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야사학

 

1. 개요
2. 특징
2.1. 경향
3. 재야 사학의 탈을 쓴 유사역사학
4. 여담
5. 관련 문서


1. 개요


在野史學
주류 사학계와 주류 사학자에 대비되어 재야 사학계와 재야 사학자를 아우르는 개념이다.
재야라는 낱말의 어감 때문에 언뜻 사학계의 은둔 고수를 일컫는 것처럼 보이지만 오늘날처럼 정보 교류와 발표가 쉬운 인터넷 시대에 재야가 되는 데에는 다 그만한 까닭이 있는 법이다.

2. 특징


재야 사학 대부분을 차지하는 부류는 이른바 향토사학으로서 주류 사학으로 다루기에 지나치게 미시성을 띠거나 주류 사학으로써 다루기에는 중요도가 떨어지기에 주류 사학계의 관심을 벗어난 것이다. 이런 향토사학자는 자기가 사는 지방의 토착 역사나 사회사나 경제사나 민속학에 속하는 전설과 민담과 야담을 위시한 소위 '로컬 히스토리(Local History)'를 연구하는 학자들이다. 지역 도서관이나 박물관을 이용해 이런 재야 사학자들의 깨알 같은 족적을 음미할 수 있다. 이분들의 노력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지역사회의 전설과 민담과 씨족별·가문별 역사 정리도 중요하다. 이런 미시사와 향토사의 연구는 주류 사학의 연구에도 필요한 작업이다[1].
제대로 된 재야 사학자들의 연구는 주류 사학계와 서로 존중하며 협력할 수 있는 종류의 것이고 주류 학계가 미시사에 기초한 연구에 돌입할 때 큰 도움이 될 수 있다.
향토사학처럼 매우 세세한 범위를 다루는 것 말고도 주류 사학계와 학벌이나 사관 등의 차이로 말미암아 인정받지 못한 여러 비주류 사학을 재야 사학이라고 하기도 한다. 물론 이 쪽도 제대로 된 학문이고 주류 사학과의 교류를 이용해 정식 사학으로 인정받을 때가 있으며, 그렇지 않더라도 존재의 가치 자체는 인정받는다.
'한국사 이야기' 시리즈를 저술한 이이화 선생, 친일파 연구가인 임종국 선생, 또는 우리 주변의 시군구 문화원 같은 곳에서 오늘도 조용히 우리 고장의 역사를 연구하고 있는 사람들이 바로 재야사학자의 제대로 된 예시라고 할 수 있다.

2.1. 경향


재야 사학의 특성상 여러 가지 경향이 나타나지만 대체로 다음들 중 적어도 한 가지는 찾아볼 수 있다.
  • 탈정치사적 경향 - 제도권 사학의 정치사, 국가사, 민족사 위주 경향에서 탈피하여 사회경제사, 문화사 등 정치사 이외의 분야를 다룬다.
  • 탈거시사적 경향 - 제도권 사학에서 상대적으로 소홀하게 다루는 향토사, 문중사, 교사(校史) 등 미시적인 분야를 다룬다.
  • 탈지배층적, 민중적 경향 - 아무래도 제도권 사학 연구에서 중시되는 기록된 사료들이 기록 당시의 지배층이나 기득권층, 식자층의 관점이 반영된 것이 많은 만큼 그들의 관점에서 탈피하여 피지배층이나 평범한 민중, 당대의 지배질서 하에서 소외, 핍박받는 자들 등 아웃사이더의 관점에서 사실을 뒤집어 보거나, 지배층이 남긴 사료, 문헌을 비판적으로 재해석하는 경향을 나타내기도 한다.
후술할 환단고기 기반 유사역사학에서는 이러한 경향들 중 어느 한 가지도 나타나지 않는다.

3. 재야 사학의 탈을 쓴 유사역사학


어느 새인가 환빠와 같은 '''사이비'''들이 재야 사학을 '''사칭'''한다. 이 사이비들이 스스로 '재야사학자'라고 칭하는 만행을 벌이는 탓에 '재야 사학'이라는 단어마저도 ''사이비 사학''으로 왜곡되는 일이 일어났다.
환빠들은 정치와 야합한 어용 학자들이고 파시즘에 토대한 환상을 현실로 착각하는 자들이 인터넷 같은 매체를 이용해 자신들의 주장을 무분별하게 퍼뜨리면서 악화가 양화를 구축한다는 것. 지방에서 향토사를 진짜로 연구하는 재야 사학자분들에겐 참으로 억울한 일이다.
이처럼 나름대로 인지도(악명)가 있는, 재야 사학자를 참칭하는 사이비들 대부분이 환빠라는 사실 때문에 재야 사학 자체 이미지는 극단으로 갈린다. 환빠들은, 식민 사학에 넘어가지 않은 진정한 학자라고 근거 없이 주장하면서 추종하지만 정신줄이 제대로 박힌 역사학도라면 환빠와 한데 묶어서 경멸하는 때가 잦다. 하지만 재야 사학 사이에서도 다양한 사관이 공존하고 재야 사학자라고 해서 모두 환단고기를 무비판으로 수용하지는 않는다. 예컨대 재야 민족주의 사학자를 대표할 정도로 전형이 될 만하거나 특징이 있는 사학자인 이이화의 《한국사 이야기》에서도 환단고기가 언급되는 부분이 있지만, 저자 이이화는 환단고기가 조선 후기에 지어졌다는 사실을 밝히면서 신빙성 있는 사료로 인정하지 않았고 그 후의 인터뷰에서도 환단고기를 '''책값을 주기에도 아까운 책'''이라고 대차게 깠을 정도였다. 사실 이이화 본인이 어렸을때 한학을 전공했기에 민족문화추진회(현 한국고전번역원)과 규장각에서 번역을 맡았던지라 사료해석 능력에 있어서 환빠와 비교도 하기 민망할 정도이고, 재야사학자이기는 한다지만 애초에 역사를 본격적으로 공부하기 시작한 계기가 천관우 등 여러 역사학자들과 만나서부터였고, 이후로도 서중석. 박원순[2]등 이름있는 역사학자들과 함께 역사문제연구소를 만들어서 소장을 맡았을 정도로 유명 역사학자와 교류도 했던 인물이었다.
주류 사학계에서 관심하지 않는 역사의 각 요소에 천착하여 학문의 다양성에 기여할 수 있는 재야 사학이 유독 한국에서 멸칭으로 변질된 원인도 환빠가 사학계에 끼친 악영향인 것이다.
이 사이비들은 '''재야 사학'''이라 함부로 자칭하고 자신들과의 대척점으로서 '''강단 사학'''을 든다. 그런데 일단 강단 사학이라는 단어 자체가 도대체 무엇을 지칭하는지 모호하다. 그 사이비들은 음모론 마냥 자신들의 학설이 '''특정 조직'''에 의해 부정되고 수용되지 않는다고 주장하면서 그 조직으로서 강단, 즉 사학계를 든다. 그런데 당초 그 사이비들이 자신들의 대척점이라는 그 "강단 사학계"가 딱히 하나의 역사관으로 통일되어 "체계 있게" 행동하지도 않는다. 당연하지만 매번 각각 학론에 의해 토론하는 게 사학계고 그것이 역사학의 특징이기도 하다.
공식으로 학위를 받고 제대로 연구 중인 전공자들, 즉 '''제대로 된 그 분야의 전문가'''를 "강단"이라는 희한한 단어로 지칭하는 것 자체가 해괴한 일이다. 재야 수학, 재야 과학, 강단 수학, 강단 과학 같은 단어를 들어본 적이 없듯이 역사학이라는 학문에 내재한 개방성을 '''아무나 무엇을 말해도 그게 학설이다'''라는 '''비전문성'''으로 곡해했을 뿐 '''엄연히 역사도 전문성에 기초한 학문이고 당연히 전문가가 존재한다.''' 자신들의 학설이 전문성이 없고 학문상 성립되지 않아 인정되지 않는 것을 본인들이 부당하게 배척당한다는 피해망상급의 음모론으로 풀어놓았을 뿐이다.
보통 이 "재야사학"이라고 지칭하는 사람들을 보면 대부분이 역사학 전공자가 아닌때가 흔하다. 이 사람들이 주장하는 강단 사학과 재야사학이라는 것이 어떤 것일지 이 부분에서도 명확히 보인다.
이런 상황 때문인지는 몰라도 여론이나 학계에서는 2008년 말부터 이런 사이비 사학을 재야 사학이 아닌 '유사역사학'으로 부르자고 제안한 바 있다.
유사역사학은 서구에서 나치 옹호론자들 등에게 사용해 오던 용어로서 용어 자체는 유사 과학에서 유래된 듯하다. 한국에서 이 용어를 제안한 사람은 이글루스의 역사 블로거인 '초록불'이고 나치 옹호론과는 무관하게 유사과학에서 따온 용어였다.
인터넷 상에서 유사 역사학이란 용어가 급속히 퍼졌지만 하도 재야 사학이란 말이 입에 붙어서 이 용어도 아직 많이 사용되고 있다.
2016년에는 식민사학을 규탄한답시고 미래로 가는 바른 역사 협의회라는 집단을 결성했다.#

4. 여담


  • 요즘은 중국에서도 이것에 관심을 보인다.
  • 이 문서는 본 위키의 모체인 엔하위키(현 리그베다 위키)의 최초 작성문서였다. 즉, 나무위키에 있는 [PageCount]개의 문서 중 최고(最古)의 문서라는 것. 다만 당시 리그베다측의 서버 사정으로 인해 로그를 지웠던 적이 있어 당시의 기록이 정확히 남아있진 않아 나무위키의 문서 역사에서 이를 확인할 순 없다. 참고로 나무위키에서 최초로 수정된 문서는 (FrontPage 제외하고)음차, 최초로 작성된 문서는 나무위키다.

5. 관련 문서


[1] '왜 필요한지' 덧붙이면, 전근대 시대의 역사서들은 철저히 왕과 귀족층 중심으로 서술되어 있을 뿐 보통사람의 처지나 시선을 대변하지는 못한다. 조선왕조실록을 보면 왕이 무엇을 했다는 이야기는 극히 세세한 내용까지 기록되어 있지만 백성 아무개가 어떻게 했다는 이야기는 사회에서 상당한 물의를 빚거나 크게 칭송받은 일이 아니면 나오지 않고 삼국사기는 그보다 더하다. 향토사. 즉 지방사의 연구는, 이렇듯 중앙 위주로 서술되어 온 역사의 균형을 맞추는 데 대단히 중요한 작업이다.[2] 지금이야 서울시장으로 유명하지만 당시에는 역사학을 전공해서 논문을 내거나 참여연대, 아름다운 가게 등 시민단체 활동으로 이름을 날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