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레산드로 델피에로

 

'''알레산드로 델피에로의 역임 직책'''
''' 유벤투스 FC 역대 주장 '''
안토니오 콘테
(1996~2001)

'''알레산드로 델피에로
(2001~2012)'''


잔루이지 부폰
(2012~2018)

'''알레산드로 델피에로의 수상 이력'''
'''둘러보기 틀 모음'''
'''개인 수상'''


'''베스트팀'''
1995-96 · 1996-97· 1997-98

'''FIFA 월드컵 우승 멤버'''
'''2006'''

''' 이탈리아의 前 축구 선수 '''
''' 이름 '''
'''알레산드로 델피에로'''[1] '''UOMRI'''
'''Alessandro Del Piero UOMRI[2]'''
''' 출생 '''
1974년 11월 9일 (49세) /
이탈리아 베네토 주 트레비소 도 코넬리아노 시
''' 국적 '''
이탈리아
''' 신체 '''
174cmㅣ체중 73kg
''' 주발 '''
양발
''' 직업 '''
축구선수 (세컨드 스트라이커 / 은퇴)
SKY 이탈리아 펀딧
''' 유스클럽 '''
AC 산 벤데미아노 (1981~1988)
칼초 파도바 (1991~1993)
유벤투스 FC (1993~1994)[3]
''' 프로클럽 '''
'''유벤투스 FC (1993~2012)'''
시드니 FC (2012~2014)
델리 다이너모스 FC (2014)
''' 국가대표 '''
91경기 27골 (이탈리아 / 1995~2008)
'''정보 더 보기'''
[ 펼치기 · 접기 ]

''' 등번호 '''
유벤투스 FC - '''10번'''[29]
이탈리아 - '''7번''', 10번
'''별명'''
'''마지막 판타지스타''', 진정한 천재(IL Fenomeno Vero)[30], 핀투리키오(Pinturicchio)[31]
'''SNS'''



1. 개요
2. 선수 경력
2.1. 클럽 경력
3. 플레이 스타일
4. 기록
4.1. 대회 기록
4.2. 개인 수상
4.3. 출전 기록
5. 기타
6. 델피에로에 대한 말, 말, 말

[clearfix]

1. 개요




'''신사는 숙녀가 원할때 떠나지 않는 법이다.'''

유벤투스칼치오폴리세리에 B로 강등되었을때 남긴 말.

이탈리아의 前 축구 선수로 우아한 드리블 능력과 뛰어난 테크닉, 높은 득점력, 이타적인 플레이, 다양한 공격 롤을 소화할 수 있는 멀티플레이 능력까지 갖춘 공격의 토탈 패키지 같은 선수로서 아주리 군단유벤투스를 대표했다.
이탈리아 판타지스타 혈통의 적통이며, 어쩌면 마지막 판타지스타일지도 모른다. 실제로 델피에로의 노쇠화, 그리고 은퇴 이후 현재에 이르기까지 그의 후계자가 될 이탈리안 판타지스타의 재목은 나타나지 않고 있다.[4][5]
데니스 베르캄프, 라울 곤살레스와 더불어 세컨드 스트라이커 시대를 연 선수이다.
앞선의 공격수 이지만 이타적인 플레이와 플레이메이킹 능력에 자신에게 기회가 왔을때 골결정력 까지 보유한 이 엄청난 선수는 유벤투스의 전성기를 만들어 주었다.
흔히들 간단히 줄여 '''알레'''라 한다. 골을 넣으면 혀를 내밀고 그라운드를 질주하는 세리머니로 유명하지만, 본격적으로 해축이 보급된 2000년대 중반부터 세리에 A 중계가 거의 없었고 이탈리아 국대 방송 또한 잘 틀어주지 않았기에 유벤투스 팬이거나 그 나이대가 아닌 대다수의 국내 해축 팬들은 알레에게 전용 세리머니가 있는 줄 모른다.

2. 선수 경력



2.1. 클럽 경력


세리에 B 팀이던 칼치오 파도바의 유스였던 그는 1991년 성인팀으로 승격하여 프로 생활을 시작했으나 많은 경기를 뛰지는 못했다. 그러던 중 1993년 그의 재능을 눈여겨 본, 한창 유망주 발굴하는 재미에 빠졌었던 잠피에로 보니페르티에 의해 50억 리라(한화 약 20억원)에 델피에로가 어릴 적부터 팬이었던 구단, 유벤투스로 이적했다.
그리고 1994년 3월 20일, 당시 강팀이었던 파르마와의 경기에서 해트트릭을 기록하며 파르마를 4-0으로 박살을 내 버린다. 이때 유벤투스는 바조를 비롯한 주전 선수들이 부상이 있어 부득이하게 델피에로를 투입한 것인데, 최고의 결과로 돌아온 것. 참고로 이게 데뷔 첫 선발 출전이었다. 이후 유벤투스의 에이스였던 바조를 완벽하게 밀어내며 주전자리를 꿰찬다.[6] 제1기 '''리피의 아이들(Lippi's Children)'''의 시작이었다.
'''빅 이어를 들어올리는 델피에로'''
그의 데뷔 이후 유벤투스는 1994-95, 1996-97, 1997-98, 2001-02, 2002-03 세리에 A 우승[7], 95년부터 98년까지 '''3시즌 연속 UEFA 챔피언스 리그 결승전에 진출'''하여 95-96 시즌에는 우승, 1996-97, 1997-98 시즌 준우승, 2002-03 시즌 준우승이라는 엄청난 위업을 달성했다. 혹자는 이 시기를 유벤투스의 진짜 화양연화라고 칭하기도 하는데, 그 속에서 델피에로는 1997-98 시즌에만 32경기 21골을 넣었고, 챔피언스 리그에서는 10경기 10골로 경기당 1골을 달성하며 득점왕을 석권하기도 했다. 그리고 다비드 트레제게와 영혼의 투톱을 결성한다.
선수로서의 재능도 최고급인데 더불어 멘탈까지 훌륭해 감히 '''멘탈甲'''이라 불러도 무리가 없는 인격적으로도 완성된 사람. 2001-02 시즌부터 안토니오 콘테의 뒤를 이어 주장 완장을 달기 시작했으며, 팀이 2006-07 시즌 칼치오폴리로 인하여 세리에 B로 강등되었고, 알레 자신에게도 수많은 러브콜에 있었음에도[8] 의리 하나로 다비드 트레제게, 파벨 네드베드, 잔루이지 부폰, 마우로 카모라네시 등과 함께 끝까지 팀에 남았으며, 20골이나 득점하여 세리에 B 득점왕을 차지함과 동시에 팀이 세리에 A로 복귀하는데 공헌했다. 이때 '''신사는 숙녀가 원할 때 떠나지 않는 법입니다.'''라는 말을 남겼다.[9] 팀 강등이 결정되자 동료들과 팬들에게 보낸 편지.
카펠로 체제에서는 카펠로가 즐라탄 이브라히모비치를 중요시하고 델피에로도 부상과 슬럼프로 부진하여 후보로 내려갔다. 다만, 2005-06 시즌에는 이브라히모비치는 전 시즌만큼의 활약을 보여주지 못 했음에도[10] 델피에로가 후보로 있던 것을 생각하면 카펠로가 델피에로를 중용할 생각이 없었는 듯. 그러나 칼치오폴리 사태로 강등당하고 즐라탄이 인터밀란으로 이적하자 델피에로는 다시 트레제게와 주전 투톱으로 활약하게 된다.
그리고 복귀시즌에 곧바로 세리에 A 득점왕 접수(21골). 팀은 리그 2위로 곧바로 챔피언스 리그 직행 티켓을 따냈고, 그 때 그의 나이 '''34세'''.
2009-10 시즌, 유벤투스는 페라라-자케로니-델 네리로 이어지는 '''막장 감독 3연타'''로 위기를 맞는다. 2연속 리그 7위로 인해, 칠벤투스라 조롱당하기까지 한 시기에도 홀로 고군분투하며 활약했다. 팀내 최다 경기 출장이면서도 1경기당 0.5 포인트씩은 올렸으며 ''노년 가장'' 이라는 호칭도 이 시기에 불렸다. 2010-11 시즌에는 서포터 선정 팀내 MVP로 뽑혔다.[11]
노년가장 대패로 씨(...)
물론 당시 30대 중반까지 넘겼기에 노쇠화가 이루어지며 풀타임 출장에 난조를 보였으나, 여전히 팀에 공헌했던 모습을 보면 유명한 선수의 이적이 활발하게 이루어지는 현대 축구에서는 그야말로 '''충성심의 화신'''급의 선수로 볼 수 있다.
잘 살펴보면 이 사람도 은근히 선수생활에 굴곡이 많았다. 한창 커리어 하이를 찍던 때에 난데없는 금지약물 복용 혐의를 받지 않나(결국 무혐의였다.), 상대 수비수들의 집중견제로 부상을 달고 산 적도 있었으며, 부상에 잇따른 슬럼프로 한때는 주전경쟁에서 밀려난 적도 있었으며, 모두들 잘 아는 칼치오폴리 사건에 휘말려 들었던 아픈 과거가 있다. '''그럼에도 한결같이 유벤투스를 지키고 있었다.''' 그들이 다시금 이탈리아의 제왕의 자리를 되찾는 그 순간까지.
2011-12 시즌에 들어서 노쇠화로 인한 체력부담으로 선발출장보다는 슈퍼서브로 활약했으며, 그럼에도 출장시간 대 공격포인트 부분에서 팀내 1, 2위를 다투는 아이러니함을 보여주었다(...). 클래스는 영원하다.
2011년 겨울, '''이번 시즌이 유벤투스에서 보내는 마지막 시즌이 될 것이다.'''라는 인터뷰를 하여 유벤투스 팬들이 눈물을 뿌리게 만들었다. 시즌 종료 후 타 리그로 이적할 것이라 했으며, 유벤투스가 아닌 세리에 A에서는 더 이상 뛰지 않겠다고 한다. 팬들과 구단은 피눈물을 흘리며 재계약을 요청했으나 선수 본인의 의지가 확고한 것으로 알려졌으며
2012년 5월, 유벤투스는 37라운드 칼리아리 원정 경기에서 9년만의 세리에A 우승을 확정지었다. 칼치오폴리, 세리에 B 강등, 2연속 리그 7위의 아픔을 딛고 이뤄낸 우승이라 더욱 갚진 결과였으며, 델피에로 역시 마침내 유종의 미를 거두고 떠날 수 있게 된 셈이다.
2012년 5월 13일 이미 리그 우승이 확정된 이후, 아탈란타와의 리그 최종전에 선발출장하여 전반 28분 팀의 2번째 골을 작렬시켰다. 그야말로 마지막 경기에서까지 '''판타지스타'''란 무엇인지를 보여주고 후반 들어 교체되는 순간 유벤투스 스타디움에 모인 모든 관중, 아탈란타 선수들 마저 열렬한 기립 박수를 보냈고, '''경기가 약 3분간 중단'''되며 레전드 of 레전드의 마지막 모습에 박수갈채가 쏟아졌다. 우승팀 입장식에도, 선수단은 물론 팀 스탭들까지 다 입장한 후 마지막으로 입장하며 스쿠데토와 우승컵을 치켜들었다. 이 날 경기를 마지막으로 델피에로는 유벤투스에서의 마지막 시즌을 '''무패 우승'''으로 장식하며 떠난다. 일주일 뒤, 나폴리와의 코파 이탈리아 결승에서 은퇴경기를 치뤘다.
#
시즌 종료 후 그가 구단과 팬들에게 남긴 장문의 이별 편지로 인하여 유벤투스 팬들은 그야말로 눈물의 도가니가 되었다. 구단의 라커룸을 정리하고 약 1개월 정도를 유유자적하며 지냈던 듯. 그리고 여름 이적시장 막바지에 호주의 시드니 FC와 계약, 호주 A리그에 진출하게 되었다.
다음은 편지 전문이다.

2012-06-30

이제 끝입니다. 저와 유벤투스와의 계약은 오늘로서 막을 내립니다.

꽤 오래된 뉴스이긴 해도 '''공식적'''이란 말은 꽤 강하게 다가오는군요. 제게는 슬픈시간은 아닙니다. 전 어떤 후회도 회한도 없습니다. 요즘 전 제가 비안코네리로 지내왔던 지난 시즌들과 추억들 그리고 저의 꿈이 실현되고 있었던 그 순간들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볼 기회를 갖게 되었습니다. 그 수많은 추억들과 기쁨과 환희, 그리고 솔직하게 인정해서 요 근래의 쓰라린 순간까지 오늘 확실하게 보여지고 있었고 토리노에서 가진 나의 마지막 경기후 나눈 포옹 속에서 어느 순간 떠올려진 순간들이 희미하고 거의 사라져가는 것 까지도 보여지더군요. 5월 13일에 찍힌 제 사진에는 제가 영원히 간직하고픈 모든 것들이 제 마음에 영원히 세겨져 있습니다. 잊혀지지 않을 추억으로 말입니다.

얼마전 휴가를 떠나기 앞서 비노보에 있는 제 락커룸을 정리하고 훈련장을 떠날 때, 여러분이 저와 사진을 찍거나, 제 사인을 받기 위해, 또는 저와 악수를 하기 위해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땡볕이 내리쬐는 한 여름 낮이거나 절 기다리시는 걸 몇 개월 동안이나 해 오셨던 팬들 여러분이 기다리고 계시던 그 장소에 멈춰 선 일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젠 제가 여러분에게 작별의 인사와 그동안 저에게 베풀어주신 사랑에 대해 감사드린다는 차례가 되었군요.

선수들은 왔다 갈 뿐이지만 유벤투스는 계속 남아있습니다. 나의 팀동료들도 거기에 있을 것이며 아울러 전 그들에게 무운을 빕니다. 전 언제나 그들의 열렬한 팬으로 남아있을 것입니다. 제 팬들 역시 계속 남아계실 것이고 바로 여러분들이 유벤투스입니다. 여기 남겨진 제 유니폼 역시 전 계속 가감없이 사랑할 것이고 존중할 겁니다. 넘버 10이 들어간 제 이름이 세겨졌던 제 유니폼이 내 후의 어떤 가 입을 것을 생각하니 행복감이 넘칩니다. 아울러 전 그 유니폼을 입게 될 그 누군가 —그가 이탈리아인이든 다른 해외출신이든— 에게 기쁨을 느낍니다. 그 역시 이 유니폼을 그토록 입기를 희망했었을테니까 말이죠. 아울러 그 누군가가 나의 발자취를 따라가고자 한다면 제가 저 이전의 레전드들과 챔피언들의 발자취를 따라가고자 했었던것과 같이 그러려고 한다면 제겐 더 없는 영광이 될 거구요.

내일부터 전 더 이상 유벤투스의 선수가 아닙니다. 그러나 전 언제나 여러분들 중 한 명으로 남아 있을 거예요.

자 이제 새로운 모험을 할 차례로군요. 19년전의 그때의 여름과 같이 전 지금 굉장한 기대감에 부풀어 있습니다.

안녕히 계십시요, 그리고 여러분 모두들 고맙습니다.

알레산드로

떠나는 델피에로에게 유벤투스는 델피에로의 업적을 기려 그를 상징하는 등번호 10번을 영구결번하려고 했으나, 델피에로는 "이 번호가 계속 이어지길 바란다"며 정중히 거절했다. 그리고 10번은 12-13 시즌이 시작될 때까지도 누구에게도 배정되어 있지 않다가, 빅네임 탑클래스 포워드를 원했던 유벤투스에 마침내 카를로스 테베스가 입성하면서 이를 물려받게 받게 되었다.
델피에로는 시드니 FC에 와서도 등번호는 10번을 배정받았는데 델피에로가 시드니 입단식을 치르던 날 시드니 홈구장은 난리가 났다. 시드니의 구장인지 유벤투스 홈인지 분간이 가지 않을 정도.
2013년 1월 19일, 웰링턴 피닉스와의 경기에서 무려 4골을 몰아치며(PK 포함) 팀의 7-1 승리를 견인했다.
2014년 8월 28일, 시드니 FC와의 계약을 연장하지 않고, 새롭게 출범하는 인도 슈퍼리그의 델리 다이모스 FC로 이적하였다. 10경기 출전 1득점. 그러나 애초에 인도 슈퍼리그는 가을 기간에만 치뤄지는 단기 리그이기 때문에 계약 기간을 길게 유지하지는 않았다.
2015년 6월, 이탈리아 언론 가제타 델로 스포르트와의 인터뷰에서 은퇴의사를 밝혔다. 당장 유럽의 코치를 시작할 것은 아니며, 미국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것부터 시작할 것이라고 한다.

2.2. 국가대표 경력


클럽에서의 퍼포먼스와는 대조되는 국대 활약상 때문에 까이는 경우가 상당히 많다. 첫 메이저대회는 UEFA 유로 1996이었지만 이탈리아가 독일, 체코와 한조에 묶이면서 결국 3위로 조별리그 탈락을 하게 되었다. 이후 1998년 프랑스 월드컵에도 출전했으나 로베르토 바조의 백업이었고, 득점도 없었다.
그가 진짜 활약을 해야할 대회가 바로 UEFA 유로 2000이었는데. 비에리가 심각한 부상과, 약물복용 의혹으로 제대로된 컨디션으로 유로에 출장할 수 없었기에 선발은 프란체스코 토티의 몫이되고, 이번에도 그는 토티의 백업이 되었다. 그래도 조별리그 3차전에서 득점에 성공하며 메이저대회 첫 골을 신고한다. 8강전도 교체출장하며 컨디션을 찾아갔고, 4강전에서는 선발출장했지만, 잠브로타가 퇴장당해 수적으로 불리해진 대표팀을 이끌고 인자기와 함께 단둘이서 공격진을 이끌었고, 토티와 교체되었다. '''문제가 바로 이 결승전.''' 교체투입이 된 직후 델 베키오가 선제골을 넣어 리드를 지켜가는 상황에서 그에게 두 번의 완벽한 노마크 찬스가 왔지만 두번다 무위로 날려버렸고 결국 프랑스가 대역전극을 연출하며 우승해버린다.
이후 2002년 한일 월드컵에도 출장하지만, 아주리 군단의 에이스 자리, 등번호 10번 모두 프란체스코 토티에게 빼앗기고 등번호 7번으로 대회를 출장하는 굴욕을 맞이하게 된다.

'''멕시코를 상대로 골을 넣은 델피에로'''
이 대회에서도 그는 토티의 백업일뿐. 그나마 멕시코전에서 극적인 헤더 동점골로 팀을 탈락위기에서 구했다. 그러나 이탈리아의 경기력은 저조했고, 한국과의 16강전에서 그도 선발출장했지만 그 토티가 할리우드 액션으로 퇴장당하며 1-2로 역전패했다.
그리고 UEFA 유로 2004 지역예선에서는 5골을 넣는 활약으로 이번엔 토티와 공존에 성공하여 첫 경기부터 당당하게 선발출장했다. 그러나 1차전에서 토티가 상대선수에게 침을 뱉어 퇴장당하는 변수가 발생했고, 이탈리아도 1, 2차전을 연달아 비기는 졸전을 거듭한 끝에 스웨덴과 덴마크에 밀려 탈락하고 만다. 델피에로 자신도 무득점.

'''독일을 상대로 골을 넣은 델피에로'''
이렇게 국가대표와는 별 인연이 없을 것 같았던 그에게도 기회가 찾아왔으니 바로 2006년 독일 월드컵이었다. 이 대회에서 그는 풍부한 경험으로 주전과 서브를 넘나들며 활약했고, 개최국 독일과의 4강전에서는 질라르디노의 패스를 받아 멋진 쐐기골을 기록하기도 했다.
결승전에서도 교체출장하여 승부차기에서 4번째 키커로 나서 슛을 깔끔하게 성공시켰고, 아주리는 통산 4번째 월드컵 우승을 차지, 델피에로 자신도 국대에서 처음으로 메이저대회 트로피를 들어올리게 된다.
그의 마지막 메이저대회가 된 UEFA 유로 2008에선 부상으로 빠진 파비오 칸나바로를 대신하여 주장 완장을 찼지만 무득점에 그쳤고, 이탈리아도 스페인과의 8강전에서 승부차기 패배하여 탈락했다.
A매치 통산 91경기 27골로 단순히 스텟만 보면 나쁘지 않지만 메이저대회 본선에선 월드컵 2골, 유로 1골로 이름값에 걸맞는 활약을 보이지 못한게 아쉽다.

3. 플레이 스타일



[image][12]
공격과 관련한 모든 분야에서, 즉 드리블, 패싱, 플레이메이킹, 킥 등 공격수로서 모든 면에 있어서 최상급 재능을 지니고 있으며, 노쇠한 이후에도 충분히 먹히는 한방을 가지고 있었다. 키퍼가 도저히 손쓸 수 없는 각도로 슈팅을 날리는 '''델피에로 존'''은 한 때 그의 전매특허였다.
[image]
특히 전혀 예측하지 못할 각도로 뚝 떨어지는 프리킥은 공포 그 자체였다. 1990년대부터 2000년대를 통틀어 최고의 키커를 손꼽을 때 최상위권에 들어가는 S급 프리키커. 특히 2008-09 챔스 조별예선 VS 레알 마드리드 전 때 천하의 카시야스가 손도 못 뻗어 보고 허용한 프리킥은 그야말로 압권이다.
[image]
바로 이것. [13]
그도 사람인지라 나이를 먹다 보니 몸놀림이 예전 같지 않다는 세간의 혹평도 따랐으나, '''정확히는 젊은 시절 장기부상 후 연속된 부상으로 인해 스타일을 바꾸었다.''' 심지어 스트라이커의 최전성기로 평가받는 20대 후반에는 부상으로 인한 기량 하락과 플레이 스타일의 변화로 갓 이적해온 풋내기뿐만 아니라 발레리 보지노프, 라파엘 팔라디뇨과 주전 경쟁을 하기도 하는 등 시련의 시간을 지내기도 했다.[14] 오히려 나이를 먹으며 발 끝이 더욱 날카로워졌다는 호평이 따랐다.
참고로 1997년도 장기부상 이후 계속된 잔부상으로 스타일이 현재처럼 정착된 것뿐이지, 데뷔 시절이나 97년 이전을 보면 호나우두처럼 압도적인 속도로 수비를 터는 플레이에도 매우 능하였다. 인테르 시절의 호나우두의 라이벌로 언론 및 대다수의 팬이 지목한 것이 바로 장기부상 이전의 델피에로. 호나우두의 별명이 일 페노메논(천재), 델피에로의 별명이 일 페노메논 베로(진정한 천재)였다는 점에서도 드러난다.

4. 기록



4.1. 대회 기록



4.2. 개인 수상


  • 발롱도르 4위: 1995, 1996
  • FIFA 100: 2004
  • UEFA 챔피언스 리그 득점왕: 1997-98
  • 세리에 A 득점왕: 2007-08
  • 세리에 A 도움왕: 1999-00
  • 이탈리아 올해의 축구 선수: 1997-98, 2007-08
  • 세리에 A 팬 어워드: 2000-01, 2007-08
  • 세리에 B 득점왕: 2006-07
  • 코파 이탈리아 득점왕: 2005-06
  • 인터컨티넨탈컵 맨 오브 더 매치: 1996
  • A리그 올해의 팀: 2012-13
  • A리그 올해의 골: 2012-13
  • A리그 올스타: 2014
  • 시드니 올해의 선수: 2013
  • 이탈리아 축구 명예의 전당: 2017
  • 시드니 명예의 전당: 2015
  • 유벤투스 역대 베스트 XI: 2017
  • ESM 올해의 팀: 1995-96, 1996-97, 1997-98
  • 팔로네 디 아르젠토: 2008-09
  • 브라보 상: 1996
  • 골든풋: 2007
  • 글로브 사커 어워드 선수 경력상: 2012

4.3. 출전 기록


시즌
클럽
소속리그
리그
FA컵
대륙대회
경기
득점
경기
득점
경기
득점
1991/92
파도바
이탈리아 세리에 B
4
0
0
0
-
-
1992/93
파도바
이탈리아 세리에 B
10
1
0
0
-
-
1993/94
유벤투스
이탈리아 세리에 A
11
5
1
0
2
0
1994/95
유벤투스
이탈리아 세리에 A
29
8
10
1
11
1
1995/96
유벤투스
이탈리아 세리에 A
29
6
2
1
11
6
1996/97
유벤투스
이탈리아 세리에 A
22
8
4
0
6
4
1997/98
유벤투스
이탈리아 세리에 A
32
21
4
1
10
10
1998/99
유벤투스
이탈리아 세리에 A
8
2
1
0
4
0
1999/00
유벤투스
이탈리아 세리에 A
34
9
2
1
9
2
2000/01
유벤투스
이탈리아 세리에 A
25
9
2
0
6
0
2001/02
유벤투스
이탈리아 세리에 A
32
16
4
1
10
4
2002/03
유벤투스
이탈리아 세리에 A
24
16
4
0
4
0
2003/04
유벤투스
이탈리아 세리에 A
22
8
0
0
13
5
2004/05
유벤투스
이탈리아 세리에 A
30
14
4
3
4
3
2005/06
유벤투스
이탈리아 세리에 A
32
12
1
0
10
3
2006/07
유벤투스
이탈리아 세리에 B
35
20
2
3
-
-
2007/08
유벤투스
이탈리아 세리에 A
37
21
3
2
-
-
2008/09
유벤투스
이탈리아 세리에 A
31
13
1
2
9
6
2009/10
유벤투스
이탈리아 세리에 A
23
9
2
0
5
0
2010/11
유벤투스
이탈리아 세리에 A
33
8
4
0
10
3
2011/12
유벤투스
이탈리아 세리에 A
23
3
4
0
-
-
2012/13
시드니 FC
호주 A 리그
24
14
-
-
-
-
2013/14
시드니 FC
호주 A 리그
24
10
-
-
-
-
2014
델리 다이나모스
인도 슈퍼리그
10
1
-
-
-
-

5. 기타


  • 2002 한일 월드컵 끝나고 2003년에 지상파 스포츠뉴스 1주년 특집으로 이탈리아 현지 방문해서 이탈리아선수 인터뷰를 요청하였는데 유일하게 인터뷰를 해준 선수이기도 하다. 한국이 강해서 이겼다고 립서비스까지 해준 알레의 멘탈은 한국 축구 팬들에게 감동을 주었다.
  • 레알 마드리드 CF의 홈구장인 에스타디오 산티아고 베르나베우에서 기립박수를 받은 다섯 사람중 한 명이자 그 중 유일한 비 바르셀로나 선수였으나 15/16 UEFA 챔피언스 리그 16강전에서 프란체스코 토티가 교체 출전하면서 기립박수를 받아 유이한 선수로 바뀌었다.[15] [16]
  • 프로 데뷔는 다른 곳이었지만, 현재는 그냥 유벤투스 그 자체. 유벤투스 클럽 역사상 최다출장 및 최다골, 역대 최장기간 주장 역임 등 나서는 경기 하나하나가 현재 유벤투스의 역사가 되었다.
  • 세리에 A에서만 통산 187골로, 이는 역대 세리에A 최다득점 9위에 해당하는 기록이다.[17] 그리고, 이것저것 대회 다 포함해 비안코네리 유니폼을 입고 "그려넣은" 전체 골 수를 따지면 통산 290골. 세리에 A의 전설 쥐세페 메아자의 기록(인테르-282골)을 깨버렸던, 세리에 A 역사를 통틀어 원클럽 최다득점기록이었다. 이후 이 기록은 프란체스코 토티에 의해 경신되었다. 오오 알레신 오오
  • 선수 통산 클럽 기록은 호주리그, 인도리그 포함 777경기 316골이다.
  • 다만 클럽에서의 대활약과는 대조되는 국대 활약상 때문에 까이는 경우가 상당히 많다. 이때문에 동시대 국가대표 공격수로 라이벌이였던 로베르토 바조보다 저평가받는다.[18] 골도 얼마 넣은 적이 없어서 월드컵에서는 1998년 프랑스 월드컵, 2002년 한일 월드컵, 2006년 독일 월드컵에 출장했으나 2002년 한일 월드컵 조별 예선에서 멕시코전에서 한 골, 그리고 2006년 독일 월드컵 준결승전에서 한 골이 전부다.[19]
  • 역적질 중에서도 가장 뼈저린 것은 UEFA 유로 2000 결승전에서의 역적질. 델 베키오의 선재골로 프랑스에게 불안한 리드를 지키고 있던 아주리에게는 두 번의 완벽한 노마크 찬스가 있었지만 한명의 선수의 연달은 실수로 당시 당대 최강이었던 프랑스의 숨통을 완전히 끊어버릴 기회를 놓쳐버리는데 이것을 놓친 선수가 바로 델피에로. 결국 프랑스가 대 역전 극으로 2:1로 우승해버린다.
  • 묘하게도 AS 로마프란체스코 토티와 비슷한 축구 인생(?)을 살고 있다. 팀에 대한 충성심이나 비슷한 포지션, 그리고 젊은시절부터 주장을 맡은 점과 알레하면 유베, 유베하면 알레이듯, [20] 이러한 것들이다.[21] 차이점이라면 나이는 델피에로가 2살 더 많고, 델피에로는 파도바 유스에서 유베 유스로 옮긴것이고 토티는 어릴때부터 로마의 유스 팀에 속해있었다는 정도이다.
  • 외모는 전형적인 이탈리아형 미중년으로 잘생긴 편으로 인정받는다. 1990년대 유벤투스의 동영상을 보면 델피에로의 20대 시절 모습을 확인할 수 있는데 수려한 외모를 자랑한다. 더군다나 당시 델피에로와 함께하던 유벤투스의 투톱은 필리포 인자기.
  • 오아시스의 리더였던 노엘 갤러거와 친분이 있다. 오아시스의 뮤직비디오에 출연하기도 했고 2006년 독일 월드컵에서는 노엘을 독일과의 4강전에 초대하기도 했고 그 경기에서 이기니까 결승전에 노엘에게 같은 옷을 입고 와달라고 부탁하기도 했었다.
  • 부폰의 2017-18 UEFA 챔피언스 리그 관련 항의성 발언들에 대해서 잔루이지 부폰에게 침착할 것을 요구했다는 이유로 유벤투스 악성 팬덤에게 욕을 먹고 있다. 메드히 베나티아가 강간 발언으로 구설수에 오르고, 조르조 키엘리니가 마찬가지로 과도한 심판 비난으로 구설수에 오른 것에 비해서 델피에로는 부폰이 너무 흥분해서 그렇다는 두둔과 자제를 둘다 시도한 몇 안되는 인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지 악성 울트라스들은 자기팀 레전드를 까고 있는 아이러니한 상황. 해당 경기 심판의 아내에게 살해 문자나 협박이 오고가는 마당에서 유일하게 침착하고 냉정한 판단을 보여줘서 알레의 멘탈은 다시끔 재평가 받고 있다.
  • 카잔의 기적을 보고 한국은 심한 농담을 만들어내는데 익숙한 팀이라고 말했다.[22] 사실 그는 한국과 악연이 있는데, 2002년 한일 월드컵 당시 16강전에서 이탈리아 축구 국가대표팀의 일원으로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과 싸워서 패배했고 당시 막장 심사(...)를 했던 심판에게 강한 분노를 표출했었다. 아마 그게 떠올랐던 모양.[23]
  • 골닷컴에서 시대별 최고의 공격수 5인을 선정했는데, 2000년대 공격수들 중 4위에 이름을 올렸다.

6. 델피에로에 대한 말, 말, 말


'''내 소원은 챔피언스 리그에서 유벤투스를 만나 델피에로와 유니폼을 교환하는 것이다.'''

앨런 스미스

'''나는 델피에로가 4, 5년전과 같은 모습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그는 여전히 뛰어나며 훌륭한 기술을 갖고 있다.'''

알렉스 퍼거슨

'''저는 이탈리아 축구를 굉장히 좋아합니다. 특히 비에리, 토티 그리고 바조를 좋아하죠. 그러나 제가 가장 좋아하는 선수는 델피에로입니다. 그가 보여주는 플레이는 스트라이커라면 정말 모두가 동경할만한 모습이거든요.'''

웨인 루니

'''델피에로는 완벽한 선수이다. 그가 올드 트래포드로 온다면 그건 정말 꿈만 같을 것이다.'''

로이 킨

'''델피에로는 이탈리아에서 가장 무서운 공격수이다. 골과 어시스트 모두 최상의 수준으로 하면서 상대방을 파괴할 수 있는 선수다.'''

라이언 긱스

'''내가 지금까지 가장 상대하기 힘들었던 선수는 알레산드로 델피에로입니다. 그와 상대했을 때 나는 그의 근처에도 갈 수 없었고 그는 나를 경기 내내 질질 끌고 다녔습니다.'''

게리 네빌

'''라치오에는 유벤투스의 델피에로와 같이 시합 내용이 다소 나쁘더라도 단 한 번의 플레이로 국면을 타개할 수 있는 푸오리클라세[24]

가 없습니다.'''

로베르토 만치니[25]

'''나는 앙리가 유벤투스로 가서 델피에로와 같은 월드클래스 선수에게 많은 것을 배웠으면 한다.'''

에메 자케

'''이탈리아에는 최고의 선수가 있어 플레이하기 정말 편합니다. 알레는 정말 위대한 선수에요.'''

필리포 인자기

'''물론 유로 2000에서 가장 주목해야 할 선수는 델피에로다.'''

디노 조프

'''델피에로는 모든 것을 달라지게 할 수 있다.'''

미셸 플라티니

'''우리는 골문 안에 공을 집어넣을 수 있는 선수들을 갖추고 있습니다. 그러나 델피에로가 최고의 컨디션을 보인다면 그는 홀 안에 공을 집어넣을 수도 있죠.'''

체사레 말디니

'''델피에로의 우아한 드리블링과 재기넘치는 개인기는 거친 그라운드를 아름답게 수놓는다. 그는 마치 천재 화가 핀투리키오를 보는 듯 하다.'''

'''그는 진정한 챔피언입니다. 두말할 필요가 없죠. 그의 플레이를 처음 봤을 때의 충격은 플라티니 이상이었으니까요.'''

잔니 아넬리[26]

'''너는 지금 나를 행복하게 해주는 몇 안되는 플레이어야.'''

디에고 마라도나

'''나는 지단에 대한 비난을 옹호한다. 왜냐하면, 그는 특출한 시야를 가지고 있으나 날이 지날수록 그는 플레이하려는 열의가 적어지는 듯 보인다. 그는 미셸 플라티니와 마찬가지로, 필드에 있을 때에 어떤 즐거움도 가지고 있지 않다. 그러나 델피에로는 매우 다르다. 그는 가슴과 정신 속에 축구를 느끼면서 플레이하기를 좋아한다. 그가 운동장에 나와 있을 때, 그가 스스로 즐기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나에게 지단과 델피에로를 택하라면 나는 델피에로를 택하겠다.'''

디에고 마라도나

'''그에 관해선 엄청나게 많은 말들이 있지만, 그는 경기장 위에서 항상 그것에 대한 해답을 보여줬다.'''

하비에르 사네티

'''유벤투스에서 뛰고 싶다. 왜냐하면 그것은 델피에로와 뛸 수 있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나에게 있어서 그는 최고의 영웅이다.'''

지에구

'''세계의 모든 선수 중 신으로부터 가장 다양한 축구적 재능을 부여받은 선수.'''

사이먼 쿠퍼[27]

'''이탈리아에서의 힘들었던 시절은 떠올리기 싫지만 델피에로가 주었던 위로와 도움은 잊지 않고 있다.'''

티에리 앙리

'''비어호프는 그의 힘을, 호나우두는 그의 스피드를 이용하지만 델피에로는 머리를 씁니다. 그는 영리한 선수이죠. 그는 번뜩이는 센스로 평범한 찬스를 최고의 찬스로 만들 수 있습니다.'''

조반니 트라파토니

'''델피에로는 이탈리아인들에게 엄청난 사랑을 받는 선수다. 이제껏 이탈리아 대표팀 선수들 중 가장 사랑받은 선수일 것이다. 그리고 그는 진정한 축구선수이다. 그리고 너무나 인간적이다.'''

조반니 트라파토니

'''오늘 같은 밤에 그가 무엇을 할 수 있는 지를 우리 모두는 알 수 있다. 그가 진정 훌륭한 선수임을 우리에게 보여주었다.'''

조반니 트라파토니

'''유벤투스에는 에이스, 델피에로가 있습니다. 그를 막지 못하면, 유벤투스를 이기는 것은 어렵겠죠.'''

로이 마카이

'''델피에로는 세계 최고의 선수이다.'''

헨리크 라르손

'''이탈리아 역사상 최고의 선수는 델피에로이다.'''

라울 곤살레스

'''이탈리아에서, 제가 가장 좋아하는 선수는 델피에로입니다. 토티도 좋지만 제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델피에로가 한 수 위의 선수입니다. 테크닉도 뛰어나지만, 그는 축구란 세계에서 살아남기 위한 정신력을 가지고 있는 선수입니다.'''

라울 곤살레스

'''이탈리아에서 가장 아름다운 게임을 불러오는 사람.'''

롭 휴즈

'''델피에로는 매우 자극받았고 오늘 밤 자신의 진가를 증명해 보이길 정말로 원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이번 그의 활약에 너무 놀라서는 안된다. 그는 세계 정상급 선수로 지난 10여년 간 그것을 입증해왔다.'''

루이지 리바

'''그를 빼고 유벤투스를 이야기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그가 곧 유벤투스이며, 유벤투스가 곧 델피에로다. 그의 플레이를 보면서 나는 그 놀라운 센스에 넋을 잃고 보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그는 진정한 판타지스타다.'''

루이스 피구

'''알레는 레알의 라울과 굉장히 비슷합니다. 라커룸에서 커다란 영향력을 가지고 있었고 빅클럽의 주장으로서 카리스마 성도 가지고 있어요. 내가 유베에 있던 때는 둘이서 자주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었고 서로의 집에 초대하기도 해서 정말 사이가 좋았어요. 매스컴은 우리들을 정반대의 성격 —나는 차분하고 알레는 화려한 것을 좋아한다고—으로 다루었습니다만 실제 델피에로라는 인간은 정말 조심스러운 스타일입니다.'''

지네딘 지단

'''델피에로 같은 선수는 무슨 일이 있어도 항상 필드에서 플레이해야한다.'''

호나우두

'''델피에로의 요즘 활약은 눈부실 정도다. 하지만 나는 예전에 그가 모든 비난의 중심에 서 있을때에도 그의 능력에 믿음을 가지고 있었다.'''

안토니오 콘테

'''올드 트래포드에서 가장 함께 뛰고 싶은 선수는 델피에로이다. 나는 델피에로에게 특별한 존경심을 가지고 있다.'''

데이비드 베컴

'''그 젊은 나이에 리피의 팀에 가세하게 된 것은 정말 행운이었습니다. 출장 기회는 적었지만, 슈퍼스타 델피에로의 플레이를 바로 눈앞에서 볼 수 있었으니까요. 정말 공부가 되었습니다.'''

후안 파블로 소린

'''제 견해로는 지금의 상황은 위기가 아닙니다. 무엇보다도 델피에로의 역할은 단지 골을 넣는 것만이 아니라 어시스트 맨이 되는 것도 있기 때문이죠. 요즘에 이루어지는 그에 대한 많은 말에도 불구하고 저는 그가 여전히 최고의 이탈리아 선수 중의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주세페 시뇨리

'''델피에로는 말이 필요 없는 월드클래스의 선수입니다, 그는 하는 말을 귀담아듣고, 불평하는 법이 없으며, 시키는 대로 완벽하게 해냅니다.'''

카를로 안첼로티

'''나는 트레제게가 유벤투스에 있으면서 델피에로같은 월드클래스 선수로부터 더 많은 것을 얻을 수 있기를 바란다.'''

로저 르메르

'''델피에로는 이제 30대에 접어들었지만 그는 여전히 위대한 선수다. 그가 최근에 멕시코를 상대로 골을 넣고 이탈리아를 위기에서 구해낸걸 보라. 나는 우리가 이탈리아를 상대할때 그가 가장 위험한 선수라고 확신한다.'''

마크 휴즈

'''델피에로와 함께 뛰는 것은 세계에서 가장 멋진 일이다.'''

안토니오 카사노

'''델피에로는 위대한 캄피오네다.'''

프란체스코 토티

'''알렉스에게는 다시 일어서는 힘이 있다. 보통 이상으로 정신적인 힘이 있으니까.'''

빈첸초 몬텔라

'''유벤투스에서 가장 무서운 선수는 델피에로일 것이다. 그를 경계해야 한다.'''

안드리 셰브첸코

'''내게 가장 인상 깊은 공격수는 델피에로다. 즐라탄 이브라히모비치는 대담하지만, 델피에로보다 더 강력한 선수는 없다.'''

필립 멕세

'''이탈리아에서 뛰어보고 유벤투스의 델피에로의 플레이에 감동하였습니다. 그는 지금까지 많은 역경을 헤쳐나간 강인한 정신력을 가진 선수입니다.'''

카카

'''델피에로는 대표팀에서 멀어지고 있었지만, 여기까지 우여곡절 끝에 도착했다. 그는 결코 죽지 않는 인간이다.'''

젠나로 가투소

'''델피에로는 위대한 선수다. 그의 과거와 그의 경기를 안다면 그를 존중할 수 밖에 없다.'''

즈보니미르 보반

'''그는 뛰어난 선수이자 위대한 인간이다. 그는 어려운 짐을 떠안고 있었고 결국 이를 감당해냈다. 그는 결코 트러블을 조장하는 선수도, 어떤 것에 대해 불평하는 선수도 아니다. 그는 분명 우리 팀의 기둥이며 팀을 우승으로 이끌고 말 것이다. 나는 시즌 시작 전부터 이같이 확신했고 지금은 더 큰 확신을 하게 되었다.'''

'''그는 항상 훈련장에 모두에게 편안한 말을 하며 웃으면서 옵니다. 겸손함.. 이것이 그의 대단한 점입니다. 그는 위대한 사람입니다.'''

알레시오 타키나르디

'''그가 기록한 골은 내가 항상 원했던 그런 득점이었다. 재능과 기술, 힘과 냉철함이 모두 배어있는 그런 골이었음은 물론이다. (아버지의 임종으로) 비통한 한 주를 보냈던 그가 경기에서 보여준 활약은 선수로서의 델피에로이기 이전에 한 인간으로서의 그에 대한 모든 것을 말해주기에 충분했다. 유벤투스 팬뿐만 아닌 모두가 이를 인정하리라고 나는 생각한다. 알렉스는 유벤투스와 8시즌을 함께 하고 있고 클럽의 현재 역사를 만들어 가는 데 있어 그가 중추적인 역할을 차지하고 있음은 부인할 수 없다.'''

로베르토 베테가

'''진정한 델피에로가 돌아왔다.'''

치로 페라라

'''그는 생각이 깊고 침착한 사람입니다. 특히 제게 큰 인상을 준 것은 그가 자신의 부상에 임하는 자세였습니다. 그는 논란이 될만한 어떤 말도 함부로 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늘 혼자 스스로 생각했고 프로답게 행동했습니다. 그리고 바조와 마찬가지로 그가 경기에서 폭발한다면 모든 아주리 선수들 역시 동요되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델피에로는 제가 이 스포츠에서 만난 최고의 사람입니다.'''

파비오 칸나바로

'''델피에로는 위대한 선수다. 그는 오늘도 단 몇분 만에 그 위대함을 증명했다.'''

'''델피에로와 함께라면 모든 것이 가능하다. 알렉스에게 볼을 맡겨 스페이스에 뛰어 들면, 거기에 제대로 볼이 나온다. 몹시 편하게 플레이를 할 수 있다.'''

'''델피에로는 진정 위대한 선수다. 그건 그가 그라운드에 들어설 때부터 벌써 그의 존재감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델피에로가 유베와 이탈리아에서 플레이해온 것을 생각하면 그를 비판하는 건 바보 같은 짓이다.'''

'''제 생각엔, 부폰이 발롱도르를 수상할 자격이 있다고 생각해요. 그러나 저는 아직도 델피에로가 그의 커리어에서 발롱도르가 없다는 것이 놀랍습니다.'''

잔루카 잠브로타

'''델피에로는 누구에게 비난받을 레벨의 선수가 아니다. 알렉스는 유베를 더 높은 경지로 오르게 할것이며, 그가 왜 위대한지를 여러분들은 알게 될 것이다.'''

잔루이지 부폰

'''델피에로는 우리 구단을 사랑하며 이번 시즌 부적같은 존재로 다른 선수들에게 격려가 될 것이다. 알렉스는 전 시즌에 했던 것처럼 팀을 통솔할 것이다. 그는 우리 팀의 타고난 리더고, 우리는 오래 전에 함께 플레이했었다. 역할이 바뀌긴 했지만, 우리가 팀메이트로 함께 쌓은 경험은 절대 바꿀수 없을 것이다.'''

디디에 데샹

'''유벤투스에서 뛰는 것은 영광이다. 그리고 이 클럽의 르네상스의 일부가 되는것이 흥분된다. 그리고 캡틴 델피에로가 남기로한 결정은 우리 모두에게 엄청난 자극이다. 내 생각에 그가 유베에 남는것은 우리 모두에게 유베에 남을 이유를 준다. 함께 유벤투스 역사의 다음 챕터를 쓰기위해.'''

조르조 키엘리니

'''델피에로는 나의 우상이다. 늘 그와 플레이하고 싶었으며, 그가 그랬던 것처럼 함께 승리하고 싶다. 나는 그와 함께 뛴다는 것에 매우 흥분되어있다. 그는 팀을 위해 그의 모든것을 주고, 팀이 그를 가장 필요로 할때엔 적절하다. 그에게 선수로서, 사람으로서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는 경이적인 사람이다. 진정한 월드클래스.'''

발레리 보지노프

'''만약 그가 골든볼을 수상한다면, 나에게 있어서도 최고의 기쁨일 거에요. 델피에로는 그만큼의 가치가 있는 선수니까요. 그리고 그건 유베가 챔피언스 리그에서 우승한다는 거니까요!'''

파벨 네드베드

'''그는 예외적인 사람이고, 누군가에게 자신을 증명할 필요가 전혀 없습니다. 델피에로는 환상적인 사람이자, 선수입니다.'''

마우로 카모라네시

'''알레는 구단 역사의 일부이고, 우리 구단의 심볼이고 정신력이다. 그는 도전을 좋아하는 사람이고 역사에 기록을 남긴 사람이다. 그는 영원한 우리들의 주장이며, 유벤투스의 상징이다.'''

다비드 트레제게

'''내가 보기에는 델피에로가 토티보다 더 위협적이다.'''

에메르송

'''나에게 가장 큰 인상을 남긴 선수는 델피에로다. 그의 사람됨이나 기술적인 위대함은 우리 모두에게 귀감이 되고 있다. 그는 유벤투스의 심볼이며 깃발과 같은 존재다. 나는 여태껏 그와 같은 플레이어를 본 적이 없다.'''

아드리안 무투

'''그는 위대한 선수고, 또 위대한 주장입니다. 그는 환상적인 선수이며 그가 클럽 통산 최다 득점 기록을 경신한 것은 나에게도 큰 기쁨입니다.'''

즐라탄 이브라히모비치

'''경기장에서나, 훈련장, 그리고 라커룸에서도 델피에로는 항상 유벤투스를 이끄는 선수며, 그는 항상 훌륭하고 진지한 선수다.'''

파비오 카펠로

'''델피에로와 유벤투스는 서로 분리될 수 없는 관계이며 그가 유벤투스를 떠난다고 해도 허가하지 않을 것이다.'''

프란초 그란데 스테벤스[28]

'''이번 시즌 그는 많은 경기에서 승리를 이끌어냈다. 상당 경기를 벤치에서 대기했지만, 그는 대부분의 경기를 결정지었다. 델피에로는 대표팀에서도 팀의 핵심이다. 그는 82년 디노 조프처럼 이번 월드컵에서 이탈리아의 구심점이 될 것이다.'''

마르코 타르델리

'''알렉스가 보니페르티의 최다 득점 기록을 경신했을때 나는 그를 불러 이렇게 말했어.
"이봐 알레산드로, 나는 네가 부러워. 너는 클럽 최고의 레전드가 되었잖아."'''

마르첼로 리피

'''델피에로는 단지 골을 넣는 것 뿐 아니라 그의 플레이 면에서도 모든 비안코네리의 중심이다. 그는 12년 전에도 이미 완성된 선수였고 20살이라고는 믿을 수 없이 성숙한 플레이의 선수였다. 지금도 예전 모습 그대로를 유지하고 있는 그가 가고 있는 길은 성공적이다. 델피에로라는 남자가 나를 기쁘게 해주고 델피에로라는 선수가 오늘을 새롭게 만들어 주고 있다. 그가 1분을 플레이하든 벤치에 앉아있든 그는 최고다.'''

마르첼로 리피

[1] 영어를 제외한 로망어게르만어권 인명의 전치사나 관사는, 발음의 변화를 반영하지 않은 채 뒤 요소와 붙여 적는다. 따라서 '델'과 '피에로'는 붙여 적어야 한다.[2] 2006년 FIFA 월드컵 수훈, 이탈리아 공화국 공로장 4등급 장교장 Ufficiale Ordine al Merito della Repubblica Italiana[3] 이때까지는 1군과 유스를 번갈아가며 뛰었다.[4] 이건 재능문제가 아니다. 축구전술의 흐름상 안 나오는게 당연하다. 판타지스타라는 스타일 자체가 유기적인 압박이 중시되는 현대 축구에서 주류가 될 수 없는 스타일이다. 멀리갈거 없이 원조 판타지스타 로베르토 바조조차 아리고 사키, 파비오 카펠로, 마르첼로 리피같은 당대 최고의 명장들에게 천덕꾸러기 취급받으며 볼로냐와 같은 중하위권 팀으로 떠나야했다.[5] 즉 재능적으로는 델피에로, 판타지스타와 유사하거나 동일 혹은 넘어선다하더라도 현대축구에서 설 자리가 없는 것이다. 흡사한 축구 스타일을 앞세워 새로운 판타지스타, 제2의 델피에로라 불리는 유벤투스 후배 파울로 디발라가 있긴 하지만 디발라 또한 맞춤 전술이 필요하다는 까다로운 한계가 있다.[6] 실상 절묘하게 바조의 슬럼프가 겹치며 바조 안습의 역사가 시작되는 순간이기도 했다. 플레이스타일도 비슷한 데다 감독 말도 잘 듣는 어린 델피에로를 중용한 리피 감독의 용병까지 겹쳐 소속팀에서는 물론 국대에서까지 델피에로에게 밀려버리게 된다. 등번호까지 뺏긴다(...).[7] 2004-05와 2005-06은 박탈당했다. 자세한 것은 칼치오폴리 문서 참조.[8] 그동안 델피에로를 눈여겨보던 맨유알렉스 퍼거슨 감독도 직접 영입의사를 타진했다.[9] 유벤투스 팬들의 애칭이 '''올드레이디'''인 것을 이용한 언어유희. 델피에로가 말한 신사는 '''젊은이'''를 뜻하는 유벤투스 선수들이며 숙녀는 '''올드레이디''' 팬들을 말하는 것이다. '''한 마디로 유벤투스 선수들은 팬들을 떠나지 않겠다는 뜻.'''[10] 아약스 시절엔 호리호리했지만 유베에 오면서 20kg 가량 벌크업을 하였다. 그리고 이로 인해 다음 시즌에 체중 관리에 실패하면서 움직임이 둔해져 시즌 전반기에는 꽤 부진한 모습을 보였다.[11] 이미 96년도 시즌에 받은적이 있다. 15년이 지난 지금 또 받다니 당시의 유벤투스의 상황을 말해주는듯 하다.[12] 2008/09시즌 UEFA 챔피언스 리그에서 레알 마드리드 CF를 상대로 선취골을 뽑아내는 장면.[13] 보면 알겠지만 벽 세우는 위치가 이상하다. 델피에로가 먼 포스트 쪽으로 감아차는 것을 의식해서 저렇게 세운듯.[14] 최종 승자는 델피에로였다.[15] 나머지 5명은 디에고 마라도나 , 요한 크루이프, 호나우지뉴, 안드레스 이니에스타.[16] 코스타스 마놀라스도 있긴 하다. 다른 이유 때문이긴 하지만...[17] 2006-07 세리에 B에서 넣은 20골을 포함하면 208골. 7위까지 단박에 UP![18] 판타지스타로 팀을 위기에서 구해내는 영웅적 기질이 있었다. 특히 1994 미국 월드컵 토너먼트에선 디노 바조의 1골을 제외하곤 본인이 모든 골을 집어넣었고 16강전 역전승, 8강전 결승골, 4강전 멀티골로 결승전까지 팀을 멱살잡고 캐리했다. 그러나 결승전 승부차기에서 마지막 키커로 실축하며 온갖 욕을 얻어먹고 활약이 묻혀버렸다.[19] 연장후반 119분 파비오 그로소의 골이 터진지 얼마되지도 않았는데 추가시간에 역습으로 집어넣으며 독일을 완전히 무너뜨렸다.[20] 토티도 로마나 마찬가지이므로.[21] 다만 비슷한 포지션이라 해도 델피에로는 좀 더 섀도우 스트라이커로 한정 된다. 토티의 경우는 공격형 미드필더부터 최전방 스트라이커까지 소화할 수 있다.[22] 농담이라고 해도 믿기지 않을 만큼의 기적적인 이변이라는 뜻이다.[23] 지금도 이탈리아인들은 당시 심판을 씹어대고 있지만, 사실 크리스티안 비에리의 코뼈 부러뜨리기에 경고 하나 안 하는 등 한국과 이탈리아 모두에게 막장 심사를 행했다(...)[24]일류를 뜻하는 이탈리아 용어.[25] 라치오 감독 재임시절[26] 존 엘칸의 조부이자 안드레아 아넬리의 큰 아버지. 유벤투스 前 명예회장이자 피아트 前 회장, 정치인. 타계 이전에는 이탈리아에서 가장 재산이 많은 사람이었다.[27] 유명 축구칼럼니스트[28] 유벤투스의 前 회장이자 現 명예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