컴퓨터/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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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t's face it, we're not changing the world. We're building a product that helps people buy more crap and watch porn.

솔직해집시다. 우리는 세상을 바꾸는 것이 아닙니다. 단지 사람들이 쓸데없는 소프트웨어를 더 많이 사고, 야동을 더 많이 볼 수 있도록 돕는 물건을 만드는 것뿐입니다.

- 빌 왓킨슨, 시게이트 社 CEO, 2006년

30년 뒤에 사람들이 컴퓨터로 이루어낼 놀라운 일이 기대됩니다.

-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 社 설립자 겸 회장, 1990년

개인적으로 집에 컴퓨터를 가지고 있을 이유가 전혀 없다.

- 케네스 올센, 디지털 이퀴브먼트 社 설립자 겸 회장, 1977년[1]

컴퓨터는 앞으로도 세계에 5대 정도만 있을거라 생각한다.

- 토마스 왓슨, IBM 회장, 1943년[2]

1. 세대별 분류
2. 16세기까지
3. 17세기 ~ 19세기
4. 20세기
5. 21세기


1. 세대별 분류


회로소자로 무엇을 사용했느냐에 따라 분류된다.
  • 1세대 컴퓨터(진공관) - 회로소자로 진공관을 사용. 전력소모가 많고 열이 많은데다 고장도 잦았다. 하지만 컴퓨터의 계산성능 및 필요성 때문에 개발은 활발히 되었고 상용화가 시작된 시기이기도 하다.
  • 2세대 컴퓨터(트랜지스터) - 트랜지스터가 회로소자를 대체하기 시작하면서 크기 및 발열이 획기적으로 개선되기 시작한다. 2세대 컴퓨터를 주도했던 기업은 IBM이고 이때 고수준 프로그래밍 언어가 개발되기도 한다.
  • 3세대 컴퓨터(집적 회로) - IC가 등장해 중앙처리장치가 작아지고 기억용량은 커진다. 운영체제가 본격적으로 나오며 다중 프로그램 등이 실현된다.
  • 4세대 컴퓨터(LSI) - LSI는 IC의 종류로 고밀도 집적 회로를 의미한다. 3세대보다도 더욱 소형화가 이루어져서 이때부터 개인용 컴퓨터가 개발되기 시작하고 일반 사무용 등으로도 컴퓨터의 사용이 확대된다.
  • 5세대 컴퓨터(VLSI) - 초고밀도 집적회로의 사용. 물론 요즘 컴퓨터들은 소자의 집적도가 수억은 가뿐히 넘어서 소자에 따른 분류는 희미해졌고, 현대에는 이러한 분류로 컴퓨터를 부르는 것은 거의 사장되어가고 있다.

2. 16세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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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 문명에 있어 가장 오래된 계산 도구는 손이며, 그 후로 긴 시간에 걸쳐 주판이나 계산자, 산가지와 같은 계산을 돕는 보조 도구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이러한 보조 도구를 이용한 인간 컴퓨터는 20세기 중반까지 이어지다 전자 계산기의 발전으로 단가가 저렴해지고 소형화 되고 반대로 인권의 발전으로 인간 컴퓨터의 임금이 늘어나면서 사장된다.

3. 17세기 ~ 19세기


1632년 시카르트와 1642년 파스칼에 의해 덧셈, 뺄셈이 가능한 최초의 기계식 계산기가 출현하였고 라이프니츠에 의해 곱셈, 나눗셈까지 가능한 계산기가 나왔다. 하지만 본격적인 현대 컴퓨터의 개념을 처음으로로 제시한 이는 찰스 배비지로서, 그는 차분기관이라는 기계식 계산기를 만든 뒤 오늘날의 컴퓨터와 개념적으로 같은 기계인 해석기관[3]을 설계(다만 예산의 한계로 당시에 실물이 제작되지는 못했다.)하였으며, 최초의 프로그래머가 탄생한다. 이후 1893년에 홀러리스에 의한 천공카드 시스템이 개발되어 인구통계 및 국세 조사에 이용되었고 자동계산의 실용성이 확인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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찰스 배비지가 만들려고 시도했던 해석기관, 다 만들지 못한 채 사망했다.

4. 20세기


잘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1938년에 독일의 콘라트 추제가 Z1을 개발하였고 이후에도 계속 개량하였다. 추제는 패전국이라는 이유로 잘 알려지지 않은 부분에서 십수 년 동안 최초 타이틀을 거머쥐었는데, 특히 Z3은 튜링 완전을 포함하여 프로그래밍이 불가능하다는 점만 제외하면 현대 컴퓨터가 갖춰야 할 기능을 갖춘 세계 최초의 컴퓨터였다. 설명.
1937년 2차 대전 직전에 영국의 앨런 튜링은 추상적 계산기의 모형이 되는 튜링 머신을 고안했고 이는 추상적 계산기의 모형으로서 컴퓨터의 논리적 모델이 된다. 이후 1937년 조지 스티브츠가 전자식 계산기를 만든 데 이어 1942년에 아이오와 주립대학의 아타나소프 교수가 베리아와 진공관으로 이루어진 특수 목적용 컴퓨터 ABC를 개발하였으나 오늘날 이 기계는 최초의 전자식 계산기라고 보기엔 특수목적용이었으므로 일반적으로는 최초의 진공관 사용 계산기로 보는 경향이 있다.
1943년 영국 GCCS(현 영국의 GCHQ)에서 독일군의 최고위 암호장치인 에니그마를 깨기 위해 콜로서스를 개발하게 된다. 콜로서스는 진공관, 릴레이만 사용한 디지털 컴퓨터였으며 덤으로 프로그래밍도 가능한 컴퓨터였다. 즉, 시작은 에니악보다 더 빠른데 이놈이 발표된 건 기밀이 해지된 후인 1975년 이후였다.
이후 에이컨에 의해 1944년 전기 기계식 계산기인 MARK-1이 제작되었고 2차 대전 이후인 '''1946년 에커트&머큘리에 의해 범용 전자계산기 ENIAC(에니악)이 개발되었다.''' 에니악이 개발되기 1년 전 헝가리 출신 수학자 존 폰 노이만프로그램과 데이터를 주기억장치에 두고 주기억장치에 있는 프로그램 명령어를 하나씩 수행해 나가는 방식을 제안하고, 또 오늘날까지 사용되는 2진법을 컴퓨터에 채택할 것을 주장하는데, 이 제안들이 적용된 최초의 컴퓨터인 EDSAC(에드삭)은 1949년 모리스 윌키스에 의해 개발되었다. 이로부터 현대적인 컴퓨팅이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다.
흔히들 애니악이 세계최초의 컴퓨터로 알고 있는 사람들이 많은데, 소송을 통해서 1942년에 개발된 '''ABC(어태너소프-베리 컴퓨터)[4]가 세계 최초의 컴퓨터로 인정[5]받았다.''' 물론 여전히 에니악이 최초의 컴퓨터라고 아는 사람이 많다. 컴퓨터의 역사에서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기 때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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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니악
1950~1960년대에 컴퓨터의 개발을 본격적으로 견인한 것은 ICBM우주항공 분야에서의 수요였다. 왜냐면 이 이전에도 NASA의 전신인 NACA나 노스롭, 보잉 같은 우주, 항공분야에서는 수학적인 계산을 많이 요구했기 때문. 문제는 컴퓨터는커녕 계산기도 없으니 그걸 '''전부 사람 손으로 했다!''' 수많은 계산원이 계산을 하고 옆 사람에게 넘겨 검산하는 형식. 효율성은 당연히 꽝이었다. MIT 연구소에서 가공을 위한 CNC 공작 기계를 발명해 내게 된다. 공작 기계와 컴퓨터를 접목시킨 사례.
미니트맨에는 항법 유도를 위해 처음으로 메인프레임이 아닌 트랜지스터 로직을 사용한 임베디드 컴퓨터를 사용했고, 1960년대 중반에는 새턴 V의 항법 컴퓨터에 집적회로가 사용되기 시작했다.[6] 1959년에는 미니컴퓨터 PDP-1을 통해 키보드를 통한 I/O 개념이 대중화되었고, 1962년에는 PDP-1으로 돌아가는 스페이스 워라는 기념비적인 컴퓨터 게임이 탄생했다. 아폴로 우주선은 AGC(Apollo Guidance Computer)라는 당시 가장 작고 빠른 컴퓨터를 탑재하고 있었는데, 이는 클럭 스피드 2MHz, 메모리로는 자기 램, 롬을 이용하였다. 소비 전력은 55W에 불과했다.
현재 우리가 쓰고 있는 대부분의 컴퓨터는 개인용 컴퓨터(personal computer, 약자로는 PC)이며 개인용 컴퓨터 규격은 IBM의 IBM PCIBM PC 호환기종, 애플매킨토시였다. 당연히 매킨토시는 고사양에 화려한 그래픽을 자랑하였지만 정작 본분에 충실하고 사무용 컴퓨터로 많이 쓰인 IBM PC가 거의 주름을 잡게 되었다. 컴퓨터는 사무실에서 주로 사용하므로, 배우려면 사무실용 컴퓨터를 배워야 하는 것이 이유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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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창기 PC[7]
1970~80년대에 백색 가전에 제어용 IC가 들어가기 시작하면서 아무데나 “콤퓨타”라는 말이 붙던 시절[8]이 있었지만, 제어용 IC의 소형화 및 가격 하락으로 인해 1990년대 이후에 출시되는 전자 제품 중 CPU(MPU)가 들어가지 않는 제품은 드물다.
인터페이스면에서도 발달했다. 배선들을 조합해서 프로그래밍 하던 시절에서 키보드를 사용해 직접 타이핑치면서 접근이 더 쉬워졌고, GUI 시대에는 마우스 사용도 발달해서 더욱 편해졌다.
1980년대만 해도 컴퓨터는 배우기도 힘들고 쓰는 것도 힘들었지만 지속적으로 컴퓨터 산업이 발전하면서 이젠 그 누구나 기초적인 지식만 있다면 컴퓨터를 사용할 수 있을 정도로 많이 개선이 되었다. 컴퓨터의 특징은 정확성, 신속성, 대용량성, 범용성, 호환성이며 이 컴퓨터가 기계로서 다양한 곳에 성능을 사용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1995년, 컴퓨터는 또 한 번의 대격변을 맞이하게 된다. GUI[9]를 채택한 Windows 95가 대중화되며 컴퓨터는 쓰기 쉽게 변모했다. [10]
이러한 대중화 때문에 단순 계산 뿐만 아니라, 영화, 음악, 게임, 소설 등 각종 멀티미디어 산업에서 컴퓨터가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였고, 전자책, 전자문서의 등장으로 기존 필기구와 필름들을 거의 몰아내었다.
컴퓨터의 성능 향상만큼이나 놀라운 것이 가격의 하락이다. 컴퓨터의 가격대 성능비는 지난 반 세기 동안 몇 억 배로 증가했다. 일례로 미국 우주선인 아폴로 시리즈에 탑재된 각종 컴퓨터들은 80년대 패미컴만도 못한 성능을 가졌지만 한 대의 우주선 전체(즉 3단 로켓 및 착륙선(2개) + 사령선)에 탑재된 컴퓨터의 가격을 합치면 지금 돈으로 수십억 원에 육박한다고 한다. 애당초 미국이 우주왕복선을 개발하게 된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왕복선의 경우 탑재된 컴퓨터를 재활용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당시엔 지금처럼 컴퓨터 가격이 싸질 줄은 상상도 못했기 때문이다.

5. 21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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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클라우드 컴퓨팅이 발전하고 2010년대 이후부터 스마트폰 같은 웨어러블 디바이스 성능이 비약적으로 올라가면서 개인적으로 집에 PC를 가지고 있는 경우가 줄어질지도 모른다는 추측도 있으나, 클라우드 서비스를 제공하는 기업이 개인이 올린 정보를 마음대로 들여다보거나 사용자의 동의 없이 자료를 이용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어서[11] 개인용 컴퓨터 자체가 사라지는 일은 없을 것이다. 애초에 스마트폰 자체가 초소형 개인용 컴퓨터에 전화기능을 넣은 물건일 뿐이기 때문에 동일한 기술력을 사용하면 스마트폰보다 규모가 큰 노트북 컴퓨터, 데스크톱 컴퓨터의 성능이 월등하기 때문에 여전히 큰 규모로 사용되고 있다.
프로그래밍 면에서는 딥러닝 같은 기계학습이 발달하여 스스로 프로그래밍하는 오토마타 개념이 탄생될 예정으로 보인다.
양자 컴퓨터 같은 기존 컴퓨터와 다른 연산 방식의 컴퓨터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단순 키보드, 마우스 같은 인터페이스에서 터치패드, 터치스크린, 모션캡쳐, 음석인식 등으로 더욱 발달하였다. 그리고 21세기 초에는 기초적인 뇌-컴퓨터 인터페이스가 등장했다.
시험에 자주 나오는 건데 컴퓨터에 창의성 같은 건 아직 없다. 강인공지능이 개발되지 않는 이상 앞으로도 없을 것이다. 2011년에 구글이 가진 기술력으로 만든 인공지능을 바둑에 접목시킨 알파고로 이세돌과의 대국에서 창의적으로 보일 수 있는 수를 데미스 하사비스(알파고 개발자)의 알파고 원리(정책망과 가치망)에 의한 연산결과의 판단으로 인간보다 더 창의적인 선택을 하는 경우가 바둑기사들에게 특이점을 선사했으므로 역사적인 사건으로 기록되었다.[12] 다만 이는 창의적인 수를 두었다기 보단 딥러닝을 이용한 자가학습을 통해 나온 결과로, 자가학습 역시 컴퓨터 역사의 큰 획을 그은 것이지만 완전한 창의력이라고 하긴 힘들다.


[1] Digital Equipment Co. 메인프레임 시대에 IBM 다음가는 컴퓨터 회사인 적도 있었다. PC에 무관심한 대가로 사세가 축소, 90년대 후반 (당시까지) PC회사인 컴팩(COMPAQ)에 인수된다. 이후 컴팩도 계속된 적자로 마침내 휴렛팩커드(휴렛패커드)에 인수된다. 컴팩은 PC회사인 관계로 한국내에서는 경쟁 PC 회사가 있어서 인지도도 낮고 한국 지사의 규모도 작았다. 반면에 오래된 메인프레임을 고집하는 금융권의 수요 덕에 디지털 社는 국내에 사업기반이 컸었다. 컴팩이 디지털을 인수할 당시 한국컴팩도 한국디지털과 인수합병했는데(둘 다 미국 본사의 100% 자회사) 인수하는 한국컴팩 직원이 30여 명, 인수당하는 한국디지털 직원이 1500명 정도였다. 합병된 회사 한국지사장은 당연히도 한국컴팩 출신이다.[2] 이 시기 즈음에 한 연구원이 "50년 후인 1990년대에는 컴퓨터가 2톤도 되지 않을 것이다!"라는 명대사가 있다. 1990년대가 아니라 75년경 이미 24kg짜리 컴퓨터가 나왔다. 현대의 컴퓨터중엔 키보드, 본체, 모니터, 마우스 및 기능들을 합쳐도 1kg도 나가지 않는 물건이 많다. 모니터가 없거나 ARM 같은걸 쓰면 라즈베리 파이(컴퓨터) 처럼 46g 짜리도 있고, 인텔 에디슨처럼 더 작은 컴퓨터도 있다.[3] 해석기관은 조건 분기 기능이 있었기 때문에 튜링 완전한 기계이며 훗날의 천공카드와 같은 카드를 통해 프로그래밍이 가능했다.[4] 존 어태너소프(John Atanasoff)는 아이오와 주립대학의 교수였고, 클리퍼드 베리(Clifford Berry)는 그의 제자다. 1939년 개발에 착수해 1942년에 실험을 거친 전자식 디지털 컴퓨터였다.[5] 1973년 10월 19일 미국 법원은 "인류 최초의 전자 계산기는 ABC다"라고 판결 하였다.[6] 집적회로가 대중화되면서 소자의 집적도와 작동 속도가 높아지자 더 이상 손으로 회로를 설계하고 그려가며(!) 만드는 방식으로는 컴퓨터에 대한 수요를 충족할 수 없게 되었다. 이때부터 회로기판을 사람의 손이 아니라 다른 컴퓨터의 힘을 빌려 설계한다는 패러다임이 보편화되었다.[7] 한 시대를 풍미한 8비트 컴퓨터 애플 II, 지금 보면 되게 촌스럽고 볼품없지만 출시 초창기, 그로부터 한동안 컴퓨터란 매우 비싼 물건이었다.[8] 지금도 동네에 ‘컴퓨터 세탁소’라는 간판을 달고 있는 곳이 많은 데서 그 흔적을 찾아볼 수 있다.[9] 사실 원조는 1980년대 초 제록스 연구소이고 이걸 배낀것이 애플, 그걸 시범적으로 탑재한게 겁나 비싸서 망한 1만 달러짜리 애플 리사, 상용화된 건 매킨토시 128K이다. 그래서 윈도우의 GUI는 표절로 많이 알려져 있지만, 이는 애플의 언플로 표절은 아니다. 마이크로소프트는 애플에게 소송당하자 사실 이 모든게 제록스 연구소에서 배낀거라고 폭로했다. 애플은 결국 제록스 연구소에서 GUI에 대한 권리를 인수했고 그러자 MS는 애플과 계약하고 GUI를 사용했다. 법적 분쟁은 표절 문제가 아닌 계약서에 사용기간이 없었기 때문에 발생한 것이다. 자세한 건 GUI 문서 참조.[10] 좀 더 정확히 말하면 윈도우 95의 등장이라기보다는 거의 동시에 대중화된 인터넷 때문이다. 한국에 인터넷이 대중화된 시기와 윈도우 95가 대중화된 시기가 거의 비슷하다. 과거 윈도우 3.1 시절에는 SLIP/PPP를 사용하여 비싼 돈을 ISP에 갔다 바치면서 역시 비싼 (시내/시외)전화요금(&PPP서비스 요금) 물어 가면서 느리게 인터넷을 해야 했다.[11] 서비스하는 기업이 망해서 개인자료가 담긴 서버를 팔아버리거나 혹은 해커가 서버를 해킹해서 개인정보를 팔아넘길 수도 있으며, 국가기관이 정보를 요청할 경우 기업은 자료를 넘길 수밖에 없다.[12] 계산과 연산은 더 정확한 선택을 찾기 위한 과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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