펄 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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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부터 스톤 고사드, 제프 에이먼트, 에디 베더, 맷 캐머런, 마이크 맥크리디.
'''Pearl Jam'''
1. 개요
펄 잼은 '''그런지 록의 상징과도 같은 밴드'''이다. 1990년에 결성한 하드 록의 영향을 많이 받은 미국의 그런지 밴드이다. 보컬인 에디 베더는 더 후와 블랙 사바스의 영향을 받았다고 한다.[2]
Ten과 Vs.까지는 스톤 고사드와 제프 에이먼트가 밴드의 중핵이었다. Ten 앨범 최고의 명곡으로 손꼽히는 Alive, Even Flow, Black, Jeremy와 같은 곡들뿐만 아니라 앨범 곡들 대다수가 둘에 의해서 만들어졌을 정도. 에디 베더의 입김이 많이 들어간 Vitalogy[3] 이후론 에디 베더가 주축이 돼서 밴드를 이끌어가고 있다.
에디 베더 영입 경위는, 이전부터 스톤과 제프는 Mother Love Bone 이라는 밴드에 같이 속해 있었는데 보컬 Andrew Wood 의 갑작스런 사망으로 밴드는 해체 되고[4] ,새로운 스타일로 'Alive', 'Jeremy' 등의 곡을 만들고 보컬 트랙만 빠진 데모 테잎[5] 을 만들었는데, 해변에서 서핑하고 놀던 에디 베더가 어쩌다 이 데모 테잎을 듣게 돼서 즉흥적으로 가사를 만들고 보컬을 입힌 데모 테잎을 다시 보내고, 이에 반한 멤버들이 덜컥 채용했다는 얘기가 있다.
드러머는 교체가 잦았는데 원년멤버였던 데이브 크루센(Dave Krusen)은 데뷔 앨범인 Ten 발매 이후로 개인적인 문제로 밴드를 탈퇴했고, 크루센의 후임으로 들어온 맷 챔벌레인(Matt Chamberlain)은 Saturday Night Live Band 활동 참여를 위해 밴드를 떠났다. 그 공석을 메우기 위해 데이브 애브러지스(Dave Abbruzzese)가 밴드에 합류하게 됐고, 그는 Ten의 실질적인 활동부터 Vitalogy까지, 즉 펄 잼의 최전성기를 함께한 드러머가 된다. Vitalogy 이후로 애브러지스는 밴드를 떠나게 되는데, 애브러지스와 나머지 멤버들의 여러 정책적인 마찰 때문이었다. 애브러지스만 후술할 공연 예매 회사인 티켓마스터와의 소송전에 반대했다고. 애브러지스를 대신해서 레드 핫 칠리 페퍼스의 원년 멤버였던 잭 아이언스가 드러머로 들어왔지만 오래 활동하지는 않고 역시 밴드를 떠나게 됐고, 98년 부터는 사운드가든의 드러머로 활동했던 맷 캐머런이 합류해서 지금까지 활동하고 있다.[6]
데뷔 앨범인 Ten 발표 직전까지 무키 블레이락(Mookie Blaylock)[7][8] 이라는 이름을 쓰다 밴드명을 현재의 펄 잼으로 변경했다. Ten은 Nevermind와 함께 얼터너티브 록, 더 나아가서 90년대 최고의 명반으로 손꼽히고 있으며, Even Flow, Alive, Jeremy, Black 등 많은 히트곡을 창조했다. Ten은 긴긴 롱런끝에 미국에서 다이아몬드 레코드[9] 를 넘어서 x13 플래티넘을 인증받았다. 은근히 이들도 스타일이 많이 변해와서 대충 1~3집 시절의 초기, 4~6집 시절의 중기, 7~9집 시절의 후기로 나눌 수 있다. 대다수의 팬들은 초기 시절의 음악을 좋아하는데, 3집 Vitalogy[10] 앨범을 기점으로 한동안 쭉 실험적인 성향을 추구해서 많은 팬들이 떠나가기도 하였다.[11] 하지만 7집 Riot Act를 통해 부활의 조짐을 보이더니, Pearl Jam, Backspacer 앨범을 통해서 초창기의 스트레이트함을 되찾아 그야말로 완전히 부활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실험도 꾸준히 계속되어 2020년 내놓은 11집에서는 디스코를 시도했다.
노래 가사는 보통 보컬인 에디 베더(Eddie Vedder)가 쓴다.[12] 주로 사회에서 벌어지는 이해할 수 없고 부조리한 사건들을 비판적인 시각으로 노래한다. 쉽게 말해서 시궁창스러운 가사가 많다. 예를 들자면 'Even Flow'는 노숙자가 된 사내의 이야기, 'Why Go'는 자기 딸을 말을 안 듣는다는 이유로 정신병원에 처넣은 부모의 이야기를 딸의 입장에서 노래하며, 'Jeremy'는 1991년 텍사스의 한 고등학교에서 부모의 학대와 학우들의 학교 폭력에 시달린 Jeremy Wade Delle라는 아이가 교실에서 교사와 학생들이 보는 앞에서 권총 자살 한 실제 사건을 바탕으로 한 노래. 'Alive'의 1절과 3절은 화자가 친아버지라고 생각했던 사람이 사실은 계부였고 진짜 아버지는 화자가 13살 때 쓸쓸히 죽어갔다라는 내용이고, 2절은 화자의 어머니가 자기의 전남편과 똑 닮은 자기 아들과 근친상간을 한다는 내용.[13] 또 'Daughter'라는 노래는 난독증이 있던 딸을 학대한 부모에 대한 이야기. 'Better Man'은 겉으로 보면 달콤한 사랑노래 같지만 사실은 가정폭력에 시달리는 여자에 대한 이야기. 'Rats'는 쥐새끼들도 자기만의 도덕이 있는데 인간은 그보다도 못하다...라는 내용이다. 이 외에도 많다. RHCP와 더불어 가사를 알고 들으면 더욱 좋은 밴드. 게다가 에디 베더의 허스키하고 와일드한 목소리와 엄청난 시너지 효과를 일으킨다. 참고로 보컬인 에디 베더는 전성기 때 하루에 70개피의 담배를 피는 골초였지만 결혼 후 아버지가 되고 자녀에게 모범을 보이기 위해 끊었다고 한다.
자기들 공연비가 너무 비싸다며 미국의 공연 예매 회사인 티켓마스터를 고소한 일로 유명하다. 비록 졌지만 팬들을 위해 거대 산업과 싸운 사실만으로도 대인배들이다. 이 사건은 법 관련 책에도 자주 있는 예시이다. 이 외에도 부틀렉 거래를 막기 위해 2000년부터 03년까지의 공연 실황을 수십장의 앨범으로 발매했다. 원금이나 회수할 수 있을까 의심스러웠을텐데 참 대단한 일이다.
1집의 'Jeremy'의 뮤직비디오가 엄청난 화제가 된 이후 5집의 'Do The Evolution' 이전까지 뮤직비디오를 내놓지 않았다. 라디오헤드의 Kid A처럼 아예 싱글을 내놓지 않는 극단책을 취한 것은 아니지만, 기간은 펄 잼 쪽이 훨씬 길다. 상업적인 주목을 피하고자 했던 밴드의 모습이 잘 드러나는 부분이다.
밴드명의 유래에 대해서 말이 많았다. 정액이라는 소문도 있고, 보컬인 에디 베더의 할머니의 이름이 펄이고 아메리칸 원주민과 결혼해서 환각성분이 담긴 잼을 만들수 있었다는 소리도 있다. 하지만 롤링 스톤지와의 인터뷰에서 에디 베더는 '할머니의 이름이 정말로 펄이였어도 완전 개소리'라고 말했다. 실제로는 제프 에이먼트와 마크 맥크리디가 'Pearl' 이라는 이름을 생각해 냈고, 닐 영의 콘서트에서 잼을 하는 것을 보고 붙였다고 한다.
같은 시애틀 그런지 밴드로 묶였던 사운드가든과 음악적인 교류가 잦았던 밴드다. 위에 언급됐듯이 현재 사운드가든의 드러머였던 맷 캐머런이 드럼을 맡고 있기도 하고. 그 당시 드러머를 제외한 펄 잼의 멤버들인 에디 베더, 제프 에이먼트, 스톤 고사드, 마이크 맥크리디와 사운드가든의 크리스 코넬과 맷 캐머런은 Temple of the Dog[14][15] 이라는 밴드를 만들어서 활동하기도 했다. 셀프 타이틀 앨범 한장만 내고 해체했지만, 앨범에 대한 평가는 상당히 괜찮은 편이다. Hunger Strike는 펄 잼 이전의 에디 베더의 레코드 데뷔곡인데, 크리스 코넬이 2절의 음정을 고민하던 와중 에디 베더가 자기 자신도 모르게 끼어들어 저음부를 녹음했다고 한다.
2016년 12월 20일, 펄 잼의 '''2017년 로큰롤 명예의 전당''' 헌액이 확정되었다. 데뷔한지 25년이 지나서야 헌액 자격이 주어지므로 매우 빨리 헌액이 이루어진 것. 현재까지 90년대에 데뷔한 뮤지션이 헌액된 것은 2015년에 헌액된 그린 데이, 같이 헌액된 투팍 샤커, 2019년에 헌액된 라디오헤드, 2020년에 헌액된 노토리어스 B.I.G. 뿐이기 때문에 더욱 의미있는 기록. 90년대 락 장르에서 펄 잼이 갖는 위상을 생각하면 당연하다고도 할 수 있다.[16]
하지만 교체가 잦았던 전임 드러머 중에서 헌액된 드러머는 결성 멤버였던 데이브 크루센이 유일. 특히 데이브 애브러지스는 밴드의 최전성시기를 함께한 멤버임에도 불구하고 헌액 대상에서 쏙 빠져있어서 논란이 일기도 했다. 애브러지스는 "펄 잼 멤버들은 어떤 행동을 해야할 지 알고 있을 것이다. 나를 좋아하든 싫어하든, 내가 밴드에 기여한 부분을 무시한 것을 정당화해서는 안된다. 만약 멤버들이 우리가 얼마나 피땀 흘려가면서 노력하고 활동했는지를 기억한다면, 그들은 분명 해야할 일을 할 것이다."라고 말하면서 해당 논란에 대한 분명한 해명을 요구했다.
2017년 5월 사운드가든의 보컬인 크리스 코넬이 급사한 이후 소위 시애틀 그런지 밴드의 원년 보컬 중 에디 베더만이 남았다.[17] 크리스 코넬의 딸인 토니 코넬이 롤라팔루자 2020에서 펄 잼의 'Black'을 커버하였다.
2. 디스코그래피
2.1. 정규 음반
- Ten (1991년)
- Vs. (1993년)
- Vitalogy (1994년)
- No Code (1996년)
- Yield (1998년)
- Binaural (2000년)
- Riot Act (2002년)
- Pearl Jam (2006년)[18]
- Backspacer (2009년)
- Lightning Bolt (2013년)
- Gigaton (2020년)
2.2. 컴필레이션 음반
- Lost Dogs (2003년)
- Rearviewmirror: Greatest Hits 1991-2003 (2004년)
- Pearl Jam Twenty (2011년)
[1] 로큰롤 명예의 전당의 5가지 헌액 카테고리에서 가장 중요한 부문이자 공신력이 인정되는 '공연자(Performers)' 명단에 한하여 기록하도록 함. 나머지 부문의 헌액자들은 따로 문서 내 헌액명단에 수록해주길.[2] 공연에서 더 후의 Baba O'Riley를 자주 커버한다.[3] 절반 가량이 베더의 단독 작곡이다. Ten과 Vs. 합쳐서 베더의 단독 작곡이 Porch, Rearviewmirror, Elderly Woman Behind the Counter In a Small Town 세곡이었던 걸 감안하면 여러모로 베더의 발언권이 높아진 셈이다.[4] 앤드류 우드를 추모하는 의미에서 사운드가든의 크리스 코넬, 맷 캐머런과 Temple of the Dog이라는 밴드를 결성하기도 했다.[5] 이 데모 테잎 녹음에 참여한 드러머가 레드 핫 칠리 페퍼스의 결성 멤버였던 잭 아이언스이다.[6] 그가 펄 잼에 합류했을 때는 사운드가든은 해체 상태였다. 2010년 사운드가든의 재결합 이후엔 두 밴드에서 드러머 포지션을 맡고 있다.[7] 1989년 데뷔해 13년간 활약했던 NBA의 전 농구선수로 90년대 초반 도미니크 윌킨스를 받치던 애틀랜타 호크스의 2옵션으로 전성기 당시의 주전 포인트 가드였다. 펄 잼 멤버들 상당수가 농구팬이라서 그렇게 붙였다고 하며 펄 잼의 데뷔 앨범 Ten도 무키 블레이락의 당시 등번호(10)에서 이름을 따 온 것. 저작권등의 문제로 밴드 이름을 다시 펄 잼으로 바꾸긴 했지만 무키 블레이락 본인도 이 사실을 알고 있으며 그런 이유로 펄 잼 밴드의 열성팬이 되었다고 한다.[8] 메이저리그 팬들에게는 무키 베츠의 닉네임 유래로 알려진 그 무키 블레이락 맞다.[9] 천만장 이상 판매.[10] 이 앨범도 Ten과 쌍벽을 이루는 그런지 시대의 명반 중 하나. 다만 스트레이트한 Ten에 비해 에디 베더의 입김이 많이 들어간 아트 록 적인 면이 강한 실험적인 앨범이라 Ten만큼 유명하지는 않다.[11] 펄 잼 본인들은 수많은 언론과 사람들의 관심을 굉장히 부담스러워 했다. 그 때문에 Vs. 앨범 발매때는 홍보도 전혀 하지 않았고, 앨범 발매전 싱글컷도 하지 않았고, 뮤직비디오도 만들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Vs.는 발매 첫 주만에 빌보드 앨범 차트 1위는 물론이고 1주차 판매량만 '''백만장'''가까운 판매량을 올리며 승승장구. Vitalogy에서 부터 시작된 이런 실험적인 성향은 대중들로부터 멀어지려는 의도라고도 볼 수 있는 부분.[12] 참고로 에디 베더는 가사를 항상 옛날 타자기로 손수 정리하는 것으로 유명하다.[13] 놀랍게도 1절과 3절의 내용은 에디 베더의 실화라고 한다.[14] 일종의 프로젝트 밴드로 펄 잼의 전신이었던 Mother Love Bone의 보컬이었던 Andrew Wood를 추모하기 위한 활동이었다.[15] 참고로 크리스 코넬은 그의 친구였던 체스터 베닝턴과 함께 이 앨범의 노래인 Hunger Strike를 2008년 린킨 파크 Project Revolution Live 중에 불렀던 적이 있다. 이때 불렀던 곡은 A Decade Underground에 수록되있다.[16] 사실 너바나를 빨리 헌액 시켜서 그렇기도 하다. 명예의 전당 공연 흥행을 위해 89년 앨범을 기준으로 2014년에 헌액 시켰기 때문이다. 그 이후 그린데이와 펄 잼이 첫해 헌액의 영광을 누렸고 라디오헤드가 그 뒤를 이을뻔 했으나 첫해 헌액에 실패하였다. 사실 명예의 전당이라는게 야구나 농구도 그렇고 몇수를 해서 들어갔느냐가 명성에 비교의 잣대가 된다. 첫해 헌액된 레드 제플린과 헌액되기 20년이 걸린 딥 퍼플의 차이가 그걸 증명한다.[17] 크리스 코넬의 영향을 깊이 받았던 체스터 베닝턴까지 코넬의 자살같은 죽음에 영향을 받으며 자살 한 뒤로 더욱 흉흉하다.[18] 앨범 아트가 좀 독특한데, 그냥 반으로 자른 아보카도 하나가 달랑 있다. 뒷면은 반대쪽 아보카도 조각. 멤버들이 과카몰리를 먹다가 정해서 그렇다나. 마침 이름도 그냥 펄잼이다보니 이 앨범을 애칭으로 아보카도라고 부르기도 한다. 여담으로 미국에서 그 해(2006년) 최악의 앨범 아트로 선정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