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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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의 관료, 정치인.
2. 생애
1903년 함경남도 고원군에서 태어났다. 평양 숭실전문학교를 졸업하였고 이후 미국으로 건너가 시카고의 노스웨스턴 대학교에서 영문학과(학사 과정)를 수료했으며, 일리노이 주의 웨슬리언 대학교에서 범죄학 및 사회학(학사 과정)을 전공한 뒤에 보스턴 대학교의 대학원에서 신문학(석사 과정)을 졸업하였다. 국내로 귀국하였다가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복역하였다.
8.15 광복 후 경찰공무원으로 근무했는데[1] , 1949년 서울특별시청의 경찰국장을 재임하면서[2]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의 친일반민족행위자 체포를 방해한 덕택에 1950년 내무부(오늘날의 행정자치부)의 치안국장(1950년대~1960년대의 이사관급 경찰총수)으로 승진했으며, 1949년부터 1950년까지 국민보도연맹에 깊이 관여했다.
1951년 6월 서울특별시장에 임명되었고, 서울특별시청의 도시계획과장(장훈)이 착수한 초보적인 도시계획을[3] 서둘러 실행했으며, 1952년 7월 이범석 장관의 후임으로 내무부 장관에 임명되었으나 불과 한 달 만에 경질되었다. 곧이어 서울특별시장에 다시 임명되어 1956년 7월까지 근무하였다. 1961년 5.16 군사정변 후 귀속재산을 부정하게 불하한 혐의로 구속되었다가 그해 9월 석방되었다. 이후 대한민국 재향경우회 회장을 역임하였다.
1977년 1월 7일에 73세에 나이로 사망했다.
3. 기타
이환경 작가의 무풍지대, 야인시대에서는 동대문상인연합회 잔치에 참석하는 것으로 묘사되며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의 활동을 방해하는 인물로 등장한다.
4. 관련 문서
[1] 총독부의 경찰공무원으로 일했다고 잘못 적어놓은 책이나 글도 더럿 있다. 광복 이후 오랜 미국 체류와 이승만을 지지하는 성향 덕분에 미군정이 경찰공무원으로 채용한 것이지, 친일파는 아니다. [2] 지금의 지방경찰청(행정자치부 직할의 광역경찰청)과 전혀 다른 직제로서 XX도청 직할의 XX부국이다. 제1공화국은 미군정청의 경무부(警務部)와 관구경찰청(管區警察廳)을 내무부의 치안국과 10개 도청의 경찰국으로 축소했기 때문에 1950년대부터 1980년대까지 지방공무원으로 근무한 경찰관들은 박봉과 격무에 시달렸지만, 내무부가 모든 도청의 고위직(예를 들면 대한민국 대통령→도지사/국무총리→부지사/내무부 장관→국장/내무부 차관→과장)을 임명하여 파견하는 방식으로 경찰국을 통제했다. [3] 이미 쓰러진 시체와 가로수를 모두 치우고, 세종로의 너비를 100미터로 넓히고, 서울시민회관의 건설에 착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