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용근

 

* 정치인/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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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릉중앙고등학교(구 강릉농업고등학교) 교내 동상
崔容根
1919년 11월 9일 ~ 1973년 1월 29일
1. 개요
2. 생애


1. 개요


대한민국의 전 교육자, 정치인이다. 본관은 강릉(江陵), 아호는 인제(忍薺).

2. 생애


1919년 강원도 강릉군 성덕면 두산리(현 강릉시 두산동)[1]#에서 최태집(崔台集)의 아들로 태어났다. 강릉공립농업학교, 춘천공립농업학교 농림학과, 일본 모리오카(盛岡)고등농림학교(현 이와테대학) 임학과를 졸업하였다.
8.15 광복서울대학교 농과대학(현 생명과학대학) 강사로 근무하다가 강릉중학교 교장과 모교인 강릉농업고등학교 교장을 역임하였다. 한편 대한민국 정부 수립 전 미군정기에 대동청년단에 속하여 활동하기도 하였다.
1953년 자유당 청년부 차장으로 임명되어 정치에 입문하였다. 1954년 제3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자유당 후보로 강원도 강릉군 갑 선거구에 출마하여 현역 국회의원인 친자유당계 박세동 후보를 꺾고 당선되었다. 1957년 대한민국 국회 재정경제위원회(현 기획재정위원회) 위원장에 선출되었다. 1958년 제4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자유당 후보로 강원도 강릉시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이후에도 대한민국 국회 재정경제위원회 위원장직을 역임하였다.
1960년 배임, 부정축재 혐의로 입건되었다. 그리고 1961년 반민주행위자공민권제한법에 의해 공민권이 제한되었다.
1963년 제6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공화당 후보로 강원도 강릉시-명주군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자유민주당 김삼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1967년 제7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자유당 전국구 국회의원(제6번)으로 입후보하였으나 낙선하였다. 1971년 제8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신민당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민주공화당 최돈웅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1973년 제9대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신민당에 강원도 강릉시-명주군-삼척군 선거구로 공천을 신청하던 중 식당에서 식사하다 졸도하여 사망하였다.

[1] 인근의 포남동, 초당동, 송정동, 홍제동, 유천동, 노암동, 내곡동, 장현동, 박월동, 유산동, 청량동, 병산동, 월호평동, 운산동과 함께 강릉 최씨 집성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