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을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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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장을병(張乙炳, 1933년 12월 14일 ~ 2009년 7월 5일) 은 대한민국의 전 교육자, 정치인이다. 호는 옥원(沃原)이다.
2. 생애
1933년 강원도 삼척군 원덕면(현 삼척시 원덕읍)에서 태어났다. 삼척호산초등학교, 삼척중학교, 삼척공업고등학교(현 강원대학교 삼척캠퍼스), 성균관대학교 정치학과, 동 대학교 대학원 정치학 석사 및 박사 과정을 졸업하였다.
모교인 성균관대학교 정치학과에서 교수를 역임하였다. 1980년 서울의 봄 당시 계엄에 저항했다는 이유로 전두환의 신군부에 의해 중앙정보부에서 심하게 고문 받고, 강제 해직됐다. 1984년 성균관대에 복직해 복직교수협의회 공동대표, 대학교권수호 특별위원장 등을 지내며 민주화운동에 헌신해오다 1991년부터 1995년까지 성균관대학교 총장을 지냈다.
1995년 제1회 전국동시지방선거 직후 개혁신당을 창당하였다가 곧바로 민주당과 합당하여 통합민주당 창당시 홍성우 변호사와 공동대표를 역임하였다.
1996년 제15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통합민주당 후보로 강원도 삼척시 선거구에 출마하여 성균관대학교 교수 시절 제자였던 현역 국회의원 자유민주연합 김정남 후보를 꺾고 당선되었다. 1997년 제15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통합민주당을 탈당하여 국민신당에 입당하였고 최고위원을 역임하였다. 1998년 국민신당이 새정치국민회의에 흡수되자 새정치국민회의 부총재에 임명되었다.
2000년 제16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새천년민주당 후보로 강원도 동해시-삼척시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한나라당 최연희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2001년 한국정신문화연구원(현 한국학중앙연구원) 원장에 임명되었다.
이후 만년에 자신의 모교이자 총장으로 재직했던 성균관대 정치외교학과의 명예교수로서 강의를 이어갔는데, 건강이 나빠지면서 중단하였다. 2009년 7월, 76세를 일기로 별세했다.
3. 기타등등
오늘날 삼성을 성균관대학교의 재단으로 영입해 학교의 성장, 발전을 위한 바탕을 마련한 공로자다 . 이러한 업적을 이룰 수 있었던 배경으로는 뛰어난 리더쉽을 들 수 있는데, 성균관대학교 총장이 되었을 당시, 제 1대 직선제로 뽑힌 총장이기도 하다. 즉, 교수진들 사이에서 투표를하여 총장으로 당선 되었다는 이야기다. 이러한 리더쉽을 바탕으로 당시 재계, 정치계 인맥이 굉장히 폭 넓었는데, 성균관대학교 총장으로 재직중일 당시 원래 재단이었던 봉명재단이 나간 후, 심각한 재정난에 시달렸을 때 오랜 고심 끝에 결국 삼성 이건희 회장의 비서실장에게 연락을 취하여 성균관대학교에 재단으로 들어올 것을 이야기를 하게 되었고, 삼성은 의대가 없는 대학은 발전할 수 없다고 말하며 성균관대학교가 정부로부터 의대 설립 인가를 받으면 들어오겠다고 하였다. 이후, 장을병 총장은 청와대로 가 김영삼 대통령과 이야기 끝에 김영삼 대통령이 임기 말에 허가를 해주겠다고 하였고(자서전을 보니 당시 교육부의 눈치를 보았다고 하였는데, 정치적인 이유가 있던 것 같다.) 이후 1996년에 교육부가 이를 승인해주어 의대가 설립되고, 삼성이 재단으로 들어오게 되었다.
그의 제자 중에는 역시 모교인 성균관대 정치외교학과에서 활동한 김일영 교수도 있었는데, 장을병이 그의 박사논문 지도 교수였다. 김 교수는 장을병이 타계한 지 불과 수개월 후인 같은 해 11월에 지병인 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4. 칼럼
1997년 9월 26일 동아일보 <원칙이 사라진 정치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