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나스 사빔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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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nas Malheiro Savimbi 조나스 말레이루 사빔비
1934~2002. 02. 22.
1. 개요
2. 일생
2.1. 초기
2.2. 앙골라 내전
2.3. 몰락과 사후
3. 사빔비는 억울하다(?)
4. 기타


1. 개요


앙골라군벌이자 정치인이다. 과거 포르투갈 지배를 받던 앙골라에서 무장 투쟁을 하며 독립운동에 헌신했지만, 정작 독립이 된 뒤에는 전범으로 전락한 인물이다. 내전에서 패전해 죽어버렸기에 권력을 잡지는 못했지만 그의 일생은 아프리카의 전형적인 독재자들의 삶과 많이 비슷하다.

2. 일생



2.1. 초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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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NLA 기
모시쿠 주에서 철도 역장의 아들로 태어난 그는 가톨릭 학교에서 다니면서 기초 교육을 받았고 커서 포르투갈 리스본 대학교에서 의학을 전공했고 스위스 로잔 대학교에서 정치학박사학위를 받았다. 하지만 전문교육을 받을수록 앙골라인에 대한 차별 및 포르투갈의 압제에 불만을 가지게 되었고 앞서 독립투쟁을 벌이던 홀덴 로베르투(1923~2007)와 뜻을 맞춰 로베르투가 거느리는 앙골라 민족 해방전선((FNLA)에 가입했다. 그러나 바콩고족 중심의 FNLA와 갈등을 빚어 1966년에 FNLA에서 분리독립하여 따로 앙골라전면독립민족동맹(UNITA)을 만들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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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NITA 깃발.
하지만 마오이즘 사상을 가진 일부 동지들도 받아들이고 중화인민공화국의 지원을 받았기에 무조건 반공 우익은 아니었다. 물론 중국이 적의 적은 내 친구라는 논리로 미국과 밀월관계이기도 했지만 말이다.
여하튼 미국, 이스라엘, 소련, 중국등 세계 주요 군사 강국들과 알제리, 튀니지, 자이르, 잠비아, 탄자니아 같은 아프리카 국가들의 지원 아래에 포르투갈군에 무력 저항을 벌이던 끝에 1975년 앙골라는 독립을 이루게 된다.

2.2. 앙골라 내전


그러나 독립을 이루자마자, 서로 독립된 신생 국가의 정권을 차지하고자 포르투갈과의 독립전쟁을 벌였던 무장 독립군 세력들이 충돌하면서 30년 가까운 지겨운 앙골라 내전이 벌어지게 되었다. 그리고 사빔비는 UNITA를 조직하여 정부군인 MPLA와 맞서게 된다.
그리고 사빔비는 이때부터 변질되기 시작했다. 비록 우파라고는 하지만 공산주의자들도 어느 정도 수용하여 독립 하나에 전념하던 유연한 모습은 온데간데 없이 권력 하나만을 목표로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는 전형적인 아프리카식 정치인이 되었고, 보수우익 민족독립군인 앙골라 민족해방전선(FNLA)과도 갈등을 빚었다. 그밖에도 좌파 세력인 앙골라 해방인민운동(MPLA)이나 한때 자신이 가입했던 앙골라 민족 해방전선(FNLA)과도 서로 전쟁을 벌이며 앙골라는 그야말로 헬게이트로 전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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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골라 해방인민운동(MPLA) 깃발.
이 와중에 미국이나 서구권, 이스라엘, 중국은 다른 이유는 다 빼고 우파에 반소련이라고 하여 사빔비의 UNITA를 지원했고, 소련이나 동독을 비롯한 공산권은 앙골라 해방인민운동(MPLA)을 지원하며[1] 앙골라도 한반도처럼 냉전의 대리전 전쟁터가 되어야 했다.
이런 내전 와중에 자기에게 구호품 절반을 내놓지 않았다고 UN구호물품을 실은 수송기를 격추시키며 국제적으로 막장성을 과시했다. 게다가 다이아몬드 광산을 독차지하면서 일꾼을 악랄하게 부려먹었으며, 소년병을 강제로 동원해 약물 중독시켜 살인하게 만들기도 했다. 한마디로 말해 독립투사의 면모는 이제 하늘나라로 떠나고, 현실의 사빔비는 권력 하나만을 목표로 하고 온 나라를 희생시키는 전형적인 아프리카 군벌로 타락한 것이다. 이러다 보니 MPLA의 막장성 때문에 UNITA를 지지하던 이들조차 등을 돌릴 정도로 앙골라에서도 증오를 많이 받았다. 이러자 미국 국내에서도 저런 인간을 우리가 무기 지원하는 건 아프리카에서 반미감정만 일으킨다며 비난 여론이 거세졌고 이후 로널드 레이건이 물러나고 미국 대통령이 된 조지 허버트 워커 부시는 1989년 사빔비에 대한 군사 지원을 중단했다.
한편 미국이 사빔비에 대한 지원을 끓자 사빔비는 미국으로 가서 미국 외교관들과 국회의 상원 의원을 만나며 우리 군대에 대한 무기 원조를 끊어버리면 앙골라는 MPLA 빨갱이 놈들이 지배하는 공산당 독재 국가가 되어 그놈들 반드시 보복 탄압을 우리들에게 기어코 할 텐데 이래도 되냐? 이 배신자 양키놈들아! 라며 격렬하게 항의하고 미국 정부의 군사 지원 중단 조치를 철회해 달라고 생떼를 부렸다. 그러나 미국에서도 워낙 악명이 높아 지원을 재개하지 않았다. 다음해인 1991년, 소련이 무너지고 앙골라 내전 당시 MPLA을 돕던 쿠바군과 소련군이 철수하여 냉전이 크게 약화된 상황에 처하게 되면서 1992년에 미국과 유엔의 중재로 합법적 총선이 이뤄지지만 사빔비는 총선에서 자신이 MPLA 소속의 에두아르두 두스 산투스 대통령에게 패배하자 선거 결과에 불응하고 다시 내전을 일으키면서 10년이나 다시 앙골라를 지옥으로 만들었다. 1994년 UN이 중재한 평화 협정에 다시 서명해 부통령 자리가 제안되었으나 오래안가 거절하고 MPLA 정권을 상대로 다시 내전을 벌이게 되었다.[2]
미국은 또 다시 잠깐 사빔비를 지원했으나 당연히 국제적 비난에 처했고 결국 완전히 지원을 중단했다.[3] 그리고 남아공은 알다시피 백인 정권이 무너지면서 역시 지원이 끊어졌고 우습게도 미국이 지원을 끊어 버리자 한때 그를 지원하던 이스라엘은 반 사빔비 세력에게 무기를 팔고 훈련을 겸할 겸, 이스라엘군을 몰래 용병으로 파병하여 사빔비 측 군대랑 전투를 벌이게 했다. 이제는 정부군이 되어버린 MPLA와 이스라엘군 일부, 그리고 한때 그를 지원하던 남아공도 특수부대를 파병하여 그와 맞서 싸웠다. 게다가 장기간에 걸친 오랜 내전과 내전 당시 UNITA 반군이 저지른 전쟁범죄에 가족을 잃어 그에게 원한을 가진 앙골라 국민들도 모조리 MPLA 앙골라 정부군을 지지하면서 그야말로 고립무원이 되어 버렸다.

2.3. 몰락과 사후


그래도 독립투사 출신의 이미지와 리더십은 어디 가지 않아서 불리한 조건 하에서도 2002년까지 처절하게 MPLA 앙골라 정부군에게 대항하였다. 그러나 결국 서서히 장비나 인력도 한계가 오며 거듭되는 패전 속에 UNITA가 장악하던 영토와 도시들 대부분을 잃고 사빔비는 고향인 목시코 주로 퇴각하여 목시코 주의 마지막 남은 반군 점령지에서 정부군에게 항전했다. 그나마 자신의 고향이기에 여기서에서도 지지도가 높았지만[4] 전력의 열세를 이기지 못했고, 결국 2002년, 2월 22일 고향인 목시코 일대에서 이스라엘 용병부대, 남아공 특수부대, MPLA 정부군의 습격을 받아 결국 전사했다. 시체에는 15발 이상 총알이 머리에서 발견됐으며 80발이 넘는 총알이 온 몸 곳곳에 박혀 있었다고 한다. 이 시체는 앙골라 국영TV로 영상이 보도되었고 최종 사망이 확인된 뒤에 매장되었지만 2008년 1월 3일 무덤이 폭파되어 시체는 토막나 무참히 거리 곳곳에 내던져지는 비참한 꼴을 당한다. 이 당시, 머리는 잘려서 나무에 매달려 사진까지 찍혔다.
그가 죽고 2인자인 안토니오 세바스티앙 뎀보(1944~2002)가 UNITA를 이끌려고 했으나, 그도 전투에 다친 상처가 덧나 사빔비가 죽은 지 겨우 사흘만인 2월 25일에 사망했고, 1인자였던 사빔비와 2인자였던 뎀보가 연이어 죽으면서 UNITA는 구심점을 잃게 되었다. 이에 파울로 루캄바를 비롯한 UNITA의 남은 반군 지도부들은 MPLA의 보복 금지 및 정치권 참여 약속을 조건으로 정부군에게 항복하여 내전이 끝났다. 이 때 보복 살인이나 보복 행동이 금지되어 이들 병력 3만여 명이 무장해제와 동시에 항복했으며 루캄바를 비롯한 간부들은 무장 해제를 대가로 정치권에 들어왔고 그의 정당인 UNITA는 현재도 앙골라의 제1야당이다. 그러나 과거 앙골라 내전 당시 반군 시절에 자행했던 학살, 고문, 탄압 등 전쟁범죄 전력들이 수도 없이 많다보니 현 여당인 MPLA가 독재에 가까운 장기집권과 부정부패로 악명이 높음에도 앙골라 국민들에게 큰 지지를 받지 못하고 있는 중이다.

3. 사빔비는 억울하다(?)


사실 사빔비만 나쁜 놈이라고 말할 순 없다. 물론 사빔비가 내전 중에 전쟁 범죄들을 저지른 건 사실이다. 그러나 자신과 적대관계에 있는 MPLA의 조제 에두아르두 두스 산투스 전 앙골라 대통령과 산투스의 전임이자 옛 주군이던 아고스티뉴 네투 전 대통령,[5] 루치오 라라 전 MPLA 앙골라 정부군 사령관, 과거 UNITA로 분가하기 전에 자신이 예전에 소속돼 있었고 MPLA의 네투, 산투스와 함께 사빔비의 또 다른 경쟁자였던 FNLA의 홀덴 로베르투 전 의장 역시 역시 앙골라 내전 중에 소년병을 강제 동원하고 반대파 세력들에게 학살과 탄압을 자행했던 바가 있다. 사실 앙골라 내전 당시 사망자 수치로만 치면 사빔비보다 산투스와 네투가 더 많이 죽였다는 주장도 있을 정도다. 그리고 미국이 사빔비에 대한 지원을 중단한 이유는 사빔비가 잔혹했기 때문이 아니라 냉전이 끝나면서 미국 입장에서 사빔비가 더 이상 필요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1992년에 치른 첫 민주 총선은 말이 합법이었지 실상은 부정선거였다. 더구나 사빔비는 결과에 즉시 불복하고 내전을 재개한 것이 아니다. 1차 투표에 산투스가 가장 많은 표를 얻긴 했지만 과반수를 얻진 못했고 헌법에 따라 가장 많은 표를 얻은 두 사람이 2차 투표에 출마한 뒤 과반수를 얻은 사람이 대통령이 되기로 예정되어 있어서 사빔비는 UNITA의 2인자를 루안다로 보내 2차 투표 시기를 협상하려 했다. 그런데 MPLA는 '''협상하러 온 UNITA의 2인자는 물론 루안다에 있는 UNITA 지지자들까지 죽여버렸다.''' 이 사실을 알고 격분한 사빔비는 선거를 포기하고 내전을 재개했다. 그리고 1994년 산투스가 사빔비에게 부통령 자리를 제안했을 때 이를 거절한 것도 사빔비로서는 산투스의 진의를 의심하고도 남았다. 이미 MPLA 측에도 앙골라 부통령이 있는 상황에서 제2부통령직을 제안받은 데다가 애당초 부통령은 실권이 있는 자리가 아니었다.[6] 게다가 UNITA의 무장해제를 전제조건으로 내밀었는데 사빔비가 그런 제안을 덥석 받아들일 수는 없었던 것이다. 당장 그런 식으로 투항했다가 나중에 UN이 관심 좀 줄이자마자 뒤통수 맞은 사례가 아프리카나 중동 등 비서구권 세계에서는 역사적으로 수도 없이 많다. 물론 결과적으로 보면 2002년 내전이 끝나고 UNITA의 무장해제가 이뤄진 이후 MPLA가 약속을 지키기는 했지만 말이다.

4. 기타


콜 오브 듀티: 블랙 옵스 2에 등장한다. 주인공 알렉스 메이슨의 조력자로 등장, 유탄발사기와 칼을 들고 최전선에서 적을 도륙내는 용맹한 모습에, 위기의 순간에 무장헬기를 몰고 와서 메이슨을 구하기까지, 의리있는 대장부로 묘사되어있다. 게임에서 묘사된 모습만 보면 딱 용맹하고 의리 있는 사나이다. 다만 이 모습은 이미 망가지기 시작했던 내전기 중반부가 아니라 포르투갈군을 상대로 독립투쟁하던 시절을 기준으로 그린 걸로 보는 게 정확할 듯. 애초에 대사중에 "MPLA에게 죽음을!(Death to the MPLA!)" 이라는 대사 까지 있을 정도다.
그런데 이 일로 사빔비의 유족들이 2016년 1월 제작진이 사빔비를 야만인으로 묘사했다며 액티비전 블리자드의 프랑스 지사에 100만 유로의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다. 이에 앙골라에서는 적반하장이라느니 제대로 잘 묘사했다며 유족들을 비아냥거리고 있다. 물론 사빔비에게 당한 피해자들은 오히려 '''영웅으로 묘사했다며 액티비전을 욕했다.''' 사빔비에게 가장 동정적인 여론조차 그놈이 그놈 이런 식이다. 프랑스 지사에 소송을 한 이유는 앙골라에 살았다간 국민들에게 맞아죽을 판이라 사빔비의 유족들은 프랑스로 건너가 살고 있다. 프랑스 여론도 승소 가능성이 없는 유족들이 그냥 존재 확인하고자 징징거리는 거라고 비웃는 상황이다.
네이버 웹툰 웨스트우드 비브라토에 등장한다.

[1] 소련의 지원아래 쿠바군은 직접 병력을 파견했다. 영화 부시맨 2에 나오는 쿠바군인이 이래서 나오게 된 것이다.[2] 냉전 체제가 몰락하고 UN의 중재 아래 치뤄진 첫 민주적 총선에서 반정부군 단체인 모잠비크 국민저항운동(Renamo)이 집권 여당인 모잠비크 해방전선(FRELIMO)에게 승복해 선거에서의 패배를 인정하여 내전 종식이 순조롭게 진행됐던 과거 포르투갈의 식민지였던 다른 남아프리카 국가인 모잠비크의 행보와도 비교되는 양상이다.[3] 현지에서 들은 애기로는 사빔비는 당시 수도 루안다를 제외하고 앙골라 전역을 장악한 상태로써 승리를 목전에 두고 있었다. 그러자 욕심이 난 사빔비는 미국과 서방 국가들에게 약속했던 석유, 다이아몬드 등의 자원에 대해서 앙골라 국민의 것(혹은 자기 것?)이라고 선언하면서 미국을 비롯한 지원 국가들을 등지기 시작했고, 이 때에 위기에 몰려 있던 MPLA는 미국에 특사를 보내에서 사빔비가 약속한 이상의 전리품을 약속함으로써 미국의 지지를 받고서 사빔비를 죽이고 승리하게 되었다고 한다.[4] 목시코 지방 주민들 대부분이 포르투갈 식민지 독립 전쟁과 앙골라 내전 초,중반기까지 사빔비와 UNITA를 열렬히 지지했던 지지층들이었기 때문이다.[5] 산투스는 네투의 재임중 사망으로 대통령직을 승계받았다.[6] 미국의 부통령을 생각하기 쉬운데, 대부분의 부통령은 실권이 있는 자리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