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부씨
1. 기원
시조는 '''부을나(夫乙那)'''이다. 부씨는 옛날 탐라국(耽羅國, 제주특별자치도)의 지배씨족으로서, 이들 세 성의 시조 탄생에 대하여 삼성혈(三姓穴)의 전설이 널리 알려져 있다. 제주도에는 본래 사람이 없었는데 삼신인(양을나, 고을나, 부을나)이 한라산 북쪽 기슭 모흥혈(毛興穴)에서 솟아 나왔다고 한다. 이들 삼신은 짐승을 사냥해서 살았는데, 어느 날 동쪽으로부터 상자 하나가 바다로 떠내려 와서 열어보니 그 속에는 세 명의 미녀와 곡식의 씨앗, 망아지, 송아지가 들어 있었다. 삼신이 세 명의 미녀를 각각 배필로 맞아 목축과 농사를 지어 살았다고 한다. 그중 부을나가 제주 부씨의 시조가 되었으며 본관을 제주로 하였다.
후손 부계량(夫繼良)은 신라 태종 무열왕 때 양탕과 함께 입조하여 왕자작을 받고 부씨 성을 확고히 하였다. 부여계(夫麗季)는 탐라 장수로 신라 문무왕의 탐라 경략 때 신라군에 맞서 격렬히 싸웠으나 중과부적으로 최후를 맞아 순절하였다. 이때 신라군에 의해 부씨 후손들은 대부분 도륙당했다. 그러나 부계량과 부여계의 행적은 삼국사기 등의 정사에 전혀 언급되지 않으므로, 후대의 족보 편찬자가 창작해낸 설화임이 유력하다.
이후의 상계는 알 수 없고, 부언경(夫彦景)[1] 을 족보상 1세 조상으로 봉대하고 있다.
2. 인구
2015년 기준으로 부씨 성의 인구는 10,536명(제주 부씨 10,222명 + 기타 314명)이다. 본관이 본관인 만큼 전체 인구 중 약 48.7%에 해당하는 5,135명이 제주특별자치도 관내에 거주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1930년도 국세조사 당시에는 부씨가 전국에 885가구 있는 것으로 나타났었는데, 이 중 703가구(약 79.4%)가 전라남도 제주도[2] 에 거주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 후 처음으로 성씨·본관 조사가 시행된 1985년 인구조사에서는 총 8,565명 중 5,096명(약 59.5%)이 제주도에 거주하는 것으로 나타났으며, 2000년도 인구조사에서는 총 9,470명 중 4,985명(약 52.6%)이 제주도에 거주하는 것으로 나타나는 등 제주도에 거주하는 부씨 인구 비율이 조사할 때마다 점점 줄어드는 것을 알 수 있다.
3. 집성촌
-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동홍동·토평동
-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성산읍 시흥리
-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구좌읍 하도리[3] ·상도리·세화리·평대리[4]
-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조천읍 대흘리
4. 인물
제주 부씨 인터넷족보에서 각종 정보를 검색할 수 있다. 다만 아직 족보에 올라가지 않은 인물도 많다.
- 부공남(夫公男, 1953~) - 20세. 제주도 교육위원
- 부구욱(夫龜旭, 1952~) - 21세. 판사 출신, 영산대학교 2~6대 총장이자 학교법인 공동 설립자인 부봉환·박용숙 부부의 장남이다.
- 부덕량(夫德良, 1911~1939) - 독립유공자
- 부덕환(夫德煥, 1908~1944) - 18세. 독립유공자
- 부만근(夫萬根, 1942~) - 23세. 제주대학교 6대 총장
- 부상일(夫相一, 1971~) - 23세. 정치인
- 부석종(夫石鍾, 1964~) - 20세. 군인, 제34대 해군참모총장.
- 부성철(夫聲喆, 1972~) - 24세. 드라마 프로듀서#
- 부순희(夫順姬, 1967~) - 사격선수. 2006 도하 아시안 게임 동메달리스트
- 부승관(夫勝寬, 1998~) - 세븐틴 메인보컬[5]
- 부승림(夫升琳, 1905~) - 21세. 독립유공자
- 부완혁(夫琓爀, 1919~1984) - 20세. 민족문제연구소가 발표한 친일인명사전 수록자 명단 중 관료 분야에 분류된 인물이다. 《조선일보》 주필과 《사상계》 발행인으로 활동하였다. 율산그룹으로 유명했던 신선호의 장인이다.
- 부용찬(夫用贊, 1989~) - 22세. 배구선수
- 부장원 - 기자
- 부장환(夫章煥, 1911~1988) - 18세. 독립유공자
- 부제만(夫齊晩, 1976~) - 23세. 한양대학교 부교수
- 부좌현(夫佐炫, 1956~) - 23세. 전 국회의원
- 부지영 - 영화감독
- 부춘화(夫春花, 1908~1995) - 21세. 독립유공자
- 부현석(夫炫晳, 1995~) - 래퍼
- 부희령(夫希玲, 1964~) - 작가
[1] 조선 초에 교위와 별장을 지냈다고 한다. 증손자 삼로(三老)가 1450년생이고, 삼로의 장남 유렴(有廉)이 1483년생이며, 유렴의 아들 세영이 1510년생이므로 부언경은 대략 1360년쯤 태어났을 것이다.[2] 제주도는 해방 후인 1946년 8월 1일에서야 전라남도에서 분리되어 독립적인 광역자치단체가 되었다.[3] 독립유공자 부덕량·부승림·부춘화와 부좌현 전 국회의원, 부만근 제주대학교 6대 총장이 이 마을 출신이다.[4] 정치인 부상일이 이 마을 출신이다.[5] 아는 형님에서 밝히길, 어머니 성함은 좌씨라고 한다. 따라서 본인은 부좌집안이라고 칭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