츠치야 텟페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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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일본의 前 프로야구 선수이자 현재는 도호쿠 라쿠텐 골든이글스의 1군 타격코치.
본명은 '''츠치야 텟페이'''지만, 상단 각주에 서술했듯 라쿠텐 이적 이후 등록명이자 통칭으로 이름 부분만 딴 '''텟페이'''를 사용 중이다. 한때는 타격왕도 먹을 만큼 분명 실력이 있었던 선수였으나 전성기가 너무 빨리 끝나서 일찍 은퇴한 비운의 선수.[2]
2. 데뷔 이전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 형의 영향을 받아 야구를 시작했다. 그 후 츠쿠미 고등학교[3] 에 진학해서 주전 유격수로 맹활약하며 비록 코시엔 진출 경험은 없었지만 '''타율 .551/32홈런'''이란 뛰어난 성적을 기록하였고, 더불어 50미터를 5.9초만에 달리고 원투(멀리 공던지기) 110m를 기록하는 뛰어난 신체능력을 주목받아 '''큐슈의 이치로'''라는 별명이 생기기도 했다.
이후 2000년 드래프트 5위로 주니치 드래곤즈의 지명을 받으며 프로에 데뷔했다.
3. 현역 시절
그러나 주니치 드래곤즈에 입단한 후엔 출장기회를 제대로 잡지 못한 채 3년간 2군에 머물렀고, 도중에 포지션을 외야수로 바꿨다. 이후 2004년 대망의 1군 데뷔 시즌을 가지게 되었지만 이미 후쿠도메 코스케, 알렉스 오쵸아, 이노우에 카즈키, 모리노 마사히코 등 쟁쟁한 외야수들이 널려있던 주니치의 외야진에 텟페이가 낄 자리는 없었고, 결국 백업 멤버와 2군을 전전해야 했다. 그나마 2군에선 2004년 2군 일본시리즈에서 끝내기 안타를 쳐 시리즈 MVP를 수상하는 등의 맹활약을 했지만, 1군에선 별다른 활약을 하지 못했다.
그렇게 주니치에선 제대로 출장기회를 잡지 못하다가 2005년 시즌 종료 후 현금 트레이드로 신생팀 도호쿠 라쿠텐 골든이글스에 이적하게 되었는데, 라쿠텐에서 이적 첫해부터 본격적으로 출장기회를 얻으면서 호타준족의 1번타자로서 활약, 팀내 2위의 타율 .303과 리그 최다인 3루타 7개를 기록하며 단박에 라쿠텐의 주전 중견수로 정착했다. 이후로 데뷔 첫 두자릿 수 홈런, 50타점을 기록하는 등 계속해서 주전 외야수로 뛰며 호성적을 기록해 나갔고 2009년에는 팀의 첫 클라이맥스 시리즈 진출와 함께 본인도 '''타율 .329, 12홈런 76타점'''을 기록하며 퍼시픽리그 타격왕을 차지하고 리그 최다인 3루타 '''13개'''를 기록하는 등 커리어하이 시즌을 보냈다. 여기까지가 그의 짧은 전성기였다.
2011년 호시노 센이치 감독이 취임한 이후 팀의 주장 자리를 맡게 되었지만, 저반발력 공인구 도입과 기량 저하 등으로 인해 히지리사와 료 등 젊은 외야수들에 밀려 출장기회가 줄어들었고[4] 2013년 라쿠텐이 첫 퍼시픽리그+일본시리즈 우승을 차지하는 감격을 누리는 와중에 텟페이는 포스트시즌 엔트리에도 들지 못하며 쓸쓸하게 팀의 첫 일본시리즈 우승을 바라보아야 했다.
결국 라쿠텐에서 완전히 자리를 잃고, 2013년 시즌 종료 후 오릭스 버팔로즈의 내야수 고토 미츠타카와의 트레이드로 오릭스로 이적하였다. 하지만 라쿠텐 시절 막판부터 이어져 온 하락세와 노쇠화를 극복하지 못하고 부상까지 겹치면서 오릭스에서도 출장기회를 잡지 못했고, 끝내 2015년 시즌 종료 후 방출되었다. 방출 이후 개인 운동을 하면서 현역 연장 의지를 밝혔지만, 타 구단의 입단 제의는 없었고, 이듬해인 2016년 1월 은퇴를 선언했다. 은퇴 당시 나이가 불과 34세로,[5] 나이에 비해 전성기가 너무 빨리 끝나버려 결국 비운의 타격왕으로 남게 되었다.
4. 은퇴 이후
은퇴 후 자신이 전성기를 보냈던 도호쿠 라쿠텐 골든이글스의 구단 직원으로 입사하여 라쿠텐 산하 어린이 야구팀 코치로 뜀과 동시에 야구해설가, 사회인야구팀 TFU클럽[6] 소속 선수로 뛰는 등 다방면에서 활동해 오다가 2019년에 2군 외야 수비·주루 코치를 맡게 되면서 현장으로 돌아왔다.
2020년부터는 1군 타격코치로 보직이 변경되었다.
5. 기타
- 이름인 텟페이는 아버지가 즐겨보던 치바 테츠야의 검도만화 나는 텟페이(おれは鉄兵)의 제목+주인공 이름에서 따왔다고 한다. 아들을 강하게 키우고 싶어서였다고. 다만 이름 한자는 보다시피 둘이 서로 다르다.
- 몇몇 일본 야구 팬들에게는 특이한 발언이나 행동 등으로 '소물'(小物)이라 불리며 네타 선수로 여겨지는 듯 하다.네타가 정리된 페이지. 참고로 그와 반대되는 '대물'은 왠지 니시오카 츠요시라고 한다.(...)
[1] 라쿠텐 이적 이후로부턴 등록명이자 통칭으로 이름만 딴 '''텟페이(鉄平)'''를 사용 중이다.[2] 이 테크는 팀메이트였던 3살 아래 히지리사와 료가 텟페이가 은퇴하고 3년 후에 은퇴하면서 그대로 타버렸고, 또다른 팀메이트였던 2살 위인 와타나베 나오토 역시 전성기는 데뷔 직후 4년만에 끝나버렸지만(이 선수는 27살에 드래프트에 지명되어 28살에 프로에 데뷔한 극단적인 케이스였다.) 어찌어찌 요코하마와 세이부로 이적하며 백업 내야수 생활을 하다가 2018년에 라쿠텐으로 돌아와서 아직까지 현역으로 뛰고 있다.[3] 유명 프로야구 선수들을 많이 배출한 고등학교이다. 카와사키 켄지로가 이 고등학교를 졸업했다.[4] 사실 텟페이도 2011년 29세로 그다지 나이가 많은 선수도 아녔다. 전성기가 너무 빨리 끝난 것. 그리고 그 텟페이를 밀어낸 히지리사와도 20대 후반에 전성기가 끝나버리면서 33세로 은퇴하게 되었다.[5] 1982년생으로 이대호, 추신수, 오승환 등과 동갑이다. 2020년에도 이들이 여전히 현역 선수로 뛰고 있는 걸 감안하면 상당히 은퇴가 빠른 셈.[6] 도호쿠복지대학의 OB선수들이 주축이 되어 결성한 클럽 형식의 사회인야구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