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마 10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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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태국의 현 국왕. 1952년 7월 28일 라마 9세 푸미폰 아둔야뎃 국왕의 고명 아들로 태어났다. 1972년 국왕에 의해 차기 왕위 계승자로 지명되었으나, 무려 44년 동안 왕세자로 지내다가 2016년 부왕이 사망함에 따라 왕위를 계승했다. 이때 그의 나이가 64세 4개월 3일(23,502일).
2. 생애
방콕에서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영국과 호주에서 유학했다. 왕족인 탓에 1965년부터 태국군에 입대한 것으로 되어 있다. 호주 캔버라의 왕립 공군사관학교를 졸업한 뒤 잠시 태국 공군에서 복무하였다가 1975년 육군으로 병적을 고쳤고 일선에 나서기 시작했다.
3. 즉위 과정
2016년 10월 13일 푸미폰 국왕 사망 후 왕위를 물려받아 태국의 차기 국왕으로 즉위할 예정이었으나 사망한 국왕을 애도할 시간이 필요하다는 이유로 즉위를 미루고 즉위 전까지는 추밀원장이 섭정을 하였다.
2016년 11월 29일. 정부는 마하 와치랄롱꼰을 새 국왕으로 승인하였다.# 그 후, 공식 후계자임을 확인하는 서한을 과도 의회인 국가 입법회의(NLA)에 전달했고, 이를 승인해 왕위 승계를 위한 절차를 마쳤다.#
그리고 12월 1일. 현지 시각으로 저녁에 정식으로 왕위에 올랐다. 왕위 승계 절차는 TV로 생중계 되었으며, 대관식은 부왕의 장례식이 끝나는 1년 뒤에 한다.#
수락 연설에서 “나는 모든 태국 국민을 위해 선왕의 유지를 받들겠다.” 선언했고, 정부는 새 국왕을 '''‘마하 와치랄롱꼰 보딘트라테파야와랑꾼 국왕 폐하’'''라고 칭했다.
대관식은 2년 반이 지나서야 치르는데, 사흘에 걸쳐 한다. 5월 4일엔 와치랄롱꼰 국왕이 공식적으로 국왕에 오르는 대관식을 치르고, 5일엔 축하 행사를 열었다. 6일에는 궁에서 국왕이 정부 대표단과 외교 사절을 맞이하였다.
2018년 6월 18일에 태국의 현지 언론들은 33조 원에 달하는 왕실 재산의 승계 절차를 마무리했다고 보도했다. #
2019년 5월 4일에 69년 만에 치러진 대관식에서 마하 와치랄롱꼰 국왕은 전통에 따라 왕관을 받기 전 흰 옷차림으로 태국 전역에서 길어 올린 성수를 자신의 머리와 몸에 붓는 정화 의식을 치렀다. 이후 행사를 주관한 불교 최고 지도자로부터 국왕의 공식 이름과 직함이 적힌 황금 명판과 왕권을 상징하는 왕실 휘장을 받았다. 이어 국왕은 200년 전 제작된 다이아몬드 원석이 박힌 높이 26cm, 무게 7.3 kg짜리 황금 왕관을 건네받아 머리에 쓰면서 즉위를 공식화했다. 오후에는 병사 16명이 둘러멘 왕실 가마에 올라 왕궁 일대 사원 등을 도는 행진을 한다. 약 7km에 달하는 가마 행진 과정에서 연도에 모인 시민들은 국왕에게 존경을 표했다. # ##
"모든 국민의 혜택과 영원한 행복을 위해 정의로움 속에서 다스릴 것"이라고 말했다.
12월 12일에 방콕 시내를 관통하는 차오프라야강에서는 왕실 선박 52척이 참석한 가운데 약 3.4 km에 걸친 행진에 따라 공식적으로 마무리하였다.#
4. 재위
2016년 12월 6일, 정치 자문 기구인 추밀원 개편을 단행하였다. 2014년 임시 헌법 2조에 근거해 내린 국왕 명령으로 추밀원 위원 총 11명을 임명했다. 선왕보다 5명이나 줄었는데 군부 2명을 추가 임명하여 군부의 영향력이 커졌다. # 13일, 왕실 모독사범을 포함해 15만 명을 사면하였다. # 2017년을 들어서 개헌안 수정 요구를 발표하면서 군부 통치 하에 있는 태국의 민정 이양 일정을 늦추는 실정이다. # 탁신과는 친하다고는 하지만 오히려 그 때문에 군부의 눈치를 많이 보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해석이 나온다.
또, 국왕의 일시적인 부재 시 섭정자를 지명하지 않아도 된다는 등의 규정을 헌법에 추가했고, 2018년 5월에는 왕실 사무와 경비를 담당하는 5개 기관을 국왕 직속으로 이관하는 법도 제정했다. 2017년에는 '왕실 자산 구조법'을 제정하여, 그동안 태국 정부가 형식적으로나마 관리에 개입해 온 태국 왕실 자산을 국왕이 직접 관할하고 처분할 수 있도록 했다.
2019년 3월 24일에 치러지는 총선을 앞두고, 누나 우본랏 라차깐야 공주가 탁신계 정당인 태국 국가구조당 후보로 총리직 도전에 나서기로 한 데 대해 제동을 걸었다. # 결국 칙령에 따라 하루만에 철회되었지만, # 국가구조당은 이 일로 해산되었다.
대관식 하루 앞두고 왕실 관보에 게재된 칙령을 통해 각종 범죄로 복역 중인 수감자들을 사면 또는 감형할 것을 지시했으며, 사면 대상자는 형기가 1년 이하 남은 수감자 또는 말기 암 등 중증 질병이 있는 수감자, 남은 형기가 최장 3년 이하인 60세 이상 수감자이다.
5. 비판 및 논란
아버지와는 달리 세 번이나 결혼과 이혼을 반복[4] 하고, 방탕한 사생활을 즐기는 등 널리 알려진 인성 문제로 인해 말이 많은 터라 태국 내에서는 즉위에 반대하는 여론도 만만치 않고 군부와 대립하며 라마 9세와 은근 불편한 관계였던 탁신 친나왓 과도 나름 친분이 있기 때문에 즉위 전에는 실권을 쥐고 있는 쁘라윳 짠오차 총리 등의 군부 세력이 스페인의 프란시스코 프랑코처럼 국왕 자리를 무기한 공석으로 두고 섭정을 선포하는 것이 아니냐는 예측도 있었지만 선왕이 정해놓은 정식 후계자였기 때문에 왕위를 물려받아 새로운 국왕으로 즉위하는데 성공했다.
세 번째 부인과 이혼하기 전, 자신의 애완견 '푸푸'의 생일 파티를 열면서 부인에게 알몸 상태로 티팬티만 입게 하여 논란이 되기도 했다. 기사 (해당 영상이 있으므로 주의바람) 이외 부인과 함께 해외를 누비며 탱크탑 차림으로 공항에서 쇼핑을 해 화제에 오르기도 했다. 그때 주변 수행원인 태국 관료들의 황당한 표정이 압권. #
2014년 이혼 후 왕족 작위가 박탈된 세 번째 부인 스리랏사미 수와디가 하사받은 집과 토지를 강제로 몰수당하고 시골에서 비구니 생활을 하며 비인간적인 학대와 가택 연금을 당한다는 의혹이 제기되어 논란이 되었다. 이혼 사유도 친척 7명의 부인을 이용한 권력 남용 및 부패라고 하지만 숨겨진 다른 이유가 있다는 의혹이 제기되었다. 관련사이트
또한, 국왕 즉위 후 태국에서 거주하지 않고 독일 시골의 호텔 전체를 빌려 호화스럽게 생활하고 주말마다 런던에서 엄청난 쇼핑을 즐긴다고 알려져 있다. 물론 독일에 계속 지내지 않고 일시적으로 살다가 태국으로 돌아와서 업무를 처리하지만 문제는 외유가 잦다는 점이다.
외교적으로도 행패를 부린 적이 있는데 對일본 외교를 위해 1987년 방일 당시 자신의 본처가 아닌 첩에게 국빈대우를 해달라는 요구를 했다가 일본 정부가 거부하자 노발대발하며 온갖 패악질을 일삼아 당시 운전기사만 수차례 교체되고 1996년 하시모토 류타로 일본 총리가 돈므앙 국제공항으로 들어설 때 일본정부전용기 앞을 '''왕세자 자신이 조종하는 기체를 포함하여''' F-5 전투기 5대가 접안을 20분 동안 일본 사절이 공항에 들어오지 못하게 막아버리는 심각한 외교적 결례를 저지른 적도 있다.
게다가 입헌군주제를 표방하는 태국에서 국왕의 정치 개입과 권력을 강화하는 움직임이 여러 가지로 보이면서 실권자인 쁘라윳 짠오차 총리가 왕실의 꼭두각시에 불과하다는 의혹이 있어 비판이 늘고 있으나 전제군주제적인 불경죄 적용으로 강한 탄압을 자행하기 때문에 태국 내에서는 공개적인 비판이 불가능하다.
그래서 이전 세대와 달리 현재 태국 2,30대 청년들은 외신 등 투명한 정보 접근에 익숙한지라 성군이라 불렸던 아버지 라마 9세에 대해서는 절대적인 충성심과 사랑을 보였던 것과 달리 대놓고 의견을 표현하지 않지만 그에 대한 불만이 가득하여 그를 국왕으로 인정하지 않는다는 의견이 상당하다. 한 예로, 태국 영화관의 경우 영화 시작 전 왕실가를 틀어주는데 이러한 사회적 분위기가 있다 보니 왕실가가 끝난 후에 입장하는 관객들이 굉장히 증가했다고 한다. 또한 왕실가 상영 시 기립하지 않는 관객들이 증가하여 논란이 일자 태국의 한 영화관 브랜드는 왕실가 상영 중에는 존경심을 표해야 하며, 당사는 왕실가 상영 시 관객의 퇴장을 허용하는 정책이 없다고 발표하였다. 이로 인해 불경죄로 기소되는 사람의 수가 라마 9세 대비 굉장히 많이 늘어났다.
2019년 9월 30일 자로 경찰청에서 대외비로 국왕 근위대의 선발 및 지휘를 국왕이 직접 맡는다는 문서가 유출되어 논란을 일으켰다. 경찰관 873명이 6개월간 훈련 캠프에 강제적으로 참가해야 하나 이를 거부한 100명을 무슬림 분리 세력이 창궐하는 분쟁 지역인 남부 얄라 주[5] 기율 교육대로 보낸다는 발표를 하였다.
이어 10월 17일에는 태국 의회의 내년 예산안 심사 중 총리실에서 발의한 태국 육군 최정예 부대인 제 1사단 및 11사단을 국방부 소속에서 국왕 직할로 이전하는 법안이 통과되었다. 태국 기사 제 2 야당인 미래전진당의 사무총장이자 헌법학자 삐야붓 쌩까녹꾼(ปิยบุตร แสงกนกกุล)[6] 은 해당 분야 전문가답게 해당 법안은 발의할 수 있는 법적 근거가 부족하다며 강한 우려를 보였다. 입헌군주제를 표방하는 태국의 정치체제에 빗대어 볼 때 해당 두 사단의 지휘권이 누구에게 있는지 생각해 보면 해당 이슈의 심각함을 알 수 있다. 같은 입헌군주제 국가인 영국의 경우 명목상 군 통수권자를 영국 국왕으로 정해놓고는 있지만 실질적인 지휘권이 없다.
미국 CNN은 라마 10세가 내실 담당 경호 장교 2명을 포함하여 모두 4명의 궁실 관리들을 또 파면했다고 10월 30일 보도했다. #
2020년 코로나19로 국가적 위기가 닥쳤음에도 지속적인 독일 외유를 하여 태국 내 논란은 계속되었고 급기야 반 왕실 운동까지 벌이고 있다. # 코로나19의 확산으로 태국 경제가 휘청거리는 상황에서 왕실이 총 38대의 헬리콥터와 항공기를 가지고 있으며 유지비가 6400만 달러나 된다는 사실이 폭로되면서 왕실 지출에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
이렇게 지속적인 논란과 국민들의 불만들이 쌓이고 쌓이면서 결국 2020년 태국 민주화 운동을 불러일으키고 말았다.
6. 가족 관계
3차례 결혼 후 이혼하였으며 전 배우자들 사이에서 5남 2녀를 두고 있다. 왕족 자격이 있는 자녀로는 주오스트리아 태국 대사를 재직한 적이 있는 파차라키티야파 공주[7] , 2014 인천 아시안 게임에 승마에 출전해서 한국에 알려진 시리완나와리 나리랏 공주[8] , 티빵꼰 랏사미촛 왕세자가 있다. 나머지 아들 4명은 왕족이 아니다.
2019년 5월 1일, 대관식에 앞서 자신의 '''여성 근위 대장'''이던 수티다 나아유타야(Suthida Bajrasudhabimalalakshana)를 4번째 아내이자 왕비로 책봉하고 결혼식을 거행했다. 수티다 왕비는 타이항공 승무원 출신으로 2010년 근위대에 입대, 2014년부터 근위대장 직을 맡아왔으며 2016년 대장 계급을 받았다. 라마 10세보다 26세 연하이다. # 왕비 책봉 전에 이미 염문설이 나돌기도 했지만, 그 동안 왕실은 두 사람 간의 관계를 인정한 적이 없었다고 한다. #
2019년 7월에는 육군 조종장교 출신으로 현역 육군 소장인 시니낫 웡와치라파크디(สินีนาฏ วงศ์วชิราภักดิ์, Sineenat Wongvajirapakdi)를 후궁(Royal Noble Consort) 에 정식으로 책봉하고 그녀의 군 생활 등 일상생활 사진도 공개했다.# 시니낫 후궁은 34세로 라마 10세보다 33세 연하, 수티다 왕비보다 7세 연하이다. 이전까지 후궁을 둔 태국 국왕은 라마 6세(재위 1910-1925)가 마지막이었다.
이에 따라, 수티다 왕비는 이탈리아에서 혼자 생활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으며, 라마 10세 본인은 후궁과 독일에서 생활하고 있었다. 그런데 2019년 10월 21일, 갑자기 시니낫이 후궁 자리에서 폐위되고, 육군 소장 직위도 박탈되었다. 기사 이유는 시니낫의 왕실에 대한 비존중과 불충이라고. 기사에 따르면 시니낫이 수티다를 왕비에서 끌어내리고 자신이 대신 왕비가 되려고 음모를 꾸몄다고 한다. 궁궐에서 들리는 비공식 소문으로는 당시에 10월로 예정되어 있었으나 현재 12월까지 연기된 왕실 바지선 퍼레이드의 행사시 국왕의 옆자리를 수티다 왕비가 아닌 본인이 차지하려고 노력을 엄청 했다고... 더 아이러니한 사실은 본인이 스스로 기획하여 실행한 게 아닌 궁궐내 반대세력의 모략이었고, 거기에 넘어갔다고 한다. 쓰리랏사미 전 세자빈처럼 무기한 연금 등의 중벌을 받을 가능성이 높다. 세간에서는 시니낫이 태국 국왕의 개인 감옥에 수감될 거라는 예측이 있었으나[9] 지방의 어느 한 교도소에 수감되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2020년 9월 3일, 왕명에 의해 '''시니낫은 다시 복위되었다'''.# 국왕은 시니낫을 자신이 거주 중인 독일 모 호텔로 불러왔으며 공항에 직접 마중을 나갔을 정도로 시니낫에 대한 국왕의 신임이 회복된 것으로 보인다. 수티다 왕비의 향후 거취가 주목된다.
복귀한 후궁 시니낫 웡와치라파크디의 정적들이 시니낫의 나체 사진들을 퍼뜨리고 있다#
7. 기타
- 평소에 자전거를 즐겨 타는데 독일에서 자전거를 타다가 10대들의 고무총 공격을 받았다고 한다. 다친 사람은 없었다.[10] 또, 2015년에는 어머니의 생일을 축하하기 위해 수천 명과 함께 사이클을 타고 방콕 시내를 누비기도 했다.
- 항공기 애호가이다.
- 등과 양 팔 등에 스티커 문신을 하고 다닌 사진이 인터넷에 검색이 된다. 비록 태국의 전통 문신(สักยันต์)은 나름 신령한 효과가 있다고 알려져 부적으로써 새기는 사람들이 있지만 라마 10세의 문신은 그런 것도 아닌 일본식 이레즈미이다. 위에서 서술되었듯 자기 기분에 따라 독일 거리 한복판을 골반바지에 탱크톱 차림으로(...) 돌아다니기도 하는데, 이 때 찍힌 사진들을 보면 알 수 있다.
- 에이즈에 걸렸다는 소문이 있다. 사실인지 아닌지의 여부는 알 수 없으나, 성생활이 난잡하고 방탕하기에 에이즈 감염자라는 소문까지 있을 정도라고 생각하면 될 것이다. 다만 라마 10세 본인은 자주 독일에 가는데, 그 이유를 두고 사실은 에이즈에 걸려서 주기적으로 신선한 피를 수혈받기 위해서라는 소문까지 있다(...)
[1] 마하는 수식어이기 때문에 그냥 와치랄롱꼰이라고도 부를 수 있다.[2] 태국의 왕궁이다.[3] 호텔 전체를 임대하여 20여 명의 수행원들과 거주 중이다.[4] 부인들이 이혼할 만큼의 문제를 일으킨 것도 아니고 이혼을 반대했음에도 단지 맘에 들지 않는다며 강제로 한 것이다. 말이 좋아 이혼이지 실제로는 왕비 자리에서 내친 것.[5] 잦은 이슬람 반군의 테러와 게릴라전으로 군경과 민간인 사상자가 흔하게 나오는 지역이라고 한다.[6] 태국의 명문대라 불리는 쭐라롱껀 대학교와 더불어 태국 최고의 법대인 탐마삿 법대 조교수 출신이자, 왕실 모독법의 개정을 주장하는 법학자 그룹 소속이기도 하다.[7] 첫 번째 부인과의 사이에서 낳은 장녀. 78년생이며 영국에서 자라고 미국에서 유학 생활을 했기에 영어를 잘한다. 현재 태국에서 외교관으로 활동한다. 참고로 어머니인 첫 번째 부인은 라마 10세의 사촌으로 이혼해도 공주의 직위를 유지하고 있다.[8] 두 번째 부인과의 사이에서 낳은 4남 1녀 중 고명딸.[9] 이 경우 살아서 나올 가능성이 0에 수렴한다고 한다.[10] 인종차별의 의도는 확실치 않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