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덕궁 경복전

 




1. 소개
2. 역사
3. 구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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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궐도》 경복전 터

1. 소개


昌德宮 景福殿
창덕궁의 대비전(大妃殿) 중 하나이다. 선원전의 북쪽에 있었다. 원래 이름은 경복당(景福堂)이었다. 현재는 남아있지 않다.
경복당의 '경복(景福)'은 경복궁(景福宮)의 경복과 같은 글자이다. 그러나 유래가 같은 지는 확실하지 않다.[1]

2. 역사


창건 시기는 알 수 없다. 숙종 시기 혼란한 환국정치의 소용돌이 속에서, 숙종의 계비 인현왕후는 1688년(숙종 14년)에 폐출당했다가 1694년(숙종 20년)에 복위했다. 인현왕후는 복위하기 전날에 미리 궁에 들어왔는데, 이 때 잠시 머문 곳이 창덕궁의 경복당이었다.
이미 복위 전부터 몸이 안 좋았던 인현왕후는 이곳에 머물면서 치료를 받았다.# 인현왕후는 결국 을 이기지 못하고 1701년(숙종 27년) 승하했다. 숙종은 세 번째 왕비로 인원왕후 김씨혼인했다. 경종 즉위 후 왕대비가 된 인원왕후는 경종과 대립하는 왕세제 이금에게 정치적으로 힘을 실어주었다. 이에 위기감을 느낀 경종은 인원왕후를 공경한다는 뜻으로[2], 경복당을 옛 만수전 자리를 포함해서 큰 규모로 새로 짓고 경복전으로 이름을 바꾼 뒤 인원왕후를 모셨다.#
정조 시기에는 예순대비(정순왕후)가 여기서 존호를 여러 번 받았고,## 1805년(순조 5년)에는 이곳에서 승하했다. 이후 왕대비 김씨(효의왕후)도 머물렀다.#
1824년(순조 24년) 화재로 불타 사라졌다.# 이후 현재까지 복구하지 않았다. 1828년(순조 28년) ~ 1830년(순조 30년)에 제작한 《동궐도》에는 빈 터로 그려두었다.

3. 구조


  • 건물에 대해 남아있는 기록도, 그림도 없기 때문에 《동궐도》에 나와있는 터의 모습으로 추정할 수 밖에 없다. 정면 9칸, 측면 3칸으로 평면이 ‘┏┓’ 자 형태이며 가운데에 월대를 두었다. 행각은 없었지만 사고석, 벽돌로 쌓은 담장과 여러 채의 일각문들이 건물 주위를 둘러싸고 있었으며 남쪽 마당에는 직사각형 모양의 연못이 있었다.# 남쪽에는 애련재, 북쪽에는 송죽헌, 동쪽에는 습취헌이란 별채도 있었다.#

[1] 여담으로 경복궁 이름은 《시경》 - 주아 편에 나온, 잔치가 끝난 뒤 천자에게 바치는 노래인 "이미 술에 취하고 이미 덕에 배불렀어라. 임이시여, '''만 년 동안 큰 복을 누리소서.'''"(旣醉以酒 旣飽以德 君子萬年 介爾景福)에서 끝의 '景福(경복)'을 딴 것이다. [2] 좀 더 직설적으로는 인원왕후눈치를 보았기 때문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