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몽골

 

1. 개요
2. 역사
3. 현재


1. 개요


몽골어: ᠠᠷᠤ ᠮᠣᠩᠭᠣᠯ/Ар Монгол(Ar Mongol, 북몽골), ᠭᠠᠳᠠᠭᠠᠳᠤ ᠮᠣᠩᠭᠣᠯ/Гадаад Монгол(Gadaad Mongol, 외몽골)
중국어: 外蒙古(Wài Měnggǔ, 와이멍구)
만주어 : ᡨᡠᠯᡝᡵᡤᡳ ᠮᠣᠩᡤᠣ (Tulergi Monggo, 툴러르기 몽오)
오늘날 몽골국에 해당되는 고비 사막 이북의 몽골. 중국인들은 중국 국경 밖의 몽골이라고 해서 외몽골이라 했고 이 명칭이 유래한 청나라 때에는 내몽골이 이미 만주족 후금과 일체화되어 있었다.

2. 역사


튀르크인의 고향으로 흉노, 돌궐, 위구르 제국 등 수많은 유목 튀르크 제국이 이 땅에서 태어났다. 일관적으로 튀르크인은 카라코룸을 신성시했고 나중에 몽골 제국도 그들을 괴롭히던 메르키트를 쫓아낸 후 카라코룸을 중심으로 했는데, 그 메르키트도 튀르크계이다. 가장 유명한 유적지는 오르콘 강 유역의 돌궐 비문으로 최근 외몽골에 터키가 관심을 가지면서 연구 및 답사가 활발하다.
칭기즈 칸이 몽골 부족을 통일하고 중국까지 정복한 몽골 제국의 등장으로 내몽골부랴티아와 함께 역사에서 첫 등장했고, 이후 북원내몽골만주로 후퇴했을 때 이 곳에는 오이라트인이 들어와서 고비 사막을 경계로 북원 및 그 후계 차하르 칸국과 대치했다. 같은 몽골계인 차하르 칸국은 퉁구스계 만주족이 세운 후금에 복속 후 일체화되어 만주-몽골 연합정부로 청나라가 들어서 조선명나라를 굴복시켰고 외몽골에는 할하 부족이 중심이 되어 유목을 계속했으나 오이라트의 후계자인 준가르에 의해 대부분의 할하 족이 몰살 당한다. 할하 족은 할 수 없이 준가르의 일원으로 복속되었고 청나라 건륭제준가르를 멸한 뒤 200년 간의 기간에 청나라의 외몽골 지방이 되었지만 사실상 반 독립상태였다. 그래서 1911년 신해혁명으로 청 황실이 무너지자 12월 1일 독립을 선포, 복드 칸국을 수립했으나 러시아 제국의 중재에 따라 중화민국의 명목상 종주권을 인정하여 1915년 6월 캬흐타 협정을 체결, 자치를 보장받았다.
하지만 1917년 러시아 혁명으로 캬흐타 협정 무효가 선언되자 1919년 안휘군벌쉬수정외몽골 출병을 단행해 자치를 폐지하고 학정을 펼쳤다. 1920년 안직전쟁으로 안휘군벌이 몰락하자 담딘 수흐바타르허를러깅 처이발상이 몽골인민유격대를 조직해 중국군을 몰아내고 복드 칸을 복위시켰으나 이번에는 러시아적백내전에 휘말린다. 백군 일부였던 만주-부랴트 연합의 세메노프 대령과 그의 부하 로만 폰 운게른슈테른베르크가 외몽골로 쳐 들어온 것이다. 외몽골이 마지막 왕이었던 복드 칸은 독립한 지 얼마 안되어 다시 쳐들어온 백인 침입자에 맞섰으나 역부족이었고 그는 결국 운게른에 의해 폐위되며 외몽골은 러시아인의 지배를 받는다. 미친 남작이라고 까지 불렸던 운게른의 횡포는 1921년 소련군이 사회주의 독립운동가 담딘 수흐바타르를 앞세워 울란바토르로 밀고 들어오면서 쫑 나고 운게른은 시베리아의 이르쿠츠크로 잡혀간 뒤 노보시비르스크에서 사형을 선고받고 처형당한다. 그리고 중국러시아 백군의 지배를 벗어난 외몽골은 사실상 소련 속국이 된 채로 독립해 세계 2번째이자 아시아 최초 공산주의 나라가 된다. 그리고 소련이 붕괴된 뒤 자연스레 민주화되어 지금에 이른다.

3. 현재


외몽골인의 대부분은 할하 부족의 몽골인이다. 이들은 내몽골의 차하르 몽골인이나 부랴티아부랴트인과 사이가 안 좋다. 그리고 서부 호브드 아이막 및 바얀을기에는 튀르크족의 잔존 세력이 있는데, 카자흐족, 키르기즈족, 우즈베크족, 위구르 족, 타타르 족이 이들로 이슬람교를 믿고 터키어 계통의 언어를 써서 몽골인과는 이질적이고 역시 감정이 서로 안 좋아 차별받는다. 어웡키족들은 북부 바이칼 호 인접지에 사는 몽골 고원에 잔존한 퉁구스계로 이들이 만주족의 직계 조상이며 역시 차별받는 처지이다.
자세한 내용은 몽골 항목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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