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11월 가자지구 폭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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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현지시각) 11월 14일부터 11월 21일 오후 9시까지 일어난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전면전'''. 벌써부터 이전의 전쟁에 빗대어 2차 가자전쟁이라고 명명되기도 한다.
# 팔레스타인 분리운동 일지
(중동전쟁을 포함해) 팔레스타인에 하루라도 평화가 깃들은 날이 있었을까 싶지만 오슬로 협정 이래 팔레스타인 자치정부의 수립 이후 벌어진 가장 큰 분쟁은 하마스가 휴전연장을 거부하면서 이스라엘이 공습은 물론 지상군을 파견한 조지 W. 부시 행정부 끝물에 벌어진 2008년 12월 ~ 2009년 1월의 전면전이었다. # 당시 일지 자세한 내용은 가자 전쟁 참조.
이스라엘의 물가 폭등으로 시위속에서 낮은 지지에 허덕이는 중도우파 여당이(이스라엘 역시 이원집정부제로 준 내각제국가) 극우와 손을 잡고 다음 선거(2013년 1월 예정)에서 안정된 지지율을 얻기 위해 전쟁을 시작했다는 것이 정치적 배경으로 보인다.
아랍의 봄이 점차 잦아들 무렵인 2012년 11월 14일, 하마스 최고 군사령관(야전사령관) 아흐마드 자바리가 이스라엘에 의해서 암살된 것을 계기로 가자 지구에서 다시 전면전이 벌어졌다. 이스라엘의 폭격과 하마스의 까삼 로켓 보복공격(반격)이 맞서고 있는 상황. # 반전단체 "나눔문화 평화행동" 의 일지
전쟁은 이스라엘의 군사령부가 트위터를 통한 선전포고로 발발되었다. 22년 전 걸프 전쟁에서 CNN에서 전쟁을 생중계한 것처럼 이제는 전쟁이 트위터로 중개된다며 다시 한 번 SNS의 주요도를 실감하는 분위기도 있었다.
하마스의 반격도 있지만 사실상 팔레스타인 자체가 박살이 나고 있는 형국. 이스라엘에서도 3명 사망자가 있었지만 그뿐일 뿐 팔레스타인이 일방적으로 당하고 있다. 팔레스타인에서는 어린이와 여성을 포함한 수십명의 피해자가 나고 있는 상황.
UN 총회에서 팔레스타인 '비회원 참관국' 승인이 확실시 되는 상황에서 벌어졌다는 점에서도 이는 의미심장하다. 팔레스타인이 이스라엘과의 문제를 국제사법재판소 등 국제외교적으로 풀 수 있는 상황이 되었다는 의미로 해석되기도. 실제로 이스라엘은 승인이 통과될 경우 "팔레스타인과의 평화협정을 무효로 하고 팔레스타인 자치정부를 무너뜨리겠다" 라고 주장한 상황이기도 했다.
유럽 다수는 팔레스타인에 우호적인 반면 재선에 성공한 미국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당연하다는 듯 이스라엘의 자위권을 옹호했다. (이집트 총리는 14일 공습 1시간 전에 전화를 한 것은 물론 16일 미사일 방공 시스템 구축을 도와준 오바마 대통령에게 감사전화를 하기도 했다) 하지만 사태가 점점 심각해지자 이스라엘의 상대적 우호국인 터키도 '인종 청소' 로 이번 사건을 규정하며 크게 반발하였고 NATO마저도 이스라엘의 자위권은 인정하면서도 국제사회의 억제여론을 명시하였다.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은 이집트를 전격 방문, 이집트 대통령과 논의하며 팔레스타인 방문까지 검토하기도 했으며 무조건적인 폭격 중지를 촉구하며 이스라엘의 지상군 투입에 대해 경고했다. 그러나 안보리 내부의 협상은 어떠한 결론도 나지 않았고 주요국가들은 이 사건에 대해서 적극적인 개입보다는 방조하는 태도를 보였다.
결국 11월 21일 힐러리 클린턴 미 국무장관 방문에 따라 이집트의 무르시 대통령이 주도한 휴전협정이 체결되었다(현지시각 오후 9시).
최종적인 사상자는 팔레스타인에서 최소 139명이 사망하고 최소 900명이 부상당한 반면 이스라엘에서는 5명이 죽고 80명이 부상당했다. 단순한 비율만 해도 그렇지만 팔레스타인의 사망자가 절대수가 여자(성인 여성이 전체 사상자의 1/6), 어린이(전체 사상자의 1/3)를 다수 포함한 민간인이라는 게 문제. 마지막 하루 동안만 사망자가 20여명, 부상자가 60여명 늘어났다. 이는 가자 전쟁 이래 최초로 당시의 1/10 규모다.
이스라엘 여당 분위기 또한 좋지 않다. 사망자 대다수가 민간인인 반면 하마스에겐 자바리 사령관이 죽은 것 외엔 별다른 피해도 없고 팔레스타인에서의 하마스 지지여론만 굳세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이스라엘 여론에서도 '전쟁 자체는 지지하더라도, 이번 전쟁을 이겼다 볼 수는 없다'라는 시각이 우세했다.
더불어 2012년 11월 29일 유엔 총회에서 팔레스타인이 사상 처음으로 유엔 비회원 참관국가로 인정받았다. 미국과 이스라엘이 결사반대했지만 압도적인 찬성을 받고 말았는데 찬성이 138개국, 반대는 미국과 이스라엘, 캐나다, 체코, 파나마를 빼면 나우루 같은 오세아니아의 작은 섬나라들로 겨우 9개 나라에 지나지 않았고 한국과 독일, 영국을 비롯한 41개 나라는 기권하고 우크라이나 외 5개 나라는 표결에 아예 불참했다. 이에 대하여 뉴스위크에선 적어도 독일는 반대할 것으로 기대했다고 이스라엘에서 실망하는 반응이었지만 독일에선 되려 기권했다고 욕먹는 중이라면서 '기권해준 것만으로도 고마워해라' 라는 반응.
팔레스타인이 '''비회원 참관국가'''(종전에는 참관 단체라고 나라로 인정도 못 받았다)로 인정되면서 국제형사재판소와 유엔 산하기구에 가입할 수 있는 자격이 생겼고 이스라엘이 함부로 포격한다면 형사재판소에 제소가 가능하고 유엔군이 주둔할 명분이 주어졌다. 유엔상임이사국 미국이 결사반대하겠지만 다른 이사국인 러시아와 중국, 프랑스가 지지하고 영국도 기권은 했지만 반대는 하지 않다는 태도라서 유엔 평화유지군이 일부 주둔하는 걸 미국이나 이스라엘이 막을 수도 없게 되었다.
이게 통과되자 팔레스타인은 기뻐했고 팔레스타인 압바스 총리는 보란 듯이 유엔 본부에 팔레스타인 국기를 직접 게양했다. 이스라엘에선 충공깽에 빠졌고 여당은 11월 가자 지구 폭격 덕분에 국제적으로 무덤을 스스로 팠다고 욕을 처먹는 상황이다.
2013년 1월 22일 열리는 총선에서 연정에 합의한 현 총리 베냐민 네타냐후의 리쿠드당과 아비그도르 리버만 전 외무장관이 이끄는 이스라엘 베이테누당이 일단 1당을 차지해서 일단 정권은 유지했지만 선거전보다 11석이나 줄어든데다가 좌, 우파가 똑같은 수의 의석을 거두어서 국정운영에 어려움을 겪게 되었다. 총선 직후 외교적 역풍에 당황한 미국과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에 대하여 원조를 끊으며 경제적 고립을 하겠다고 협박했지만 찬성한 나라인 이집트는 이스라엘이 국가인 팔레스타인에 대하여 억압한다면 이집트와 팔레스타인 국경을 개방하겠다고 맞서고 있기에 이 폭격은 이스라엘의 자업자득이 되고 만 셈이다. 이스라엘 여론은 현대 이스라엘 건국 이래 최대의 정치적 대참패라면서 이스라엘이 국제적으로 욕먹던지 개의치 않은 결과가 결국 이렇다며 미국에게 맡긴 결과가 이거냐고 한탄하고 있다.
거기다가 기자들이 사진을 찍으려 들자 작전중이라 위험하다는 이유를 대며 기자들을 친절하게 벙커로 인도하여 이스라엘의 입장을 기자들에게 설파하는 등 여론에도 굉장히 힘을 썼으나 위에서도 나왔듯이 결과는 망했어요.
한편 하마스도 기뻐하면서도 내심 불만에 찬 반응을 보이고 있다. 온건파인 파타측 수반인 마흐무드 압바스 총리가 유엔에 나가 연설하고 팔레스타인 대표로 국제적 인정을 받은 것이며 이번 11월 폭격에 맞서던 하마스는 무시당했다는 불만이다. 미국도 "그래도 하마스보단 파타가 낫잖아?" 라는 태도를 보이면서 폭격 중지 이후로 압바스 측과 회담했다.
여담인데 이스라엘 내부 첩보기관인 신 베트(Shin bet) 전직 국장 6명을 찾아가 인터뷰한 이스라엘 다큐멘터리영화 게이트키퍼(2012)에서 이런 일이 벌어질지 알았다고 예측하는 게 나온다. 전직 신 베트 국장들 모두 "팔레스타인에 대한 이스라엘의 자위권은 해외에선 무참한 침략행위로만 비춰질 뿐이다. 미국에서조차 그런 시각이 늘고있으며 심지어 같은 미국내 유태인들조차 젊은 세대는 이스라엘에 대하여 침략행위를 자위권이라고 왜곡한다며 탓하는 시각이 늘고있다. 머지않아 팔레스타인이 공식적인 나라로 인정받고 이스라엘은 갈수록 고립될지 모른다." 라는 말을 한다. 사실상 텔 아이브가 미국의 실리콘벨리 역할을 하는데다가 IT 강국이기에 당장 그러기는 힘들어보이지만 적어도 팔레스타인 국가 인정은 실제로 일어났다.
1. 개요
2012년 (현지시각) 11월 14일부터 11월 21일 오후 9시까지 일어난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전면전'''. 벌써부터 이전의 전쟁에 빗대어 2차 가자전쟁이라고 명명되기도 한다.
2. 배경
# 팔레스타인 분리운동 일지
(중동전쟁을 포함해) 팔레스타인에 하루라도 평화가 깃들은 날이 있었을까 싶지만 오슬로 협정 이래 팔레스타인 자치정부의 수립 이후 벌어진 가장 큰 분쟁은 하마스가 휴전연장을 거부하면서 이스라엘이 공습은 물론 지상군을 파견한 조지 W. 부시 행정부 끝물에 벌어진 2008년 12월 ~ 2009년 1월의 전면전이었다. # 당시 일지 자세한 내용은 가자 전쟁 참조.
이스라엘의 물가 폭등으로 시위속에서 낮은 지지에 허덕이는 중도우파 여당이(이스라엘 역시 이원집정부제로 준 내각제국가) 극우와 손을 잡고 다음 선거(2013년 1월 예정)에서 안정된 지지율을 얻기 위해 전쟁을 시작했다는 것이 정치적 배경으로 보인다.
3. 개전
아랍의 봄이 점차 잦아들 무렵인 2012년 11월 14일, 하마스 최고 군사령관(야전사령관) 아흐마드 자바리가 이스라엘에 의해서 암살된 것을 계기로 가자 지구에서 다시 전면전이 벌어졌다. 이스라엘의 폭격과 하마스의 까삼 로켓 보복공격(반격)이 맞서고 있는 상황. # 반전단체 "나눔문화 평화행동" 의 일지
전쟁은 이스라엘의 군사령부가 트위터를 통한 선전포고로 발발되었다. 22년 전 걸프 전쟁에서 CNN에서 전쟁을 생중계한 것처럼 이제는 전쟁이 트위터로 중개된다며 다시 한 번 SNS의 주요도를 실감하는 분위기도 있었다.
하마스의 반격도 있지만 사실상 팔레스타인 자체가 박살이 나고 있는 형국. 이스라엘에서도 3명 사망자가 있었지만 그뿐일 뿐 팔레스타인이 일방적으로 당하고 있다. 팔레스타인에서는 어린이와 여성을 포함한 수십명의 피해자가 나고 있는 상황.
11월 16일 신임 이집트 총리가 직접 가자지구로 오는 순간에는 잠시 전쟁이 잦아들고 평화협정이 이루어지는가... 했지만 총리가 떠나자마자 방문했던 하마스 정부기구(내무부 건물) 자체가 박살이 났고(...) 이날(11월 17일) 이스라엘은 총리 관저와 방송국을 포함한 가자지구 주요지역을 공습하면서 하루에만 사망자 31명, 부상자 최소 315명이 발생했다. 이스라엘의 육군 돌입 가능성까지 고려되었다.'''"내 손과 옷에 여전히 이 아이의 피가 묻어있다. 이스라엘은 공격을 멈춰야 한다. 우리는 절대 침묵할 수 없다."'''
이집트 칸딜 총리, 네살배기 아이의 주검 앞에서.
4. 국제여론과 휴전
UN 총회에서 팔레스타인 '비회원 참관국' 승인이 확실시 되는 상황에서 벌어졌다는 점에서도 이는 의미심장하다. 팔레스타인이 이스라엘과의 문제를 국제사법재판소 등 국제외교적으로 풀 수 있는 상황이 되었다는 의미로 해석되기도. 실제로 이스라엘은 승인이 통과될 경우 "팔레스타인과의 평화협정을 무효로 하고 팔레스타인 자치정부를 무너뜨리겠다" 라고 주장한 상황이기도 했다.
유럽 다수는 팔레스타인에 우호적인 반면 재선에 성공한 미국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당연하다는 듯 이스라엘의 자위권을 옹호했다. (이집트 총리는 14일 공습 1시간 전에 전화를 한 것은 물론 16일 미사일 방공 시스템 구축을 도와준 오바마 대통령에게 감사전화를 하기도 했다) 하지만 사태가 점점 심각해지자 이스라엘의 상대적 우호국인 터키도 '인종 청소' 로 이번 사건을 규정하며 크게 반발하였고 NATO마저도 이스라엘의 자위권은 인정하면서도 국제사회의 억제여론을 명시하였다.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은 이집트를 전격 방문, 이집트 대통령과 논의하며 팔레스타인 방문까지 검토하기도 했으며 무조건적인 폭격 중지를 촉구하며 이스라엘의 지상군 투입에 대해 경고했다. 그러나 안보리 내부의 협상은 어떠한 결론도 나지 않았고 주요국가들은 이 사건에 대해서 적극적인 개입보다는 방조하는 태도를 보였다.
결국 11월 21일 힐러리 클린턴 미 국무장관 방문에 따라 이집트의 무르시 대통령이 주도한 휴전협정이 체결되었다(현지시각 오후 9시).
5. 결과
최종적인 사상자는 팔레스타인에서 최소 139명이 사망하고 최소 900명이 부상당한 반면 이스라엘에서는 5명이 죽고 80명이 부상당했다. 단순한 비율만 해도 그렇지만 팔레스타인의 사망자가 절대수가 여자(성인 여성이 전체 사상자의 1/6), 어린이(전체 사상자의 1/3)를 다수 포함한 민간인이라는 게 문제. 마지막 하루 동안만 사망자가 20여명, 부상자가 60여명 늘어났다. 이는 가자 전쟁 이래 최초로 당시의 1/10 규모다.
이스라엘 여당 분위기 또한 좋지 않다. 사망자 대다수가 민간인인 반면 하마스에겐 자바리 사령관이 죽은 것 외엔 별다른 피해도 없고 팔레스타인에서의 하마스 지지여론만 굳세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이스라엘 여론에서도 '전쟁 자체는 지지하더라도, 이번 전쟁을 이겼다 볼 수는 없다'라는 시각이 우세했다.
6. 팔레스타인 비회원 국가 인정
더불어 2012년 11월 29일 유엔 총회에서 팔레스타인이 사상 처음으로 유엔 비회원 참관국가로 인정받았다. 미국과 이스라엘이 결사반대했지만 압도적인 찬성을 받고 말았는데 찬성이 138개국, 반대는 미국과 이스라엘, 캐나다, 체코, 파나마를 빼면 나우루 같은 오세아니아의 작은 섬나라들로 겨우 9개 나라에 지나지 않았고 한국과 독일, 영국을 비롯한 41개 나라는 기권하고 우크라이나 외 5개 나라는 표결에 아예 불참했다. 이에 대하여 뉴스위크에선 적어도 독일는 반대할 것으로 기대했다고 이스라엘에서 실망하는 반응이었지만 독일에선 되려 기권했다고 욕먹는 중이라면서 '기권해준 것만으로도 고마워해라' 라는 반응.
팔레스타인이 '''비회원 참관국가'''(종전에는 참관 단체라고 나라로 인정도 못 받았다)로 인정되면서 국제형사재판소와 유엔 산하기구에 가입할 수 있는 자격이 생겼고 이스라엘이 함부로 포격한다면 형사재판소에 제소가 가능하고 유엔군이 주둔할 명분이 주어졌다. 유엔상임이사국 미국이 결사반대하겠지만 다른 이사국인 러시아와 중국, 프랑스가 지지하고 영국도 기권은 했지만 반대는 하지 않다는 태도라서 유엔 평화유지군이 일부 주둔하는 걸 미국이나 이스라엘이 막을 수도 없게 되었다.
이게 통과되자 팔레스타인은 기뻐했고 팔레스타인 압바스 총리는 보란 듯이 유엔 본부에 팔레스타인 국기를 직접 게양했다. 이스라엘에선 충공깽에 빠졌고 여당은 11월 가자 지구 폭격 덕분에 국제적으로 무덤을 스스로 팠다고 욕을 처먹는 상황이다.
7. 이후의 변화
2013년 1월 22일 열리는 총선에서 연정에 합의한 현 총리 베냐민 네타냐후의 리쿠드당과 아비그도르 리버만 전 외무장관이 이끄는 이스라엘 베이테누당이 일단 1당을 차지해서 일단 정권은 유지했지만 선거전보다 11석이나 줄어든데다가 좌, 우파가 똑같은 수의 의석을 거두어서 국정운영에 어려움을 겪게 되었다. 총선 직후 외교적 역풍에 당황한 미국과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에 대하여 원조를 끊으며 경제적 고립을 하겠다고 협박했지만 찬성한 나라인 이집트는 이스라엘이 국가인 팔레스타인에 대하여 억압한다면 이집트와 팔레스타인 국경을 개방하겠다고 맞서고 있기에 이 폭격은 이스라엘의 자업자득이 되고 만 셈이다. 이스라엘 여론은 현대 이스라엘 건국 이래 최대의 정치적 대참패라면서 이스라엘이 국제적으로 욕먹던지 개의치 않은 결과가 결국 이렇다며 미국에게 맡긴 결과가 이거냐고 한탄하고 있다.
거기다가 기자들이 사진을 찍으려 들자 작전중이라 위험하다는 이유를 대며 기자들을 친절하게 벙커로 인도하여 이스라엘의 입장을 기자들에게 설파하는 등 여론에도 굉장히 힘을 썼으나 위에서도 나왔듯이 결과는 망했어요.
한편 하마스도 기뻐하면서도 내심 불만에 찬 반응을 보이고 있다. 온건파인 파타측 수반인 마흐무드 압바스 총리가 유엔에 나가 연설하고 팔레스타인 대표로 국제적 인정을 받은 것이며 이번 11월 폭격에 맞서던 하마스는 무시당했다는 불만이다. 미국도 "그래도 하마스보단 파타가 낫잖아?" 라는 태도를 보이면서 폭격 중지 이후로 압바스 측과 회담했다.
여담인데 이스라엘 내부 첩보기관인 신 베트(Shin bet) 전직 국장 6명을 찾아가 인터뷰한 이스라엘 다큐멘터리영화 게이트키퍼(2012)에서 이런 일이 벌어질지 알았다고 예측하는 게 나온다. 전직 신 베트 국장들 모두 "팔레스타인에 대한 이스라엘의 자위권은 해외에선 무참한 침략행위로만 비춰질 뿐이다. 미국에서조차 그런 시각이 늘고있으며 심지어 같은 미국내 유태인들조차 젊은 세대는 이스라엘에 대하여 침략행위를 자위권이라고 왜곡한다며 탓하는 시각이 늘고있다. 머지않아 팔레스타인이 공식적인 나라로 인정받고 이스라엘은 갈수록 고립될지 모른다." 라는 말을 한다. 사실상 텔 아이브가 미국의 실리콘벨리 역할을 하는데다가 IT 강국이기에 당장 그러기는 힘들어보이지만 적어도 팔레스타인 국가 인정은 실제로 일어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