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의 핵개발

 

1. 개요
2. 배경
2.1. 이란은 왜 핵무기를 개발하는가?
3. 역사
3.2. IAEA 사찰과 조지 W 부시의 발언
3.3. 해빙기, 2015년 이란 핵협상
3.4. 도널드 트럼프의 집권, 곧 찾아온 위기
3.5. 조 바이든 당선 이후 동향
4. 동향
5. 관련 문서


1. 개요


이란 이슬람 공화국의 핵개발 전반에 대하여 서술한 문서.
핵개발을 단행하고, 미국의 눈엣가시로 찍힌 이란은 졸지에 '''대표적'''인 불량국가로 각인되기 시작했다. 조지 W 부시악의 축 발언도 이 프레임을 가두는 데에 성공했다. 안 그래도 세계의 화약고로 불리는 중동의 주요 변수로 부상하였다.
이란의 핵개발이 어느정도 수준까지 달성했느냐 하는 것은 이란 대통령도 모른다. '''오로지 알리 하메네이 한 명만이 핵개발 상황을 알고 있다'''. 그래서 핵협상을 한다면 하메네이랑 협상하는게 옳다. 그러나 하메네이는 죽었다 깨어나도 협상장에 나오지 않는다. 이 때문에 타국과 이란의 핵협상이 타결되기가 굉장히 어려운 것.

2. 배경


이란의 핵개발의 씨앗은 이란 혁명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그 이전에 팔라비 왕조는 친서방 정책을 펼치면서 평화적인 원자력 에너지 사용을 위한 개발을 미국 및 주요 서방국과 하고 있었다. 1970년에는 NPT에도 가입하였다.[1] 그러나 이란 혁명으로 반서방 정부가 들어서 협력이 모두 중단되었다.
신정지도자들은 원자력 개발을 단독으로 이어가기로 했다. 2000년대 IAEA사찰로 이란 곳곳 비밀 시설에서 우라늄 농축을 행하고 있었던 사실이 드러났고, 이로써 이란이 전술무기로써의 핵개발을 한다는 우려가 퍼지기 시작했다.

2.1. 이란은 왜 핵무기를 개발하는가?


시아파인 이란은 중동에서도 다른 나라들과 대부분 사이가 좋지 않고[2], 1979년 이슬람 혁명이 일어나 팔레비가 퇴출된 후 서방과도 고립되어서 이에 대한 탈출책 및 협상수단의 하나로 핵을 개발하고 있다.
이란의 직접적인 핵개발 계기는 '''이란-이라크 전쟁'''이다. 이란의 시아파 신정혁명에 위협을 느낀 이란 서쪽 이웃나라 이라크사담 후세인은 '''미국, 영국, 프랑스 등 서방과 중동 국가들, 심지어 소련의 지원을 비밀리에 받아가며''' 이란과 8년 동안 전쟁을 했다. 이란은 절대 우세한 국력에도 불구하고 이라크의 선빵을 맞아서 휘청거리다가 간신히 이라크군을 쫓아내긴 했지만 호메이니의 국제정세 오판으로[3] 이라크 멸망을 내걸고 전쟁을 확전시켰다. 문제는 호메이니의 생각과 달리 후세인은 이라크군이 밀리는 와중에도 타국의 지원을 유지했고, 소련-아프가니스탄 전쟁에 따라 이란 동쪽에도 전운이 고조되었다. 이라크는 이란-이라크전 후반에 서방제 스커드 미사일을 대량으로 사와서 이란수도 테헤란을 초토화시켜 쑥대밭으로 만들었고, 이란은 급한대로 중국산(...) 미사일을 사 와서 이라크에 반격했으나 '''중국산이라 명중률이 떨어져''' 별다른 성과가 없었다. 결국 1988년 이란-이라크는 UN소련, 미국의 요구로 강제적인 정전 협정을 맺는데 호메이니는 전쟁을 확대시켜놓고 아무것도 얻지 못했다. 당시 사실상 전 세계가 이라크 손을 들어준 이란-이라크 전쟁을 보면서 호메이니는 분을 참지 못하고 1989년 병사했고, 호메이니의 유언에 따라 아야톨라에 오른 알리 하메네이는 '''"국제사회에서 이란의 친구는 없다"며, 이런 고립상황을 돌파하기 위해 핵개발에 몰두'''하게 되었다.
원래부터 이란은 수니파인 다른 중동 국가들과 사이가 안좋았다. 역사적으로 수니파와 시아파(사실상 이란) 국가들 간에 치열한 전쟁이 있어왔다. 몽골의 침략으로 한때 소강기를 맞기도 했지만 16세기 몽골계 티무르 제국이 무너지고 이란 고원에 다시 이란 민족 국가인 사파비 왕조가 들어서면서 시아파 국가인 사파비 왕조와 수니파의 맹주 오스만 제국간에 오래도록 치열한 전쟁이 이어졌다. 양국은 각각 자국내에 있던 수니파, 시아파 신도들을 수만명 단위로 대량학살하는 등 양 종파간의 갈등은 극에 달했다.
20세기 중반 이란은 팔레비 왕조가 들어서며 급속한 친서구화 정책을 펼치며 미국, 영국 등 서방국가들과 돈독한 관계를 맺어왔고, 이스라엘과도 비공식적이지만 적극적으로 교류를 했었다. 당시 팔레비 왕조는 친서구화 개방 정책으로 인한 산업화와 그리고 서방과의 교역으로 빠른 경제 성장을 이루었다. 미국을 비롯한 서방 국가들은 북쪽에서 지속적으로 남하를 시도하고 있던 소련을 저지하고, 동시에 중동에서 다수를 차지하고 있던 수니파 국가들을 견제하기 위해 이란을 지원해줬다. 대표적으로 미국은 당시 자국 최첨단 전투기인 F-14를 이란에만 수출을 허용해줬을 정도였다.
하지만 1979년 이란에서 이슬람 혁명이 일어나 호메이니가 집권하면서 반미, 반서방 국가가 되어 서방과의 협력이 단절되고, 미국, 이스라엘과 적대관계가 되었다. 동시에 시아파 근본주의가 강해지면서 원래 사이가 좋지 않았던 수니파의 맹주 사우디아라비아를 비롯한 나머지 수니파 중동 국가들과의 적대적인 관계도 계속되었다. 대표적으로 이란 혁명이 일어난 이듬해인 1980년 수니파인 이라크가 이란을 침공하여 이란-이라크 전쟁이 발발했다. 사우디를 포함한 수니파 국가들이 이라크를 많이 지원해 주었고, 이란은 이 전쟁을 대 수니파 전쟁으로 규정했다. 또 극단적인 시아파 신정국가인 이란은 무신론을 베이스로 깔고 가며 종교를 허용하지 않는 공산권 국가들과의 협조도 기대하기 어려웠다. 특히 부동항의 확보를 국시로 여기며 지속적인 남하정책을 추진하며 이란을 노리고 있던 소련과는 껄끄로운 관계를 유지할 수 밖에 없었다. 사실 팔레비 정권이 친미, 친서방 정책을 펼친 것은 소련의 위협이 큰 영향을 미쳤다. 혁명 후 이란은 사실상 친구라고 할 만한 나라가 없었다. 한마디로 이란은 이슬람 혁명 이후로 놓인 처지는 그냥 샌드위치 마냥이었다.
이란의 영토와 국력은 매우 크지만, 적성국이 많아 그에 대응하기에는 역부족이다. 서방의 경제제재로 경제력 또한 약해지고 있다. 이를 땜빵이나마 할 수 있는 수단은 비대칭전력 뿐이다. 핵보유 선언은 수니파국가의 침략과 서방의 개입을 차단하는 수단이라고 볼 수 있다.[4] 거기다 바로 이웃나라인 이라크가 미국의 이라크 전쟁으로 허무하게 무너지고 이라크의 또 다른 이웃나라인 시리아시리아 내전 발발 직후 시리아 정부군과 시리아 반군, 이라크-시리아 이슬람 국가(ISIS) 등이 혈투를 벌이고 그 틈을 타 러시아, 터키, 미국 등 외세 열강들이 각자 개입 명분을 앞세워서 군사 개입하여 만신창이가 되는 모습을 이란 정치인들도 보았다.[5]
안 그래도 중동이 세계의 화약고로 불리는 판에 주변 나라들도 핵개발에 몰두한다면? 핵무기가 혹여 테러 집단에 넘어가서 일개 집단이 강국을 상대로 협박할 수 있게 된다. 물론 이미 다른 적성국인 이스라엘은 핵무기를 보유했지만.[6]

3. 역사



3.1. 이란 혁명



3.2. IAEA 사찰과 조지 W 부시의 발언



3.3. 해빙기, 2015년 이란 핵협상


미국 대통령인 버락 오바마는 기존 적성국과의 전향적인 외교를 추진했고, 이에 따라 쿠바와의 재수교및 제재 해제가 행해졌으며, 이란 핵협정도 이와 같은 연장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협상에는 영국, 프랑스, 독일, 러시아, 중국이 같이 참여했으며 협정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 우라늄 농축
    • 우라늄 농축 농도와 일정량 농축우라늄 보유량 제한
    • 농축시설 증축 금지
    • 일정 농도 및 시간 내에 원심력 장치를 이용한 연구는 허용
  • 재처리
    • 아락에 있는 중수로 시설은 연구목적으로 바뀌며, 무기로 사용가능한 플루토늄 부산물이 나와서는 안됨
    • 폐핵연료는 이란외로 반출해 재처리가 불가능하게 함
  • 사찰
    • IAEA가 사찰 담당
  • 제재 해제(IAEA가 협정사항을 준수하고 있다고 평가할 시)
    • EU, 미국은 경제 제재를 해제
반응은 엇갈리는 편이 었다. 일단 협정국 수장들은 일제히 환호했고, 당시 유엔총장 반기문교황청 또한 마찬가지 었다. 다만 이란의 중동 내 숙적 1순위를 다투는 이스라엘사우디아라비아는 불편해하며 반대했고, 미국 내 야권 (공화당) 또한 반대하였다.

3.4. 도널드 트럼프의 집권, 곧 찾아온 위기


버락 오바마가 연임제한으로 출마 못하게 되자 수장 교체가 확실해 졌는데, 당시 대선기간 도중 야권에서 바람을 몰던 후보는 기업가인 도널드 트럼프가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도널드 트럼프는 오바마의 내외정을 비난했고, 이에 따라 오바마에 반감을 가진 유권자의 속을 시원하게 긁어주고 있었다. 도널드 트럼프가 선거인단 확보로 2016년 대선에 승리하자, 그는 오바마의 외교정책을 들어 엎기 시작했다.
후보시절부터 트럼프는 이란에 대한 강한 불신을 드러내고 있었다. 이는 그가 유엔총회에서 행한 연설에서 로켓맨 발언과 같이 드러났다. 그는 핵협정이 수치스럽고, 핵개발을 막지 못한다고 전세계에 방송하였다. 유럽 내 협상 참여국을 포함해 전반적으로 협정 잔류를 표명했지만 말이다. 이에 따라 이스라엘사우디아라비아가 같은 대사로 웃은 것은 덤.
협정에 따라 유럽은 이란에 본격적으로 진출했으며, 이란 항공사가 보잉사에게 전례없는 물량을 주문하는 등 물적교류가 물오르고 있던 상황이었다. IAEA사찰도 2년간 11회 행해졌고, 결과는 이란이 협정을 준수하고 있다라는 결론이었다. 그러나 트럼프의 발언은 이 분위기를 꺾어 버렸다.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은 방미중 의회에서 '''핵협상 잔류'''을 거듭 주문하며 대놓고 비판했던 정도였다.
경제제재 유예가 다가오던 2018년,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이란이 사기쳤다"라는 시청각설명회 문구를 네세우고, 모사드가 노획했다고 주장하는 비밀 핵개발정보가 있다고 주장했다. 이는 도널드 트럼프를 부추기기 위한 여론몰이로 여겨지고 있으며 5월 8일에 트럼프는 일방적으로 미국이 협상에서 이탈한다고 선언했다.
유럽정상들은 이란을 몰아세우는 트럼프를 거듭 말렸으나, 소용 없었고 호르무즈 해협 유조선 피격 사건, 사우디 아라비아 정유시설 습격, 2020년 들어 이란 혁명군 사령관 카셈 솔레이마니 암살 등으로 인해 전쟁까지 임박한 상황이 왔다.
다행히 전쟁 수준의 큰 위기에서 벗어나게 됐다. 그 이유가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 범유행전염병으로 인해 전 세계 모든 나라들이 싸울만한 여력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프랑스·영국·독일이 이란이 합의 사항을 위반했다면서 공식적으로 분쟁조정 절차에 착수했다.# 이란은 중동 주둔 유럽 병력이 위험해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또, 대화는 가능하며 핵합의 파기도 없다고 했다.#

3.5. 조 바이든 당선 이후 동향


유력 대선주자였던 바이든은 이전부터 이란이 협정을 준수한다면 제재를 완화할 수 있다는 피력해왔다. 그리고 2020년 미국 대선 이후 조 바이든 당선이 되자 영국과 프랑스, 독일 등 이란 핵협정을 되돌리기 위한 작업에 나섰다#
이란도 미국이 제재를 풀고 협정에 복귀한다면 협정 의무사항을 준수할 수 있다는 공식 입장을 밝혔다. 바이든이 핵협정을 타결시킨 오바마 행정부에서 부통령을 역임한 만큼 핵협상 탈퇴 이전으로 복귀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취임 이틀 앞두고 이란이 핵 합의(JCPOA·포괄적 공동행동계획)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결의의 준수를 요구했다.#
2월에 국제원자력기구(IAEA)가 이란에 대한 핵사찰을 기존보다 제한적인 수준에서 임시로 유지할 수 있게 됐다.#

4. 동향


이란 또한 자체 국방력은 중동에서 이스라엘, 사우디와 더불어 강력하다고 평가받고 있으며 경제재제를 받고 있기는 하나 수출하고 있는 석유의 양이나 주변 시아파 국가들에게 미치고 있는 영향력을 생각하면 미국이라도 가볍게 대할 수 있는 나라가 아니다. 이란계 미국인은 미국 정계에 영향을 끼칠 정도가 아니며, 그렇다고 주변에 미국과 사이좋은 주요 이란계 국가나 시아파 국가가 있는 것도 아니다. 터키, 사우디아라비아, 아랍에미리트와는 종파, 정치적으로 앙숙이고, 이스라엘과는 매우 적대적이며 그나마 사이 좋은 시리아와 아프가니스탄은 내전에 시달리고 있으며, 아제르바이잔과 이라크는 이제 시아파 정권이긴 하나 민족, 언어적으로도 이란과 다르고,[7] 역사, 외교적으로도 이란하고 사이가 좋지 않은 관계로[8] 이란을 상대로 한 정상적인 외교가 어렵다.

5. 관련 문서



[1] 탈퇴를 선언한 북한과는 달리 아직까지 이란은 NPT에 남아있다.[2] 이란은 이슬람의 종교적 분파 중 하나인 시아파를 국교로 삼는 신정국가로서, 역사·교리적으로 시아파와는 서로간에 앙금이 깊은 수니파 세력 및 수니파 국가들을 국가적 차원에서 적대한다.[3] 호메이니이란이 이라크군을 이란 땅에서 쫓아내면 이라크를 지원하는 타 국가들이 이라크 지원을 중단할 것이고, 끈 떨어진 사담 후세인의 이라크는 이란 혁명수비대의 밥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1982년 후세인의 휴전 제안을 호메이니가 '''거부'''했다.[4] 물론 전자의 의미가 더욱 크다. 이란의 탄도미사일은 대양을 넘는 사거리는 아니기 때문.[5] 물론 2020년 기준으로 ISIS들은 격퇴된 상황.[6] 이스라엘 핵보유는 확실히 되고 있지만 공식적으로는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는다. 거기에 사우디아라비아, UAE, 터키도 핵을 보유할 가능성이 커진다. 문제는 이란과 터키가 핵을 가진다면 그게 다 북한 때문이겠지만[7] 이라크-아랍, 아제르바이잔-튀르크.[8] 일례로 이라크와 이란의 경우 축구 등 스포츠 경기에서도 한일전 맞먹을 수준으로 맞붙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