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화생명

 



'''한화생명'''
Hanwha Life
[image]
'''정식 명칭'''
한화생명보험 주식회사
'''영문 명칭'''
Hanwha Life Insurance Co., Ltd.
'''국가'''
대한민국
'''업종명'''
생명보험
'''설립일'''
1946년 9월 9일
'''주소'''
서울특별시 영등포구 63로 50 (여의도동)
'''대표이사'''
여승주
'''기업 규모'''
대기업
'''상장 여부'''
상장기업
'''상장 시장'''
유가증권시장(2010년 ~ 현재)
'''편입 지수'''
코스피지수
KRX100지수
KOSPI200지수
'''종목 코드'''
088350
'''링크'''
공식 홈페이지
1. 개요
2. 역사
3. 기타
4. 기업정신
5. 지배구조
6. 역대 임원
7. 노동조합
8. 관련 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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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한화그룹 계열 생명보험사이며 한국 현존 최고(最古)의 생명보험사이다.[1] 한국 생명보험업계 빅3인 한화, 삼성, 교보 중 하나로 자산총계나 매출액 기준을 종합하면 삼성생명에 이은 '''2위'''이다. 한화생명 중심의 한화금융네트워크는 한화자산운용, 한화손해보험, 한화투자증권이며 모두 각 업계 대형사이다.
본사는 '''63빌딩'''으로, 주소는 서울특별시 영등포구 63로 50 (여의도동, 63빌딩)이다.[2]

2.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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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아그룹 계열사 시절 로고[3]
[image]
2007년 한화 신CI 적용 후 로고
[image]
현 로고
일제강점기 당시 19개 보험사가 있었으나 1945년 해방이 되면서 철수하였다. 이런 상황 속에서 일본생명 평양지부장이었던 임창호 씨가 생명보험조선인중앙자치위원회를 조직하였으며 나아가 당시 만석꾼이었던 강익하 씨와 함께 1946년 9월에 '대한생명'을 설립하였다. 사명인 대한생명에서 '대한'의 유래는 '대한'독립만세에서 따왔다. 약칭은 '대생'이었다.
초창기에는 근로단체보험 위주로 상품을 판매하였으나 곧이어 개인보험 및 최초의 교육보험을 출시하였다. 1962년에 삼척탄좌[4] 및 대한프라스틱을 세우고 자금까지 대주며 사세확장을 했으나, 1969년에 대한프라스틱 경영이 어려워지자 본사도 자금난으로 부도 위기까지 몰렸다. 결국 신동아그룹이 대한프라스틱공업과 세트로 경영권을 인수해 1960년 남대문 신사옥으로 옮겼고, 1968년 일본 협영생명과 재보험 및 재재보험 협약을 체결했다. 1975년 총자산 1조원을 돌파하였다.
이 기세를 몰아 1981년 1월 첫 지역총국인 영남총국 개국 후 4월 전국 온라인터미널망을 개통했고, 8월에는 미국 링컨 내셔널 사와 암보험 재보험 협약을 맺었다. 1985년 63빌딩 완공 후 이전해 1986년 4월 서울 및 강원총국을 개국했다. 1987년 2월 스위스 라이프 네트워크 가입으로 다국적 단체보험시장 진출 후 8월 PC 영업소 지원시스템 'Dli-Fss'를 개통했다. 1988년 3월 업계 최초로 계약자 이익배당제를 실시한 뒤 8월 영문표기를 'Daehan Life Inc.'에서 'Korea Life Inc.'로 변경하고 서울올림픽 때 63빌딩에서 올림픽 성화대를 점화하고 1990년 3월 아시아 최대 컴퓨터 'IBM Super' 가동 후 1995년 화상회의 시스템을 개통했다. 1996년부터 ARS 서비스를 개시했다.
위와 같은 공적을 뒤로한 채 모기업 신동아그룹1999년 '옷로비 사건'으로 공중분해됐고, 그해 8월 '부실금융기관'으로 지정되어 예금보험공사 공적자금 투입 후 국영기업으로 전환되어 12월 부실기관 두원생명, 2001년 현대생명[5]삼신올스테이트생명 계약을 각각 P&A 방식으로 인수했다.
2002년 신동아화재와 세트로 한화그룹에 인수된 후 2005년에 텔레마케팅 및 보험심사업무를 '대한티엠에스'와 '대생손해사정'으로 각각 분사시켰다. 2010년 유가증권시장에 상장했다.
한화그룹 계열에 편입되어 있어 한화그룹과 사측에서는 한화생명으로 사명을 변경하는 것을 추진했으나, 일선에서 보험 영업하는 FP(보험설계사)들이 '한화' 브랜드 네임이 '대한생명'에 비해 너무 현격히 떨어져서 영업 못한다고 반대했었고[6] 예금보험공사도 비슷한 이유로 반대했었다. 하지만 2012년이 되자 한화그룹이 대한생명을 인수한지 10년이 되는 해를 기념하기 위해, 또 한화그룹 창립 6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6월 29일 열린 주주총회에서 사명변경을 결의하였고, 사명변경안을 통과시켰다. 이후 한화생명으로 사명을 변경 한건 기업 이미지로도 사실상 신의 한수로도 꼽히고 있다.[7]
그리하여 2012년 10월 9일부터 한화생명 시대가 시작되었으며 2016년 1월엔 총자산 100조원을 돌파하며 국내 생명보험사 순위 2위에 올라왔다.[8] 16년 이후부터 2020년 현재, 삼성생명에 이은 2위 체제를 여유롭게 유지하고 있다. 라이프플러스(Lifeplus), 라이프엠디(Life MD), 언더라이팅 인공지능 도입 등 핀테크 및 신사업 투자부분은 금융업계에서 손꼽힐 정도로 선도하고 있다.

3. 기타


  • 한화생명이 교보생명그룹을 넘은 지는 생각보다 꽤 오래되었다. 2000년대만 해도 서로 "내가 2등"이라며 물어뜯고 싸웠지만 16년 이후부터 현재는 교보생명과 비교해서 한화생명이 압도적으로 큰 회사이며, 매출액으로도 2018년 기준 한화생명이 23조원, 교보생명이 14조원대를 기록하고 있다. 증권, 손해보험, 자산운용사 등 금융계열 자회사 역시도 비교가 안되게 한화가 교보그룹보다 크다.
  • 현재 한화그룹 내에서 시가총액 기준으로 가장 큰 회사로, 고점이었을 때는 시가총액이 5조 9,800억 가량이다. 2020년 2월, 저금리 기조 + 기존 고금리 보험 계약으로 인해 생보사들의 역마진이 심각해지면서 1조 8천억 원대로 추락했었다. 미국 국채금리 상승과 실적 개선으로 인해 주가는 회복되고 있으며 21년 1월 현재 시총 3조원.
  • 보험업 특성상 명실공히 한화그룹의 캐시카우이며, 한화그룹내의 ATM...기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다.
  • 롯데손해보험의 전신도 대한화재였지만 대한생명과 대한화재는 전혀 다른 회사였다. 다만 대한생명의 원래 모기업이었던 신동아그룹은 손해보험사로 신동아화재를 두고 있었는데, 신동아화재 역시 대한생명, 63빌딩과 함께 한화그룹에 세트로 인수되어 한화손해보험으로 바뀌었다.
  • 대생 시절이던 1973년 11월 1일자부터 2016년 2월 3일까지 <동아일보> 1면에 돌출광고를 오랫동안 실었다.[9] 이 때문인지 동아일보 측은 본사와 신뢰와 의리를 맺어온 것에 감사하며 2003년과 2013년에 각각 감사패를 전달한 바 있었다.
  • 대생 시절이던 2003년에 '지금은 2등이다. 그러나...' 및 'more'라는 캐치프레이즈를 내건 '2등 마케팅'으로 화제가 된 적이 있다.
  • 2013년 12월부터 '따뜻한 잔소리' 캠페인성 광고를 내보내고 있다. 현재의 생활에 관해 고객에게 따뜻한 잔소리를 아끼지 않는 동반자가 되겠다는 다짐을 담았으며, e-카드 이벤트도 열었다. (#1 #2)
  • 2018년 4월 16일 메인 스폰을 하던 ROX Gaming의 LoL팀 ROX 타이거즈를 인수해 한화생명e스포츠 약칭 HLE[10]로 재창단했다. 젊은 층에 인지도 있는 롤을 노려 추후에 고객으로 삼을 수 있다는 생각으로 보인다.
  •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의 차남인 김동원이 이 회사 상무로 재직중이다. 참고로 보복폭행 사건과 대마초 혐의로 구속됐던 그 사람이 맞다. 2020년 11월 정기임원인사에서 전무로 승진했다.

4. 기업정신


2002년 한화그룹 인수 이후에는 아예 쓰이지 않는다.
  • 사훈: 1956년 제정.

'''인화, 성실, 신용'''

  • 사가: 1959년 7월 6일 제정 후부터 한화 인수 전까진 자체 사가를 써왔으며, 작사는 이길범, 작곡은 김형근[11] 이 맡았다.
(1절) 무궁화 반석 위에 세워진 역사
공영의 진리 담은 그윽한 정신
찬란한 그 발자취 행복의 터전
(후렴)인화성실 신용의 따스한 곳
빛나다 대한생명 대한생명
(2절)남산의 맑은 정기 얼이 되어서
겨레의 복지 위한 터전을 닦아
우리 앞길 돌봐주는 보험의 왕자

5. 지배구조


2019년 8월 기준.
주주명
지분율
한화건설
25.09%
한화
18.15%
자사주
13.49%
예금보험공사
10.00%
국민연금공단
4.04%
한화갤러리아타임월드
1.75%
우리사주조합
0.30%

6. 역대 임원


  • 회장
    • 장직상 (1946~1949)
    • 강익하 (1949~1954)
    • 임창호 (1966~1969)
    • 최성모 (1969~1970/1975~1976)
    • 이겸재 (1973)
  • 부회장
    • 최병억 (1991~1996)
    • 이강환 (2002~2004)
  • 대표이사 부회장
    • 신은철 (2005~2013)
    • 차남규 (2017~2019)
  • 대표이사 사장
    • 강익하 (1946~1949)
    • 임창호 (1949~1966)
    • 조경서 (1966~1969)
    • 최성모 (1969/1973~1975)
    • 최우직 (1969~1970)
    • 김봉진 (1970~1971)
    • 이겸재 (1971~1973)
    • 황중률 (1975~1976)
    • 최순영 (1976~1987)
    • 최병억 (1987~1991)
    • 김광평 (1991~1997)
    • 박종훈 (1997~1999)
    • 이정명 (2001~2002)
    • 고영선 (2002~2003)
    • 신은철 (2003~2005)
    • 차남규 (2011~2017)
    • 여승주 (2019~ )
  • 대표이사 부사장
    • 황중률 (1973~1975)
    • 이정명 (1999~2001)

7. 노동조합



8. 관련 문헌



[1] 최초는 아닌데, 한국 최초의 생명보험사는 한국 최초의 보험사이기도 한 조선생명주식회사(약칭 조선생명)로, 해방 후에 영업 활동을 중지했다가 1962년 승계 회사도 없는 상태로 보험업 허가가 취소되었다.[2] 때문에 대한생명 시절 막바지에는 63빌딩에 대한생명 캐치프레이즈와 로고를 페인팅해놓기도 했다. 현재는 그냥 건물 꼭대기에 로고와 함께 'Hanwha'라고만 쓰여 있다. 한화 계열사 중 한화생명 뿐 아니라 63시티, 호텔앤드리조트도 같이 쓰는 건물이니까.[3] 1990년 1월부터 사용된 로고. 1959년부터 1989년까진 동그라미에 화살촉 모양이 들어간 로고를 썼으며 구 극동그룹 로고와 비슷했다. 1999년부터 2007년 한화 신 CI 제정 전까지 심볼 CI를 뺐다.[4] 1970년에 삼천리그룹으로 인수됨. 현 삼탄.[5] 푸본현대생명의 옛 이름인 현대라이프와는 전혀 다른 보험회사로 이 쪽은 현대그룹 계열 보험회사다.[6] 삼성생명도 1989년 사명 변경 당시 설계사들의 반대가 있었다. 하지만 이건희 회장의 신경영 정책의 일환으로 사명 변경을 강하게 추진했고, 결국 간판을 갈았다.[7] 과거 삼성생명도 '삼성' 이름을 붙히는 과정에서 무수한 반대가 쏟아져 나왔었으나 이건희 회장이 강하게 밀어 붙혀 현재의 결과가 나오게 되었다.[8] 1위가 너무 독보적인것도 있지만 한화 내부에서도 1등에 대한 열망이 별로 없다. 이유는 김승연 회장이 초기 대한생명을 인수하던 시절 이건희 회장에게 찾아가 운영 노하우를 전수 받으며 '''형님께 누가 되지 않도록 잘 운영해보겠다.'''는 말을 남겼기 때문으로 보여진다.[9] 1974~1975년까지 동아일보 광고탄압사건으로 광고를 못 실었다.[10] Hanwha Life Esports[11] 1973년 이전까지 김성태 작곡가가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