다. 후신인 독일 제국은 완전한 연방 국가로 통일되어 있었다고 볼 수 있지만 그 전신인 북독일 연방 단계에서는 아직 국가연합에 가까웠다. 북독일 연방은 기존의 독일 연방에 비해서 좀 더 연방 국가에 가까워져 있었으나, 실질적으로는 그러하더라도 명목상으로는 아직 완전한 연방 국가로서 통일되어 있지 않았던 단계였다. 한국어에서 연방으로 번역되는 정치체(政治體, polity) 중에 실제로는 연방 국가가 아닌 경우가 꽤 많으니 주의할 필요가 있다.
2. 역사
프로이센-오스트리아 전쟁으로 오스트리아를 굴복시키는데 성공한 프로이센 왕국은 오스트리아를 제외시키고 독일을 통일한다는 소독일주의에 근거, 기존에 있었던 오스트리아 주도의 느슨했던 독일 연방을 해체시키고 엄연한 연방국가로서 북독일 연방을 출범시켰다. 이후 북독일 연방은 프로이센-프랑스 전쟁에서 승리, 남독일의 4개국[9] 을 포함한 독일 제국을 선포하면서 공식적으로 해체되었다.
3. 사회상
3.1. 정치
명목상으로는 가맹국 모두 동등한 주권을 행사하게 되어있지만 전체 인구의 대부분이 프로이센이라는 것을 생각하면 북독일 연방에서 프로이센의 위치를 쉽게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10] 인구는 상당한 수준이어서 이미 주변 국가와 인구가 크게 다르지 않을 정도였다. 연방의 의장은 프로이센의 국왕으로 군 통수권과 법률 선포권, 연방 수상임명권을 가지게 된다. 법률에 관해선 모든 연방법률의 위에는 북독일 헌법이 있으며 입법권은 연방 가맹국의 대표인 참의원과 보통, 평등선거로 선출된 의회가 행사한다. 제도상으로는 이렇고, 실제 정치 상황에 대해서는 한 마디로 정리할 수 있다. '보수세력과 비스마르크의 독주.' 프로이센-오스트리아 전쟁이 프로이센의 승리로 끝난 것은 비스마르크의 외교정책이 성공한 것과 같았다. 위상이 올라가면서 많은 자유주의자들이 현실과 타협하였다. 이는 전쟁 직후 치뤄진 선거의 결과가 대변한다. 전체 의석중 진보당의 의석이 247석에서 148석으로 100석 가까이 줄어든 것이다. 이처럼 북독일 연방의 정치는 비스마르크의 의도에 따라 흘러갔다고 말해도 부족함이 없을 정도다.[11]
헌법은 4년 뒤 선포되는 독일제국의 헌법과 대동소이 하다. 실제론 북독일 연방에 속해있지 않던 남부 독일 4개국이 가입하고 이들의 일부 권리[12] 가 보장되었을 뿐이었다. 법률상으론 프로이센과 듣보잡 소국의 주권은 동등했다.
3.2. 영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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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에서 붉은 부분이 북독일연방이다. 그 아랫지방은 독일제국 성립으로 추가된 영역으로 주황색 부분은 남독일 4개국[13] 이며 연홍색 부분은 프랑스에서 탈환한 엘자스-로트링겐이다. 주황색 영역에 콕 박힌 붉은 부분은 프로이센 왕실인 호엔촐레른 왕가의 선산 격인 호엔촐레른 지역.[14] 영토의 대부분을 프로이센 왕국이 차지하고 있으며 그외 가맹국의 영토는 일부였다. 이러한 독일-프로이센의 이중구조는 독일 제국, 바이마르 공화국, 나치 집권기까지 계속된다.
북독일 연방 가맹국들은 다음과 같다.
- 프로이센 왕국
- 작센 왕국
- 헤센 대공국 (북부지역만)
- 메클렌부르크슈베린 대공국
- 메클렌부르크슈트렐리츠 대공국
- 올덴부르크 대공국
- 작센바이마르아이제나흐 대공국
- 안할트 공국
- 브라운슈바이크 공국
- 작센코부르크고타 공국
- 작센알텐부르크 공국
- 작센마이닝겐 공국
- 리페 공국
- 샤움부르크리페 공국
- 발데크피르몬트 공국
- 로이스게라 공국
- 로이스그라이츠 공국
- 슈바르츠부르크루돌슈타트 공국
- 슈바르츠부르크존더샤우젠 공국
- 함부르크 제국도시
- 브레멘 제국도시
- 뤼베크 제국도시
4. 인물
왼쪽 연도는 의장으로서 재임기간, 오른쪽 연도는 생몰년이다.
4.1. 역대 의장
빌헬름 1세 1866~1871 1791~1888
4.2. 역대 수상
오토 폰 비스마르크 1866~1871 1815~1898
5. 위상
설립된지 5년만에 바로 해체되고 독일 제국이 성립됐기 때문에 역사학계나 대중문화에서의 위상은 높다고 쳐주기엔 어려움이 많다. 매체에서 다루는 북독일 연방의 모습이다.
- 얼마전까지만 해도 교육과정엔 북독일 연방에 대한 언급이 전혀 없었고, 그냥 프로이센이 오스트리아와 프랑스를 격파하고 독일 제국을 성립시켰는 내용 정도만 나왔다. 그러나 2017년 기준 수능 사탐 세계사에서 언급된다. 연도까지. 관세 동맹(1834) > 프로이센-오스트리아 전쟁(1866) > 북독일 연방(1866) > 프로이센-프랑스 전쟁(1870-71) > 파리 코뮌 수립(1871) > 독일 제2제국 수립(1871) 이런 식으로 외워야 한다.
- 의외로 조선과의 인연(?)이 있다. 오페르트 도굴사건이 바로 북독일 연방이 있었던 시기에 일어난 것.
- 대중문화에선 드물게 패러독스 인터렉티브사의 빅토리아 2에서 프로이센의 디시전으로 등장한다.북독일 전역이 프로이센의 스피어(영향권)이거나 영토일 때만 발동 가능하며 발동하면 북독일 전역이 북독일 연방으로 통합된다. 일반적으로 독일 제국 선포를 위한 과정으로 여겨지나 독일 제국 선포의 조건인 남독일을 스피어에 두기가 힘들다거나[15] 북독일 연방의 국기가 멋지다는 이유로 독일 제국 선포를 하지 않고 북독일 연방으로 남는 경우가 가끔 있다.
[1] 각 색상의 의미는 프로이센의 검은색과 한자동맹 자유시(함부르크, 브레멘, 뤼베크)의 붉은색, 그리고 그 둘이 공유하는 흰색으로 북독일 연방의 주도권을 누가 쥐고 있었는지가 명확해진다. 후신인 독일 제국에서도 별다른 변경 없이 이 깃발을 그대로 사용한다.[2] 독일 통일의 근거라고 할 수 있는 게르만족의 민족주의를 확인할 수 있다.[3] 붉은색 부분. 남부지방에 있는 붉은색은 프로이센 호엔촐레른 왕가의 선산인 호엔촐레른 지역이다.[4] 분데스프레지디움(Bundespräsidium). 프로이센 국왕이 북독일 연방의 의장직을 겸했다.[5] 연방 구성국의 군 통수권, 외교권을 인정하고 있었다. 심지어 프로이센이 관세동맹을 창설하기 이전까지는 연방 가맹국이 무역을 할 때 관세까지 적용되었다. 따라서 19세기 유럽 정세를 논할 때 독일 연방을 단일 국가로 치는 경우는 거의 없다.[6] 홀슈타인의 공작으로서[7] 룩셈부르크의 대공과 림부르크 공국의 공작으로서[8] 다만 그 권역들은 독일어가 사용되는 곳이긴했다.[9] 헤센 대공국(남부 지역), 바덴 대공국, 바이에른 왕국, 뷔르템베르크 왕국[10] 소비에트 연방에서 러시아, 영국에서 잉글랜드의 위치와도 비슷하거나 오히려 더 압도적이었다. 인구의 80%를 프로이센이 차지했으니까.[11] 비스마르크는 세금을 내는 부르주아는 당연히 무시했고, 군부와 융커들의 이해관계조차 무시했다.[12] 바이에른에 교황청 대사 파견 권한과 일부 관세권 우표 발행권 등 자잘한 권리를 보장했고 역시 뷔르템베르크 왕국과 바이에른 왕국에 '''평시''' 군 지휘권과 군 부대 명명권을 하사하는 특권을 준 정도[13] 뷔르템베르크 왕국, 바이에른 왕국, 바덴 대공국, 헤센 대공국 중 북독일 연방에 가입하지 않은 남부영토[14] 원래는 같은 호엔촐레른 계통의 '호엔촐레른지크마링겐', '호엔촐레른헤칭겐' 공국이 있었으나, 1850년 프로이센 왕가에 영토를 양보하였다.[15] 남독일 국가들은 북독일과 달리 오스트리아의 스피어기 때문에 역사대로 전쟁을 치루지 않고는 막대한 자금과 시간을 들여여만 스피어로 간신히 둘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