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규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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崔圭植
1932년 9월 9일 ~ 1968년 1월 21일
대한민국의 전 경찰공무원이다.
1932년 9월 9일 강원도 춘천군 신북면 우두리(현 춘천시 우두동)에서 출생하였다. 춘천고등학교를 졸업하였고, 연세대학교 신학과에 재학 하던 도중 6.25 전쟁이 일어나자 학교를 중퇴하고 대한민국 육군 포병장교로 군에 입대하였다. 이후 정보장교 등을 역임하였다. 1960년 박정희 군수기지사령부 사령관의 부관을 지내면서 박정희 전 대통령의 신임을 얻었다. 1961년 5.16 군사정변 직후 국가재건최고회의에서 중앙정보부 요원으로 근무하였다.
같은 해 경찰공무원이 되었다. 이후 동아대학교를 졸업하고 부산대학교 대학원에서 정치학 석사 학위를 받았다. 1967년 10월 서울특별시 종로경찰서장으로 부임하였다.
1968년 1월 21일 1.21사태 당시 북한의 특수부대인 124군 부대 소속 무장공비인 김신조 일당 31명이 박정희 전 대통령 등 정부요인을 암살하기 위해 청와대를 기습하였다. 사건 당일 무장공비 일당이 국군으로 위장하여 세검정 자하문을 지나다가 형사 2명에게 검문을 당했고 이들에게 보고를 받고 현장에 출동한 최규식 서장은 직접 수하를 하며 신분을 밝힐것을 요구하였으나 무장공비들이 먼저 총격을 가하여 제일 앞에 있던 최 서장은 그자리에서 순직 하였다. 사후 경무관으로 특진했으며 태극무공훈장을 추서했다.
서울특별시 종로구 청운동 자하문(창의문) 앞(청운공원 부근)에 그를 기념하는 동상이 세워져 있다. 경찰대학 내에도 기념 동상이 세워져 있다. 경찰, '김신조 사건' 순직 최규식 경무관 동상 재정비 묘역은 국립서울현충원에 있으며 서대문 경찰박물관에도 그가 순직 시 착용했던 근무복과 점퍼, 기동모 등 유품들이 전시돼 있다.
국어학자이자 독립운동가연세대학교 부총장을 지낸 외솔 최현배가 그의 할아버지뻘 친척(경주 최씨)이다.
비록 전쟁 때문에 중퇴 하긴 했지만 그당시 연세대를 다닐정도로 수재였으며 경찰관이 되고 나서도 그때 학업을 미쳐 마치치 못한것에 대한 한 때문인지 부산시경 재직 중에도 동아 대학교 야간반을 다니며 틈틈히 공부하여 결국 졸업장을 따냈다. 서울로 발령 받은 후에도 매주 부산대 교수들이 서울까지 상경해가며 도와준 덕분에 논문을 발표하여 석사학위를 받았다. 하지만 1.21 사태로 사망하여 학위 수여는 그의 미망인이 받게 되었다.
육영수여사가 그를 상당히 신뢰했다고 한다. 평소에도 그의 일하는 모습이나 인품등을 자주 칭찬 했었고 경찰 임관 7년만에 서울의 중심부인 종로서 서장까지 오를수 이었던 것도 육영수 여사가 박정희 전 대통령에게 추천했다고 한다.[1] 그의 사망소식을 듣자 매우 안타까워 했고 심지어 최서장의 미망인에게 육여사가 직접 전화를 걸어 울면서 부고를 알릴정도였다고...

[1] 참고로 종로경찰서는 관할구역에 청와대가 포함 되는 아주 중요한 구역이다. 그만큼 그를 믿고 일을 맡길수 있었다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