퍼프 대디
1.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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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래퍼이자 프로듀서, 사업가. 배드 보이 레코드(Bad Boy Records)의 現 사장.
퍼프 대디[1] 는 예명이며, 본명은 션 콤즈(Sean Combs).[2] 퍼프 대디 외에도 디디(Diddy), 피 디디 (P. Diddy), 퍼피 (Puffy) 등의 예명이 있다. 각종 장르들의 음원을 샘플링해 특유의 프로듀싱으로 새롭게 재탄생시키는게 특징이다. 주로 상업성과 대중성을 확보하기 위해 노래를 만들어서 그 점 때문에 싫어하는 이들도 많지만, 션의 프로듀싱은 웬만한 프로듀서들을 앞서나가는 강점이 있다. 카녜 웨스트, JAY-Z, 닥터 드레와 더불어 미국 래퍼 중에 자산이 제일 많은 축에 속한다. 2020년 현재 칸예가 미국 래퍼 중 재산 1위, JAY-Z가 2위, 퍼프 대디가 3위, 닥터 드레가 4위를 차지하고 있다.[3] #
2. 상세
2.1. 유년기
1969년 11월 4일 미국 뉴욕 주 뉴욕 시 맨해튼 할렘에서 태어났으며, 션 콤스의 아버지는 마약상이고 션이 어렸을 때 총에 맞아 사망했다.
2.2. 활동 초기
대학 중퇴 후 업타운 레코드(Uptown Records)의 안드레 하렐 밑에서 조수로 일했다.[4] 거기서 인맥을 쌓다가, 훗날 동부 힙합의 레전설로 남게 되는 노토리어스 B.I.G.와 친구가 된다. 하지만 레코드에서 쫓겨나고 비기도 구속되다가 친구인 D Rock이 대신 들어가 다사다난했으나, 배드 보이 레코드(Bad Boy Records)를 손에 넣으면서 인생역전에 성공한다. 비기와 계약한 뒤엔 그의 노래들을 프로듀싱해주면서 배드 보이 레코드는 위상이 높아져 이스트 코스트를 대표하는 회사로 자리잡는다.
2.3. 투팍 vs 비기, 서부 vs 동부 시절
그러나 1994년 투팍과 비기와의 피튀기는 디스전이 벌어지고, 이는 투팍이 소속된 데스로우 레코드와의 싸움으로 번지나 투팍과 비기의 죽음으로 디스전은 마무리된다. 그러나 자기 회사의 거물급 인재를 잃어 션과 배드 보이는 몰락하지 않을까 싶었으나, 오히려 지금까지 준비해 온 앨범 'No Way Out'에 비기의 추모곡인 'I'll Be Missing You'를 수록해 래퍼로 직접 데뷔하여 절정에 달하는 히트를 거둔다.[5] 그야말로 션의 인생사 최고조에 달하는 흑자였으나, 주변의 평판은 좋지 않았다. 먼저 션 본인의 인성에 문제가 있어보이는 사람 열받게 만드는 태도와 상업적인 노래, 비기의 죽음을 이용한게 아니냐는 의혹이 겹쳐저 욕을 먹기도 했으나 그의 이어지는 흑자에는 별 지장이 없었다.
2.4. 1997년, 퍼프 대디의 해
1997년은 그에게 엄청난 해였는데, 일단 본인 데뷔 앨범 "No Way Out"의 첫 싱글인 'Can't Nobody Hold Me Down'이 빌보드 핫 100 6주 연속 1위, 그리고 작곡하고 프로듀싱한 비기의 'Hypnotize'가 바로 이어서 빌보드 핫 100 3주 연속 1위, 잠깐 핸슨#s-3의 MMMbop에게 자리를 내주었다가 'I'll Be Missing You'가 빌보드 핫 100 11주 연속 1위, 그 1위를 제동시킨 건 역시 본인이 작곡하고 프로듀싱하고 피쳐링까지 한 비기의 'Mo Money Mo Problems'가 빌보드 핫 100 2주 연속 1위, 이걸 제동시키고 빌보드 핫 100 1위로 올라섰던건 역시나 본인이 프로듀싱과 작곡을 맡은 머라이어 캐리의 Honey였다. Honey 이후엔 자신이 작곡하진 않았지만 프로듀싱에 참여한 보이즈 투 멘의 '4 Seasons of Loneliness'가 빌보드 핫 100 1위를 하였다.
2.5. 1998년, 계속된 최전성기
퍼프 대디의 데뷔 앨범 "No Way Out"으로 인한 퍼프 대디의 최전성기는 다음 해인 1998년에도 계속 이어졌다. 일단 데이빗 보위의 1983년 노래 Let's Dance을 샘플링한 곡인 "Been Around the World"가 빌보드 핫 100에서 2위까지 올랐으며 앨범의 마지막 싱글인 "Victory"도 19위까지 오르는 등 No Way Out으로 인한 성공도 있었지만, 1998년의 퍼프 대디를 논할 때 빠트릴 수 없는게 영화 고질라다.
퍼프 대디는 고질라의 주제곡을 맡게 되었는데, 전설적인 기타리스트 '''지미 페이지'''가 피쳐링을 했다. "Come with Me"라는 곡인데, 살면서 한 번씩은 들어봤을 것이다. 이게 퍼프 대디와 지미 페이지의 협연이라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이 꽤나 있는 것 같다. 영화는 망했지만... 노래는 좋아서 빌보드 핫 100 4위까지 올라갔다.
2.6. 2집 앨범 "Forever" (1999 ~ 2000년)
퍼프 대디는 1999년 정규 2집 앨범인 "Forever"을 발매한다. 앨범은 빌보드 200에서 2위에 올랐다. 이 앨범의 리드 싱글인 "Satisfy You"는 알 켈리가 피쳐링한 곡인데 빌보드 핫 100에서 2위까지 오르며, 퍼프 대디의 전성기를 계속 이어갔다.
2.7. 의류 사업, 제니퍼 로페즈와의 스캔들
그리고 의류 브랜드인 션 존을 만들어 의류 시장까지 공략해 수입을 더 크게 불린다. 션 존은 당시 인기가 많았다. 그러나 총기 사건 연루, 제니퍼 로페즈와의 스캔들 의혹으로[6] 굴곡 많은 일도 있었으나, 2001년 예명을 P. Diddy로 바꾸면서 활동도 더욱 활발해진다.
2.8. P. Diddy 시절 (2001년 ~ 2005년)
P. Diddy로 바꾸고 낸 앨범이 바로 그의 3집 앨범 "The Saga Continues..."이다. 2001년 발매되었으며 빌보드 200 2위에 올랐다.
하지만 대중들에게 더 잘 알려진 앨범은 2002년 발매한 리믹스 앨범인 "We Invented the Remix"일 것이다. 빌보드 200에서 1위를 했고 이 앨범에서 피 디디 시기를 대표하는 히트곡 두 개가 나왔다. 바로 "I Need a Girl (Part One)"과 "I Need a Girl (Part Two)"이다.
2002년 말 B2K의 싱글 Bump, Bump, Bump를 프로듀싱하고 피쳐링했다. 이 곡은 에미넴의 Lose Yourself를 밀어내고 빌보드 핫 100에서 1위를 했을 만큼 큰 성공을 거두었다.
2003년에는 나쁜 녀석들 2의 주제곡인 Shake Ya Tailfeather를 넬리와 Murphy Lee와 함께했다. 영화의 흥행으로 빌보드 핫 100에서 4주 연속 1위했다.
2.9. Diddy 시절 (2005년 ~)
2005년엔 예명을 Diddy로 바꾸고 2006년에 "Press Play"라는 4집 정규 앨범을 발매한다. 미국 연예계의 마당발 아니랄까봐, 화려한 피쳐링진을 자랑했는데 거의 모든 트랙에 피쳐링을 넣었으며, '''니콜 셰르징거와 크리스티나 아길레라부터 시작해서 키샤 콜, 시에라, 메리 제이 블라이즈, 제이미 폭스, 브랜디, 나스, 트위스타, 빅 보이''' 등 수많은 힙합/R&B/팝의 거물들이 피쳐링에 참여했다. 이러한 노력 덕분인지 앨범은 빌보드 200에서 1위를 차지했다. 그러나 싱글 성적은 디디의 이름값에 비해 좋지 못했다.. 니콜 셰르징거가 피쳐링한 "Come to Me"가 핫 100 9위, 키샤 콜이 피쳐링한 "Last Night"이 핫 100에서 10위를 기록하며 전작에 훨씬 못 미치는 성적을 기록했다.
2006년부터 12년 동안 미국의 R&B 여가수 Cassie와 동거했다. 디디가 애초에 자신이 연 파티에서 케시를 만났는데 그때부터 좋아서 가수 커리어까지 밀어주다... 결국은 10년이 넘는 오랜 기간동안 같이 살게 되었다.
디디가 이 시절 걸그룹을 지원해 주기도 했는데 그게 바로 Danity Kane이다. 이들 Danity Kane은 한 인기 리얼리티 쇼에 출연했는데, 마침 이 쇼를 좋아하던 디디가 이들을 자신의 회사와 계약시켰다. 그러나 곧 귀찮아 졌는지 홍보를 제대로 안 해줘서 망했다..
2007년에 포브스가 디디를 미국에서 재산 많은 래퍼 탑 3 안에 선정했다. 나머지 두 명은 50 센트와 JAY-Z.
2008년에는 자신의 회사를 워너 뮤직 그룹에 매각한다. 그리고 타임지에서 가장 영향력있는 인물 100인 중 1명으로 뽑혔다. 비기의 추모영화인 노토리어스에서 공동 제작을 맡기도 하였다.
현재는 Diddy-Dirty Money에서 활동중이다.
3. 디스코그래피
3.1. 앨범
3.1.1. 정규 앨범
- No Way Out (1997)
- Forever (1999)
- The Saga Continues... (2001)
- Press Play (2006)
3.1.2. 리믹스 앨범
- We Invented the Remix (2002)
3.1.3. 컬래버레이션 앨범
- Last Train To Paris (2010)
- 11 11 (2014)
3.2. 싱글
3.2.1. 빌보드 핫 100 1위
- Can't Nobody Hold Me Down (1997)
- I'll Be Missing You (1997)
- Mo Money Mo Problems (1997)[7]
- Bump, Bump, Bump (2003)[8]
- Shake Ya Tailfeather (2003)[9]
3.2.2. 빌보드 핫 100 2위
- It's All About the Benjamins (1997)
- Been Around the World (1998)
- Satisfy You (feat. R. Kelly) (1999)
- I Need a Girl (Part One) (feat. Usher, Loon) (2002)
- I Don't Wanna Know (2004)[10]
3.2.3. 빌보드 핫 100 3 ~ 10위
- Come with Me (feat. Jimmy Page) (1998) - 4위
- Lookin' at Me (1998)[11] - 8위
- All Night Long (1999)[12] - 9위
- I Need a Girl (Part Two) (feat. Ginuwine, Loon, Mario Winans) (2002)- 4위
- Come to Me (feat. Nicole Scherzinger) (2006)- 9위
- Last Night (feat. Keyshia Cole) (2007)- 10위
3.2.4. 빌보드 핫 100 11 ~ 20위
- No Time (1996)[13] - 18위
- Someone (1997)[14] - 19위
- Victory (feat. The Notorious B.I.G., Busta Rhymes) (1998) - 19위
- Trade It All, Pt. 2 (2002)[15] - 20위
- Pass the Courvoisier, Part II (2002)[16] - 11위
- Coming Home (with Dirty Money, featuring Skylar Grey (2010) - 11위
4. 여담
5. 투팍 샤커 청부 살해 루머 관련
투팍과 비기의 사망 사건을 담당한 전직 경찰이 이 둘의 죽음 뒤에 '''퍼프 대디 본인'''과[17] 데스로우 레코드 사장 슈그 나이트[18] 의 사주가 있었다고 증언했다. 이게 허핑턴포스트 기사로 나간 뒤, '''그야말로 힙합 팬들에게 안 좋은 취급을 받고 있는 중.''' 다만, 살해범들 역시 자백과 결정적인 증거를 제시하지 못하고 사망했고 본인이 힙합계의 거물이자 최고 부자로서 법망을 피할 수 있는 여건을 다 갖추고 있는 상태라[19] 청부살인 혐의를 입증할 수 있는 방법은 현재까지는 없는 상태. 다만, 이 의혹은 그 전직 경찰의 증언 이전에도 이미 나돌고 있었다.But this idiot's boss pops pills and tells him he's got skills
하지만 이 머저리 새끼의 보스는 약이나 처먹고 얘한테 랩 잘한다고 했겠지
But, Kells, '''the day you put out a hit's the day Diddy admits'''
하지만 켈리, '''너가 히트곡을 내는 날이야말로,'''
'''That he put the hit out that got Pac killed, ah!'''
'''니네 보스가 투팍을 죽였다고 시인하는 날이 될 거야,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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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실 때문에 에미넴은 Killshot에서 퍼프 대디가 투팍 샤커를 죽였다고 농담으로 퍼프 대디를 디스한 적이 있는데, 위에 나와 있는 인용문이 바로 그것이다. 해당 항목의 문단을 참조 해봐도 좋다.
[1] 미국에서는 "펍 대디"라고 발음한다.[2] 영어 위키피디아에는 이 명칭으로 되어 있다. 왜냐하면, 션 콤즈는 예명이 너무나 많고 그 예명들로 각각 성공을 거두었기에 어떤 한 예명으로 대표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3] 2007년도에는 50 센트, JAY-Z, 그리고 퍼프 대디가 재산이 제일 많은 래퍼 3명이었다.[4] 대표적으로, 1992년에 메리 제이 블라이즈의 데뷔 앨범을 프로듀싱했다. 이 앨범은 메리 제이 블라이즈를 단숨에 스타로 만들었는데, 퍼프 대디가 이때부터 이미 유능했다는 것이 증명된다.[5] 폴리스(스팅이 소속했던 록 밴드)의 곡 Every Breath You Take을 샘플링한 곡이다. 문제는 사전 허락을 받지 않은 채 만든 무단 샘플링이었다는 것. 결국 음반 발매 직전 물밑 저작권 합의에 의해 이 곡의 저작권 수입은 스팅이 100% 소유하게 되었다.[6] 실제로 이 당시 짧은 기간 동안 사귀었다.[7] The Notorious B.I.G.의 곡을 Mase와 함께 피쳐링함.[8] B2K의 노래에 피쳐링 [9] 넬리, Murphy Lee와 함께함. 2003년 윌 스미스 주연의 영화 Bad Boys 2의 사운드트랙. 마침 P. 디디가 같은 이름의 Bad Boy Records의 사장이긴 했다.[10] Mario Winans의 곡을 Enya와 함께 피쳐링함.[11] Mase의 곡을 피쳐링함.[12] Faith Evans의 곡을 피쳐링함.[13] Lil' Kim의 곡에 피쳐링함.[14] SWV의 곡에 피쳐링함.[15] Fabolous의 곡에 Jagged Edge와 함께 피쳐링함.[16] Busta Rhymes의 곡에 Pharrell과 함께 피쳐링함.[17] 투팍 샤커의 살해를 지시했다는 의혹.[18] 노토리어스 B.I.G.의 살해를 지시했다는 의혹. 근데 슈그 나이트 본인의 이후 행보가 각종 범죄 행위로 점철되어 있다 보니 출세 지향적인 퍼프 대디에 비해 묘하게 설득력이 높다는 의견이 있다.[19] 미국은 레이건 시대의 교도소 민영화 등의 자본주의 중심적인 정책으로 인해, 돈만 있으면 법의 힘에서 어떻게든 빠져 나올 수 있다. 퍼프 대디의 재산은 2019년 현재 7억 4000만 달러 정도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