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미키야 공화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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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칼미키아는 동유럽 외곽 캅카스 인근 사막지대에 있는 러시아의 자치 공화국으로 카스피 해 북서쪽, 볼가 강 하류 서쪽에 위치하고 있다. 면적은 남한보다 조금 작은 수준이지만 인구가 30만 명이 되지 않아 인구 밀도는 매우 낮다.
인구의 57%가 몽골인의 한 일파인 토르구트족에 속하는 칼미크인이며, 30%는 러시아인이다. 그 외 볼가 타타르, 독일인 및·우크라이나인, 그리고 일부 고려인도 거주하고 있다. 공용어는 칼미크어와 러시아어로 되어 있다.
2. 종교
'''유럽을 통틀어 유일한 불교 국가'''이다. 이는 국기에 불교를 상징하는 연꽃 모양이 그려져 있는 것으로도 알 수 있는데, 본래 칼미크 족이 신장 위구르 자치구 준가리아 지역에서 이주해 온 몽골계 민족이기 때문이다[1] . 그래서 종교적인 측면에서 몽골, 티베트와 교류도 있다. 칼미크 인은 외몽골과 러시아에 각 20만 명, 중국 내몽골 및 신장 위구르 자치구에 10만 명이 남아있는 편이다. 신장 위구르 지역의 칼미크인들은 '오이라트'라고도 불리며, 중국에서는 몽골족으로 분류한다. 참고로 신장(동투르키스탄) 지방, 정확히는 동부 일부, 북부 지방은 몽골족이 있어서 티베트 불교 신자들, 및 샤머니즘이나 텡그리즘을 믿는 사람들이 많았다.
유럽 최대의 불교 사원이 수도인 엘리스타에 있다고 한다. 티베트 불교 중에서 원칙적으로 달라이 라마를 따르지 않는 교파로 칼미키야 공화국 내 자체적으로 종교 지도자를 선출하지만 달라이 라마 14세가 칼미키야 공화국을 방문했을 때 환영 인파가 무척 많았다고 한다. 티베트어로 독경하는 경우도 많다고 한다.
티베트의 달라이 라마처럼, 칼미크 공화국의 최고 불교지도자는 과거에 살았던 고승의 환생으로 간주되는 어린이 중에서 선택된다. 이를 보통 ‘린포체’라고 부른다. 칼미크 민족의 현재 린포체는 미국에서 태어났지만 환생스님으로 인정받은 뒤, 칼미크 민족의 정신적 지주로서 칼미크 공화국의 수도인 엘리스타에 거주하고 있다.
3. 역사
3.1. 근대 이전
원래 이 지역은 노가이 칸국의 영토였으나 준가르 지역에서 이주해온 토르구트인들이 코사크들과 힘을 합쳐 이들을 밀어내고 칼미크 칸국을 세웠다. 이슬람측 사료와 러시아 측 사료는 이들 오이라트인들을 칼미크(Kalmyk) 혹은 깔무끄(قلموق)라고 칭했다.
이후 건륭제 때 청나라가 준가르를 엎어버리면서 원정 거리 및 비용 문제, 역사적인 이유 등을 근거로 준가르 절멸을 지시해서 일종의 제노사이드를 실시하면서 토르구트부를 제외한 준가르의 오이라트인들은 완전히 멸망하였다. 현재 칼미크인들은 지구상에 남은 유일한 준가르족의 후손들이기도 하다.
카스피해에 정착한 칼미크 칸국도 마냥 평화롭지는 못했다. 18세기 초 카스피해 북부의 칼미크 칸국을 방문한 영국인 기록자는 칼미크인들이 농업을 제대로 발전시키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으며, 해당 지역의 광활한 땅은 “잉글랜드에서는 엄청난 가치가 있을 테지만, 여기서는 버려져 경작되지 않는다.”라는 기록을 남겼다. 해당 기록에 대한 보고가 예카테리나 대제 귀에 들어가자 예카테리나는 러시아 영내의 칼미크 칸국 영토를 축소시킬 계획을 세운다.
이 지역의 옥토를 노리고 러시아인과 우크라이나인, 독일인 농민들이 이주해왔다. 칼미크인들은 독일-러시아계 정착민이 늘어나는데, 러시아 제국의 과도한 군역 부과로 유목 생활이 방해받으며 생존의 위협을 느꼈다. 마침 준가르가 멸망하자 1771년에 빈 땅이 된 준가르 분지로 귀환을 결정하였고, 청도 이를 반겼다.
물론 러시아에서는 20만여 명의 칼미크가 대거 이주를 시도하자 경악하여 주변 민족들을 동원해 귀환을 막으려 했고 이 와중에 카자흐인과 키르기스인들의 계속된 공격[2] 으로 결국 5~7만여 명만이 간신히 청에 이주할 수 있었다. 이것을 토르구트의 귀환이라 한다.
청나라로 되돌아가지 않고 과거 노가이 칸국 영토에 남은 1만 3천여 호의 칼미크인들은 명목상 돈 코사크에 편입되었으며 오늘날 러시아의 칼미키야 공화국 칼미크인이 되었다.
3.2. 근대 이후
1920년 11월 4일 칼미크 자치주가 성립되었다. 1935년 칼미크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이 성립되고 다수의 칼미크 인이 이주해서 살게 되었으나, 나치 독일과 협력했다는 혐의를 받아 스탈린에 의해 시베리아로 강제 이주를 당하면서 자치 공화국이 해산되었다. 엘리스타도 이 때 이름이 스테프노이(Степной)로 바뀌었다. 칼미크 인들은 1957년 귀향을 허락받고 자치주가 회복되었으며, 1958년에 자치 공화국으로 승격되었다.
1980년대 후반부터 민족적으로 동질성이 높은 몽골과 연락하면서, 몽골의 도움을 받아 많이 훼손되었던 민족 전래의 불교 문화를 부흥시켰다.
4. 상징물
4.1. 국기
뒤에 있는 노란 배경은 태양을 상징하며 파란색은 하늘을 상징한다. 연꽃은 순수함과 행복을 상징한다.
4.2. 국가
칼미크어판과 러시아어판이 같이 존재하며 위의 영상은 칼미크 어로 부른 거다.
5. 기타
2010년 7월에 여기에 있는 우타에서 러시아 역사상 최고기온인 '''45.4℃'''가 기록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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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기(國棋)는 체스이다. 초대 대통령인 키르산 일륨지노프가 체스빠여서, 러시아 각지에서 체스 교사들을 초빙하며, 체스 챔피언 지망생들을 후원하고 엘리스타에 체스 마을이 세워질 정도다. 러시아 체스계 인기스타 알렉산드라 코스쪠뉴크(위에 사진)를 초빙하여 경기를 펼치고 칼미크인 학생들과 함께 전통 의상을 찍고 사진을 찍는 이벤트를 주최하기도 했다. 그리고 평창 올림픽(??) 시범 종목에 체스, 콘트랙트 브리지, 바둑을 추가하려고 하고 있고, 판문점 남·북한 친선 체스 대국을 기획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