짜끄리 왕조

 


'''ราชวงศ์จักรี'''
[image]
'''건립일'''
1782년 4월 6일
'''설립자'''
라마 1세
'''現 가주'''
라마 10세
'''국가'''
태국
1. 개요
2. 역사
3. 위상
4. 재산
5. 역대 국왕
6. 기타


1. 개요


ราชวงศ์จักรี(Ratchawong Chakkri)
시암/태국의 현재 왕조. 라따나꼬신 왕조, 방콕 왕조 등으로도 불리며, 로마자 표기에 이끌려 차크리 왕조라고도 한다. 현재 라마 10세태국 국왕으로 재위해 있다.
짜끄리는 왕가의 성씨가 아니다. 직역하면 '차크람을 가진 자'라는 뜻으로 비슈누를 가리키는 태국어 표현이다. 원래는 짜끄리 왕조 이전에 있던 아유타야 왕조 및 딱신 대왕 시절 태국의 대재상에게 붙었던 칭호인데 짜끄리 왕조 초대 국왕 라마 1세가 이를 자신이 시작한 왕조의 이름으로 채택한 것이다.[1]

2. 역사


시암을 세운 딱신 대왕은 말년에 정신병에 걸려 부처로 자칭하고 포악한 정치를 펼쳐 강제로 구금되어 짜끄리에게 살해당했다. 딱신 왕은 버마의 공격에서 국민들을 지키려고 희생하던 자이며 태국인이 아닌 신분이 낮은 중국계 부모를 둔 짜끄리는 항상 차별의 대상이였고 전쟁 등 혼란 속에서 신뢰를 얻은 짜끄리는 항상 탁신 왕에 배신을 준비하고 있었다. 결국 짜끄리가 탁신 왕을 살해하고 새롭게 개창한 왕조가 짜끄리 왕조이다.
짜끄리 장군은 라마 1세로 즉위했으며 적극적인 영토 확장 정책을 펼쳤다. 이 때의 영역은 그 이전 최대규모였던 나레쑤언 시기의 영토확장을 능가하는 것으로써, 명실상부한 동남아의 패자의 위치를 재구축할 수 있었다고 할 수 있다. 손자인 라마 3세의 사망 무렵 시암의 영토는 역대 최대를 자랑하게 되었다.
라마 5세 시대에 이르면 제국주의의 물결이 동남아를 휩쓸게 되었다. 라마 5세는 서구화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개혁을 행했다. 또한 서쪽의 영국(영국령 인도 제국)과 동쪽의 프랑스(프랑스령 인도차이나) 사이에서 줄타기를 하는 외교술(대나무 외교)을 행해, 그 과정에서 상당한 영토를 열강에 넘겨주는 대신 시암의 독립을 지킬 수 있었다.
1932년에는 혁명이라는 이름의 쿠데타가 일어나 국호도 타이(태국)으로 바뀌고 전제군주제에서 입헌군주제가 되면서 국왕의 권력은 크게 제한되었다. 그를 대신해 혁명을 일으킨 군사독재자 쁠랙 피분송크람이 독재를 행했다. 당시 국왕 라마 7세는 퇴위했고, 후계자인 라마 8세는 꼭두각시 노릇만 하다가 1946년에 사고로 사망했다.
1946년에 즉위한 라마 9세는 쁠랙 피분송크람이 권력을 잃은 후 여러 군부 실력자끼리의 다툼과 민주화 운동 사이에서 자신의 권위를 이용해 다툼의 중재자 역할을 맡아 1932년 쿠데타로 추락했던 국왕의 권위와 실질직 권력을 드높였다. 그의 행보는 많은 태국인들의 칭송을 받았지만 동시에 민주주의를 후퇴시켰다는 비판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3. 위상


태국에서 국왕 및 왕가가 갖는 위상은 여타 입헌군주국에 비해서도 절대적이다. 이는 왕가가 제국주의의 물결에서 독립을 지키는 데 기여했고, 또한 현대 태국에서 정국을 안정시키는 주요 중재자로 기능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명성 등이 바탕이 되어서인지, 태국에서는 과거 전제군주제 국가마냥 국왕 및 왕가 비판을 강력히 응징하고 있다. 태국에서 국왕 및 왕가에 대한 비판은 금지되어 있으며, 어기면 최고 징역 15년에 처해질 수도 있다. 이 때문에 태국에서 국왕 및 왕가를 비판하는 소수 세력은 지하에서 활동한다. 2000년대 및 2010년대를 기점으로 왕실 비판이 상당히 늘기는 했지만 국가의 탄압 등의 이유로 그 세력은 미미하다.
경제, 정치, 군부, 관료, 민중에 깊은 영향력을 가진 왕가는 태국 정치지형을 파악하는 데 있어 중요한 키포인트다.

4. 재산


짜끄리 왕가는 상당히 재산이 많다고 한다. 무려 50억 달러나 있는데 세계 5위 규모라고 한다. 특히 1위부터 4위가 죄다 기름 펑펑나는 나라임을 감안하면 정말 대단하다. 호주 ABC뉴스 등에서는 푸미폰 아둔야뎃 국왕(라마 9세)의 재산 규모는 약 300억~400억 달러(약 34조~45조 원) 수준으로, 전 세계 왕실 가운데 가장 많다고 추정하기도 한다.
왕가의 재산은 독립된 왕실 재산 관리기관이 맡는데, 왕실 재산에는 세금이 부과되지 않으며, 정부의 감시도 받지 않고 재산 관리 내역도 명확히 공개되지 않는다.
[image]
왕실 재정관리의 불투명성을 다루는 기사를 보도한 2015년 12월 3일자 뉴욕타임즈 태국판. 해당 내용이 위에 말한 왕실모독금지법 때문에 검열삭제 당했다(...). 검열기사내용.
태국 왕실은 재벌로서의 위치도 가진다. 국왕자산관리국(Crown Property Bureau)은 태국 최대의 은행인 시암커머스뱅크와 최대 규모의 기업인 시암 시멘트 그룹 등 100여 개 기업의 주인이기도 하다. 왕가의 재산은 국가 태국 총자산의 10% 규모이다. 즉 재벌 총수로서 정치와 재계 모두에 강력한 영향력을 줄 수 있다는 뜻. 또한 부동산 재벌이기도 하여 수도 방콕을 중심으로 7천만 제곱미터의 땅을 가져 한해에만 한화 900억 원의 수익을 올리고 있기도 하다. 그 토지에는 관료건물 등도 있는데 관료들과 왕실의 밀접한 관계를 암시해준다. 기사
이렇게 된 역사적 원인을 찾아가자면, 19세기 태국이 근대화를 시작하면서 대부분의 기간사업이 왕실의 자금을 통해 운영되었기 때문이다. 사업에서 나는 이익은 물론 왕실로 흘러들어갔다. 또한 쿠데타가 잦고 정치 불안이 심한 현대 태국에서 왕실의 위치는 한번도 위협받지 않았기 때문에, 외국인을 포함한 많은 사업가들이 태국에서 사업을 하고자 할 때 가장 신뢰하는 파트너가 바로 왕실이다. 물론 왕가 재산 관리가 비공개로 이루어지고 왕가에 대한 비판으로 코렁탕을 먹을 수 있는 나라다보니 왕가의 재산 증식에 대한 비판을 하기 어려운 점도 한 몫 한다. 기사
이렇게 쇼핑몰, 병원, 중공업, 방송 등에 두루 왕실이 관여하고 있다. 병원 의료 제도의 경우는 저렴한 의료비를 통해 서민 복지를 제공하거나 심지어는 무상 의료 병원을 지역별로 지정하는 등의 긍정적인 모습도 띠고 있으나 실제론 의료 서비스의 질이 낮다보니 제대로 된 치료를 받지 못하는 경우가 굉장히 많은데도 마땅히 개선할 방책이 없다.

5. 역대 국왕


짜끄리 왕조의 국왕들에게 붙은 '라마'는 힌두교비슈누의 화신 라마를 의미하며, 왕의 이름이 아니다.
과거 태국의 국왕들은 신성화 차원에서 간혹 자신을 라마와 동일시하도록 했는데, 서구화를 이루게 되면서 서양의 왕국들이 ''XX n세"로 왕호를 칭하던 것을 본받고자 했으나 이는 군주의 이름을 함부로 부르지 않던 태국의 관습과는 배치되는 것이었다. 당시에는 국왕의 이름을 직접 부르지 않고 1대 국왕 하는 식으로 대수를 붙여 말했는데, 여기에 태국 국왕을 상징하는 라마를 덧붙인 것이 "라마 X세" 식으로 정착한 것이다. 이러한 관습을 시작한 것은 라마 6세이다.
대수
왕호
재위기간
시작
종료
1대
라마 1세
풋타엿파쭐라록 대왕
พระบาทสมเด็จพระพุทธยอดฟ้าจุฬาโลกมหาราช
(1736 ~ 1809)
1782년 4월 6일
1809년 9월 7일
2대
라마 2세
붓다 르뜰라 납할라이
พระบาทสมเด็จพระพุทธเลิศหล้านภาลัย
(1766 ~ 1824)
1809년 9월 7일
1824년 7월 21일
3대
라마 3세
제싸다보드인드라
พระบาทสมเด็จพระปรมินทรมหาเจษฏาบดินทร์ฯ พระนั่งเกล้าเจ้าอยู่หัว
(1787 ~ 1851)
1824년 7월 21일
1851년 4월 2일
4대
라마 4세
몽꿋
พระบาทสมเด็จพระจอมเกล้าเจ้าอยู่หัว
(1804 ~ 1868)
1851년 4월 3일
1868년 10월 1일
5대
라마 5세
쭐랄롱꼰 대왕
พระบาทสมเด็จพระจุลจอมเกล้าเจ้าอยู่หัว พระปิยมหาราช
(1853 ~ 1910)
1868년 10월 2일
1910년 10월 23일
6대
라마 6세
바지라부드
พระบาทสมเด็จพระมงกุฎเกล้าเจ้าอยู่หัว
(1881 ~ 1925)
1910년 10월 23일
1925년 11월 26일
7대
라마 7세
쁘라자디뽁
พระบาทสมเด็จพระปกเกล้าเจ้าอยู่หัว
(1893 ~ 1941)
1925년 11월 26일
1935년 3월 2일
8대
라마 8세
아난다 마히돌
พระบาทสมเด็จพระปรเมนทรมหาอานันทมหิดล พระอัฐมรามาธิบดินทร
(1925~ 1946)
1935년 3월 2일
1946년 6월 9일
9대
라마 9세
푸미폰 아둔야뎃 대왕
พระบาทสมเด็จพระปรมินทรมหาภูมิพลอดุลยเดช
(1927~ 2016)
1946년 6월 9일
2016년 10월 13일
10대
라마 10세
마하 와치랄롱꼰
สมเด็จพระเจ้าอยู่หัวมหาวชิราลงกรณ
(1952~ 현재)
2016년 10월 13일
현재


6. 기타


짜끄리 왕조에는 라마 1세부터 내려오는 흉흉한 예언이 전해지는데, 바로 9대에서 왕조의 수명이 다할 것이라는 예언이다.#

[1] 태국인들은 전통적으로 성씨가 없었는데 20세기 태국에서 서구화의 일환 및 주민등록 관리 편의를 위해 성씨가 도입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