팀 레인스
1. 개요
1980년대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의 몬트리올 엑스포스 등에서 활동했던 외야수. 다소 저평가받는 감이 있지만, 뛰어난 출루능력과 빠른 발로 한 시대를 풍미한 선수였다. 별명은 'Rock.'
통산 성적은 24시즌 동안 타율 0.294, 출루율 0.385, 장타율 0.425, OPS 810, 순장타율 0.131, '''BB/K 1.38''', wRC +125, 2605안타 170홈런 '''808도루'''를 기록했다.
2. 선수 경력
2.1. 몬트리올의 간판 스타
1977년 몬트리올이 5라운드에 지명하면서 프로 선수로서 생활을 시작했다. 다소 낮은 지명순위였지만, 성장세가 굉장히 빨라서 1979년 시즌 말미에 대주자로 메이저리그에 처음 진출했고, 1981년부터는 주전으로 활동하기 시작했다. 당시 그는 좌익수 주전 자리를 꿰차면서 신인임에도 3할 타율, 71도루를 기록하면서 도루왕을 차지했다. 그리고 팀도 창단 후 처음으로 PO 진출에 성공하는 기쁨을 맛보았다. 파업 때문에 고작 88경기를 뛰고 거둔 성적이라서 파업이 아니었다면 더 엄청난 기록이 나왔겠지만, 이 정도면 다른 해라면 신인왕은 충분했다. 하지만, 그 해 신인왕 경쟁자는 LA 다저스에서 센세이션을 일으킨 1981년 사이 영 상 수상자, 멕시코의 영웅 페르난도 발렌수엘라였다. 결국 신인왕 투표 2위에 만족해야 했다.
그러나 그 뒤로도 레인스의 활약은 변함이 없어 1981년부터 1984년까지 4년 연속 도루왕 등극, 6년 연속 70도루 성공, 1986년 타격왕, 1987년 올스타전 MVP 등극까지 몬트리올의 스타로서 맹활약을 펼쳤다. 다만 이 시기의 흑역사로는 지속적인 코카인 복용이 있는데, 락커룸에서 코카인이 발견되는 것을 막고자 유니폼 바지 뒷주머니에 코카인 봉지를 숨기고 헤드퍼스트 슬라이딩만 했다고 한다. 1985년 피츠버그 마약 재판에서 관련인으로 증언했지만, 아직 메이저리그에서 도핑의 심각성을 깨닫지 못하던 때라 출장정지와 같은 징계는 받지 않았다. 어찌되었든 경기장 안에서는 꾸준한 활약을 펼치던 레인스는 1990년 시즌 종료 후 트레이드를 통해 시카고 화이트삭스로 떠나면서 팀과 이별을 고했다.
2.2. 우승 반지, 그리고 은퇴
시카고에서도 리드오프로 충실한 활약을 보여주면서 5년간 활약했다. 그리고 1996년에 뉴욕 양키스와 계약을 맺고 3년을 뛰었고, 이 시기에 마침내 월드시리즈 무대를 밟아 두 번의 우승 반지를 차지할 수 있었다. 그리고 1999년에 오클랜드 어슬레틱스와 계약을 맺었지만, 루푸스가 발병하면서 잠정 은퇴하고 만다. 하지만 2001년 기적적으로 루푸스가 완치되면서 다시 옛 친정팀인 몬트리올에 복귀했고, 여기서 엄청난 환대를 받으면서 41세의 노장의 성적으로는 믿기지 않는 3할 타율을 다시 기록했다. 몬트리올에서 은퇴하는가 싶었지만, 메이저리거로 막 데뷔한 아들 팀 레인스 주니어와 같이 뛰기 위해 팀에서 아들의 소속팀인 볼티모어로 무상 트레이드하면서 팀을 떠나 소원이던 아들과 함께 뛰는 것을 달성했다.
그리고 고향인 플로리다에서 2002년 한 시즌을 더 뛴 후 은퇴했다. 은퇴 후에는 코치 생활을 꾸준히 하면서 2005년 시카고 화이트삭스의 1루 코치로 월드시리즈 우승 반지를 하나 더 득템했다.
3. 명예의 전당 통계(Hall of Fame Statistics)
- JAWS - Left Field (8th)
4. 평가
동 시대에 활약한 '초특급' 대도(大盜)의 그늘에 가려진 불운의 'A급' 대도로, 세이버메트릭스가 10년만 빨리 나왔다면 평가가 많이 달라졌을 선수로 꼽힌다.
통산 성적은 타율 0.294에 2605안타 170홈런으로 평범해 보일 수도 있다. 타선에서의 역할이 테이블 세터였음을 감안할 때 홈런은 그리 큰 의미가 없다고 하면, 백업이었던 데뷔 첫 2시즌과 마지막 2시즌을 제외한 풀타임 17시즌 동안 거둔 성적이 중요한데 다소 임팩트가 없어 보이는 것은 사실이다. 그가 뛴 포지션이 거포들이 많은 좌익수라는 점도 그렇고, 비인기팀에 약체인 몬트리올에서 뛴 탓에 전성기에 큰 주목을 끌지 못한 것도 불운한 요소다.
하지만 레인스가 정말 높게 평가 받아야 하는 것은 뛰어난 도루 실력과 출루 능력이다.[1] 풀타임 '''데뷔 후 6시즌 연속 70도루''' 기록은 레인스만이 가지고 있으며 은퇴할 때까지 808도루를 기록해 이 부문 역대 5위에 랭크되어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출루 능력. 스즈키 이치로, 후안 피에르, 디 고든 같은 일반적인 쌕쌕이 리드오프들이 컨택과 발로 출루하는 것과 달리 레인스는 탁월한 선구안을 바탕으로 엄청난 출루 능력을 보여줬다. 21시즌 동안 단 한 번(1982년)을 제외하고 볼넷이 삼진보다 적은 적이 없었다. 안타 외에도 볼넷으로 출루를 했기 때문에 전성기에는 늘 4할이 넘는 출루율을 찍었고, 그때문에 통산 출루율은 0.385로 타율과 비교할 때 1할 가까운 차이를 보인다. 출루가 보장되고 빠른 발을 가졌기 때문에 리드오프로서는 상당히 이상적이었던 선수. 다만 아쉬운 점이 장타력인데, 그것까지 갖췄다면 그건 초인인거다.
정말 아쉬운 점은 그와 같은 시기에 역시 출루, 도루 능력뿐만 아니라 장타력까지 거의 모든 공격지표에서 그를 능가하는 명실공히 사상 최강의 선두타자인 '''리키 헨더슨'''이 존재했다는 점이다. 이 때문에 내셔널리그 최고의 리드오프였던 레인스는 시대를 대표하는 리드오프가 되지 못했고, 그렇지 않아도 적은 안타수와 낮은 장타력 때문에 저평가를 받아 명예의 전당 투표에서 상당히 고전하였다. 만일 세이버메트릭스가 좀 더 일찍 각광을 받았다면 평가가 훨씬 달라졌을 선수.
그동안 꾸준히 메이저리그 명예의 전당 득표율이 오르기는 했는데, 2014년부터 다른 대선수들이 차례로 명예의 전당 후보로 합류하면서 득표율이 다시 떨어졌다. 그래도 이들이 다 들어갈 2017년까지만 40~50% 언저리로 버틴다면 세이버메트릭스의 유행으로 인해 재평가의 가능성이 상당히 높다고 예측되었지만 실제로 2015년도 역시 55%의 득표율을 보였다. 거기에 2015년 기준으로 8년차 라는게 큰 걸림돌. 2014년 이전이었다면 15년간 투표 자격을 얻었기 때문에 들어가기는 갔을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했는데, 2015년 투표부터 입성 기준이 10년 내로 단축이 되는 바람에(이미 10년을 넘긴 선수는 종전대로 15년) 기회가 이제 단 두 번 남았다. 많은 세이버매트리션들의 지지에도 불구하고 기회가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이 문제.
2016년에는 69.8%를 기록했다. 단번에 득표율이 확 올랐지만 문제는 이제 기회가 '''단 한번'''밖에 남지 않았다. 그래도 70%에 가까운 상황인 점은 그나마 유리하게 작용하는 상황인데다, 2016년에 레인스보다 더 많이 득표한 선수는 제프 배그웰 밖에 없고, 2017년 입성이 유력한 선수가 이반 로드리게스, 블라디미르 게레로 정도라 레인스에게는 명전에 헌액될 절호의 기회를 맞이했다.
그리고 2017년 투표 결과 85.97%의 득표율로 마지막 기회에 명예의 전당 입성에 성공했다.[2] 모자는 전성기를 보낸 엑스포스 모자를 쓰고 들어갔다. 이후 명예의 전당에 입성한 블라디미르 게레로가 로스앤젤레스 에인절스 모자를 선택하여 엑스포스 모자를 쓴 최후의 명전 멤버가 되었다.
명전 입성 후 엑스포스의 후신인 워싱턴 내셔널스의 명예의 전당에도 입성했으며, 2017년 8월 28일에는 명전 동기이자 내셔널스 소속으로 뛴 경험이 있는 이반 로드리게스와 함께 내셔널스 파크에서 시구를 하기도 했다. 한 가지 재미있는 사실은 당시 레인스의 행사 참석이 그의 생애 첫 번째 워싱턴 D.C. 방문이었다는 것. 그래도 레인스는 몬트리올에 야구팀이 없어진 이상 내셔널스의 명예의 전당에라도 자신의 이름이 남게 되었다는 사실에 대해 굉장히 기뻐했다고... 관련 기사 어쨌든 이로써 엑스포스 소속으로 명전 멤버가 된 3명(게리 카터, 안드레 도슨, 팀 레인스) 모두 내셔널스가 주최한 기념 행사에 참석한 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