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마크 램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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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존 마크 램지어
(John Mark Ramseyer)
(ジョン・マーク・ラムザイヤー)[1]
'''출생'''
1954년
'''출신지'''
미국 일리노이주 시카고
'''학력'''
고센 칼리지 (사학 / B.A )
미시간 대학교 (일본학 / M.A)
하버드 대학교 (법학 / J.D)
'''현직'''
하버드 대학교 로스쿨 미쓰비시 일본 법학 교수
'''경력 '''
미국 제1연방항소법원 판사 보좌관
도쿄대학 법학부 방문학자
UCLA 로스쿨 교수
시카고 대학교 로스쿨 교수
1. 개요
2. 생애
3. 비판 및 논란
3.1.1. 10살 소녀 자발적 매춘 계약 주장 파문
3.2. 미국인의 일본군 학살설
3.3. 간토 조선인 학살, 재일교포 비하, 부라쿠민 차별 왜곡 오류 논란
3.3.1. 자료 왜곡과 블로그 등의 부실한 증거
3.3.2. 일부 비전문가들의 국내언론의 왜곡설
3.3.3. 주류 학계의 반응
4. 기타
5. 관련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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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하버드 대학교 로스쿨 미쓰비시 일본 법학 교수. 전문분야는 일본 회사법 및 법 경제학.

2. 생애


미국에서 태어난 미국인이지만 태어나고 얼마 안되어 가족과 함께 일본으로 건너갔다. 18세까지 일본미야자키현에서 살았으며 일본어에 매우 능통하다. 그 후 미국으로 돌아가 인디애나주의 리버럴 아츠 칼리지인 고센 칼리지 역사학과에서 일본사 전공으로 학사 학위를 취득했다. 미시간 대학교에서 일본학으로 석사학위를 취득했고 1982년 하버드 로스쿨을 졸업한 후 1983년까지 스티븐 브라이어[2] 제1연방항소법원 판사의 보좌관으로 일했다. 또 2년간 시카고에 있는 로펌에서 법인세 전문 변호사로 일했다.
1985년부터 1986년까지 풀브라이트 장학재단의 지원을 받고 도쿄대에서 연구활동을 한 경력이 있으며, 이스라엘의 텔 아비브 대학교, 하이파 대학교 및 도쿄대학, 와세다대학, 히토쓰바시대학, 도호쿠대학에서 강의를 한 이력도 있다. 이후에는 UCLA (1986년~1992년)와 시카고 대학교 (1992년~1998년) 로스쿨 교수로 일했으며 1998년부터 하버드 로스쿨 교수로 일하고 있다.
다양한 경로로 일본 단체 및 정부로부터 금전적인 지원을 받아 왔으며 2018년에는 일본 정부로부터 국가 훈장인 욱일중수장도 수여받았다.# 또한 이 사람의 하버드대 교수직 공식 명칭은 일본 재벌인 미쓰비시 그룹하버드 대학교에 연구기금을 조성하고 나서 만들어진 자리로, 영문은 "Mitsubishi Professor of Japanese Legal Studies"다. 도쿄대학 법학부와 게이오기주쿠대학 법학부의 자문위원으로도 활동한다.#

3. 비판 및 논란



3.1. 램지어 교수 위안부 망언 논란



2020년 논문을 통해 위안부 피해자들은 자발적인 성노동자였으며, 위안부는 성노예나 전쟁 범죄가 아니라 매춘이라고 주장했다.

3.1.1. 10살 소녀 자발적 매춘 계약 주장 파문


경제학계에서 이 논문은 "10살 아이가 성노동자가 되는데 동의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것"이라고 반발했다. 경제학자들은 '계약'이라는 용어 자체가 인류 역사에서 강압과 착취 관계를 은폐하기 위해 남용됐다는 점을 들거나 소녀를 포함한 여성들이 별 설명도 없이 매춘 계약에 "동의했다"고 써놨는데, 1896년 이후 일본은 민법에서 20세 미만이 자기 의지로 계약을 체결하지 못하게 해놨다고 규정했기에 당시 일본 정부에서도 계약의 효력을 인정하지 않았는데[3] 무슨 헛소리냐고 비판했다.#
현재 가장 거센 논란의 대상 중 하나이다. 경제학계에서 연판장을 돌려 1,500여명에 가까운 비판 서명을 받았는데 연판장의 가장 앞부분에 나오는 게 바로 이 사례이다. 이후 서명한 학자들이 추가되어 1,700여명이 되었다.
결국 램지어 교수는 동료 교수이기도 한 하버드대 종신 교수인 석지영 교수에게 어떻게 이렇게 됐는지 모르겠지만, 자신이 실수했다고 변명하며, 사실 해당 사례의 계약서가 발견되지 않았음을 시인했다. 즉 논문의 핵심 주장을 관통하는 근거로 든 사례부터가 자기가 직접 발견하지도 못한 자료를 있다고 가장하고 쓴 것이다.# 석지영 교수의 반박 기고문에 따르면, '한국인 위안부가 작성한 계약서를 찾아내는 것은 멋질것'이라고 생각했단고 말했다고.#
세계은행(WB)의 수석 이코노미스트를 역임한 피넬로피 코우지아노 골드버그 예일대 경제학부 교수는 '''사실 여부를 떠나서 윤리적으로 혐오스럽고 문명사회에선 엄격하게 불법인 아동 강간, 인신매매 등 행위를 정당화한다'''고 지적했다.#

3.2. 미국인의 일본군 학살설


Wars are bad news, and they’re especially bad news when you’re losing. The plaintiffs claim they were forced to work in MHI factories. There was a draft going on, and '''the Americans were massacring the Japanese military'''

#
미국인이 일본군을 학살했다 주장한다.

3.3. 간토 조선인 학살, 재일교포 비하, 부라쿠민 차별 왜곡 오류 논란



3.3.1. 자료 왜곡과 블로그 등의 부실한 증거


재일교포에 대해서도 재일교포가 차별당하는 것은 재일교포가 스스로 만들어냈다고 주장하는 것으로 보이는 논문을 썼다. # 일단 해당 논문의 주제는 "조선인을 차별하자"가 아니라 "왜 조선인은 차별 받았는가"에 대한 것이며, 차별 - 소수집단의 하락하는 학력과 경제력, 올라가는 범죄율[4] - 차별이라는 악순환을 설명하는 논문이다. 하지만 그 설명 과정에서 폄하 및 왜곡성 주장이 여러군데 나왔다.
먼저, "일제시대 재일 조선인들은 기본적인 덧셈 뺄셈도 못하며 앞서 관동 대학살에서 언급했던 조선인 범죄자 비율을 다시 꺼내들어 조선인을 집단 범죄자로 묘사했다. 또한 사회/경제적으로 여유가 있는 재일교포는 일본 사회에 동화되었고 사회적 취약 계층만이 조선적을 가지고 있다는 망언을 남겼다. 이 논리를 그대로 적용하면 백악관 행정명령 9066호도 재미 일본인들이 먼저 이적행위를 했으므로 정당한 명령이었다는 것이 된다.
심지어 이들을 모두 공산주의자로 매도하기까지 했는데, 1948년 제주 4.3 사건으로 인해 공산주의자들이 한국을 피해 일본에 정착하면서 재일교포가 되었고, 공산주의자들인 재일교포가 일본인들의 적대감을 만들었다는 내용을 해당 논문에 실었다.

...'''On April 3, 1948, Jeju communists launched what they hoped would become a people's revolution''' (Hyon 2016, 23-26). They attacked 12 police stations, killed several dozen policemen, and then turned to families they thought sympathetic to the government (Hyon 2016, 12). The South Korean government responded brutally. Over the course of the next year, according to modern accounts it slaughtered anyone on the island suspected of communist ties. Estimates of the number it killed range from 15,000 to 60,000 -- this on an island with a population of only 290,000. 35 Given that the South Korean government suppressed news of the battle, the extent of the killing is hard to gauge (Zaishuto 2005). '''Almost immediately, however, surviving Jeju leftists began to leave surreptitiously for Japan'''. Estimates range from 40,000 to 100,000 (Osaka 2019; Ghosts 2000). Given that they migrated illegality, the number is hard to know. By 1957, barely 30,000 people still lived on the island (Zaishuto 2005)

그런데 제주 4.3 사건 당시 학살을 피해 일본으로 넘어온 사람들이 공산주의자라는 주장에 대해 제시했다는 근거 또한 이상하다. 먼저, 'Osaka 2019'라고 하는 것은 어떤 학술지도 아니고 그저 아무런 레퍼런스도 박혀있지 않은 라이브도어 블로그글에 불과하다. 이 블로그글 또한 '한국에서 제주도민이 차별당하는 이유는 북한 지지자들이 많다는 등'(=韓国で済州島民が差別される理由は北朝鮮支持者が多いなど)이라는 램지어와 비슷한 맥락의 주장을 했는데, 정작 이 주장에 대한 근거를 제시하지 않았다. 또 'Ghosts 2000'이라고 한 것은 뉴스위크지가 지난 2000년 낸 4.3 사건에 대한 기사를 의미하는데, 정작 해당 기사에서는 '''일본으로 넘어간 제주도민들이 공산주의자라는 내용이 하나도 없다'''. 게다가 SBS에선 해당 논문에서 인용된 내용 중 일부는 일베의 글을 그대로 퍼왔단 뉴스를 내기도 했다.기사 결국 램지어 교수의 이 주장은 그저 뇌피셜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추가로 4.3 사건 진상규명 운동이 처음 시작했을 때 조총련 계열의 방해 공작이 많이 일어났다. 남로당 등이 관여된 4.3 사건 특성상 4.3 사건을 피해 일본으로 넘어온 제주인들에게 북한에 대한 증오가 깊이 남아 있을 수 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 상식적으로 4.3 사건 당시 넘어온 제주도민들이 공산주의자라면 이러한 조총련계의 방해 공작 자체가 어불성설일 수 밖에 없다. # 문제는 유럽 학술지 '유럽법경제학저널에 출판한다는 것이다.# 이쪽도 전부 수정을 가한다.#
렘지어 교수가 과거 논문에서, 관동 대지진 당시 우물에 독을 풀었다는 이유로 벌어진 조선인 학살을 옹호했다는 주장이 국내 언론에서 제기됐다. 논문은 학살을 옹호하는 내용이 아니라, 자경단(the private security bands)이 얼마나 많은 조선인을 죽였는지, 논문에서는 최소 400, 최대 5700으로 잡는다. 숫자가 너무 적은거 아니냐는 생각이 들 순 있겠지만, 경찰 등을 제외하고 자경단만 계산한 것이다. 어째서 조선인이 범죄를 저지른다는 소문이 일본에서 신뢰성을 얻었는지를 논문에서는 당시 재일조선인의 범죄율이 높았음을 지적한다. 논문에 실린 통계에 의하면 10만명당 범죄를 저지른 성인 남성 수는, '한반도 조선인이 75명, 일본열도 일본인이 191명, 일본열도 조선인이 542명이다.' 자세히 보면 딱히 일본인이 기분 좋아할 통계가 아닐뿐더러(한반도 한국인이 일본열도 일본인보다 더 준법적이라는 결론이 나오니), 젊은 남성은 범죄율이 높은데 당시 재일조선인 중 젊은 남성 비율이 높았기에 이런 일이 발생했다고 논문이 설명하고 있다. 딱히 조선인을 싸이코패스라고 말하지 않았다. 학술적으로 검토하는 논문이지만, 이 논문에 대해서도 식민시대의 인종적인 차별에 대한 맥락을 전부 배제하고 기술했다는 비판도 있다. # 게다가 이 자료를 인용하면서 일제는 자경단이 활개를 쳐도 사법이 제대로 작동되지 않는 국가였다고 자폭까지 저지른 셈. 결국 영국 케임브리지대학이 '민영화'를 주제로 발간하는 학술지(핸드북)에 실릴 예정이었으나 전부 수정되었다.#
한국과 관련되지 않은 사례에서도 2018년 발표된 논문에서 전근대 일본에선 부라쿠민에 대한 종교적인 차별이 없었으며, '부락 상류층의 자칭 볼셰비키'들이 마르크스주의 사관에 자신들이 속한 집단을 끼워맞추기 위해 가상의 정체성을 창조해냈고 이 때문에 대중의 적개심이 생겨났다고 하는 등 (즉 그들이 자신들을 합리화하기 위해 '없던 피해 사실을 지어냈다'고 주장하는) 일본 우익에 편승한 주장을 하였다.

3.3.2. 일부 비전문가들의 국내언론의 왜곡설


일부 비전문가들은 국내에 램지어 논문이 왜곡되어 알려졌다고 주장한다. # #
그는 램지어 교수가 과거 논문에서, 관동 대지진 당시 우물에 독을 풀었다는 이유로 벌어진 조선인 학살을 옹호했다는 기사는 낭설인데 국내 언론에 의해서 퍼졌으며, 논문은 학살을 옹호하는 내용이 아니라고 했다. 논문은 자경단(the private security bands)이 얼마나 많은 조선인을 죽였는지, [5] 어째서 조선인이 범죄를 저지른다는 소문이 일본에서 신뢰성을 얻었는지를, 논문에서는 당시 재일조선인의 범죄율이 높았음을 지적했다고 한다. 논문에 실린 통계에 의하면 10만명당 범죄를 저지른 성인 남성 수는, 한반도 조선인이 75명, 일본열도 일본인이 191명, 일본열도 조선인이 542명이다. 그는 자세히 보면 딱히 일본인이 기분 좋아할 통계가 아닐뿐더러(한반도 한국인이 일본열도 일본인보다 더 준법적이라는 결론이 나오니), 젊은 남성은 범죄율이 높은데 당시 재일조선인 중 젊은 남성 비율이 높았기에 이런 일이 발생했다고 논문에서 설명했다고 주장한다. 딱히 조선인을 싸이코패스라고 말하는 글이 아니라는 것. 학술적으로 검토하는 논문이라고 말하고 있다.
비슷하게, 재일교포를 폄하하는 논문을 썼다는 낭설도 있으나 논문은 "조선인을 차별하자"가 아니라 "왜 조선인은 차별 받았는가"에 대한 것이며, 여기에 대한 가치 판단을 하고 있지 않다. 비유컨대 범죄학의 분야 중 사회적원인론은,경제적, 환경적 요인 등으로 범죄를 설명하는 특성을 보인다. 저소득층 혐오인가? 라는 주장이다.
이처럼 램지어의 주장이 왜곡되어 알려졌다는 주장이 비전문가에 의해 제기됐다. 그러나 아래 나와 있는 것처럼 실제 전문가의 반응은 다르다.

3.3.3. 주류 학계의 반응


"SBS가 스탠퍼드대학 역사학과의 문유미 교수에게 문제의 논문을 보내주고 검토를 부탁"

"논문을 읽다가 너무 놀라고 황당해서 자신도 메모를 했는데 너무 많아서 어디서 어떻게 말을 해줘야 할지 모르겠다고 표현"

"문 교수는 간토대지진에서 학살당한 한국인들을 언급하면서 제주4·3사건을 꺼내며 한국 정부는 더 많은 한국인들을 살해하지 않았냐고 언급한 것에 분노를 표시했습니다.[6]

일본에 귀화한 사람들은 그나마 가치가 있는 사람이고, 남아 있는 재일교포는 질이 안 좋은 사람이라는 설명은 일본은 선, 한국은 악이라는 이분법적인 시각을 담았다고 설명했습니다. 게다가 소수 집단에서 지도세력은 기회주의적으로 그 집단을 착취한다고 기술해 재일교포들의 히스토리를 완전히 폭력적으로 재구성했다고 경악을 금치 못했습니다. 문 교수는 한마디로 이 논문 자체가 재일교포 사회에 대한 엄청난 폭력이라고 규정했습니다.

이 논문에서 램지어 교수가 조선인을 딱 떼서 범죄율이 높다고 기술하고 있는데 식민시대의 인종적인 차별에 대한 맥락을 전부 배제하고 조선인은 폭력적이고 범죄를 저지른다는 기술은 학자로서의 양식을 의심하게 만들었다고 문 교수는 말했습니다. 이토론 자료가 논문으로 나온다면 이번 위안부 피해자에 대한 논문과 비슷한 학계의 스캔들이 또 다시 일어나게 될 거라고 전망하기도 했습니다."

출처 : SBS 뉴스 (원본 링크)

이스라엘 학자들은 논문 출판에 앞서 역사학자와 법조계 전문가에게 마지막으로 논문 리뷰를 부탁하겠다고 입장을 바꿨다. 그러면서 논문이 출판되더라도 서문에 '논란이 있는 주장에 기초한 논문'이란 문구를 삽입하겠다는 뜻도 밝혔다. 그러나 이 교수는 논문이 왜곡됐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출판을 하는 것은 케임브리지대와 그 출판부의 윤리 강령과도 맞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이 교수의 거듭된 지적에 결국 이스라엘 학자들도 입장을 바꿨다.#
'''결국 영국 케임브리지대학이 '민영화'를 주제로 발간하는 학술지(핸드북)에 실릴 예정이었으나 전부 수정되었다'''. 히브루대 로스쿨 교수이자 케임브리지대 학술지 공동편집장인 앨론 해럴 교수는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간토 조선인 학살 왜곡한 램지어 논문 상당히 수정하기로''' 했으며, '''램지어 교수의 논문을 "매우 유감스러운 실수"'''라고 인정했다'''.
그 중에서 국제법경제리뷰(IRLE)를 발행하는 네덜란드 출판사 엘스비어는 출판사가 결정한다는 것을 밝히자 학자들 사이에서 출판사가 학문 진실성에 관여하면 안 된다는 반응을 보였다. 다만 출판사 측은 이미 인쇄본 발간 상태라 문제가 심각하다고 판단할 경우 논문에 대한 추가 조치를 할 가능성을 열어놨다.#

4. 기타


  • 게임 이론에 따라 매춘부와 위안소 운영자가 최대의 이익을 얻기 위해 계약을 체결했다고 주장하는데, 이에 게임 이론의 전문가는 말도 안되는 소리라고 일축하며 게임 이론의 일부만 가지고 논리 전개를 한거라고 말한다.#
  • 오키나와인 차별 정당성 드러나는 논문도 드러나자 일본 내에서도 보도되기 시작했다.#

5. 관련 문서



[1] 이름의 일문 표기를 참고했는지 국내 언론에서도 '램자이어'로 표기된 경우도 종종 보인다. 미국에서 이 성씨는 가운데의 모음 ey가 근고모음인 ɪ로 발음되어 '램지어' 혹은 '램제어'에 가깝게 들린다.[2] 1938년생으로 하버드 로스쿨을 졸업하고 법조인이 되었으며 1994년 빌 클린턴 미국 대통령이 연방대법관으로 임명한 진보 성향 대법관이다.[3] 영리 관련한 활동을 계약으로 할려면 법률 대리인이 있어야 했다.[4] 논문에서는 여기서 조총련계의 이데올로기 교육과 이 과정에서 벌어지는 일본 사회와의 이질성을 "일본인은 조선인을 잘 대우하려 했는데 조선인 혼자 문제 일으켰어요" 류가 아닌 차별과 이질화라는 악순환의 맥락에서 설명된다.[5] 논문에서는 최소 400~최대 5700으로 잡는다. 숫자가 너무 적은거 아니냐는 생각이 들 순 있겠지만, 경찰 등을 제외하고 자경단만 계산한 것이다.[6] 제주 4.3 사건이 일본인들을 학살한 사건도 아닌데 램지어가 관동대학살에 대해 논하면서 아무 관련도 없는 4.3 사건을 들먹이는 것은 물타기에 불과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