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은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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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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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은성이 대전이고 대전이 최은성이다."'''
대전 시티즌 서포터즈
前 대전 시티즌, 전북 현대 모터스 소속 골키퍼로, 현재 상하이 선화의 골키퍼 코치.'''수호천황'''
15년 동안 대전 시티즌의 골대를 지킨 전설적인 선수로 현재까지도 기억되고 있다. 2011 시즌 후, 대전 사장의 탁상행정으로 어이없는 계약 해지를 당하자 대전 시티즌 서포터즈는 '''"최은성이 대전이고 대전이 최은성이다"'''라는 최은성 지지 표어를 내걸며 거세게 반발했다. 이후 새로운 사장이 그 때의 일을 대신 사과하면서 구단과의 관계를 회복하고 전설 대우를 제대로 받게 되었다.
FC 코리아 팬들을 비롯한 축구팬들에게 가장 과소평가받는 골키퍼 중 하나이다.[2] 그 이유는 딱히 주목받지 못하는 실업팀 출신이었다는 점, 덕분에 프로 입단 시기가 꽤 늦었다는 점, 과거 소속팀인 대전 시티즌이 K리그 안에서도 비인기 하위권 팀이기 때문에 최은성의 활약이 제대로 주목받았던 적이 손꼽히기 때문이다.
하지만 '''K리그 팬이라면 누구나 인정하는 한국 축구의 레전드 골키퍼이자 최정상급 골키퍼 중 한명'''이다. 대전 시티즌이 재정 지원도 변변찮은 상태에서 그나마 중위권 정도의 성적이라도 낸 데에는 최은성의 활약을 빼놓을 수 없다.
동 세대의 국대 골리인 이운재나 김병지에 비하면 특별히 월등한 부분이 있는 건 아니지만 그의 최대 장점은 기복 없는 '''안정감'''. 만년 하위팀이며 시민구단의 한계로 제대로 된 전력보강은 꿈도 못 꾸는 대전 시티즌이라 수비진 또한 좋다고 말하기 힘든데, 그런 팀에서 안정적으로 수비진을 조율하며 수문장을 본다는 것은 그의 절대적 강점이라 할 것이다. 이 절대적인 안정감을 장기 삼아 대전 최대의 리즈시절이었던 2001년~2003년을 이끌었으며 2012~2013 시즌에는 닥공으로 단련되어 매우 강력한 공격력을 지닌 것에 비해 수비가 아쉬웠던 전북의 수비진을 조율하면서 전북을 '''최다 득점 및 최소 실점 팀'''으로 만드는 저력을 보여주었다. 그래서 전북 선수로 뛴 시즌이 두 시즌 반뿐임에도 전북 팬들에게도 큰 지지를 받고 있다.
2. 선수 경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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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은성/선수 경력 문서로.
3. 지도자 경력
3.1. 전북 현대 모터스 골키퍼 코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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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수 생활을 은퇴했지만 애초에 플레잉 코치에서 선수 생활만 은퇴한 것이기에 여전히 전북 현대 모터스에 남아있으며 골키퍼 코치를 맡게 되었다.
결국 전북 현대 모터스가 2014년 11월 8일 2014 시즌 우승을 거두면서 최은성은 선수 생활 마지막 해에 첫 리그 우승을 맛보았다. 그의 '''선수 생활 18년 만에''' 드디어 든 리그 우승컵이었다. 2001년 대전 시티즌 소속 당시 FA컵 우승을 일조했지만 결승전 경기 도중 부상을 당해 병원에 실려가면서 리그 우승컵을 드는 현장에 함께하지는 못했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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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구단의 배려로 15일 전주성에서 열린 우승 시상식에서 '''선수 유니폼을 입고''' 시상대에 서서 영광을 만끽하였다. 선수 자격으로 우승을 만끽하라는 구단의 배려였다고 한다.
이후에도 권순태, 홍정남, 송범근 등의 골키퍼들을 가르치면서 전북의 전성기에 일조했다
3.2. 중국 생활
2019시즌을 앞두고 최강희 감독이 톈진 취안젠 감독 부임이 확정되면서 최강희 감독을 따라 톈진의 코치로 부임할 것으로 전망되었다.#
하지만 최강희 감독이 시즌 개막 전 해임되면서 코치 부임은 없었던 일이 되었지만 이후 최강희 감독이 다롄 이팡 감독으로 부임하면서 최감독을 따라 다롄의 골키퍼 코치로 부임하였다.
2019 시즌 중반 최강희 감독이 다롄을 떠나 상하이 선화 감독으로 부임하면서 상하이의 골키퍼 코치로 부임하였다.
4. 어록
"우리는 오늘 이기기 위해서가 아니라, 살기 위해 뛰었다.'
2011년 K리그 승부조작 사건으로 대전 전현직 선수가 8명이 검찰조사를 받고, 4명이 구속된 뒤에 가진 경기 후, 선수들을 대신해 사죄했던 기자회견
"최고는 아니었지만, 최선을 다했다."
"최고의 선수는 언젠가 잊혀지게 마련이지만 최선을 다한 선수는 영원히 기억될 것이라고 믿습니다.”
"우승만 한다면 벤치라도 좋다."
5. 최은성에 대한 말말말
"히딩크 감독도 최은성이 성격이 좋고 성실해 뽑은 것이다."
"팀에 항상 밝은 에너지를 불어넣고 선수로서 어떻게 몸관리를 하는지 후배들이 많이 배웠다."
6. 여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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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은성은 삭발 수준의 짧은 헤어스타일로 잘 알려져있지만 머리카락이 있던 시절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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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몸 관리가 김병지 못지않게 뛰어나다. 40이 넘어선 나이에 20대 수준의 신체를 유지했으며, 18시즌 중에서 마지막 시즌을 제외한 나머지 17시즌을 한 시즌 제외하고 모두 25경기 이상을 소화했다. 30경기 이상을 뛴 시즌은 13시즌. 한 시즌 평균 출장으로는 오히려 김병지보다 더 많은데 김병지는 시즌 당 28.6경기, 최은성은 29.5경기를 소화했다.[4]
- 최은성이 대전에 대한 헌신을 대략적으로 소개한 기사 #
- 2012년 8월 대전 팬들이 헌정한 영상. 시기가 시기인지라 대전 팬이 아니라도 비장미의 끝을 맛볼 수 있다. http://youtu.be/4kRqrZpcqCY
- 2002년 월드컵 멤버로 선발되고 서드 골키퍼 자리에 대한 말들이 많아지자, 히딩크는 최은성의 성실한 자세와 팀을 위해 헌신하는 자세가 좋아 발탁했다고 한다. #
- 그라운드에 있는 선수들 중에서 가장 나이가 많은 축에 속하기는 하지만, 그런 점을 빼고 보아도 노안이다. 김병지보다 한 살 어린데 액면가로는 10살은 많아 보인다. 대전에서 마지막 감독이던 유상철은 아예 동갑이다.(...)
- 팬서비스가 좋기로도 유명한 선수 #
- 2013 시즌부터 주전 경쟁을 펼친 권순태와의 사이는 매우 좋다. 특히 권순태가 그를 매우 잘 따르는 편. 최은성이 대전에서 뛸 때부터 존경했다고 하며, 최은성이 전북에 올 적에는 전북에 얼마 없는 권순태보다 나이 많은 선수여서 더욱 잘 따랐다고. 2014 시즌 내내 권순태는 최은성을 위해 우승시켜주고 싶다고 말하기까지 했다. 둘의 나이 차이는 13살 차이로 이미 띠동갑도 넘어섰지만, 권순태는 그를 코치님이 아닌 형님이라 부른다고.
- 위에 샤다라빠 웹툰에서도 언급되어 있지만, 우승과 매우 인연이 멀었다. 대전 팬들이 전북에 가는 최은성에게 은퇴하기 전에 트로피 들고 가시는구나 하고 환영했지만, 결국 전북에서도 은퇴식을 치르고 연맹 등록상태로만 선수인 플레잉 코치로 우승 트로피를 들어올리게 되었다. 이것이 안타까웠는지 권순태는 우승이 99% 확정된 상황에서 트로피를 가장 먼저 최은성에게 주고 싶다고 말했다.
- 2012년 초반 대전 시티즌과 안 좋은 과정으로 계약을 해지하고 은퇴 직전까지 몰린터라 대전에서 결번시킨 21번도 결번을 취소하란 말이 나올만큼 감정이 한때 최악까지 치달았지만, 선수생활 막판에 대전이 재영입을 시도할 정도로 대전과의 관계는 많이 나아진 걸로 알려져 있다.
- 최은성은 자신의 소속팀이었던 대전 시티즌 엠블렘을 문신한 선수로도 유명하다.[5] 대전 엠블렘 문신은 전북 현대로 이적한 이후에도 유지했으며, 풋매골과의 인터뷰에서도 자신의 몸에 있는 대전 엠블럼에 대해 처음 프로생활을 했던 대전 시티즌을 가슴 속에 묻어두고 있고 경기에 나갈 때마다 가슴속에는 두 개의 팀이 있다라고 생각해서 더 든든하다라고 말해 시청자들을 감동시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