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프로야구/1985년/신인드래프트
1. 개요
1985년 KBO 신인 드래프트는 1차 지명과 2차 지명으로 진행됐다.
2. 1차 지명
1차 지명은 1984년 11월 27일까지 각 팀에서 팀 별 연고지 내 고교 출신 선수를 뽑았다. 지명 수에 제한은 없었다.
연고지가 같은 OB와 MBC는 앞서 11월 15일 지명순위를 정해 지명을 했다. 따라서 이하 1차 지명자 명단에서 2팀만 지명 순위 순으로 나열하고, 나머지 5개팀은 이름 가나다 순이다. ※표시가 붙은 선수는 지명권 포기 등으로 지명팀에 입단하지 않았다.
3. 2차 지명
2차 지명은 1984년 12월 5일에 마감했는데, MBC와 OB 2팀만 선수를 지명했다.[4] ※표시가 붙은 선수는 지명권 포기 등으로 지명팀에 입단하지 않았다.
4. 드래프트 평가
- 해태 타이거즈: 1980년대 후반~1990년대 초중반까지 한국을 대표하던 투수와 타이거즈 역사 34년 중에서 단 한 번 있던 신인왕을 지명했다. 그리고 이 둘은 타이거즈의 전성기를 이끌었 다.
- 빙그레 이글스: 1980년대와 1990년대의 이글스의 에이스를 얻었다. 그리고 삼성에서 강정길과 이강돈의 지명권을 양도받기까지 했으니 큰 이익을 봤다.
- MBC 청룡: 100승 200세이브의 최초 기록자와 매년 10승이상을 거두는 준수한 선발 투수를 얻었다. 그리고 명 타격코치와 준수한 교타자도 괜찮은 소득이었다.
- 삼성 라이온즈: 1980년대 주전 3루수와 좋은 외야수를 얻었다. 그 외에도 화성 감독님이나 강정길, 이강돈을 지명했지만 모두 빙그레로 양도했다.
- 청보 핀토스: 망했다! 양후승 정도가 내야 백업으로 역할을 했지만 타격에서는 거의 식물 수준이었고, 그나마 괜찮았던 정은배는 첫 해 선발과 중무리를 넘나들며 무리하다가 다음 시즌부터 하락세를 탔다.
5. 이모저모
- 삼성에 1차 지명된 좌타자 강정길과 이강돈은 빙그레에 입단했다. 당시 빙그레 단장이었던 노진호가 원래 삼성의 단장으로 있어 일종의 전관예우 차원이기도 했다.(그 때문에 빙그레 창단 당시 삼성이 선수들을 많이 보내 주었다. 제대로 활약한 선수는 얼마 안 됐지만.) 이강돈의 경우는 입단 조건 때문에 삼성이 뎁스를 이유로 양준혁처럼 군대를 먼저 보내서 꼼수를 부리려다 이강돈 본인이 거부하여 빙그레에 입단하게 된다.
- 허세환은 광주일고 감독직을 맡아서 전국대회 우승, 메이저리거 배출, 수많은 프로야구 선수 배출 등 지도자로서의 실적이 훌륭하다. 인하대 감독으로 이동하여 장기간 부진에 빠졌던 인하대를 우승시켰다.
[1] 대학 졸업 후 프로에 진출하지 않고 상업은행 야구단 소속으로 뛰던 중 1992년 5월 9일 백혈병으로 요절했다. 향년 30세.[2] 앞서 1983년 지명 때 MBC가 지명한 덕에 김용수는 다른 선수들과 달리 지명 대상에서는 빠졌다.[3] 양승관의 동생[4] 기사에는 탁재원을 중앙고 출신이라 기재했으나, 실제로는 충암고 출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