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예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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全禮鎔 (창씨명: 江原禮三)
본관은 정선 전씨
1910년 1월 3일 ~ 1994년 7월 4일
대한민국의 전 정치인, 친일반민족행위자이다.
1910년 한성부(현 서울특별시)에서 태어났다. 남대문상업학교와 경성고등상업학교(서울대학교 상과대학의 전신)를 거쳐 1933년 일본 규슈제국대학 법문학부 법과를 졸업했다.
1933년 일본 고등문관시험 행정과에 합격하여 경성세무감독국 서무과 속에 임명되었다. 이후 경기도 광주군수, 경상북도 재무부 재무부장, 조선총독부 학무국 사회과장, 황해도청 산업부 농업과장 등을 지냈고 해방 당시에는 조선총독부 학무국 원호과장이었다. 광주군수 재직시 중일전쟁이 발발하자 군수품 제조 공출, 국방헌금 모금 등 전시업무를 적극 수행하여 <지나사변공적조서>에 이름을 올렸다.
해방을 맞아 1945년 미군정 학무국장 보좌관에 임명되었고, 1946년 조선주택영단(한국토지주택공사의 전신) 이사장을 지냈다.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자 1948년 외무부 통상국장을 지내다가 1949년 서울특별시 부시장에 임명되었다. 1951년 5월부터 같은 해 6월까지 이기붕의 뒤를 이어 서울특별시장 권한대행이 되었다. 이후 한국은행 부총재가 되었다.
4.19 혁명 직후인 1960년 4월부터 같은 해 8월까지 부흥부 장관을 지냈다. 이어서 1960년 9월부터 1961년 5월까지 한국은행 총재를 지냈다.
1963년 민주공화당 의장 직무대리가 되었다. 1964년 5월부터 1966년 12월까지 건설부 장관을 지냈다.
민족문제연구소가 펴낸 친일인명사전 관료 부문에 포함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