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돈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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崔燉雄
1935년 3월 25일 ~ 2018년 6월 27일 (항년 83세)
1. 개요
2. 선거이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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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의 전 기업인, 정치인으로 호는 강촌(江村)이다. 본관은 강릉(江陵).[1]#
1935년, 강원도 강릉군에서 중추원 참의를 지낸 친일파 최준집(崔準集)의 아들로 태어났다. 경기고등학교, 서울대학교 공과대학 금속공학과를 졸업하였다. 이후 경월주조 회장을 역임하였다.
1971년, 제8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공화당 후보로 강원도 강릉시-명주군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1973년, 제9대 국회의원 선거, 1978년, 제10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공화당에 강원도 강릉시-명주군-삼척군 선거구로 공천 신청을 하였으나 두 번 모두 김효영에게 밀려 탈락하였다. 1980년, 한국국민당 창당에 참여하였다.
1992년, 제14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자유당의 공천을 받지 못하자 무소속으로 강원도 강릉시 선거구에 출마하여 민주자유당 최종완 후보를 꺾고 당선되었다. 같은 해 민주자유당에 복당하였다. 1996년, 제15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신한국당 후보로 강원도 강릉시 갑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자유민주연합 황학수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2000년, 제16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한나라당 후보로 강원도 강릉시 선거구에 출마하여 새천년민주당 최각규 후보와 민주국민당 심재엽 후보를 꺾고 당선되었다. 같은 해 대한민국 국회 재정경제위원장에 선출되었다. 그러나 2001년, 선거 회계책임자가 선거법 위반 혐의로 고등법원에서 집행유예를 선고받으면서 당선 무효가 거의 확실해지자 의원직을 사퇴했다가 2001년 재보궐선거에 출마하여 당선되는 꼼수를 써[2]빈축을 샀다. 한편 대한민국 국회 재정경제위원장은 나오연으로 교체되었다. 2002년 제16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한나라당 재정위원장에 임명되었다. 그리고 경기고등학교 동기동창인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를 위해 불법 대선자금을 기업으로부터 받은 혐의로 징역 1년형을 선고받고 복역하다가 2004년, 특사로 풀려나왔다.
이후 2005년에 강릉MBC 사태가 일어나면서 2대주주였던 최돈웅 씨의 책임론이 떠올랐고 결국 강릉MBC의 지분을 모두 매각해야 했다.
2007년 10월에는 한나라당 상임고문으로 임명되었다가, 불법 대선자금 관련 인물을 상임고문으로 다시 불러들이는 데 대한 반발로 이틀 만에 자진사퇴하였다.
자유한국당 상임고문으로 재직하다가, 2018년 6월 27일 사망.
참고로 최돈웅 가문의 가계도는 이 곳에서 볼 수 있다.

2. 선거이력


당 내부 선거가 아닌 대한민국 선출직 공직자 선거 결과만 기록한다.
연도
선거종류
소속정당
득표수(득표율)
당선여부
비고
1971
제8대 국회의원 선거 (강원 3선거구)[3]
민주공화당
46,024 (54.00%)
당선 (1위)

1992
제14대 국회의원 선거 (강원 강릉)
무소속
27,068 (37.63%)
당선 (1위)
1992.5.21
민주자유당 복당
1996
제15대 국회의원 선거 (강원 강릉 갑)
신한국당
12,988 (27.54%)
낙선 (2위)

2000
제16대 국회의원 선거 (강원 강릉)
한나라당
40,890 (42.11%)
당선 (1위)
2001.9.3 의원직 사퇴
2001
2001년 10.25 재보궐선거
(16대 국회 강원 강릉)[4]
한나라당
28,351 (44.1%)
당선 (1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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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최필달계(崔必達系) 33세손 돈(燉) 용(容) 口하(夏) 항렬[2] 지금은 선거법 위반으로 금고형 이상이 나올 경우 판결확정일로부터 10년간, 벌금형 이상이 나올 경우 5년간 피선거권이 상실되어 저런 꼼수를 쓸 수 없지만 당시엔 저런 규정이 없었다.[3] 강릉시, 명주군[4] 전임자 최돈웅 본인 의원직 사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