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개발

 

1. 설명
2. 핵개발 3 요소
2.1. 핵물질
2.2. 기폭장치
2.3. 투발수단
3. 사례
3.1. 성공한 핵개발
3.2. 성공했으나 폐기한 핵개발
3.3. 진행중인 핵개발
3.4. 실패한 핵개발
3.5. 의심받았거나 받고 있는 경우
4. 같이보기


1. 설명


전쟁 목적의 핵무기를 개발하는 것을 뜻하며 광의의 의미로 전략폭격기탄도 미사일과 같은 타격수단을 개발 하는것도 포함한다. 기본적으로 평화적 목적의 원자력 발전과는 의미하는 바가 다르나 재처리 기술등 명확하게 나눠지지 않는 부분도 있다.[1]
사실 여객기라는 것이, 이 핵개발에서 파생된 것을 좋은 목적으로 개량시킨 것이다. 여객기 기술의 수많은 사항은 핵개발로부터 파생된 것이며 따라서 여객기 판매라는 그 자체가 소련 붕괴 전까지는 자본진영 vs 공산진영 구도가 명확했었다.

2. 핵개발 3 요소



2.1. 핵물질


농축우라늄,플루토늄을 확보해야 한다. 핵개발에서 제일 어려운 부분이며 IAEA에서 가장 주의깊게 감시하는 부분이다.

2.2. 기폭장치


핵물질을 핵폭탄 내부에 분리하여 보관하고 있다가 외부에서 화약을 터트려 핵물질을 임계 질량 이상으로 압축시키면 연쇄 핵반응이 일어나고 핵폭발이 일어난다. 폭탄의 설계,제조능력이 필요하다.

2.3. 투발수단


핵무기 개발이 완료되었다고 해도 그것을 운반할 수단을 개발하지 않고서는 핵무기를 개발했다고 말할 수 없다. 처음 핵무기가 만들어졌을때는 폭격기를 주로 이용하였으나 현재는 대륙간탄도 미사일이 주로 사용된다. 즉 핵개발에는 ICBM,SLBM등의 개발이 포함된다.

3. 사례



3.1. 성공한 핵개발



3.2. 성공했으나 폐기한 핵개발


  •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핵개발 - 아파르트헤이트 시절 외교적으로 고립되자 남아공 백인 정부가 자국 국력과시를 위해 항공투하용 폭탄 여러기를 제조한바 있다. 허나 고립과 국제 제재를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냉전 종식과 함께 주변 흑인국가들과 협정을 맺어 안보 위협을 없애고 빌럼 더 클레르크 대통령이 핵폐기를 결정하였다. 이후 넬슨 만델라 집권 이후 핵의 평화적 이용과 인권운동, 민주화 운동 등의 업적과 합쳐져서 더 클레르크와 넬슨 만델라가 공동으로 노벨 평화상을 받게 된다.


3.3. 진행중인 핵개발




3.4. 실패한 핵개발


  • 나치 독일과 서독의 핵무기 개발 - 우란프로옉트참조.
  • 일본 제국의 핵무기 개발 - 니고연구 참조.
  • 대한민국의 핵개발
  • 대만의 핵개발
  • 브라질의 핵개발 - 군사정권 당시 핵개발을 심도있게 추진했고 1990년엔 핵실험까지 계획했으나 취소하고 이후 핵개발도 중단했다. 관련 기사 핵개발은 하진 않지만 관련 기술은 보유하고 있다고 추정된다.
  • 아르헨티나의 핵개발 - 군사정권 당시 브라질의 핵개발에 위험을 느끼고 핵개발을 추진했으나 포클랜드 전쟁에 패해서 군사정권이 무너지고 경제난이 와서 핵개발을 포기했다. 이후 브라질과 공동으로 핵의 평화적 이용과 핵개발을 하지 않기로 1991년 협정을 맺었다.
  • 리비아의 핵개발 - 카다피가 핵개발을 강행했으나 국제사회의 압력에 굴복하고 폐기했다.
  • 스위스의 핵개발 - 무장중립 정책에 따라 2차 대전 직후 비밀리에 핵개발에 착수했다. 한때 히로시마탄의 13배의 위력을 가진 원자폭탄 400개를 보유할 계획을 세우고, 60년대에는 우라늄 채굴을 완료해 몰래 보관했다. 역시 비슷하게 핵개발을 추진하던 스웨덴과 협조하려는 계획도 세웠다. 1974년에는 원자 폭탄의 설계에 필요한 연구를 완료하고 중성자 폭탄의 개발도 검토하고 있었다. 1986년경 "2년 이내에 핵 보유가 가능하다"고 보고 있었다. 냉전이 완화된 1988년 핵탄두를 폐기하고 1995년 그 전모를 발표했다.
  • 스웨덴의 핵개발 - 무장중립 정책에 따라 2차 대전 직후 비밀리에 핵개발에 착수했다. 1950년대 후반에는 중수로 연구와 지하 핵실험이 가능한 정도의 연구를 끝마첬지만 1960년대 들어서 평화 운동이 스웨덴 정계의 주류가 되고 정치인들의 반핵 운동과 미소 양국 사이에서 중재외교가 빛을 발하면서 핵보유론은 점차 사그라 들었다. 1968년 NPT에 가입하고 1972년 핵개발을 완전히 폐기했다. 스위스, 핀란드와 핵개발에 대한계획을 같이 논의했다고 한다.

3.5. 의심받았거나 받고 있는 경우


  • 일본 - 고속증식로 몬주를 수십조원이 넘는 돈을 써가면서 유지하려하고 비슷한 프로젝트를 재차 진행하려고 하거나 엄청난 양의 핵연료 재처리를 추진, 보관하고 있다. 재무장을 추진하려는 일본 정부의 기조와 맞물려 핵무기를 개발하려는 게 아니냐는 의심을 사고 있다. 물론 미국은 일본의 이러한 움직임에 대단히 경계하고 우려하는 분위기이다.[2] 한국에서는 미국에서 한국은 핵연료 재처리를 금지시키고 일본은 풀어준다는 식으로 불공평하다는 주장을 하기도 하지만, 한국은 미국과 핵연료 재처리를 하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미국으로부터 원자력 발전 기술력을 도입한 경우이며 일본은 그런 거 없이 30년대부터 핵분열 관련 기초연구를 꾸준히 해와서 자국의 기술로 핵기술을 확보한 경우다. 특이사항으로 일본은 비핵 3원칙을 제창하면서 핵물질을 군사무기화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국제사회로부터 천명한 바 있는데 정작 발언 당사자인 사토 에이사쿠는 당시에 몰래 서독에 공동핵개발을 제안했다는 논란이 있다.
  • 미얀마 - 2002년 IAEA의 사찰을 받고 있어서 불가능하다는 의견도 있으나 미얀마 군사정권이 북한의 지원을 받아 비밀리에 핵개발을 하고 있다는 보도가 있었다. 미얀마 정부는 핵의 평화적 이용만 한다고 하며 경제난 때문에 핵무기를 개발할 능력이 없다고 말하고 있다.관련 기사
  • 알제리 - 알제리 독립 직후 프랑스의 핵실험 관련 유산을 바탕삼아 비밀리에 핵개발을 한다는 의심을 받았다. 특히 주변국인 리비아와 모로코와 갈등으로 이런 의심이 더욱 짙어젔으나 알제리 정부는 철저히 핵의 군사적 사용을 부인했다. 1983년 중국과 손잡고 원자로 개발에 비밀리에 합의했다. 그러나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바라보는 국제적 압력에 굴복하고 평화적 핵개발만 한다고 발표했으며 1991년 IAEA의 사찰을 받고 1995년 NPT에 가입했다.
  • 시리아 - 아사드 정부가 몰래 핵개발을 한다는 의심을 받았으며 2007년에 이스라엘이 건설중이던 원자로 시설을 폭격한 바 있다.관련 기사 북한과의 연계도 의심 받았으나 최근 시리아 내전으로 인해 나라꼴이 거덜나서 핵개발에 대한 의혹은 현재는 많이 줄어들었다.
  • 이라크 - 후세인 정권 당시 핵개발 의혹을 받아왔다. 실제로 이스라엘은 이를 우려해 공군을 투입해 이라크 오시라크 원전을 폭격했으며, 이라크 전쟁도 핵무기 같은 대량살상무기 개발을 빌미로 발발했다. 결국 이라크가 패망하고 미군의 관리 하에 놓이면서 핵무기 개발 의혹은 종결 된다.

4. 같이보기



[1] 한미 원자력 협정에서 양국간의 갈등이 생기는 요인이기도 하다.[2] 일본이 상호확증파괴가 가능한 수준인 2000여발 수준의 핵무기를 만들 수 있는 핵연료를 보유중이라는 사실은 공공연히 잘 알려져있고 이것을 실행할 경우 안 그래도 북한이 핵개발에 열을 올리는 중에 일본이 핵개발을 천명하면 한국과 대만같은 원자력 강국들도 수백~수천발 규모의 핵개발이 일어날 가능성이 높고 동북아 안보가 지금보다 더 파탄관계에 빠져 우발적 핵전쟁의 가능성이 더욱 높아질것은 안 봐도 비디오다. 그때문에 미일동맹은 두터운 관계지만 미국은 전통적으로 일본의 독자적 핵무장을 반대해왔다. [특파원리포트] 세계 5위 핵 강국 ‘일본’에 미국이 견제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