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신당(대한민국)
[clearfix]
1. 개요
1997년부터 1998년까지 존속했던 대한민국의 정당으로, 1997년 이인제 당시 경기도지사가 신한국당을 탈당하여 제15대 대통령 선거 출마를 위해 1997년 10월 10일 창당하였다.
중앙당사는 초기에 서울특별시 영등포구 여의도동 안원빌딩 3, 5, 9층, 장덕빌딩 8층[2] , 남중빌딩 8층[3] 등 3곳을 쓰다가 이후 구 신한국당이 쓰던 극동VIP빌딩으로 이사갔다. 해산 후 당사 사무실은 새정치국민회의로 넘겨져 정책위원회 사무실이 됐다.
2. 상세
이인제 경기도지사는 신한국당의 대통령 후보 경선에서 높은 지지여론에도 불구하고 경선 결선에서 패배한 후, 경선에서 승리한 이회창 후보가 아들 병역문제 의혹을 계기로 지지가 급격히 떨어지자 국민신당을 창당하고 독자출마를 선언했다. 신한국당의 서석재, 황명수 등을 포함한 민주계[4] 일부와 박범진 등 민정계 일부 정치인들이 입당하였다. 창당하면서 이만섭 전 국회의장을 총재, 이인제를 대통령 후보로 뽑았다.
당명을 PC통신 등을 통하여 공모하였다. 공모된 이름은 '새시대국민연합', '참여민주당', '국민참여당' 등의 이름이 있었지만 모두 진부하거나 당시 김대중이 총재로 있던 정당인 새정치국민회의와 유사하다고 판단하여 '국민정당'과 '21세기 국민연합'을 놓고 결정하기로 하였다. 그런데 결정된 건 국민신당. 일본에서 한때 돌풍을 일으켰던 일본신당에서 힌트를 얻은듯 하다.[5]
창당 시점에는 한때 지지도에서 이회창 후보를 앞지르고, 김대중 후보를 바짝 추격할 정도로 기세를 올리기도 했다. 그러나 얼마 안 되어 창당 과정에 김영삼 당시 대통령과 측근들의 지지가 있었다는 의혹이 이회창, 김대중 모두로부터 제기되었고, 그 해 초 국정 비리로 구속되었던 김현철까지 거론되기에 이르렀다. 그 결과 국민신당과 이인제 후보의 지지율은 허무하게 떨어지기 시작했고, 결국 제15대 대통령 선거에서 이인제는 김대중(새정치국민회의), 이회창(한나라당)에 이어 3위(492만표, 19.2%)로 낙선하였다. 1998년 6월 4일 제2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도 DJP연합 대 한나라당의 구도 속에 전일순 후보가 충청남도 논산시장에 당선되는 데 그쳤다.[6] 그리고 그 해 7월의 국회의원 보궐선거에서는 1명의 당선자도 배출하지 못했다.
결국 1998년 9월 28일 이만섭 총재[7] 와 이인제 전 대통령 후보를 비롯한 6명의 소속 국회의원[8] 과 전일순 논산시장 등 이인제계와 대다수 당원은 새정치국민회의에 합류하고, 김학원 의원, 송광호 전 의원은 탈당 후 자유민주연합에 입당했으며 한이헌 의원은 탈당 후 무소속으로 남으면서 소멸되었다.[9] 이들 중 원유철 등 대부분은 그 후 다시 친정인 한나라당에 재입당하였고[10] , 이인제도 여러 차례의 당적 변경 끝에 2012년 새누리당으로 돌아왔다.
사실상 피닉제 전설의 시작. 국민신당을 창당하기 전의 이인제는 박정희 전 대통령을 빼닮은 외모로 중장년층에서의 인기가 높았으며 노동부장관을 지내며 쌓은 소신있고 능력있는 이미지로 젊은 층에서도 환영받았다. 하지만 실제 대선에서는 중장년층 지지율이 이회창으로 쏠리면서 선거를 말아먹기는 했지만 젊은층 사이에서 지지는 남아있었기 때문에 19%라는 득표율을 올렸던 것이었다. 요새 이미지와는 천지차이.
3. 역대 지도부
4. 역대 선거 결과
- 1997년 제15대 대통령 선거 이인제 득표율 19.2% 낙선(3위)
5. 관련 문서
[1] 자민련 합류파를 제외한 당원들 전체가 무소속을 거치지 않고 해체와 동시에 자동적으로 새정치국민회의 소속이 되는 등, 실질적으로 흡수 합당에 가까운 방식이었다. 실제로 몇몇 기사에는 흡수 합당이라고 보도되었다.[2] 現 더불어민주당 중앙당사.[3] 이후 해당 건물 8층은 게임회사인 메가엔터프라이즈가 입주했고 친박연대 중앙당사가 위치했었으며 이후에는 새누리당 서울시당이 위치했다. 2020년에는 국민의힘이 해당 건물을 통째로 매입하여 중앙당사로 삼았다.[4] 1990년 민주정의당, 통일민주당, 신민주공화당이 민주자유당으로 통합되고 나서의 구 통일민주당 출신 정치인을 말한다.[5] 한때 'XX신당' 류의 이름이 여러 곳에서 쓰였다. 자유민주연합을 탈당한 김용환 의원이 세운 희망의한국신당이라든지.[6] 잘 알려져 있다시피 논산시는 이인제의 고향으로, 그의 4선(전체경력은 6선) 텃밭이었다. 그나마도 전일순은 2000년 선거법 위반으로 당선 무효형.[7] 이후 차기 국회에서 국회의장을 다시 한 번 역임하였다.[8] 김운환, 박범진, 서석재, 원유철, 이용삼, 장을병.[9] 그나마도 한이헌은 이후 새천년민주당에 입당해 부산시장 선거에 출마한다.[10] 민주당에 그대로 눌러앉은 일부 인사로는 홍재형, 이용삼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