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균관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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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or=#fff> 성균관대학교
成均館大學校
SUNGKYUNKWAN UNIVERSITY
[image]
<colbgcolor=#8dc63f><colcolor=#fff> 교시
<colbgcolor=#fff>인의예지(仁義禮智)
건학이념
수기치인(修己治人)
상징
<colbgcolor=#8dc63f><colcolor=#fff> 교목
은행나무
교색
오렌지
슬로건
[image]
국가
[image] 대한민국
분류
[image] 사립대학
개교
1398년 7월 성균관
1946년 9월 25일 성균관대학
1953년 2월 6일 성균관대학교
설립자
태조 이성계[1]
김창숙[2]
총장
제21대 신동렬
이사장
제13대 김준영
주소
인문사회
서울특별시 종로구 성균관로 25-2 (명륜3가)
자연과학
경기도 수원시 장안구 서부로 2066 (천천동)
조직
교육기구
단과대학 17개
일반대학원 1개
특수대학원 15개
전문대학원 7개
연구기관
연구원/연구소 88개
국가지원연구센터 27개
재학생
학부생
19,310명(2020년)[3]
대학원생
7,790명(2020년)[4]
전체교원
3,475명(2020년)
대학혁신지원사업
A등급(2020)
링크
성균관대학교 공식 홈페이지
성균관대학교 학술정보관
[ 지도 펼치기 ]

인문사회과학캠퍼스

자연과학캠퍼스

成人材之未就

성인재지미취

인재로서 성취되지 못한 것을 완성되게 하고

均風俗之不齊

균풍속지부제

풍속으로써 가지런하지 못한 것을 고르게 한다

1. 개요
2. 상징
4. 대학평가
11. 이야깃거리
12. 행사
12.1. 대동제 ESKARA
15. 주변 교통편
15.1. 인문사회과학캠퍼스
15.2. 자연과학캠퍼스
17. 여담
19. 외부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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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성균관대학교 인문사회과학캠퍼스 전경
성균관대학교 자연과학캠퍼스 삼성학술정보관

성균관대학교 소개영상 (2019)

오래된 새로움의 가치

한국 지성 600년, 민족교육의 산실

대한민국 서울특별시 종로구 명륜3가[5] 및 경기도 수원시 장안구 천천동[6] 소재의 4년제 사립대학교.
1398년[7] 개성에서 한성부 숭교방으로 성균관이 이전되었고, 기존의 개성 성균관향교로 격하되었다. 1895년 갑오개혁 이래 성균관에 경학과[8]가 설치되었으며 근대적 제도 개혁[9]이 이루어졌다. 그러나 경술국치 이후 성균관은 경학원(經學院)으로 개칭되었으며 근대적 대학 교육의 기능도 중단되었다. 이후 유림들에 의한 성균관 교육기능의 회복 움직임[10]의 영향으로 부설된 교육기관인 명륜전문학교[11] 마저도 태평양 전쟁으로 인해 1943년 폐교되었다.
비로소 광복 후 군정법령[12]에 의해 명칭이 성균관으로 회복되었고, 명륜전문학교가 부활하였다. 이후 전국유림대회를 통해 유림 천여 명은 성균관대학의 설치를 결의하였고, 이어서 성균관대학 기성회가 조직되었다. 이로써 심산 김창숙 선생의 주도 하에 명륜전문학교와 학린사[13]가 통합되어 재단법인 성균관대학이 설립되었다. 성균관대학은 1946년 문교부의 인가를 받았고, 캠퍼스는 전묘후학[14]의 원칙에 따라 옛 성균관의 뒤편에 자리잡게 되었다. 1953년 종합대학으로 개편되었으며, 1981년 자연계열 학과가 새롭게 조성된 수원시자연과학캠퍼스로 이설되었다. 이는 성공적인 이원화 캠퍼스 체제로 굳어져 현재에 이르고 있다.
옛 성균관의 부지 전체는 1964년 사적 제143호로, 건물 5동[15]은 앞선 1963년 보물 제141호로 지정되어 현재 국가가 소유하고 있다. 과거 이와 성균관대학교를 하나의 법인이 관리하였으나, 1963년 사립학교법이 시행된 이후 '재단법인 성균관[16]'과 '학교법인 성균관대학'으로 분리되어 각각 종교와 대학 교육의 기능을 전담하게 되었다. 법적으로는 분리되었지만 활발한 인적 교류[17]를 이어가며 깊은 상호 관계를 맺고 있다.

2. 상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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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wcolor=#fff> Old UI
New UI
성균관대학교의 상징물은 은행(잎과 나무)으로, 은행나무는 교목이며 은행잎은 로고에서 찾아볼 수 있다.[18] 공자가 행단 아래에서 제자들을 가르쳤기 때문에 은행은 유교적 상징성을 지니게 되었다. 그 영향으로 학교의 이곳저곳에서 은행을 접할 수 있다. 성균관 명륜당 앞에는 물론이고, 학교 정문에서 올라가는 도로 양옆으로 은행나무가 줄지어 심어져 있다. 성균관대의 구호는 '킹고 킹고 에스카라[19] 킹고'인데, '킹고(Kingo)'는 은행[20]에서 유래한다. 이 밖에도 각종 온라인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는 킹고포털, 모바일 포털앱 KINGO-M, 법학전문대학원/일반 여학생 대상 기숙사인 K-하우스(킹고하우스) 등 이름에 '킹고'가 붙은 것이 많다. 또한 인사캠 600주년기념관 학생식당의 이름은 '은행골'이고, 자과캠 학생회관 학생식당의 이름은 '행단골'이다. 여러모로 은행과 관련이 깊은 네이밍을 이곳저곳에서 접할 수 있다.
<color=#fff> 성균관 명륜당
성균관대학교의 설립 과정에서 알 수 있듯이, 조선의 최고학부였던 성균관은 서울 인사캠 정문 바로 안쪽 우측에 붙어있다.[21] 성균관대의 로고에서는 'Sungkyunkwan'의 첫 글자인 S를 찾아볼 수 있다. 성균관대 학생은 입학식과 졸업식 행사의 일부로써 문묘의 대성전 앞에서 고유례(告由禮)를 올리며, 성균관과 문묘 부지에서 연중 자유롭게 산책을 즐길 수도 있다. 또한 통학 시 명륜당 앞뜰을 지름길 삼아 다닐 수도 있다.[22]

3. 역사




4. 대학평가


  • 2021 THE 세계 대학 랭킹 - 101위 (국내 3위)[23] 링크
  • 2020 THE 세계 대학 랭킹 - 89위 (국내 2위)[24] 링크
  • 2019 THE 세계 대학 랭킹 - 82위 (국내 2위)[25] 링크
  • 2021 QS 세계 대학 랭킹 - 85위 (국내 6위) [26]
  • 2020 QS 세계 대학 랭킹 - 95위 (국내 5위)[27] 링크
  • 2019 THE 아시아-태평양 대학 랭킹 - 14위 (국내 2위)[28] 링크
  • 2019 THE 아시아 대학 랭킹 - 10위 (국내 2위)[29] 링크
  • 2019 QS 아시아 대학 랭킹 - 15위 (국내 4위)[30] 링크
  • 2018 Reuters 세계 최고 혁신대학 순위 39위 (국내 4위)[31] 링크
  • 2018 Reuters 아시아 최고 혁신대학 순위 8위 (국내 4위)[32] 링크
  • 2021 U.S. News & World Report 세계대학 랭킹 - 205위 (국내 2위)[33] 링크
  • 2020 U.S. News & World Report 세계대학 랭킹 - 195위 (국내 2위)[34] 링크
  • 2019 U.S. News & World Report 세계대학 랭킹 - 188위 (국내 2위)[35] 링크
  • 2018 CWUR 세계 대학 랭킹 - 218위 (국내 3위)[36] 링크
  • 2018 ARWU 세계 대학 학술 랭킹 - 151-200위 (국내 2위)[37] 링크
  • 2019 THE 세계의과대학 랭킹 - 41위 (국내 1위) 링크
  • 2018 한경 이공계 대학 평가 랭킹 - 2위[38] 링크
  • 2018 중앙일보 대학평가 종합대학 순위 - 2위[39] 링크

5. 학부대학원





6. 총학생회




7. 학생문화




8. 캠퍼스





9. 기숙사




10. 학사제도




11. 이야깃거리



11.1. 유교(儒敎), 유학(儒學)


  • 대한민국에서 유일하게 공자탄신일에 쉬는 학교다.[41] 명칭은 공부자탄강일(孔夫子誕降日). 가을의 개교기념일과 엇비슷한 날에 있기 때문에 공휴일이 전무한 가을철의 꽃. 당연히 다른 곳에서는 쉬지 않기 때문에 한때는 이 날 오전에 롯데월드를 가면 성대 학우들이 넘쳐나기도 했다. 그러니까 유교, 불교, 기독교의 3대 성인을 모두 기리는 글로벌함을 자랑하는 것.
    • 공부자탄강일은 매년 양력 9월 28일, 건학기념일은 매년 양력 9월 25일에 지낸다. 딱 3일 차이나기 때문에 추석, 개천절과 합쳐지면 연휴 콤보가 되기도 한다! 2012년에는 자체휴강까지 포함하여 9~10월에 2주 간의 임시 가을방학이 생겼다.[40]
    • 그런데 2017년, 9월 25일 월요일이 건학기념일이라 공휴일과 겹치지 않는 것을 시작으로 9월 28일 목요일이 공부자탄강일이었다. 29일 금요일 이후 주말과 10월 2일 월요일, 그리고 7일간의 황금연휴가 있었는데 10월 2일이 임시공휴일로 유력했던 상황이라 금요일을 공강으로 만들 경우 2012년을 뛰어넘는 말도 안되는 리얼 2주 연휴가 생기게 생겼다. 학교도 이 문제(?)를 인식하여 2학기 개강날을 유례없이 8월 28일로 잡아놨다(...).
    • 2020년은 공부자탄강일과 추석이 있는 9월 다섯 번째 주와 10월 첫째 주를 아예 수업 주차에서 빼버렸다.
  • 이원화되어있는 캠퍼스 특성상, 입학식은 자과캠에서 하고 졸업식은 인사캠에서 하게 되는데, 졸업식 때 학/석사 대표들과 박사 학위수여자 등이 모여서 무려 성균관 대성전에서 고유례를 지낸다. 고유례는 조선 성균관 시절부터 학교의 입학, 졸업, 건물 준공 등 큰 행사가 있을 때마다 공자의 신위를 모신 대성전에 입신(立身)을 알리며 향을 올리고 축문을 고하는 의례다.
  • 졸업하기 위해 필수적으로 들어야 하는 과목영역 중에 성균인성-인성 영역이 존재하는데, 현재 이 영역에 속하는 과목은 인성고전과 성균논어다. 그런데 2016년 1학기 기준으로 보면, 성균논어 개설 분반 수는 15개 남짓 되는 반면, 인성고전은 자과캠 1개, 인사캠 2개라는 안습한 수준.[42] 즉, 어쩔 수 없이라도 성균논어를 듣는 사람들이 많다는 이야기. 이외에도 졸업과는 무관하지만 유교(儒敎)나 유학(儒學)에 관련된 교양수업들이 개설되어있어, 전공과 관련없이 다도나 차례 등을 견식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대학 중 하나이다. 학부대학이 아닌 유학대학원 수준에서 운영하는 민간대상 유학 수업들과도 연계가 잘 되어있어서, 드물게 유학 공부를 하고 싶어하는 학생들에게는 굉장히 매력적인 학교로 볼 수 있다.
  • 대한민국에서 동양학 분야의 전임교수가 가장 많은 대학이다. 성균관대학교의 '유학·동양학과'에는 전임교수가 10명이며, 동양학 분야로는 전임교수가 가장 많다. 성균관대학교 '동아시아학술원'에도 20명이 넘는 연구교수 및 상근 연구원이 연구를 수행하고 있다. 동아시아학술원은 A&HCI에 등재된 SJEAS라는 학술지도 발행하고 있다.
  • 2013년에 유교방송이 개국되었다! 정식 명칭은 '성균관 유교방송' 이며, 사장 취임식과 같은 중요 행사들을 인사캠의 600주년 기념관에서 치루는 등 성균관대학교와의 관련도는 높은 편.[43]

12. 행사



12.1. 대동제 ESKARA


5월에 진행되는 성균관대학교의 대표적인 행사로, 인문사회과학캠퍼스와 자연과학캠퍼스 두곳으로 나누어 진행한다. 한 주를 인문사회과학캠퍼스에서 진행하고 다음주에 자연과학캠퍼스에서 진행하는 방식.

12.2. 고하노라



성균관대학교 고하노라 소개 영상 (2018)

최고(最古)의 역사, 최고(最高)의 축제

성균관대학교 유생문화동아리 청랑이 주최하고 학교가 지원하는 형태의 축제. 성균관대학교의 문화적 자산인 유소를 학생들이 즐길 수 있는 퍼레이드 형태로 재현한 행사이다. 크게 두 파트로 나눌 수 있다. 우선, 1부에서는 성균관에서 왕에게 상소를 올리는 전통을 재현한 뒤 서울 종로를 유생 복장을 한 채로 퍼레이드를 진행한다. 이후 2부에는 광화문 광장에서 사전에 진행된 상소 공모전을 통해 선정된 상소의 답을 듣고[44], 플래시몹을 하는 형태이다.

13. 언론 및 커뮤니티




14. 학내 동아리




15. 주변 교통편



15.1. 인문사회과학캠퍼스


  • 1호선 종각역 : 공평 또는 YMCA 정류장에서 종로 02로 환승[45], 종점 하차
  • 1호선, 3호선, 5호선 종로3가역 : 금강제화 정류장에서 종로 02로 환승, 종점 하차
  • 1호선 종로5가역 : 3번 출구에서 종로 08로 환승
  • 3호선 안국역 : 2번 출구에서 종로 02로 환승[46], 종점 하차
  • 3호선 종로3가역 : 금강제화 정류장에서 종로 02로 환승, 종점 하차
  • 4호선 혜화역 : 1번 출구에서 성균관대학교 셔틀버스 승차 또는 1번이나 2번 출구에서 종로 08이나 종로 07 승차 후 명륜시장 성대입구 정류장에서 하차
  • 5호선 종로3가역 : 금강제화 정류장에서 종로 02로 환승, 종점 하차
  • 종로 02 : 성균관대(후문)[47] 정류장에서 하차
  • 종로 08 : 명륜시장, 성대후문 정류장에서 하차
  • 종로 07 : 성대입구 혹은 성균관대학교 정류장에서 하차

15.2. 자연과학캠퍼스


  • 1호선 성균관대역 : 2번 출구 도보 5~7분[48]
  • 2호선, 4호선 사당역 : 4번출구 방향 홈플러스 앞 정류장에서 셔틀버스 탑승 혹은 4번출구에서 아래의 좌석버스로 환승
  • 7800 : 사당역 4번출구에서 탑승 후 성균관대학교 정류장에서 하차. 서울에서 출발하는 제일 빠른 루트다.

16. 출신 인물




17. 여담


  • 대한민국 지폐를 패러디한 짤방이 나름대로 유명하다. 단, 퇴계 이황은 성균관 대사성, 즉 오늘날의 성균관대학교 총장을 지냈기 때문에 단순히 교수님 정도가 아니라 '성균관대 총장님'이 더 어울릴 법하다. 매우 적절하게도 천 원권 지폐 앞면의 건물은 성균관 명륜당이다.
  • 인문사회과학캠퍼스를 기준으로 할 때, 캠퍼스가 수도 서울특별시의 도심부에 위치하고 있기 때문에 입지가 정말 훌륭하다. 과거 성균관의 입지 자체가 좋으니 당연한 결과일 것이다.[49] 조선왕조왕궁이자 대한제국황궁이었던 창경궁, 창덕궁 등과 접하고 있으며, 북악산 위에 캠퍼스가 걸쳐 있기 때문에 학교 정상부(법학관, 수선관 등)에 가면 굳이 남산 서울타워 전망대 같은 곳에 가지 않아도[50] 탁 트인 서울의 경치나 야경을 즐길 수 있다. 후문 쪽으로 나가서 등산로를 따라 계속 올라가면 말바위 전망대나 북악 스카이웨이에 도달할 수 있는데, 경복궁 등을 조망할 수 있다. 현재의 대학로 역시 과거 성균관 유생들이 성균관을 빠져나와 휴가를 즐기던 반촌 터에 조성된 상권이므로, 인근에 위치하고 있다. 대학로는 현재도 과거 성균관 인근의 반촌과 같은 기능을 수행하고 있다. 또한 서울의 대표적 관광지인 북촌, 인사동, 삼청동 등도 곧장 걸어서 갈 수 있을 정도로 가깝다.[51]
  • 과거 창덕궁창경궁을 학교에서 넘나들 수 있었다고 한다. 지금은 엄격히 통제되어 관람 가능한 창덕궁 후원도 마음대로 다녔다고 한다. 그래서 학생들이 밤에 궁궐에 들어가 달빛을 즐기며 술을 마시곤 했다고 한다. 물론 옛날 이야기이다. 현재에는 높은 담벽이 궁궐과 캠퍼스를 갈라놓고 있다. 법학관 앞 대운동장 정면에서 바라볼 수 있는 나무 숲은 창덕궁의 후원이다.
  • 2016년 영국 THE에서 선정한 400년 이상 역사를 가진 대학 TOP 25에 아시아 대학으로는 유일하게 선정되었다. 출처
  • 90년대까지 성균관대학교에는 '신입생이 해야 할 세 가지'가 있었다고 한다.
>첫번째는 교문부터 후문까지 중앙선 밟고 걸어보기.
>두번째는 금잔디 소라껍데기 뛰어올라가기.
>세번째는 은행나무 위에서 하룻밤 자기.
  • 첫번째의 이유는, 원래 성균관대학교의 중앙 도로는 그냥 공용도로였다고 한다.[52] 그래서 90년대 중반까지 시내버스가 이 길을 그냥 다녔는데[53] '이 도로는 우리 학교 땅이다'라는 의미에서 학생들이 일종의 땅밟기를 한것.
  • 두번째는, 원래 금잔디광장에는 조개탑이라 불리는 노천무대가 있었다[54]고 한다. 지금의 노천극장 따윈 당연히 없던 시절. 90년대까지 수많은 민중집회나 학내 행사가 이곳에서 열렸는데, 학생의 패기를 시험한다는 의미에서 조개탑을 뛰어올라가는 시합을 했다고 한다. 일설에는 손대지 않고 한 번에 조개탑을 뛰어올라가는 사람은 총학생회장이 된다는 전설이(...). 그러나 진짜로 꼭대기까지 도달한 사람은 아무도 없다고 한다.
  • 세번째는, 성균관 안에 엄청 큰 은행나무가 두 그루 있는데, 거길 올라가 보면 의외로 평평해서 사람들이 누울 수 있는 공간이 있다고 한다. 일종의 담력 테스트로 거기서 하룻밤 자는 것도 있었다고 한다.
  • 졸업 전까지 한 번쯤은 비원으로 월담해 들어가보기라는 업적 퀘스트도 있었다고 전해진다. 이는 아마도 로스쿨 시행 이전 시기의 이야기일 것으로 추정된다(지금 거기 담 높이를 보면...).
  • 서울대학교, 서강대학교와 함께 축제가 재미없기로 소문난 3S대의 한 축이다. 그러던 2016년, IOI 등이 오면서 좀 재밌어지나 했는데 17년 다시 재미 없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실제로 2017년 라인업은 괜찮았다! 인사캠에 에픽하이, 다이나믹 듀오, 볼빨간 사춘기 등이 왔고, 자과캠에 혁오, 신현희와 김루트 등이 왔으니 말이다. 본래 연대의 아카라카, 고대의 입실렌티처럼 에스카라라는 축제 고유명칭이 있었지만 17년 인사캠 총학이 축제이름을 '성대결절'로 바꾸면서 많은 비판을 받고 있다. 하지만 2019년에서는 전설의 그분이 등장한다!
  • 동아리가 약 500여개정도 존재한다.
  • 스포츠 프로그램에서 준수한 성적을 내고 있다.[55] 특히 배구에서는 한양대학교와 함께 양대산맥을 형성하고 있으며, 야구에서도 이연수 감독의 지도 하에 프로 선수들을 꾸준히 배출하면서 준수한 성적을 기록하고 있는 중. 또한 미식축구부는 1957년 결성된 국내 최초의 대학 미식축구팀이며, 2012년에는 동문들이 미식축구 장학회를 만들기도 했다. 이 밖에도 학내에서 아마추어 야구, 축구, 농구, 아이스하키부 활동이 활발한 편. 그러나 2000년대 들어서 성대 스포츠단 축구부와 농구부는 설기현, 김상준 등이 지도자로 오며 분위기가 막장화되어 가고 있는 중이다(...).
  • 서울 2033에도 나오는데, 성균관대학교 학생이 제작하였기 때문에 근처 주점 이름을 패러디 하는 등 묘사가 매우 상세하다.
  • 인사캠 교정에는 청룡 두 마리가 똬리를 튼 청룡상이 자리 잡고 있는데, 과거에 청룡에서 모티브를 딴 마스코트 '킹고'가 있었던 것과 관계가 있는 것으로 추측된다. 2000년대 중반까지 같이 자취하는 룸메이트끼리 방열쇠를 주고받기 어려울 때 이 청룡상의 청룡 입속에 열쇠를 넣어놓고 찾아가는 일이 종종 있었다고 한다. 이 청룡상은 현재 비천당 위치에 있던 청룡 분수에 자리 잡고 있었으나, 비천당이 복원되면서 현재의 위치로 옮겨졌고 분수의 기능은 사라졌다.
<color=#fff> 청룡상
  • 고대의 원만이형, 이대의 베토벤아저씨처럼 성대에도 기인들이 두 명 존재하고 있었다. 하나는 코트선배라고 사시사철 바바리코트를 걸치고 다니면서 청룡상 근처에서 술을 먹는 학생들에게 다가가 말을 거는 사람이었는데, 그 화제가 우주와도 같이 광활하고 복잡해서 듣다 보면 이야기에 빠져드는 일이 잦았다고 한다. 그리고 술을 한두 잔 얻어마신 뒤에 그는 학교 밖으로 사라지곤 했다고 한다. 또 하나의 기인은 언론에 보도된 적도 있는 악수맨이다. 성대 앞에서 넝마주이를 하는 사람인데, 역시 학생들이 학교 잔디밭에서 술을 먹고 있으면 술 한 잔 달라고 한뒤, "나 성대 선배인데~"라며 사칭하고 다니면서 노래도 가끔 한 곡조 뽑고 사라지는 분이었다고 한다. 정신적으로 불안정한 분이긴 한 것 같은데, 딱히 주변에 피해주는 일이 없어서...... 모두 그러려니 하고 있다. 다행인 것은 그분의 쌍둥이 형제는 정상인인 듯.
  • '여자 두 명이 자과캠에 있는 심산 선생 동상 앞을 지나가면 선생이 지팡이 버리고 뛰어 온다'는 옛날 옛적 슬픈 전설이 있었다. 자과캠에 여학생이 거의 없던 시절 생긴 전설이었다. 지금은 사정이 나아져서 여러 가지 변형이 존재한다.
  • 자과캠에는 후문에서부터 1학년들이 많이 수업을 듣는 생명공학관~제1과학관까지 가는 길 맞은편에 작은 동산이 있는데 이곳에는 조명도 마땅히 없고 풍물공연용으로 만들었음직한 구덩이가 있다. 나무가 많아 생각보다 조용하고 밤에는 운동장에서 새어드는 희미한 조명덕에 교내커플들의 밀회장소로 꼽혔었는데 그 탓인지 밤 7시 이후에 이 길을 혼자 걸으면 3년간 여친이 안생긴다고 한다.
  • 90년대 삼성이 컴백한 직후 메이저 일간지 하단에 실렸던 삼성 래미안(율전) 광고에는 "성균관대학교를 공원처럼 이용할 수 있다"는 류의 홍보 문구가 들어가 있기도 했다.
  • 해외에 나가서 학교 이야기를 하다가 우연히 본인들이 나온 대학교가 얼마나 오래된 것인가에 대한 일종의 자랑이 시작되었는데 (영국인이 시작했다고 한다), 잠자코 있던 성균관대생이 약 600년이라 얘기하니 거짓말 말라고 하다가 학교 홈페이지로 확인시켜주자 다들 놀랐다는 이야기가 있다. 역으로 해외에 나가서 600년 된 대학 출신임을 자랑하다가 '그러면 그렇게 오래된 대학교 졸업자 중에서 국제적으로 유명한 사람이 누가 있느냐'는 질문에 할 말이 없었다는 이야기도 있다. 사실 그보다도 외국인이 한국대학에 대해 알고있는 경우가 드물기 때문에 "우리 학교는~" 하면서 구구절절 설명하다 귀찮아질때가 있다. 그럴땐 "Samsung이 재단이다" 딱 한마디면 상황정리되는 현상을 발견할 수 있다. 귀찮다면 써먹어 보도록. 생각이상으로 respect받아 부담스러울 순 있다.
  • 1997년 성균관대학교의 삼성 재단 영입과 관해 여러 풍문이 떠도는데 사실이 아니거나 왜곡된 경우가 많다. 1990년대 말 대학을 운영하고 싶었던 삼성이 단국대[56], 서강대, 중앙대, 동국대, 아주대, 한국외대 등을 인수하려 했지만 재단이 비협조적이어서 포기하고 성균관대학교를 인수하였다거나 성균관대학교가 싸게 나와서 사들였다는 등의 루머를 퍼뜨리는데, 이는 사실과 다르다. 삼성이 성균관대학교 운영을 맡은 것은 1996년이 최초가 아니며, 과거에 1965년부터 1977년[57]까지 삼성문화재단이 성균관대학교의 운영에 참여했고, 재단 이사장이 이병철 회장이었다. 삼성을 다시 성균관대학교로 들어오게 한 총장은 제15대 총장 장을병이다.[58] 또한 삼성그룹의 1996년도 이사급 이상 승진 임원의 출신 대학은 서울대 50명, 성균관대 37명, 연세대 27명, 고려대 17명, 부산대 17명, 한양대 16명, 영남대 11명, 인하대 8명, 서강대 중앙대 각 6명, 동국대 5명 순이다.기사 삼성 내의 영향력에서 위에 언급된 대학들과 성균관대의 격차는 컸다.
  • 한양원 민족종교협의회 회장의 말에 따르면 60년대 당시 삼성은 전통을 가진 성균관대를 탐냈다고 한다. 하루는 삼성그룹 창업자 이병철 회장의 형 이병갑 사장이 심산 김창숙 선생을 찾아와서는 봉투를 하나 건넸다. 심산은 비서 윤종[59]에게 "봉투에 뭐가 들었는지 보라"고 하더니 "5억원 수표가 들어 있다"고 하자 침을 뱉어 던지며, "이러면 내가 성균관대를 어서 가져가라고 내놓을 줄 알았느냐"고 호통을 쳤다고 한다.기사 이 내용이 기사화 되자 이건희 회장으로부터 연락이 와 만났는데, "그런 일이 정말 있었느냐"며 "제가 큰아버지와 아버지가 못한 일(성균관대 인수)을 해냈네요"라고 말했다고 한다. 이건희 회장이 쓰러지기 얼마 전의 일이었다.기사
  • 여타 서울 내 대학들은 역사상 친일파 논란이 있을지언정, 재정적 기반은 탄탄한 경우가 많았다. 반면에 성균관대는 성균관을 이어받아 유림 세력의 주도로 설립한게 전부여서 줄곧 재정적 압박에 시달렸다. 이는 90년대 들어 무재단 상태가 되면서 극심해졌는데, 1997년 삼성재단의 재영입으로 재정적 빈곤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2015년 기사를 보면 그때까지 1조5천억원을 투자했다고 한다.# 수익용 기본재산 확보율은 낮은 수준이다. 2018년 기준 15개대 사립 대학 중 15위이다. #2018년 11월 2일 베리타스 알파 기사 #대학재정알리미 #2018 사립대학 재정통계 지표 보고서 다만 해당 문서에서 보듯이, 이 순위가 높다 하더라도 그 재산의 수익율이 형편없는 경우가 많아 일률적으로 평가할 항목은 아니다.
  • 1997년 삼성이 들어오기 이전에 성균관대가 떨어지는 대학이었다는 글이 인터넷에 보이는데, 과장이 심하다. 물론 90년대 무재단 상태인 시절 재정이 많이 어려웠고, 삼성이 들어오면서 하위권 학과와 상위권 학과의 격차가 줄고 이공계 점수가 오르긴 했다. 그러나 7~80년대를 보면 굉장히 높은 입학 점수(당시 배치표)와 아웃풋을 보였다. 7~80년대에는 사법시험이나 행정고시에서 2등을 한 적이 몇 번 있을 정도다. 90년대 무재단 시절의 경우, 어렵긴 했지만 아웃풋이나 입학 점수를 보면 선방하고 있었다. 일례로 삼성이 들어오기 직전인 1996년도 배치표는 다음과 같고(기사), 고시 결과는 아래와 같다. 이외 96년도 당시에 정부 중앙부처 과장급 공무원 중 성균관대 출신이 2번째로 많았다고 하며#, 96년도 삼성 임원급 이상 승진 인원 중 중 성대 출신이 2번째로 많았다.#
  • 아래 자료를 보면, 삼성이 들어오기 전 최악의 재정 상황에서 오히려 크게 선방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 1996년도 사법시험 합격자수#: 서울대 250명, 고려대 69명, 연세대 47명, 성균관대 39명, 한양대 28명, 경북대 12명, 전남대 6명, 건국대·경희대·동국대·부산대·이화여대·중앙대 각 4명, 단국대·서강대·조선대 각 3명
    • 1996년도 행정고시 합격자수#: 서울대 101명, 고려대 24명, 연세대 22명, 성균관대 18명, 서울시립대 9명, 부산대, 경북대, 한양대 등이 각각 6명
    • 1996년도 공인회계사 합격자수#: 연세대 72명, 서울대 65명, 고려대 42명, 성균관대 20명, 경희대 17명, 서강대 16명, 경북대 15명, 부산대 14명, 시립대 동국대 10명, 한양대 9명, 중앙대 8명, 이화여대 4명
    • 1996년도 각 대학교 수능 점수(출처)
      • 연세대 상경계열(157.9점)
      • 고려대 정치외교학과(161.9점) 행정학과(160.9점)
      • 서강대 사회.신문방송.정치외교학과군(151.2점),경영학과(148.9점)
      • 성균관대 법학과(155.5점), 사회과학부(152.2점), 경영학부 및 약학부(각 150.9점)
  • 이에 대해서 이공계는 점수가 낮았던 게 맞지 않냐는 비판이 있다. 80년대 들어 서울에서 수원으로 이설되고 학교 재정이 열악해지면서 침체를 겪었기는 하다. 1984년도 학력고사 배치표를 보면 다음과 같다.출처 지금은 같은 구간인 서강대 전자공학이 272~264 구간인 반면에 성균관대 전기공학이 234~225 구간에 있었다. 다만 약대의 경우 당시에도 높은 수준의 입결을 보였으며, 당시 학번들 중 많은 동문들이 사회에서 활약하고 있다. 일례로 고동진 삼성전자 사장이 이 당시 학번이다.
  • 수능 이전에 성대가 이렇게나 선전할 수 있었던 것은 성대가 '후기대학'였기 때문이다. 당시에는 전기대학 중 한 곳에 지원하고 떨어지면 후기대학에 지원하거나 재수를 해야 했다. 당시 입시제도 상 전기대에 서울대, 연세대, 고려대, 서강대 등이 있었고, 후기 대에 성대, 한양대, 한국외대 등이 있었다. 즉, SKY에 갈 수준의 학생들이 시험운 및 기타 요인에 의해 후기 성균관대로 진학하게 되었던 것이다. 이에 1970년대 당시 서울대에 아깝게 떨어진 인재들 중 상당수가 성균관대에 입학하기도 했다.(사진) 애초에 서울대는 쓰지도 못하고 연고대에 지원해 합격한 사람이, 이들을 보고 자기 밑이라고는 못했다. 연고대를 썼다 떨어져 성대에 오는 경우도 있었으며, 재수를 해 빠져나가는 인원도 있었고, 후기 대학이라는 핸디캡도 있었다. 특히 학교 규모의 차이가 컸다. 당시 성대는 법대나 행정학과 정원이 30명대 밖에 안됐을 정도로 작았고, 그래서 고시 합격률로 따지며 1위를 다툰다는 말이 나오기도 했다. 기사를 보면 법학과는 정원이 35명, 행정학과는 30명이었다.# 다만 성대의 간판학과였던 법대는 연세대 법대보다 좋았다고 말할 수 있다. 연세대 자체는 그때도 좋았지만, 법대는 학교 내 하위권 학과였다. 1985년까지 사법시험 합격자 수를 보면 성균관대가 우위였다. 1958년생 법조인 숫자를 보면, 서울대 134명, 성균관대 33명, 고려대 29명, 한양대 13명, 연세대 11명 순이다.#[60] 한마디로 정리하자면, 당시엔 서울대의 위상이 너무 높아서 대학 서열이 오늘날과 같지 않았다. 명문대는 곧 서울대였고, 서울대와 타 대학의 격차가 컸다. 80년대 이후 연고대는 발전해서 서울대와의 격차를 줄였고, 성균관대는 열악한 재정 속에서 어려움을 겪다가 97년 삼성 재단 영입으로 다시 성장하고 있다.
  • 1970년대부터 1980년대 중반까지는 사법시험 합격자 수가 3위였다.[61] 합격자 순위 2위를 기록한 적도 몇번 있다. 행정고시의 경우도 많은 합격자를 배출했었고, 80년 81년 86년에는 합격자 순위에서 2위를 기록했다. 당시 뛰어난 성적을 거둔 이유는 전기 서울대에 떨어진 학생들 대부분이 후기 서울대로 불리던 성균관대에 들어온 점 때문으로 보인다.
  • 1995년 제1회 지방선거 실시 이후 민선 광역자치단체장 출신대학 3위가 성균관대이다.[62] 서울대 25명, 고려대 12명, 성균관대 9명, 연세대 4명, 조선대 3명, 국민대·단국대·영남대·중앙대 2명, 강원대·경희대·동국대·동아대·명지대·부산대·서강대·육사·제주대·충북대·건국대·경북대·전남대·충남대 1명이다.[63]
  • 박근혜 정부 시절 청와대, 내각에 성균관대 출신이 많이 등용되어 성시경 인사[64], 태평성대라고 불렸다. 대표적으로 정홍원 국무총리, 이완구 국무총리, 황교안 국무총리 및 법무부 장관, 허태열 대통령 비서실장, 이원종 대통령 비서실장, 유민봉 청와대 국정기획수석, 모철민 청와대 교육문화수석, 곽상도 청와대 민정수석, 이남기 청와대 홍보수석, 안종범 청와대 경제수석 및 정책조정수석, 정진철 청와대 인사수석, 신성호 청와대 홍보특보, 이근면 인사혁신처장 등이 있다. 기사 기사
  • 1948년 검찰 창설 이래 역대 검사장[65] 출신대학 3위가 성균관대이다.[66] 서울대 229명, 고려대 49명, 성균관대 15명, 연세대 12명, 한양대 4명 등이다.[67] 기사 2001년 기사를 보면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검찰의 주력부대인 서울지검 24명의 부장검사 가운데 성균관대 법대 출신이 무려 6명에 달해 검찰 안팎에서 성균관대 전성시대가 화제가 되고 있다. 서울지검 부장검사 4명중 1명꼴로 성균관대 출신인 셈. 대학별 최대 인맥에서는 서울대 출신이 13명으로 부동의 1위 자리를 지키고 있지만 성균관대 출신은 고려대 법대를 제치고 지난번 인사에 이어 이번에도 2위 수성에 성공했다."#
  • 금융권에 성균관대 출신 금융인 모임인 '성금회'가 있다. 4대 금융그룹(KB금융지주, 신한금융지주, 농협금융지주, 하나금융지주) 수장 중 3명이 성균관대 출신으로 윤종규 KB금융 회장, 김용환 농협금융 회장, 김정태 하나금융 회장이 성균관대 동문이다.[68] '성금회' 외에도 고려대 출신 금융인 모임인 '고금회', 서강대 출신 금융인 모임인 '서금회' 등이 있다. 기사
  • 성균관대는 과거 웹표준성 준수 면에서 최악의 행보를 보였다. 웹기반 포털 형태로 운영되는 타교의 학사포털과는 다르게, 성균관대의 학사포털 GLS와 인터넷 강의 사이트인 아이캠퍼스는 ActiveX, 베라인 기반으로 되어 있어 학생들에게 무한한 빡침을 제공하고 있다.[69] 또한 학교의 정보보안 의식도 허접해서 2012년까지 학교 도서관, 컴퓨터실 컴퓨터 OS가 윈도우 XP였고, 경영관 지하 3층의 프레시맨 라운지가 전부 QQ 떡칠이 되어 있던 충공깽한 상황을 연출하였다.[70] 또한 애플 제품 사용자들에게는 최악의 편의성을 자랑하는 학교다.[71] iOS 공식 앱은 뻑나는 경우가 많다. 그냥 사파리로 보는 것이 편할 수준이다. 특히 학술정보관 앱이 개판이다. 컴퓨터공학과 09학번 학우가 만든 별도의 프로그램을 깔아야만 Mac OS에서 아이캠퍼스가 접속된다. 요즘은 macOS에서 그냥 접속은 된다. 그런데 강의를 못 듣는다. macOS에서 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은 수강신청이다. 웃기게도 올해부터 수강신청만은 모든 인터넷 브라우저에서 다 돌아간다. 그런데 2017년부터 사파리와 크롬에서도 아이캠퍼스가 돌아간다! 2018년 2월에 IE외 타 브라우저에서 킹고ID 로그인을 시도하면 멀티브라우징은 2018년 상반기 개선 예정이라는 알림이 표시된다. 2018년 상반기가 지나고 이제는 2019년 상반기 개선 예정이라는 알림이 표시된다(...). 2019년 3월 20부터 크롬으로 킹고ID 로그인이 가능해졌다.
  • 성균관대역은 자연과학캠퍼스와 꽤 가까운 편이나, 2009년에 있었던 일로 인해 철도 동호인들한테 상당히 많이 까인다. 율전동 주민들이 성균관대역을 다시 지명인 율전역으로 바꾸려 하자[72] 학교 쪽에서 기숙사 학생을 의무적으로 전입신고를 하도록 해 결국 주민투표에서 이겼다. 지금은 기숙사생만으로 부재자투표소가 아닌 일반 투표소를 만들 수 있을 정도.[73]
  • 전직 수학과 교수가 판결에 앙심을 품고 부장판사에게 석궁을 쏜 판사 석궁 테러 사건 때문에 석궁관대학교라는 불명예스러운 호칭을 얻었다. 이 사건을 바탕으로 제작된 영화 부러진 화살이 개봉해 사회적으로 큰 화제가 되었다. 감독은 인터뷰를 통해 "사학 재단의 비리, 사법부의 비리에 대해 자세히 다루었다."고 밝혔다. 다만 사실관계 측면에서 편향된 시각으로 영화를 만들었다는 비판을 받았다. 사건 내막을 보면 일방적으로 매도할 문제는 아니다. 자세한 사항은 해당 문서 참조. 참고로 성대 수학과 학생들에게는 웬만하면 이 사건에 대해 물어보지 않는 게 좋다. 워낙 오래전 일이라 지금 학부생들은 잘 알지도 못하는 사건이고, 그 일을 기억하는 대학원생이나 교수들은 그 교수에 대한 기억이 좋게 남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 90년대 자과캠 선배들이 전하는 말로는 학교 정문 쪽에 작은 장승이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모 종교의 신도로 의심되는 어떤 자들이 기름을 뿌려서 태워버리는 종교테러를 저질렀다고 한다 그러자 전에는 좀 작고 약해 보이던 장승을 현재의 두껍고 아름다운 장승으로 바꾸었다고 한다. 교내 비전에 따르면 전동톱으로 잘라낼것을 우려해서 강철심을 넣었다는 전설도 있다 카더라.[74]
  • 그 이후에도 자과캠내 성불회(성균관 불교 동호회)에 무단으로 침입해서 기물을 때려부수고 불상을 파괴하는 사건도 있었다고 한다. 비슷한 시기 자과캠뿐 아니라 인문캠에서도 기독교계 동아리 소속으로 추정되는 자들이 불교 동호회에 침입해서 불상을 참수했던 사건이 있었다고 한다.
  • 2014년 4월 14일에는 성균관대학교에서 신원을 알 수 없는 자가 중앙학술도서관(인문캠)에 수은을 테러하고 달아나서 학생들이 대피하는 소동이 일어나기도 했다.해당 열람실은 폐쇄되고 경찰이 수은을 채취해 갔다.
  • 재단의 힘이 워낙 강력해서 그런진 모르겠지만, 삼성이 집권하기 시작한 2000년 이후로는 사건의 비기사화가 종종 보이기 시작했다. 2008년에만 해도 덥다는 이유로 학교 셔틀버스 지붕 위에서 새벽에 잠을 청한 모 남학생은 오전 중 버스의 운행을 시작하는 때에 떨어져 숨졌지만 이는 기사화되지 않았다(실제로 이 사건을 알고 있는 학생 수도 매우 적다.). 단순히 재단의 힘에 비추어 생각하는 것은 도식적인 사고일 수 있지만, 학교의 명예가 실추되는 학교 내 사건은 이처럼 조용히 사라진다.
  • 이처럼 의외로 죽은 학생 이야기가 여럿 있는데, 평면도를 보면 'ㅁ'자 형태(건물의 가운데가 비어 있음)인 600주년 기념관의 옥상에서 성균관대 남학생과의 이별에 비관한 타 학교 여학생이 건물 안쪽의 빈 곳으로 떨어져 머리가 깨져 죽은 사건도 있었다. 지하 1층으로 내려가는 길에 건물의 빈 공간의 바닥을 볼 수 있다. 전해들은 이야기로는 바닥의 석판 중 하나가 유달리 새 것처럼 다른 부분들과 대조되게 깨끗한데, 피가 닦이지 않아 그 부분을 새로 교체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18. 사건사고




19. 외부 링크


[1] 1398년 조선 건국 직후 한양에 설치[2] 광복 후 1946년 재개교[3] 휴학생 6,606명 미포함 [4] 휴학생 849명 미포함[5] 행정동은 혜화동.[6] 그러나 자과캠은 '율전캠퍼스'로 불리는데, 이는 캠퍼스를 조금만 벗어나면 대학가가 모두 율전동에 위치해 있는 점 그리고 예전에는 캠퍼스 일부가 율전동 관할이었다는 점에서 비롯된 것으로 생각된다. 율전동과 천천동은 법정동이며 이들의 관할 행정동은 율천동이다. 각 동의 첫 글자를 따온 것이다.[7] 태조 7년[8] 經學科, 역사·지리·수학 등의 근대 교육이 이루어진 3년제 교육 기관[9] 전·후 2학기의 학기제, 교수 임명제, 입학·졸업시험제 등[10] "그 뒤 전국 유림들에 의한 성균관 교육기능의 회복 움직임이 크게 일어나, 1930년에 경학원 부설로 명륜학원(明倫學院)이 설립되었다." 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성균관(成均館))[11] 경학원 내 명륜학원(明倫學院)이 설치(1930)되었고 이후 명륜전문학원로 개편, 명륜전문학교로 거듭났다.[12] 군정법령 제15호 제1조 경성제국대학의 명칭은 자에 차를 서울대학이라 변경함. 제2조 공자묘경학원의 명칭은 자에 차를 성균관이라 변경함. 제3조 본령은 1945년 10월 16일 야반에 효력을 생함.[13] 학봉 이석구 선생이 재단법인 학린사의 53만여 평에 이르는 거대한 토지재산을 희사하였다.[14] 前廟後學, 앞쪽에 묘당을, 뒤쪽에 학업용 건물을 배치한다는 뜻.(출처: 우리말샘)[15] 대성전·동무·서무·삼문·명륜당[16] 문화재 자체를 의미하는 것이 아닌, 이를 관리하는 유교 및 전통 문화 전문 교육 기관을 의미한다.[17] 삼성그룹이 성균관대학을 재인수한 1990년대까지도 성균관대학교 총장이 성균관의 당연직 이사를 맡고, 성균관장이 성균관대학의 당연직 이사를 맡으며 긴밀한 협력관계를 유지했다. 그 이후에도 성균관과 성균관대학교의 중요 행사에는 각각 성균관장과 성균관대학교 총장이 함께 참석하여 전통을 이어나가고 있다.[18] 도쿄대학오사카대학 또한 은행잎을 학교 상징물로 쓰고 있다.[19] 'Sungkyunkwan'의 이니셜인 SKK(에스카카)를 발음하기 쉽도록 변형한 것이다.[20] 은행나무의 학명 Ginkgo biloba. 일반적으로 은행나무를 말할 때는 짧게 Ginkgo라고 하며, '깅코'라고 발음한다. 학명은 銀杏을 그대로 일본식 한자음으로 읽은 긴쿄(ぎんきょう)에서 유래했다. 로마자로 표기할 시 Ginkyo 내지는 Ginkjo지만, 실수로 Ginkgo로 적은 것이 굳어지면서 학명으로 공인된 사례. 일본에서는 흔히 은행나무를 이초(イチョウ), 그리고 은행알을 긴난(ぎんなん)이라고 부른다.[21] 해방 이후에는 재단법인 성균관이 옛 성균관을 관리함과 동시에 성균관대학교 또한 경영하였으나, 1963년 학교법인 관련 법률이 개정되면서 문화재청 소속의 재단법인 성균관과 학교법인 성균관대학으로 분리되어 현재에 이른다. 법적으로는 분리되었으나, 여전히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다.[22] 명륜당 왼쪽 뒤에 국제관으로 올라가는 계단이 있다.[23] 서울대, KAIST, 성균관대 순[24] 서울대, 성균관대 순[25] 서울대, 성균관대 순[26] 서울대, KAIST, 고려대, 포항공대, 연세대, 성균관대 순[27] 서울대, KAIST, 고려대, 포항공대, 성균관대 순[28] 서울대, 성균관대 순[29] 서울대, 성균관대 순[30] KAIST, 서울대, 고려대, 성균관대 순[31] KAIST, 포항공대, 서울대, 성균관대 순[32] KAIST, 포항공대, 서울대, 성균관대 순[33] 서울대, 성균관대 순[34] 서울대, 성균관대 순[35] 서울대, 성균관대 순[36] 서울대, UST, 성균관대 순[37] 서울대, 성균관대 순[38] 카이스트, 성균관대 순[39] 서울대, 성균관대 순[40] 하지만 2015년에는 추석연휴가 9월 26일~28일이었다. 12년 황금연휴 이후에 입학한 13학번은 공부자탄강일이 1학년 때 토요일, 2학년 때 일요일, 3학년 때 추석연휴와 겹쳤다![41] 심지어 중국에서도 안 쉬지만, 대만 학교는 스승의 날로 지정되어있어 쉬는 학교가 있다.[42] 그마저도 자과캠의 경우에는 제한 수강자수가 아직 다 차지 않았다.[43] 그래서 2014학년도 특기자 전형이나 과학인재 전형 시험 응시자들은 응시 이후 정문으로 나서면서 유교방송 개국을 축하하는 현수막 걸려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44] 2018 고하노라에서는 조명균 문재인 정부 통일부장관이 상소의 답을 했다.[image][45] 9시 수업때는 공평에서는 100% 착석불가, YMCA에서도 착석 보장이 안되므로 남쪽에서 올라와서 아래 종로3가역에 적힌 금강제화까지 가는 용자도 있다.[46] 주의할 점은 9시 수업일 경우 이미 종각에서 종로02가 만차라는 것. 이 정류장에서는 아예 승차가 불가능할 수도 있고, 타더라도 신도림급 인구밀도를 감당해야 한다.[47] 후문과 가까운 법학관과 수선관을 이용할 때 탑승하면 편리하다.[48] 반대로 학교에서 역으로 갈때는 오르막이라 넉넉히 후문에서 8분은 잡아야 한다[49] 성균관은 조선시대에 장차 나라를 이끌어 갈 왕세자와 고위 관료들을 양성하던 최상급의 교육기관이었으므로, 당연히 정치가 이루어지는 궁궐 옆에 자리를 잡았다.[50] 반대로 서울타워 쉽게 조망할 수 있다.[51] 법학관 옆 샛길로 빠지면 바로 위치해 있다.[52] 정확히 말하자면 공용도로는 아니였으나 성균관과 성균관대학교 부지가 구분되었을 시절 그 소속이 애매한 부지인 상태에서 일종의 국유지로 치부하던 곳.[53] 현재의 서울 버스 301로 추정됨[54] [image][55] 이 밖에도 만학도 체육, 예술인들이 많이 다니는 학교 특성상 현역 삼성 스포츠단 선수들이 재학하기도 한다. 대표적인 예가 이승엽, 정성룡.[56] 단국대 관계자 주장에 따르면 1993년 이른바 단국대 입시서류 폐기사건을 계기로 관선이사가 파견되었고 삼성그룹으로의 인계가 무산되었다고 한다. 기사[57] 77년 학내분규로 삼성이 성균관대에 철수하게 되었다. 재정난에 허덕이던 성대재단이 삼성 이병철회장을 이사장으로 받아들인 이후 유림과 갈등이 많았다. 성균관대학교 부지였던 안양땅을 삼성계열사에 팔아넘긴 후 나온 4억의 돈으로 수원 삼성공장부지로 매입해 놓았던 부지로 정하면서 성균관대의 자산을 삼성이 이윤으로 가져갔다는 주장을 유림측에서 했다. 또한 유림은 당시 30만평으로 약속되었던 수원캠퍼스 부지가 15만평으로 줄었다는 주장으로 삼성이 거짓말을 했다고 주장했다. 이것이 학내 분규사태의 원인이 되었다. 즉 이병철과 유림의 갈등이 삼성재단 철수의 원인이었다.[58] 출처: 장을병 총장의 자서전 '옹이많은나무'[59] 윤봉길 의사의 아들[60] 기타 자료##[61] 1971~1975년 서울대213 고려대34 성균관대15 연세대11 경희대9 경북대6 단국대5 중앙대4 전남대, 건국대3 국민대, 동국대, 부산대, 전북대2 // 1976~1980년 서울대340 고려대29 성균관대24 한양대22 단국대, 경북대12 경희대9 연세대8 전남대, 부산대5 건국대, 동아대4 동국대, 중앙대3 // 1981~1985년 서울대821 고려대205 성균관대68 연세대62 한양대59 건국대32 경북대30 경희대25 전남대21 부산대, 중앙대20 동국대19 단국대18 영남대14 동아대10[62] 2018년 6월에 실시한 제7회 전국동시지방선거 기준[63] [image][64] 성균관대·고시·경기고 출신[65] '검찰의 별' 또는 '검찰의 꽃'으로 불리며 차관급[66] 2017년 7월 기준[67] [image][68] 2018년 1월 기준[69] 다만, 2017년부터 아이캠퍼스는 HTML5 기반으로 바뀌어 크롬 등 타 브라우저와 매킨토시 등 타 운영체제와 호환이 된다.[70] 다행히 2013년부터 윈도우 7으로 교체되었다.[71] 2016년 9월 20일부터 Apple On Campus(AOC) 대상 대학교에 추가되었다. http://student.skku.edu/wordpress/ 에 로그인하면 첫 페이지에서 바로 "Apple On Campus 프로그램 제휴안내" 라는 게시물을 볼 수 있다.[72] 참고로 성대역은 초기에 개통할 때는 율전역이었다. 하지만 당시가 80년대인지라(...) 대학역명을 해달라고 하면 거의 해줬기 때문에 역명이 바뀐 것이다.[73] 실제로 자과캠의 경우, 2014년 당시 기숙사생들은 신관 B동 대강당에 설치된 일반 투표소에서 투표권을 행사했다.[74] 이런 이야기는 다른 대학에도 있는데, 서울대 축제 때 세운 장승을 우상숭배로 보고 부숴버렸다는 이야기도 있다. 동국대는 이야기 정도가 아니라 정말 누군가 학교 중심의 부처상에 빨간색 페인트로 십자가를 그어 버린 적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