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재

 


대한민국 국회의원 (전남 순천시 갑)
선거구 개편
허경만[A]
조순승[B]

제15대
김경재


선거구 개편
김경재[C]
대한민국 국회의원 (전남 순천시)
선거구 개편
김경재[D]
조순승[E]

제16대
김경재


제17·18대
서갑원[1]
한국자유총연맹 역대 총재
제15대
허준영

제16대
김경재


제17대
박종환

대한민국 제15·16대 국회의원
김경재
金景梓 | Kim Kyungjae

<colbgcolor=#0075c2><colcolor=#fff> 출생
1942년 11월 3일 (81세)
전라남도 여수시
본관
경주 김씨
종교
개신교
학력
서울대학교 (정치학 / 학사)
소속 정당

의원 선수
2
의원 대수
15, 16
경력
제15, 16대 국회의원
한국자유총연맹 회장
1. 개요
2. 생애
3. 정치 활동
4. 사건사고 및 논란
4.1. 노무현 대통령 명예훼손 사건
4.2. 자유총연맹 비리 논란
5. 선거 이력
6. 소속 정당
7. 둘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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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한국의 전 국회의원.
김대중을 따르던 동교동계의 일원이었으나 이후 전향하여 박근혜 정부 당시 대통령직인수위 국민대통합위원회 수석부위원장, 대통령비서실 홍보특별보좌관 등을 지낸 친박 인사다. 전남 순천 출신으로 ‘호남친박’의 대표격으로 불린다.

2. 생애


1942년 전라남도 여수시에서 태어났다.순천남국민학교, 순천중학교, 순천고등학교를 거쳐, 서울대학교 문리과대학 정치학과를 졸업했다.극성 운동권으로 박정희에 대항하는 학생운동(민족주의비교연구회 사건 등)을 주도하였으며, 강제로 군에 입대한 후 장교로 전역 후 다시 학생운동에 투신하다, 살해위협을 받고 미국으로 망명하게 된다. 미국에서 박사월이라는 필명으로 집필한 김형욱 회고록이 유명하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재미 망명 시절, 최측근으로 활동했다.

3. 정치 활동


1988년 제13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평화민주당 후보로 서울특별시 강남구 갑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통일민주당 황병태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1992년 제14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당 후보로 서울특별시 종로구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민주자유당 이종찬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1996년 제15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새정치국민회의 후보로 전라남도 순천시 갑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2000년 제16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새천년민주당 후보로 전라남도 순천시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2002년 제16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새천년민주당 대통령 후보 선출 전당대회에서 노무현 후보를 지지하였는데, 특히 대선 직전까지도 노무현 후보를 흔들던 당내 (주로 동교동계) 세력들에 대해 동교동계이면서도 적극적으로 맞서는 모습을 보여 친노 성향 네티즌들에게 호감을 사기도 했다.[2]
그러나 대선 직후 친노,386 세력들과 권력 분할의 이유로 이후 사이가 틀어지고 이는 2003년 새천년민주당-열린우리당 분당사태로 이어진다. 새천년민주당을 버리고 열린우리당 창당을 주도한 당시 노무현 대통령과 본격적으로 갈라섰다. 노 대통령은 끝까지 김경재 의원을 설득했지만 김 의원이 역정을 내며 거부했고, 결국 극렬 반노로 전향한다
이후 대표적인 노무현 저격수로 활동하며 민주당 당대표 선거에 출마하나 떨어지고, 이후 탄핵을 주도하며 탄핵 역풍으로 2004년 제17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열린우리당 최규식 후보에 밀려 낙선한다.[3] 결과적으로 김경재가 강북구로 올라가고 다른 사람이 오는데 그 사람이 서갑원이었다.
이후 잠잠하다 2010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한화갑이 창당한 평화민주당에 입당하여 전라남도지사에 출마했으나, 7.39%를 득표하여 최하위로 낙선하며 체면을 제대로 구겼다. 하지만 이게 끝이 아니었으니... 이후 평화민주당을 탈당하고 2011년 상반기 재보궐선거에 자신의 원 지역구인 순천시에 무소속으로 출마했으나 통합진보당 김선동 후보 등에게 밀려 6위로 낙선했다. 고향이자, 두번이나 의원직을 지낸 순천에서 지지도가 3%에 불과할 정도였던 망신살만 뻗친 선거였다.
이후 2012년 제19대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국민생각 창당에 참여하여 영등포구 을에 공천되었으나 최종적으로는 참가하지 않았다. 이후 제18대 대통령 선거에서 한화갑, 한광옥, [4] 등의 동교동계 인사들과 함께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를 지지하였다. 같은 해 말부터는 박근혜 대통령 인수위 국민대통합위원회 수석부위원장을 역임하였고, 박근혜 대통령 당선 이후 2015년에는 청와대 대통령비서실 홍보특별보좌관을 지냈다.
2016년 보수단체인 한국자유총연맹 회장 선거에 출마하여 친이계로 분류되는 허준영 후보를 꺾고 당선되었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정국에서는 탄핵 반대 진영에 서며 태블릿PC 조작 진상규명위원회 공동대표, 박영수 특검 인권침해 진상조사위원회 위원 등을 맡았다.
2020년 제21대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김승규 전 국정원장과 함께 기독자유통일당 공동선대위원장으로 영입되었다.
2020년 8월 15일 범투본 주최로 열린 <문재인 퇴진 8·15 범국민대회> 에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 때문에 정치활동이 금지되어있는 전광훈 대신에 대회장으로 이름을 올리고 연단에 오르기도 했다.

4. 사건사고 및 논란



4.1. 노무현 대통령 명예훼손 사건


2016년 11월엔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로 인해 박근혜정부가 풍비박산날 지경에 이르자 박근혜 대통령을 옹호하면서 "노 전 대통령은 삼성에게서 8천억을 거뒀고, MB도 미소재단으로 2조원을 걷었다."는 물타기성 주장을 해 파문이 일기도 했다.# 이에 대해 문재인 전 대표는 "책임을 묻겠다"면서 강경 대응을 시사했고, 김경재 연맹회장은 자신의 발언이 적절치 않았다며 황급히 사과했다.# 하지만 이미 늦었는지 이해찬 의원 등은 바로 김경재 연맹회장을 명예훼손으로 고소했고,# 검찰은 기소했다 #
1심에서 징역 8개월에 집행유예 2년, 사회봉사 80시간을 선고 받았다. 2019년 6월 대법원에서 원심 판단이 옳다고 보고 김경재의 유죄를 확정했다. 그 말고 민사소송 1심에서 노건호와 이해찬에게 각각 천만원, 총 2천만원의 위자료 지급을 판결 받았다. 2019년 7월 김경재가 항소취하서를 내고 재판을 포기하면서 2천만원 위자료가 확정되었다.

4.2. 자유총연맹 비리 논란


문재인 정부에 들어서서 비리 의혹이 나와 경찰이 자유총연맹을 압수수색했다.#

4.3. 광복절 광화문 집회 참여 논란


2020년 8월 17일 16시경 전광훈 목사가 부인·비서와 함께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은 것으로 확인되었는데#, 김경재가 전 목사의 손을 맞잡고 들어준 장면이 포착되어 전 목사에게 물병을 쥐어준 보수 유튜버 주옥순, 그리고 집회에서 전 목사의 마이크를 돌려 쓴 연사 10여 명 등과 함께 코로나 감염 고위험군으로 분류되고 있다.#
김부겸 전 국회의원은 지난 7월, 8월 말에 있을 더불어민주당 당대표 선거를 위해 캠프를 꾸렸는데 그 사무실이 김경재 전 총재의 사무실과 같은 건물 같은 층에 마련되어 있었어서 감염 고위험군인 김 전 총재와 그 직원들을 피하기 위해 잠정 폐쇄되기도 했다.
김경재 등이 포함된 8.15 광화문 비상대책위원회는 사랑제일교회 변호인단과 9월 1일 광화문광장에서 합동기자회견을 열었는데 정부의 방역대책이 대국민사기극이라고 주장하고 완전국민소송 변호인단으로 조직을 확대개편한 뒤 송사를 준비하겠다고 밝혔다.
9월 23일. 전광훈과 공모 혐의로 구속영장이 신청되었고, 결국 9월 28일에 영장이 발부되어 구속수감 되었다. # 그러다가 2020년 12월 17일 보석 석방으로 풀러났다.

5. 선거 이력


연도
선거 종류
소속 정당
득표수 (득표율)
당선 여부
비고
1988
제13대 국회의원 선거 (서울 강남 갑)

16,438 (17.88%)
낙선 (4위)

1992
제14대 국회의원 선거 (서울 종로)

29,820 (25.67%)
낙선 (2위)

1996
제15대 국회의원 선거 (전남 순천 갑)

43,762 (90.82%)
당선 (1위)

2000
제16대 국회의원 선거 (전남 순천)

61,164 (57.79%)
당선 (1위)

2004
제17대 국회의원 선거 (서울 강북 을)

13,403 (15.71%)
낙선 (3위)

2010
제5회 전국동시지방선거 (전라남도지사)

68,220 (7.39%)
낙선 (4위)

2011
2011년 상반기 재보궐선거 (전남 순천 국회의원)

3,264 (3.90%)
낙선 (6위)


6. 소속 정당


소속
기간
비고

1971 - 1980
정계 입문

1980 - 1987
정당 해산

1987
정계 복귀

1987
당내 노선 차이로 인한 탈당

1987 - 1991
창당

1991
당명 변경

1991 - 1995
합당[5]

1995
신당 창당을 위한 탈당

1995 - 2000
창당

2000 - 2005
합당[6]

2005 - 2007
당명 변경

2007
합당[7]

2007 - 2008
당명 변경

2008
합당[8]

2008 - 2009
탈당

2009 - 2010
복당

2010
당내 노선 차이로 인한 탈당

2010 - 2011
창당

2011 - 2012
탈당

2012
창당

2012
자진 정당 해산

2012 - 2015
입당

2015 - 2016
공직 취임으로 인한 탈당

2016 - 2017
복당

2017 - 2020
당명 변경

2020
합당[9]

2020
탈당

2020 -
입당

7. 둘러보기




[A] 순천시의 제14대 국회의원[B] 승주군의 제14대 국회의원[C] 순천시의 제16대 국회의원[D] 순천시 갑의 제15대 국회의원[E] 순천시 을의 제15대 국회의원[1] 선거법 위반으로 의원직 상실[2] 특히 2002년 11월 12일 63빌딩에서 열린 오찬 때 한화갑 당시 새천년민주당 대표가 노무현 후보를 겨냥해 또 볼멘 소리를 하자 주저없이 이를 반박한 뒤 자리를 박차고 나가는 패기를 보이기도 했다. #[3] 이 때 지역구를 서울 강북구 을로 옮기는데, 본인은 이를 호남을 후배에게 양보하고 자신은 적지에서 싸운다고 주장 했으나, 실상은 탄핵으로 당선이 어려워진 호남을 포기하고, 강북구을의 터줏대감이던 조순형의 지역구를 물려받는 것에 불과 했다. 자기 나름으로는 탄핵 이후, 역풍으로 호남에서는 당선이 힘들어도 서울에서는 어떻게든 할 수 있다 생각했던 모양. 하지만 결론적으로 애초부터 판세가 불리했고 결국 3위로 참패한다. 만약 탄핵 사태가 없었더라면 새천년민주당이 서울에서 열린우리당과 접전을 벌였을거라는 점에서 김경재가 서울에서 당선되고, 3선 의원이 되어 좀 더 정치적인 거물이 될 가능성이 전혀 없는 건 아니었다.[4] 김원길은 좁은 의미의 동교동계라고 볼 수는 없으며, 2002년에 후보 단일화 협의회활동으로 노무현 당시 대선후보를 흔들다 일찌감치 이회창 지지로 돌아선 인물이다.[5] 민주당과 신설 합당[6] 새천년민주당에 흡수 합당[7] 중도개혁통합신당과 신설 합당[8] 대통합민주신당과 신설 합당[9] 새로운보수당, 미래를향한전진4.0과 신설 합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