폰토스

 

1. 그리스 로마 신화의 최초의 바다의 신
2. 흑해 남안의 지명


1. 그리스 로마 신화의 최초의 바다의 신



'''폰토스 (Πόντος / Pontos)'''
'''바다의 신'''

우라노스, 우로스와 함께 가이아의 자식이다. 그리스어로 이미 그 자체가 '바다'라는 뜻이다.[1]
그러나 대부분 바다의 신이라고 하면 3세대 바다의 신인 포세이돈, 좀 마이너하더라도 오케아노스를 떠올리지, 폰토스를 떠오르는 사람은 별로 없다. 안습한 취급처럼 그와 관련된 전설은 없지만 우라노스가 고자가 된 이후, 가이아와 관계해 자식들이 태어나는데, 바다의 공포를 의미하는 포르키스와 케토, 바다의 장로로 존경받는 변신술에 뛰어난 네레우스와 경악의 신 타우마스[2] 거칠고 강한 힘을 자랑하는 에우리비아[3]의 아버지가 된다. 가이아가 원시의 대지를 상징한다면, 이쪽은 원시적인 바다를 상징한다고 한다. 참고로 1세대 바다의 신이다.
또한 헤메라와 아이테르의 자식인 또 다른 바다의 신인 탈라사[4]와 관계하여 할리아와 로도스 섬의 최초의 거주자들이며 키클롭스나 다크틸로이(δάκτυλος)처럼 뛰어난 대장장이로 알려진 텔키네스[5]들을 낳았다.
한편 일부 신화에서는 프로토게노이 중 고대의 바다(혹은 지중해)를 의인화한 신을 여성으로 여기기도 했다. 바로 위의 탈랏사(Θάλασσα)여신. 폰토스의 여성형으로 여겨지기도 하며, 테튀스나 암피트리테와 동일시 되기도 한다. 그리스 신화 자체가 하나의 사물이나 자연을 여러 신들로 동시에 신격화시키기도 했으니, 아프토디테의 어머니는 이쪽일지도 모른다. 일리아스에서는 아예 제우스와 디오네의 딸로 여겨진다.

2. 흑해 남안의 지명


그리스어 Πόντος
주요 도시는 시노페, 삼순, 트라브존, 아마시아, 니카사르, 오르두, 토카트 등
정확히 말하면 아나톨리아 북동부의 해안 지역을 가리킨다. 원래 카파도키아의 일부로 간주되던 지역이지만, 아래 서술할 독립 왕국이 건국된 이후로 "폰토스(흑해) 방면의 카파도키아"라고 불리다가 축약되어 그냥 폰토스라고 불리게 되었다. 고대부터 동로마 제국, 오스만 제국 시대까지 지명으로 사용되었으나 이 지역의 역사에서 가장 유명한 시기는 아마도 로마 제국에 대항했던 고대 폰토스 왕국일 것이다.
1번 항목에서도 서술했다시피 흑해 연안은 그리스인들의 교역 거점이 많았으므로 그리스인들에게 친숙한 곳이었지만 그들의 영향력은 대개 해안의 몇몇 폴리스들에 한정되었으며, 이오니아처럼 그리스 문화가 융성하지는 못했다. 이후 오리엔트 세계를 석권한 아케메네스 왕조 페르시아의 영토로 편입되었는데, 이때 페르시아 문화의 강한 영향을 받았다.

그 뒤 아케메네스 왕조가 알렉산드로스 3세의 침공으로 멸망한 뒤 디아도코이 전쟁으로 마케도니아 제국이 분열된 틈을 타 페르시아 귀족 출신인 미트리다테스(또는 미트라다테스) 1세 크티스테스가 독립하여 폰토스 왕국을 세웠다. 나라를 세운 지배층은 페르시아 귀족이었지만, 그리스-헬레니즘 문화를 최대한 우호적으로 대하였으므로 사실상 헬레니즘 국가였다.
[image]
폰토스 왕국의 영역. 짙은 보라색이 원래 폰토스 왕국의 영역, 중간 보라색이 미트리다테스 6세가 재위 초기에 획득한 영역, 옅은 보라색이 "미트리다테스 전쟁"으로 알려진 일련의 전쟁에서 일시적으로 차지한 영역이다. 더 자세한 내용은 폰투스 왕국 문서 참고
미트리다테스 1세가 왕국을 세운 BCE 302년부터 BCE 120년까지는 주위 열강의 눈치를 보며 숨어 사는 미니 왕국에 불과했으나, 미트리다테스 6세라는 걸출한 왕의 등장으로[6] 전성기를 맞았다. 그는 아르메니아의 티그라네스 2세와 결혼 동맹을 맺어 영토를 대폭 확장하였다. 하지만 이는 한참 동방으로 세력을 확장하던 로마와의 대립을 야기하였고, 결국 폰토스 왕국은 술라, 루쿨루스, 폼페이우스라는 명장들의 샌드백 신세가 되어 몰락하고 말았다. 이를 미트리다테스 전쟁(Mithridatic War)이라고 한다.
패망한 폰토스는 아르메니아와 비슷하게 우선은 속국이 되어 왕조 체제를 유지하다가 이후 완전히 로마 제국령이 되었다. 하지만 다른 속주들과 달리 일종의 자치구 비슷한 형태가 잔존하였다. 제4차 십자군 전쟁(1204년)의 여파로 동로마 제국이 분열되었을 때는 동로마의 옛 황가였던 콤네노스 왕조의 일족이 트레비존드 제국을 세우기도 했다.
폰토스 그리스인들은 오스만 제국 때까지 존재하다가 1923년 그리스-터키 인구 교환으로 그리스로 보내지거나, 혹은 소련 같은 다른 흑해 국가들로 이주해갔다.

[1] 그리스인들은 흑해를 폰토스 에우크세이노스(Pontos Euxeinos 혹은 라틴어식으로 Pontus Euxinus)라고 했는데, 친절한 바다라는 뜻이다. 그리스인들이 흑해 연안 각지에 교역 거점들을 가지고 활발히 교역 활동을 했으므로 그렇게 불렸다.[2] 그들이 사랑을 나눌 때면 바다가 거칠고 해일이 일어난다고 한다.[3] 다른 본에는 그라이아이도 그들의 자식이라 되어있다.[4] 그런데 일부 전승에 따르면 탈라사는 바로 폰토스 자신의 여성형이기도 하다. 일리아스에 나오는 제우스-디오네와 같은 관계이거나, 혹은 단순히 테티스(아킬레우스의 어머니)-테튀스(오케아노스의 아내)와 비슷한 동명이인일 수도 있다.[5] 개의 머리, 손 대신 물갈퀴 혹은 지느러미를 가졌다고 한다. 포세이돈을 레아의 부탁으로 맡아 키웠다는 전승이 있다. 이후 헬리오스의 아들들에 의해 로도스 섬에서 쫓겨난 데에 원한을 품고 자신들의 힘을 악한 목적으로 썼다가 제우스, 포세이돈, 아폴론에 의해 몰살당한다.[6] 내정, 외교, 군사 모든 방면에서 천재중의 천재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매우 뛰어났으나 인성적인 면에선 잔혹하기 짝이 없는 인물이었다. 자기 왕권을 지키기 위해 어머니와 동생을 죽였고, 자국내의 로마인들을 평화적으로 추방할 수 있었는데도 학살했다. 그 업보였는지 결국 반란을 일으킨 아들에게 포위되고 자살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