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3구

 


江南三區
1. 개요
1.1. 강남4구?
2. 정치 용어
2.1. 야권의 텃밭이었던 시절
2.2. 보수화
2.3. 보수정당 지지 절정기
2.4. 변화의 바람?
2.5. 경합지화
2.6. 다시 보수화
2.7. 여성 정치인 강세지역
2.8. 경제통 강세지역
3. 부동산 용어
4. 여담
5. 관련 문서


1. 개요


서울특별시 동남권 소재 3개의 구를 말한다. 서쪽에서부터 순서대로 서초구, 강남구, 송파구이다. 흔히 언론에서 강남3구란 호칭이 쓰이는 이유는 2가지인데 우선 첫번째는 국내에서 수위를 다투는 높은 땅값을 자랑하는 지역이라는 점이고, 두번째는 부유층들이 많이 사는 덕인지 서울에서 보수정당 지지층이 가장 많이 모여있는 곳이란 점이다.
사실 강남이 개발된지 얼마되지 않았던 1980년대에는 이 지역은 군부독재계열의 보수 여당이 아닌 민주계 성향의 야당 강세지역으로서 각 정당들이 유력 정치인 혹은 신진 정치인들을 공천하는 지역구였고, 1990년대 초중반에는 3당 합당의 영향으로 YS 지지층 상당수가 보수정당인 민자당으로 쏠렸지만 그래도 민주당계 성향이 아예 사라진건 아니었고 나름대로 제3당을 지지하는 성향도 있었기 때문에 여야가 비등하게 맞서는 경합지였다. 종로구를 흔히 정치 1번지라고 부르는데 당시 강남과 서초 일대는 신(新)정치 1번지로 불렸다고 한다.[1] '신정치 1번지 표심의 정체 - 시사저널.
하지만 신한국당 창당 및 15대 총선, 한나라당 창당등을 거쳐 보수 정당이 크게 재편되고, 강남권의 지가도 크게 오르기 시작하면서 이 지역의 정치 성향은 서서히 보수 성향으로 변화되어간다. 이런 성향은 2000년대 참여정부 시기 각종 부동산 규제 정책이 쏟아지면서 절정으로 치달았다. 2010년대 들어 보수 지지가 많이 약해지기도 했지만 문재인 정부의 부동산 규제 정책이 쏟아지며 다시 보수화되었다.
대체로 주요 선거 결과를 보면 강남구, 서초구 등은 보수정당 지지율이 압도적인 반면, 송파구는 좀 따로 노는 경향이 있다.[2] 송파구의 경우 서초, 강남과는 다르게 동네마다 보수성향/진보성향을 띈 지역으로 나뉘는데, 이들을 모두 합한 총합이 보수 지지세가 조금 더 높을 뿐이었다. 그래서 평균적인 정치 성향은 옆동네인 강동구 혹은 강 건너 용산구와 비슷한 수준인데, 지리적으로 강북이자 서울 중심에 해당하는 용산구를 제외하고 강동구와 묶어 강남4구라 언론에서 종종 지칭한다.#[3]

1.1. 강남4구?


과거에는 강남3구 용어의 사용이 많았으나 최근에는 강동구를 포함하여 강남4구도 많이 사용된다. 정부의 각종 공문에서는 강남4구의 사용이 많다. 과거 강남구는 현재의 강남구, 서초구, 강동구였으며 송파구가 강동구에서 분파되었다. 강남4구의 유래라고 볼 수 있다. 강남4구에 해당하는 지역은 서울의 동남권이다. 단 정치적으로만 보자면 강동구는 진보가 조금 더 우세하다.[4]
단 강남4구를 언급할 때 강동구가 빠지고 동작구가 들어가기도 한다. 나경원이 동작구 국회의원으로 출마하면서 동작구를 강남4구로 만들겠다고 한 것이 유례지만, 정작 나경원과 동작구민 외에는 자주 사용하는 용례가 아니다. 특히, '2030 서울시 생활권 계획'에서 강남구, 강동구, 서초구, 송파구의 4개구가 동남권 생활권역으로 묶이며, 정부 문서에서의 지칭이 더욱 명확해졌다. 언론이나 공문에서 언급하는 강남4구는 모두 동작구 대신 강동구를 포함한다.

2. 정치 용어



2.1. 야권의 텃밭이었던 시절


상기했지만 1990년대 중반까지는 신민당 - 신한민주당 - 통일민주당 등으로 이어지는 민주계 성향 야당을 지지하던 곳으로서, 강남(당시에는 영동이라고 불렀다.)개발이 시작되어 대규모 아파트 단지가 우후죽순 들어선 1970년대부터 집권 여당인 민주공화당의 지지가 가장 낮은 지역 중 한 곳이었고, 반대로 야당인 신민당의 지지가 꽤 높은 지역 중 한 곳이었다. 박정희 정부 시절, 국가적 사업으로 강남이 개발되면서 새로 조성된 아파트에 젊은 중산층 및 고학력 지식인들이 주로 이주해살던 영향이 있었기 때문이다.[5][6] 1985년 제12대 국회의원 선거 당시 강남구 선거구는 여당인 민주정의당 후보[7]3위로 떨어진 유일한 서울 시내 선거구였을 정도였다. 당시에는 중선거구제를 채택해서 선거구당 2명씩을 뽑았던데다가 여당에 의한 관권, 금권선거가 비일비재하게 벌어졌던 시절이기 때문에 호남권이라고 해도 민주정의당 후보가 당선되기 용이했던 시절이었다. 참고로 해당 선거 민정당은 서울에서는 꼴랑 27%를 얻었는데 그럼에도 서울지역 의석수 28석 가운데 13석을 획득했다. 그만큼 민정당이 떨어지기 어려웠다는 것. 당시 강남구 선거구보다 민정당의 득표율이 낮은 선거구가 몇개 더 있었지만[8] 효율적인 표배분(?)이 되지 않아서 민정당 후보가 떨어지지 못한 선거구가 몇개 되는데 강남구 선거구는 효율적으로 표배분이 되었다. 보수화가 된 지금으로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지만 현재의 상황과 정확히 반대인 경우로써, 유권자가 젊거나 지식수준 및 학력이 높을수록, 특히 고가 아파트에 거주할수록 야당 지지세가 더 강했다고 한다. 반대로 집권 여당의 강세지역은 노령층이 많이 사는 교외 농촌 지역(세곡동, 내곡동 등)으로 현재의 계급투표가 아닌 세대투표 양상으로 진행됐던 전형적인 여촌야도의 사례라고 할 수 있겠다.[9] 강남 최고급 아파트 단지의 야당 선호 - 월간조선[10] 3당 합당 시절에도 명함 못 내밀던 강남 3구가 ‘보수 텃밭’이 된 이유 - 중앙일보, 1998년 지방선거부터 보수여당으로 쏠려 - 주간경향.
민주화 이후 처음 치러진 1987년 대선에서도 강남 지역은 김영삼 후보의 지지율이 제일 높았다.[11] 이 선거 결과 강남권은 1987년 양김 분열 이후 수도권에서 반 김대중 정서가 가장 짙은 지역이 됐다.# 가장 큰 이유로 영남 출신 출향민들이 대거 이주하여 정착한 영향이 제일 크다.[12] 물론 이에 대한 반론으로 민주화 직전인 1985년 12대 총선에서 강남에서 당선된 야당 국회의원 두 명(신민당의 김형래, 민한당의 이중재) 두 명 모두 호남 출신 의원으로, 저 때까지만 해도 지역감정에 의한 투표를 하는 성향은 그다지 짙지 않았음을 유추할 수 있다.[13] 시간이 흘러 1990년대에 보수 계열 정당이 갈라졌을 때에도 DJ계 정당 후보가 3위로 떨어진 지역이 있었고, 훗날 2007년 대선때도 정동영 후보가 3위였던 곳이 있었을 정도였다.[14] 1988년 제13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3개구에 배정된 6석 중 5석을 야권(평민당, 민주당, 친야 서명파 무소속 후보)이 싹쓸이했다. 3 후보는 물론, 단일화를 촉구하며 탈당한 서명파 무소속 후보(박찬종, 홍사덕, 허경구, 장기욱 등)들도 출마[15]하여 야권 후보들이 대거 난립했음에도 불구하고, 민정당은 강남구 을 후보만 당선시키는데 그쳤다.[16]
1990년 3당 합당 후 초거대여당인 민주자유당으로 거듭나면서 처음으로 치러진 1991년 지방선거에서 민자당이 우위를 나타내는가 했지만 1992년 제14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개포동 주공아파트 단지[17]에서 벌어진 국가안전기획부 흑색선전 유인물 배포사건의 역풍으로 6개 선거구 중 서초구 을[18]을 제외한 5개 선거구에서 여당 민자당 후보가 낙선하는 참패를 당한다. 강남구 을민주당의 홍사덕이, 강남구 갑송파구 갑[19]정주영이 창당한 통일국민당 후보가 당선[20]됐고, 서초구 갑신정치개혁당을 창당한 박찬종이 연속 당선되었다. 물론 9개월 후 치러진 제14대 대통령 선거에선 초원복집 사건 등으로 인해 보수표 결집이 이뤄지며 김영삼 후보가 전국에서 얻은 42%보다 높은, 특히 서울의 평균을 웃도는 득표율(서울 전체 YS 득표율은 36.7%, 강남3구의 YS 평균 득표율은 43.1%)[21]을 보이며 다시 보수 정당이 우세를 점하는데, 강남 지역의 보수화는 사실상 이 때부터 진행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1995년 제1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는 강남구청장과 서초구청장은 민자당 후보가 당선되었으나 서울특별시장 선거의 경우 민주자유당 정원식, 민주당 조순, 무소속 돌풍 박찬종 후보까지 총 3파전이 된 서울특별시장 선거에서 당시 보수 여당인 민주자유당 정원식 후보가 아닌 오히려 민주당의 조순, 무소속 박찬종 후보에게 지지를 보내줬다.[22]

2.2. 보수화


이렇듯 9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이 곳은 민정당계 보수정당이 영 힘을 못쓰고 오히려 야권 출신들이 뒤죽박죽 접전을 벌이던 지역이었으나, 1996년 15대 총선 당시 여당이었던 신한국당은 점점 진행되는 이 지역의 보수화를 등에 업고 총력전을 펼쳤다. 최병렬, 김덕룡, 서상목 같은 여당 거물급 인사와 홍준표[23], 맹형규 등 전문직 엘리트 출신의 정치 신인을 적절히 배치했다. 다만 이 때까지만 해도 강남3구는 무차별적으로 신한국당을 지지하던 곳은 아니었는데 송파구 을이나 강남구 을에서는 전 통일국민당계 의원이 들어간 자유민주연합이나 DJ계 정당인 새정치국민회의가 아닌 통합민주당 출신 후보의 선전이 눈에 띄었다는 것. 민주당을 탈당하고 무소속으로 출마한 홍사덕이 당선[24]되었으며, 강남구 갑에서는 인권변호사 출신 홍성우[25], 서초구 을에 출마한 안동수 등은 나름대로 선전했으나 상기한 후보 난립으로 인해 낙선했다. 이렇게 되어 강남구 을 지역에서 14대에 이어 재선한 홍사덕과 새정치국민회의 김병태가 당선된 송파구 병을 제외한 전 지역구에서 신한국당 후보가 당선된 것을 시작으로 강남3구는 본격적인 보수계 정당 텃밭으로 바뀌게 된다.
1997년 제15대 대통령 선거 때는 김대중 후보가 전반적으로 10~20%씩 우세했던 다른 구들과 달리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가 서초구, 강남구, 송파구(송파 갑ㆍ송파 을)에서 2%(송파 을)~19%(강남 갑) 정도 앞섰다.[26] 1998년 제2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도 과거 보수 정권 출신이었다가 집권당 새정치국민회의가 영입한 고건이 강남, 서초 두 지역을 제외한 나머지 전 지역에서 앞섰으며[27] 한일 월드컵 기간 중 치러진 제3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도 정권 심판 바람을 타고 이명박 당시 서울시장 후보가 압도적인 차이로 당선되는데 세 지역이 많은 기여를 했다.
특히 2002년 제16대 대통령 선거 같은 경우 서울특별시 25개 자치구 중 노무현 후보가 송파구[28] 포함 23개 구에서 모두 우세했지만 강남구서초구에서만큼은 이회창 후보가 앞섰다. 노풍 '무풍지대', 강남을 가다 - 오마이뉴스.
사상 첫 탄핵 정국 당시 치러진 2004년 제17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도 서울특별시 전체로 볼때는 열린우리당 돌풍이 불어 압승을 거두었으나, 이 지역들에서만큼은 겨우 1석(송파구 병)을 확보하는데 그쳤다.

2.3. 보수정당 지지 절정기


사실 참여정부 초기까지만 해도 강남지역에서 反 열린우리당 성향이 그렇게까지 짙진 않았다.[29] 그러나 2005~2006년 쯤을 전후해서 이곳은 한나라당 강세 지역에서 한나라당 초강세 지역으로 변모하게 되는데, 결정적으로 참여정부가 내놓은 각종 부동산 정책이 규제 위주로 나오면서[30] 이 지역에 거주하는 사람들이 원하던 정책과는 다른 방향으로 가게 되었고,[31] 이에 참여정부에 대한 반감이 심해지면서 이전부터 있던 反 김대중 성향이 차차 反 노무현 성향으로까지 이어지게 된다. 2006년 지방선거 때는 한나라당 오세훈 당시 후보가 이 곳에서 70%가 넘는 압도적인 득표율을 얻으며 서울시장에 당선돼 당시 참여정부에 대한 실망감을 확실히 드러냈으며, 이는 2007년 대선과 2008년 총선까지 이어졌다. 이때가 강남3구에서 반 한나라당 세력(그러니까 민주당계 정당)에 대한 반대성향이 가장 확실히 드러난 때로, 대선 당시 서울특별시 득표율은 1위가 이명박 후보, 2위가 정동영 후보, 3위가 이회창 후보였으나, 압구정동, 대치동, 잠실7동, 서초동 등 일부 동 지역은 2위조차 이회창 후보였을 정도였다.
2008년 서울특별시 교육감 선거 당시에는 진보 성향의 주경복 후보가 서울특별시 대부분 지역에서 우세를 보였으나 이 지역에서만큼은 보수 성향의 공정택 후보가 우세를 보여 결국 전체 판세를 뒤집고 당선되었고, 2010년 지방선거에선 한나라당으로 출마한 오세훈 후보가 민주당 한명숙 후보에 개표 막판까지 열세를 보였으나 막판 강남3구 유권자들의 몰표가 쏟아지며 대역전극으로 힘겹게 당선될 수 있었다. 심지어 '오세훈 일병 구한 강남 삼대장(...)'이라는 말까지 나왔을 정도로 그 당시 서울특별시 판세의 캐스팅 보트 역할을 톡톡히 한 셈. 그리고 다음 해 오세훈 시장이 시장직을 걸면서까지 무상급식 투표를 밀어붙였을 때, 투표율 33.3%가 넘어야 개표할 수 있는 상황이 되었는데, 결국 미달하며 개표하진 못했지만 서울에서 유이하게 강남구서초구, 이 두 곳만은 투표율 33.3%를 넘기며 오세훈 시장에게 힘을 보태주었다.

2.4. 변화의 바람?


[image]
2010년대 들어서 소위 강남좌파가 담론화되고 있긴 하다. 특히 2012년 제19대 국회의원 선거때는 민주통합당은 송파구 을에 천정배, 강남구 을 정동영[32] 거물급 정치인을 전략공천하는 등 총력을 기울였으나 결국 새누리당이 석권하였다. 하지만 이 효과로 야권의 득표율도 상당히 상승하긴 했다.[33] 2012년 대선 때도 지난 2010년 지방선거 이후 이어진 지지율 비율을 계속 이어갔다.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가 강남구에서 60.1%, 서초구에서 58.6%를 얻으며 여전히 강세를 보였으나, 문재인 후보는 야권 득표율이 2007년 대선 당시 20%에도 미치지 않다가, 보수-진보 양강 구도로 전환되자 박원순 시장처럼 강남3구에서 43%의 표를 얻으며 선전했다.# 대선과 함께 치러진 교육감 재선거에서는 안정적인 교육 운영을 바라는 의사가 반영되어 보수성향 문용린[34] 교육감에게 60% 이상의 몰표(서초구, 강남구)가 쏟아졌다.
2014년 제6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새정치민주연합 소속의 박원순 시장이 강남3구에서 49.0%를 득표. 새누리당 소속의 정몽준 후보(50.4%)와 불과 1만1337표 차이로 '대단히' 선전했고 구별로 따지면 송파구에서는 53%대의 득표율을 얻어 정몽준 후보에게 앞섰고 서초구에서 47%, 강남구에서 45%로 선전했다.[35]## 여기에는 정몽준 후보가 비전이나 설계를 제대로 보여주지 못한 삽질도 컸지만, 박원순 현 시장이 강남 3구 지역을 '적으로 안돌렸다는 점'도 컸다. 2011년 재보궐선거에서 박원순 시장이 처음 당선됐을 때만 해도 강남지역은 '재건축은 다 물건너갔다. 우리만 엄청 조지겠네' 이런 분위기였으나, 오히려 재건축/리모델링 단지들(특히 개포동 주공아파트 단지 지역)이 박원순 시장 아래서 주민 동의만 하면 허용해주는 방향으로 갔기 때문에 별 잡음없이 예정대로 다 진행되었고, 거기다가 경전철에 한전부지-잠실 개발건까지 들고 나와서 이 지역에서는 우호적인 반응들을 꽤나 형성했었다. 또한 강남-반포-동작을 연결하는 9호선 문제도 해결했다는 점에서 긍정적 시각이 있었다.
2010년 지방선거에 한명숙 후보가 출마했을 당시만 해도 강남3구 지역은 '대놓고 강남 적대시한다'는 분위기가 있었던 것에 비하면 상당히 진전된 셈. 또한 박원순 시장은 영동권 국제교류 복합지구(삼성동 코엑스 일대 지역 말한다) 개발 구상을 내놓기도 했는데 이 부분도 영향을 주었을 것으로 보인다. 다만 반대로 이런 선거 결과는 강남3구에게 박원순 서울시장이 잘했기 때문도 있겠지만, 세월호 사건이 터지고 거기에 새누리당 정몽준 후보 아들의 국민 미개 발언 등이 겹치면서 스스로 자폭한 면이 더 크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있다. 이에 대한 근거로 세월호 사건 전 근소했던 서울시장 여론조사를 들기도 하는데, 2010년 지방선거나 20대 총선을 보면 보수정당 후보가 심하면 2배 가까이 유리하게 나오던 지역도 실제론 낙선한 경우가 꽤 되기 때문에 여론조사 신빙성이 의심된다는 지적도 있다. 유선전화를 잘 안쓰는 젊은이들의 의중이 잘 반영되지 못하는 여론조사의 한계라는 지적. 여튼 함께 치뤄진 교육감 선거에서도 조희연 서울시 교육감이 강남구, 서초구에서 각각 34.26%, 31.98%를 얻어 선전했다.[36][37] 여담으로 구청장 자리에는 사상 처음으로 세 개의 구에 모두 여성이 당선되는 진기록을 보여줬다.[38]
그리고 2016년 제20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더불어민주당이 강남3구 지역 중 송파구 2[39], 강남구 1곳[40] 총 3곳을 차지하는 이변을 일으키며 강남벨트도 더이상 무조건적으로 보수정당에 몰표를 주는 곳은 아니란 점이 다시 한번 확인되었다. 심지어 대표적 보수텃밭인 강남 갑에서조차 더불어민주당 김성곤 후보가 무려 45%를 득표하며 선전했다.[41] 게다가 비례대표 정당득표율에서는 야권(더민주+국민의당+정의당)이 새누리당을 앞섰다.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새누리당의 계속된 계파 갈등과 공천 파동, 박근혜정부의 국정 운영에 대한 피로감이 더해지고,[42] 반대로 세곡동[43], 내곡동[44], 위례신도시 등 새로 지은 아파트나 역삼동, 양재동 등으로의 젊은 사회초년생[45]들과 신혼부부들의 유입[46]이 더해지면서 강남3구에서 야권 지지도가 올라간 것으로 분석된다. 또한 주요 지지 정당인 새누리당의 삽질에 실망한 강남의 표심이 비교적 중도 성향인 국민의당으로 몰린 것도 어느정도 영향을 줬을거란 평이 나왔다.
2016년 10월 말에 박근혜-최순실 게이트가 터지고 박근혜 대통령 탄핵안이 발의되자, 이 지역의 새누리당 국회의원들까지 탄핵에 찬성하였다. 애초에 강남3구는 20대 총선 결과 더민주[47] 아님 죄다 비박계 의원들로 채워졌기 때문에 박근혜 대통령과 진작부터 어느 정도 거리를 두고 있었고, 탄핵사태까지 겹치며 완전히 갈라서 탄핵 이후 얼마 안가 강남3구의 모든 새누리당 의원들이 탈당해 바른정당으로 가게 된다.[48] 즉, 강남3구에서 새누리당 의원이 전무한 초유의 사태가 발생한 것이다. 그러나 이 지역의 구청장 3명은 탈당을 하지 않고 모두 새누리당에 잔류하였다.[49] 이후 새누리당은 이듬해 2월에 자유한국당으로 당명을 개명하였다. 그 때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이 지역의 바른정당 의원들이 하나 둘 씩 자유한국당으로 돌아오기 시작했는데 그 해 4월 28일에는 이은재 의원이, 같은 해 5월 2일에는 박성중 의원이 자유한국당으로 복당했다. 19대 대선 이후에는 이종구 의원(2017년 11월)과 박인숙 의원(2018년 1월) 처럼 1차 탈당 때는 남아있던 이 지역의 바른정당 의원들도 돌아오면서 이혜훈 의원을 제외한 이 지역의 옛 새누리당 소속 의원들이 모두 자유한국당으로 복귀했다.

2.5. 경합지화


2017년 19대 대선에서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후보가 이 강남3구에서도 압도적인 격차로 낙승했다. 전국단위 주요 선거에서 민주당계 정당 후보가 이 지역에서 승리한 것은 대한민국 대통령 선거의 경우 1987년 제13대 대통령 선거 당시 통일민주당 김영삼 후보가 우세한 이후 처음이며, 1995년 제1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민주당 조순 서울특별시장이 당선된 이후 22년만이다. 송파구에서는 잠실7동, 강남구에서는 압구정동, 신사동, 청담동, 삼성1동, 대치1동, 도곡2동. 서초구에서는 반포2동, 서초4동을 제외한 나머지 전 지역에서 승리했다.[50] 게다가 압구정동과 도곡2동을 제외한 나머지 지역에서는 1000여표 미만의 표차밖에 나지 않았다. 특히 젊은 층이 많이 사는 세곡동, 역삼동, 일원동, 잠실동, 위례동 등지에서 문 후보가 압도적인 득표를 하여 당선에 기여했다. 아래 자세한 내용은 계속 후술.
강남구의 경우 이미 20대 총선에서 지역구에서 민주당의 입성을 허용해서 그 영향으로 지지율이 높아졌다[51]고 할 수 있고, 송파구도 사실 야당이 몇 번 당선되었으니 야당이 앞선다 할 수 있겠지만 놀랍게도 야당이 20대 총선에서도 당선 안 된 지역인 서초구마저도 문재인 후보가 10% 이상으로 1위를 했다. 특히 심상정, 안철수의 득표율을 합해보면 강남3구 중 강남구, 서초구는 민주당계 정당과 진보정당이 무려 61%를 득표했고, 송파구는 구민 3분의 2 이상이 민주당계 후보와 진보정당 후보를 지지했다. 강남구의 경우는 을 지역구의 영향도 있었지만, 자유한국당 소속의 신연희 강남구청장이 민심에 이반되는 행위를 지속한 것이 중요한 이유 중 하나로 보는 시각도 있다. 자세히 보면 송파구 잠실지역과 오륜동, 문정동, 그리고 서초구 잠원동과 반포동[52]마저도 이번에는 문재인 후보가 앞서는 이변이 일어났다. 참고로 이번 서울시 투표 결과를 국회의원 선거구 기준인 49개로 나누었을 때 문재인이 1위를 하지 못한 곳은 없다.보수 계열 의원들이 당선됐던 강남구 갑, 강남구 병이나 서초구 갑 같은 지역구에서도 이겼다! 심지어 국민의당 안철수 후보 표차를 합하면 이 곳에서조차 민주당계 정당 후보들이 자유한국당 홍준표 후보를 앞지르는 결과가 나왔을 정도다. 다만 진보-보수표를 모두 합치면 강남구 갑, 강남구 병은 보수정당 후보들의 총합이 각각 1%와 5% 정도 앞섰다.
홍준표 후보는 3천여표 차이로 이긴 압구정동[53]과 1,200표 차이로 이긴 타워팰리스, 도곡렉슬 등 고급 아파트가 위치한 도곡2동을 제외하고는 1위를 한 지역에서는 거의 접전 승리를 거둔 것에 그쳤다. 청담동신사동에서 600여표 차이[54] 뿐이고, 고급 주택가 및 삼성동 아이파크가 위치한 삼성1동은 98표 차이, 학원가로 유명한 대치1동은 500여표 차이였다. 삼풍아파트, 아크로비스타 같은 고가 아파트가 있으며 법원 단지가 있어 법조인들이 많이 거주하는 서초4동[55]에선 480표 차이, 래미안 퍼스티지, 아크로리버파크 등 비싼 아파트가 위치한 반포2동에서도 260표 차이였다. 보수정당 초강세지역이자 아시아선수촌아파트가 있어 부유한 노령층이 많이 거주하는 잠실7동에서도 680표 차이.[56]
심지어 보수 강세 지역이던 잠실동[57]과 역삼동에서도 승리했는데 잠실동은 본래 부촌 이미지가 강해 한나라당-새누리당 계열 지지세가 막강했지만 30~40대 주민들의 유입으로 민주당계 경합우세~강세 지역이 되었으며 역삼동 역시 마찬가지로 보수 강세 지역이었으나 원룸촌을 중심으로 젊은 층이 점점 늘고 있어 민주당계의 강세 지역이 되고 있었다.
이러한 이유로는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의 여파가 미친데다 자유한국당 홍준표 후보가 여러가지 논란에 휩싸여 차마 찍을 수 없었던 보수층의 표가 안철수유승민으로 분산됐기에 가능했다는 시각이 있다. 특히 유승민 후보가 거의 두 자릿 수 득표율을 올려[58] 중산층 및 젊은 중도, 보수 지지층의 표를 얻는데 나름대로 성공했다.
다만 이에 대해서는 이견도 존재한다. 설령 자유한국당, 국민의당, 바른정당간의 단일화가 성사되어 홍준표 후보가 단일후보로 나섰다고 한들 안철수와 유승민의 표가 고스란히 홍준표 후보에게로 갔을지에 대해서는 상당히 큰 의문이 남는게 사실이다.
[image]
실제로 여론조사 공표기간 막바지에 실시된 여론조사를 보면 문재인 후보와 '3당 단일후보 홍준표 후보'간의 가상 양자대결에서 홍 후보는 문 후보에 처참하게 밀리는 것으로 나온 바 있다. 더군다나 안철수 후보의 주 지지층은 호남 및 중도층으로 TK와 강경보수층을 주 지지층으로 두고 있는 홍준표 후보와는 상당히 큰 차이를 보인다. 이러한 이유로 3자 단일화가 성사되었다 한들 안철수 후보의 지지층이 홍준표 후보에게로 대거 이동했을 것이라는 의견에는 근거가 전혀 없다고 볼 수 있을 것이며 위와 같은 여론조사 결과를 참조해서 보자면 오히려 문재인 후보에게로 대거 이동했을 가능성이 훨씬 높다고 봐야 타당할 것이다. 유승민 후보의 경우에도 일단 성향은 같은 보수지만 유 후보 본인부터가 홍 후보와는 시종일관 거리를 두고 있었고 개혁보수를 기치로 내걸었던 만큼 그 지지층이 홍 후보에게로 온전히 이동했을 것이라는 보장은 쉽사리 할 수 없다. 실제로 출구조사 결과를 살펴보면 유 후보의 지지율은 20~30대 젊은층에서 상대적으로 높게 나타난 반면 50대~60대 이상 중.장년층에서는 낮게 나온 바 있는데 유 후보에 호응했던 중도보수 성향의 젊은 유권자들이 홍 후보를 선뜻 선택하기란 쉽지 않았을 것이라는 시각도 충분히 존재할 여지가 있다. 따라서 '3자 단일화가 되었다면 홍 후보가 강남권에서는 이겼을 것'이라는 주장은 근거도 없고 설득력도 떨어진다.
제7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도 이러한 추세는 바뀌지 않았다. 오히려 박원순 시장은 4년 전 선거에서는 이기지 못했던 강남구와 서초구, 용산구에서도 대승을 거두며 세 번의 선거 만에 서울 전 지역을 석권하게 된다. 새로 이긴 세 지역들 중에서 강남구에서는 40.8%, 서초구에서는 42.9%를 득표하면서 2위인 김문수 후보에 각각 7.7%차, 11.8%차로 승리했다. 다만 박원순 시장 입장에서 마음에 걸릴 수도 있었던 것이 1년 전 대통령 선거에 비하면 민주당이 승리한 지역이 약간 줄었다는 것이었다. 은마아파트 재건축 논란이 있었던 대치2동에서는 다시 자유한국당 후보에게 패배하고 역시 재건축과 관련한 이슈가 있던 개포2동에서도 불과 3표 차이로 석패했다.[59] 서초구에서도 비슷한 상황이 발생했는데 19대 대선 당시에 문재인 당선자가 2% 차이로 신승한 반포본동에서 200여표 차이로 패배했으며 이외에도 반포 3동 지역에서 383표 차이로 패배했다. 김문수 후보가 재건축을 용이하게 하도록 정책을 바꾼다는 공약을 펼쳤던 것이 강남 주민들의 마음을 일부분 움직인 것으로 보인다. 바른정당이 국민의당과 함께 바른미래당으로 합당되면서 1년 전 대선에 비하면 보수진영의 표 분산이 덜 했던 까닭도 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구청장과 시의원 단위에서는 민주당이 강세를 보이는 데 성공하였다. 세 개의 구청장 자리들 중 서초구청장 자리를 제외한 나머지 두 곳을 모두 석권하는데 성공했다. 강남구청장의 경우에는 전임 신연희 구청장의 비리와 막말로 실망한 지역 주민들과 세곡동 보금자리주택에 늘어난 신혼부부들, 논현동/역삼동의 젊은 사회초년생들의 영향 등으로 인해 민주당 소속 후보가 지방자치제 시행 이후 처음으로 구청장 자리를 차지했다. 송파구청장 자리도 20년만에 민주당이 차지했으며[60] 서초구청장 선거에서만 조은희 현직 구청장 본인의 개인기를 통해 패배를 모면할 수 있었다.[61] 시의회 자리도 자유한국당이 차지한 강남구의 3개 선거구들을 제외하면 모두 민주당이 차지하였다. 그 외에 최명길의 당선 무효로 인해 치뤄진 송파 을 국회의원 재보궐선거에서도 지역 연고가 없던 친문 핵심 당 중진 최재성과반 이상의 득표율로 국회 재입성에 성공한다.
한편 교육감 선거에서는 같이 치러진 다른 지방선거 결과와는 달리 보수 계열 후보가 강세를 보였다. 강남구와 서초구에서는 보수계열 후보였던 박선영이 승리하였으며[62] 송파구에서는 박선영 후보가 8,807표 차이로 조희연 후보에게 패배했지만 꽤 선전했다.[63] 이는 강남 8학군의 영향도 있고.[64]


2.6. 다시 보수화


그러나 21대 총선에서는 흐름이 역전되어 외곽지역인 송파구 병을 제외한 7석을 미래통합당이 석권하였다.[65]
비례대표 투표에서도 미래한국당이 서초구 45.4%, 강남구 47.5%, 송파구 37.9%로 압승하였다.
더욱이 21대 총선 서울 선거에선 민주당 41 통합당 8이라는 어마어마한 스코어로 민주당이 압승을 했는데 이는 강남 3구에서만큼은 문재인 정부에 대한 민심이반이 심했다는 증거이겠다.
특히 타워팰리스, 서빙고 신동아아파트, 압구정 현대아파트, 아크로리버파크, 아시아선수촌아파트, 래미안 퍼스티지에서는 미래통합당 후보의 본투표 득표율이 80%를 넘었고, 이외에 많은 부촌 아파트들에서 득표율 60%를 넘겼다. 21대 총선 서울 문서 참조.

2.7. 여성 정치인 강세지역


여성 정치인들은 남존여비 사상이 상대적으로 잔존하는 지방보다 교육수준이나 생활수준이 보다 높은 수도권에서 경쟁력을 보이고 있다. 이에 따라 수도권에서도 생활수준과 교육수준이 상대적으로 높은 강남 3구에서는 여성 정치인들의 약진이 도드라진다. 보수진영 국회의원으로는 이혜훈, 박영아, 박인숙, 김을동, 이은재, 윤희숙, 배현진이 있다. 민주당계 전현직 국회의원으로는 전현희, 남인순이 있으며, 이외에도 이정근, 박경미 등이 이곳에서 활동하고 있다. 또한 김영순, 신연희, 박춘희, 조은희 등 많은 여성 기초자치단체장을 배출하였다. 과거 한나라당이 강남이 텃밭인지라 자당소속 남성 현역기초자치단체장을 컷오프시키면서 여성후보를 공천한 덕도 있다.
비슷한 사례로는 거물 여성 정치인들[66] 의 요람이라 불리는 고양시가 있으며, 21대 총선 기준으로 여성 지역구 국회의원이 한 번도 당선되지 못한 인천, 강원 등의 지역과 큰 대조를 보인다.

2.8. 경제통 강세지역


또 하나의 특징이 있다면, 경제통들이 강세를 보이는 지역이라는 것이다. 경제학자 출신인 이혜훈, 윤희숙, 유경준, 유일호, 강석훈이나 경제관료 출신인 이종구, 맹정주, 권문용 등이 그 예시이다.
이는 강남 주민들의 삶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종합부동산세, 재산세, 상속세, 증여세 등의 각종 세금 관련 문제나 재건축, 공시지가, 공시가격 등의 부동산 관련 문제들이 강남 지역구의 주요 현안이기 때문. 특히 문재인 정부에서 재건축을 억제하고 공시가와 세금을 올리는 등 가렴주구식 정치로 강남 주민들을 못 살게 굴고 있어서[67] 강남 주민들의 불만이 고조되고 있는 실정이다. 따라서 이러한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경제통들이 주로 이 지역구들로 공천되었다.

3. 부동산 용어


국내에서 아파트, 부동산 시세가 가장 비싼 곳으로 알려져있다. 강남3구란 용어로 아예 한데 묶어 매매, 전세, 월세가를 측정하기도 한다. 이런 부동산 폭등 현상은 1970년대쯤부터 본격화되기 시작했는데, 이 지역에 대대적인 개발이 이루어지며 원활한 이주를 유도하기 위해 정부는 도로, 공원, 지하철 등 인프라 투자를 아끼지 않았고, 경기고, 서울고, 경기여고, 휘문고 등 당시 많은 명문 중.고등학교들을 여기로 죄다 강제 이주시키면서까지 이 지역에 양질의 교육 환경을 조성했다. 그리고 중산층, 상류층들을 위한 아파트들을 짓기 시작하면서 이 지역엔 투기꾼들이 들끓게 되는데, 오죽하면 1978년 당시 이 지역 땅값이 15년 전에 비해 176배나 폭등했을 정도였다.[68] 이때 강남개발로 한 몫잡거나 성장의 기회로 삼은 기업도 많아서 손을 세기 힘들 정도다. 물론 당대 고위층들도 강남에 땅을 사서 재산을 불려먹는 것이 당대의 유행이었다.
이후에도 1988년 서울 올림픽잠실 지역이 무대가 됐으며, 고층 오피스 지역들도 테헤란로 일대로 대거 이전하기 시작했다. 1990년대 이후에는 법원단지까지 서초동으로 이주하게 된다. 고급 술집들도 도심의 포화된 상권을 벗어나 강남권에 많이들 옮겨오게 된다. 이러다보니 좋은 입지, 넘사벽 교통 인프라, 8학군으로 대표되는 교육 환경 등을 배경으로 둔 이 지역에 자본과 사람이 몰리게 되면서 대표적인 노른자위 지역이 된다. 게다가 2000년대엔 재건축 열풍까지 타고 가뜩이나 비싼 가격이 더 오르며 그야말로 강남 불패 신화를 낳기도 했다. 이후 부동산 규제의 효과를 2007년부터 보기 시작했고, 2008년 금융위기의 여파로 인한 경기침체 덕택에 강남에서도 하우스 푸어 소리듣는 사람까지 나올 정도였지만 2014년부터 박근혜 정부의 부동산 부양정책과 재건축 규제완화로 부동산 값이 다시 오르고 있는 중.
문재인 정부 들어서 재건축 초과이익환수제도 도입과 공공임대주택의 안정적인 공급으로 강남지역의 지가가 안정화될 수 있을것이라는 예측도 있었지만 초과이익환수제 부활 덕분에 재건축 일정이 초과이익환수제 시행 전인 2017년으로 죄다 앞당겨져서 오히려 재건축 사업을 활성화 하는 결과를 낳았다. 2017년 현재 재건축 단지가 밀집한 강남구, 서초구와 강동구에서는 재건축 주택의 멸실로 인한 주택 재고 부족 문제가 가시화되고 있으며 이로 인한 주택 가격 상승이 점쳐지는 중이다. 또한, 공공임대주택을 대량 공급한다 하더라도 공공임대주택의 수요층은 저소득 서민층이기 때문에 강남권 진입 수요와는 겹치지 않아서 강남권 집값에는 아무런 타격이 없을것이라 예측되고 있다. 또한 2018년 들어서도 '똘똘한 한 채' 열풍에 힘입어 다주택자를 겨냥한 대책으로 인해 오히려 강남권 집값에 부스터만 달아준 꼴이 되고 말았다. 왜냐면 동탄2, 운정 지역의 집을 팔아버리면 되니까. (실제로 경기외곽 신도시에는 문재인 정부의 부동산 정책이 큰 악재로 작용하고 있다)
그렇다보니, 강남3구라는 말은 부동산계의 황제주 대접을 받으며 대마불사 이미지를 보여주고 있다. 부동산 불황이라는 말이 나오지만 강남3구만큼은 불황은커녕 오히려 과열 걱정을 해야 하는 처지이다.
강남3구의 부동산을 잡으려는 노력은 정권과 관계없이 계속되지만, 사실은 그 어떤 규제를 해도 결국 올랐다는 학습 효과가 있어 문재인 정부 들어서도 부동산 대책이라고 해봤자 콧방귀만 뀌는 현상이 지속되고 있다. 심지어 인터넷 뉴스의 댓글란을 보면 노무현 시즌2[69]라는 이야기마저 돌고 있을 정도. 물론 약간의 조정이야 있겠지만 2016년 11.3 대책으로 강동구를 포함한 강남 4구의 분양권 전매 거래를 규제한 이후 2달 정도 잠시 떨어지다 폭발 양상을 보여주는 것도 그 이유. 2017년 12월 말 기준 송파구의 아파트 3.3㎡당 평균 매매시세가 3,008만원을 기록하며, 강남3구의 평균 매매시세가 모두 3,000만원을 넘어섰다.[70]
그 외에도, 교육 인프라가 잘 되어 있다는 점도 큰 영향을 준다. 수능 절대평가화가 문재인 정부의 기본 정책 기조이지만, 줄세우기용 시험인 수능을 절대평가하면 본고사가 부활할 수 있다는 예측으로 인해, 강남을 잡기 위한 수능 절대평가화가 오히려 강남 집값을 더 올려버리는 상황이 올 수 있다는 지적도 타당성이 높은 지적이다. 수능은 전국민이 동일 시험지로 응시하기 때문에 정보 접근 격차를 줄일 수 있지만 본고사는 세칭 명문대일수록 정보 접근 격차가 커질 수 있으므로 강남이 유리한 것은 당연하다.
행정구역상의 강남구, 서초구, 송파구는 그 이름에서 오는 프리미엄도 결코 무시할 수 없다. 판교신도시 주민들이 도로명주소에 온갖 잡다한 길에 모조리 판교를 넣어달라고 요구한 적이 있는데, 강남3구라는 행정구역상의 프리미엄이 오히려 부동산 경기에 기름을 붓고 있는 현상은 판교신도시보다 더하면 더했지, 결코 덜하지 않다. 아니, 오히려 도로명주소에 강남, 서초, 송파를 넣지 않아도 이미 구 이름에 저 3개가 들어가 있고 그 자체로 하나의 계급장이라 여기기 때문에(...) 다만 동네별로는 현상이 다르다. 집값 사수를 위해 도로명주소 변경을 반대하는 것은 강남이나 어디나 다를바가 없던 상황. # # 2018년이 된 현재에는 민원을 어느정도 받아들여 변경이 된 모양이다. 관악구 남현동의 주민들도 서초구로 편입시켜달라고 하겠지만 기존 강남3구 사람들이 반대할 가능성이 100%이고 서울시에서도 달갑지 않게 쳐다본다.[71]
결국, 강남3구의 땅값이 절대로 내려갈 수 없는 근본적인 이유는 편리한 기반시설에 있다. 특히 강남3구 중에서 강남구는 주거+업무+상업지구+학군이라는 복합적인 형태로 전국 최고 수준의 인프라를 자랑한다. 이러한 인프라 때문에 강남으로 가고 싶어하는 수요가 압도적이니 만큼 공급가(땅값)가 지속적으로 오를 수 밖에 없는 것. 서초구와 송파구 역시 학군과 주거는 만만치 않으며 상업과 업무시설도 바로 옆 강남구에 많이 있는 만큼 내려갈 일은 없을 듯 하다. 이런 집중현상을 완화하려면 그 인프라를 지방으로 이전해야 하는데, 이건 강남3구가 크게 성장한 현 시점에서는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다. 인프라를 지방으로 이전한다면 수도권 지지 기반이 이탈한다는 의미이고, 이는 곧 지지율 하락을 의미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헌법재판소가 관습헌법을 들이대 노무현 정부의 천도 계획을 폐기시켜 버린 바 있고, 서울시 역시 시장이 바뀌는 와중에도 인프라 개발에는 혈안이 되어 있을 정도로 매우 민감한 문제이다. 같은 이유로 역대 정부들이 부동산 규제 계획을 내놓긴 했지만, 이로 인해 오히려 '부동산 규제되기 전에 하루라도 빨리 강남에 탑승하자'는 심리가 확산되어 풍선효과만 되풀이 되었다. 결국 큰 이변이 없는 한, 강남3구를 향한 수요는 계속된다는 말.

4. 여담


부유층이 거주하는 지역으로 흔히 알려져 있지만, 실상을 파고보면 강남3구에도 자식교육을 위해 무리하게 대출을 받아서 이사왔거나[72] 원룸에서 거주하는 중산층이나 서민들이 의외로 많다. 임대아파트로 대체될 예정이긴 하지만 서울 최후의 판자촌인 구룡마을도 강남구에 위치해있다. 또 진짜 부자라 할 수 있는 재벌들의 경우 강남이 아닌 강북 도심 인근 동네에 집을 짓고 사는 경우가 많다.[73] 일단 부유층, 상류층이긴 하나 재벌 수준까진 아닌 사람들이 사는 곳이란 인식이 있는듯. 다만 저건 1~2세들 기준이지 재벌 4세쯤 되는 사람들은 현재 강남에 많이 산다고 한다. 또 동 단위와 구 단위를 직접 비교하는건 아무래도 한계가 있다. 여튼 본론으로 돌아와서 이런 부촌이란 인식 때문인지 강남3구 산다고 하면 오히려 속물 취급하는 사람들도 있다보니, 도매금으로 이런 취급을 받는데 불쾌감을 표시하는 강남 사람들도 있으니 주의하자.
강남3구라는 말에 대해서도 지역마다 이견이 있다. 심지어 강남구, 서초구, 송파구 각각의 주민들도 강남3구라는 표현에 반감을 가지고 있는 편이다. 강남구 관내 양재천에 놓여진 한 보행교의 경우 양재천 북측에서 건설을 반대해서 장기간 보류돼있다 건설된 예가 있다. 양재천 남측 서민과 빈민들이 넘어다니는게 싫다는 이유였다고.(...) [74]
개신교천주교, 즉 기독교 신자 비율이 전체 약 50%대 이상으로 서울에서 압도적으로 높은 지역이다.[75] 천주교의 경우 강남, 서초구가 전국 기초자치단체 신도 수 비중 1, 2위를 다툴 정도다.[76] 개신교 강세의 이유는 강남 개발 초창기부터 아파트 단지들과 함께 성장해 온 일부 대형교회들의 영향이 크기 때문이다.[77] 한국의 기독교는 상류층이 많이 믿는 종교라는 인상을 주는데 이는 대표적 부촌인 강남3구의 기독교 강세 성향도 한 요인으로 보인다. 2005년 전수 조사, 2015년 표본 조사.
2014년 상반기 재보궐선거 당시 동작구 을에 출마한 나경원 의원이 강남4구로 동작을 끼워서 말하고, 캐치프라이즈도 '강남4구 동작'이었다.

5. 관련 문서



[1] 지역구 대부분이 야당 의원으로 도배되었던 1985년 제12대 국회의원 선거 쯤부터 보수화가 완료된 1996년 제15대 국회의원 선거까지 이 용어가 쓰인 걸로 보인다.[2] 송파구 중에서 가장 부촌잠실동, 신천동, 문정동, 오륜동, 방이동일부지역 (올림픽공원주변 고급빌라트촌 한정) 등은 강남구, 서초구 등과 비슷한 성향을 보이지만(다만 이들중 잠실2동이나 4동, 가락동등은 보수 경합우세이다), 서민 거주지인 삼전동, 석촌동, 거여동, 마천동 등은 오히려 진보 성향이 강한 곳들이다. 선거구로도 송파구 병의 경우 과장 좀 보태서 진보 텃밭이라 불러도 무방할 정도.[3] 송파구와 붙어있는데다, 재건축 아파트라 부동산 지가가 비싼 둔촌동, 고덕동이나, 중대평형 아파트 지역인 명일동이 보수 강세지역인데, 실제로 강동구는 강남과 생활권도 밀접하고 교류도 많아 강남 및 송파의 정치적 영향을 받는 경우가 많다. 참고로 현재 강동구와 송파구는 한 때 강남구 관할이었다. 강남구 관할 당시에는 산하의 천호출장소에 속해있었다.[4] 근데 이번에 강동 갑을 보면 미래통합당이 51:47로 졌었기 때문에 여기도 보수가 만만치 않은 지역이긴 하다. 또한, 강동 을도 대규모 중산층 밀집 지역인 둔촌주공아파트가 통째로 재건축 중이라 보수표가 과거에 비해 적게 나왔지만, 보수세가 만만치 않다.[5] 현재로 대입하면 판교신도시, 동탄신도시 등에 사는 대다수 젊은 층이 민주당계 정당을 많이 지지하는 것과 비슷하다고 할 수 있다.[6] 여담으로 유신시절에 거의 반강제적으로 실시되어 찬성 비율이 전국적으로 고르게 압도적이었던 유신 찬반 국민투표제5공화국의 사실상의 찬반 여부를 따졌던 1980년 국민투표에서 조차 반대 비율이 그나마 가장 높은 곳은 대학이 밀집한 대학가와 공장지대 보다는 강남과 여의도, 동부이촌동에 있는 새로 지은 아파트 밀집 지구였다. 정부에 대한 불신이 가장 높은 계층이 살고 있던 곳이라고 추측할 수 있는 부분. 물론 시도 지역 간 찬반 비율의 편차가 없던데다 세대 별 출구조사 자료 등이 전혀 없어 정확한 민심을 알 수 없었으며, 다 투표의 적법성 또한 논란이 있어 국민투표 결과가 당시의 민심을 볼만한 잣대는 전혀 아니었음을 유의해야 한다.[7] 민정당에서는 야당 강세였던 강남권까지 모두 차지하기 위해 주민 수준을 고려하여, 미국 MIT 박사 출신 관료였던 이태섭씨를 공천했다.[8] 도봉구 선거구, 영등포구 선거구, 강동구 선거구 [9] 당시 개표자료에 의하면 강남구의 민정당 득표율은 24.6%로 3위에 그쳤다. 더욱이 비싼 아파트가 밀집해 있어 보수 성향 초강세 지역으로 인식되는 압구정동의 경우 민정당 지지율이 22.3%, 반포동도 19~21%, 대치동 역시 20%대에 불과했다.[10] 1985년 총선 당시 조갑제가 쓴 르포 기사로 당시만 해도 나름 멀쩡한(?) 사람으로 기사 퀄리티는 인정받았다.[11] 그 당시에는 강남권 뿐만 아니라 서울, 수도권의 중산층들이 거주하는 웬만한 중대형 아파트를 낀 동네에서는 모두 김영삼의 득표율이 더 높았다. 서울 전체 득표율 순위에서는 김대중 > 노태우 > 김영삼 순이었지만 강남권에서만큼은 김영삼 > 노태우 > 김대중 순이었다. 물론 애초 세 사람의 득표율차가 고만고만하긴 했다. 자세한 건 아래 사진 참조.
[image]
[12] 실제로 부산광역시(구 경상남도 부산시), 경상남도 마산시, 진주시 출신이 강남구에 상당히 많이 거주한다. 대구광역시경상북도 경주시, 영주시, 영천시 출신도 굉장히 많다. 강남구 전체 인구의 43~45% 정도로 추산되고 있으며, 서울에서 가장 많은 비율이다. 다음으로 서초구가 서초구 전체 인구의 약 41~43% 정도의 비율을 보인다. 송파구의 경우에는 그렇게 많지는 않으나 적어도 27% 정도로 추산되고 있으나, 일단 가장 많은 지역 출신은 충청 출신(33%)이며, 호남 출신이다.(25%)[13] 다만, 1987년 대선 때부터 DJ계 민주 정당은 보수 정당에 비해 상대적으로 낮은 득표율을 기록해왔음은 사실이며 실제로 강남의 고소득층과 젊은 연령층의 표심은 YS계 정당통일민주당 혹은 비 동교동계 민주당, 무소속 후보로 몰렸던 것만 봐도 알 수 있다.[14] 예외적으로 1997년 15대 대선 당시, 이회창이인제로 보수 후보가 갈라졌을 때는 정권 교체를 두려워한 보수 성향 표가 이회창으로 결집하는 바람에 이인제 후보가 서울에서 가장 표를 적게 얻은 지역은 다름아닌 강남3구였다.[15] 해당 후보 모두 서울에서만 출마했다. 강남이 아닌 곳에 출마한 사람은 성북구 갑에 나간 이철 후보가 유일했다. 저 중 당선된 사람은 서초구 갑에 나온 박찬종과 이철 뿐.[16] 그나마 강남구 을에 다시 출마한 이태섭 의원도 홍사덕 등 야권 후보들의 표 분산으로 겨우 당선된 것이다.[17] 민주당 홍사덕 후보가 출마한 지역구(강남구 을)였다.[18] YS 최측근인 김덕룡 의원은 민자당 공천에 반발해 탈당한 5공 인사인 김용갑, 변호사로 유명한 민주당의 안동수(훗날 국민의 정부 최단기 법무부 장관이었다)의 3자 대결에 맞서 여당 지지자들의 표 분산으로 1000여표 차로 근소하게 승리했다. 서초구 을에서조차 민주당 안동수 후보가 당선될수도 있었던 상황이었던 것.[19] 강남구 갑의 경우 민주화 투사 출신 유명인사였던 김동길 박사가 당선된다. 요즘 나오는 극우 보수 인사 그 분 맞다. 송파구 갑은 민주계 출신 김우석 당시 민자당 현역 의원과 민정계 출신 조순환 국민당, 두 보수 후보와 민주당 김희완 후보 간 3자 대결에서는 팽팽한 대결 끝에 잠실 아파트 지역에서 국민당 몰표가 쏟아져 조순환 후보가 2천여표차로 신승했다.[20] 그런데 통일국민당의 경우는 케이스가 다른 것이 최고의 자산가인 정주영 회장이 직접 차린 정당인데다 민자당 계파 싸움에서 밀려난 인물들이 대거 입당한 보수 성향 정당으로 봐야 하기 때문. 심지어 14대 국회 개원 직후, 민주당으로부터 여당인 민자당 편에 같이 섰다고 무려 준여당 소리를 들었던 당이다.(...)[21] 1992년 대선 때 이 곳 강남3구에서 정주영후보가 김대중 후보를 제친 지역이 꽤 됐다. 예를 들어 압구정동이나 잠실7동, 대치동 등.[22] 참고로 여당인 민자당 후보 정원식 전 총리가 서울지역에서 대패한 선거이며 심지어 강남, 서초에서조차 민자당 후보가 1위를 차지한 지역이 없었을 정도였다. 당시 서울 500여개 동 중 단 2개 동에서만 1위였는데 용산구 동부이촌동, 송파구 잠실 7동으로, 고령의 부유층이 거주한다는 공통점은 있지만 그나마도 조순 득표율과는 얼마 차이 나지도 않았다. 과거부터 강남 주민들의 비토를 가장 많이 받던 DJ가 암묵적으로 밀었던 후보였음에도 불구하고 유명한 경제 학자 출신에 어느 정도 보수 성향도 있어서 중도 표까지 잠식 할 수 있었으며 민자당 타격에 나선 자민련까지 무공천을 선언하며 조순을 직접 지지하는 바람에 기존 호남 출신들의 표는 물론, 충청 출신 주민들의 표를 받는데도 유리했다는 점이 있었다.[23] 송파구 갑에서 당선되어 의원으로 활동하다가 선거운동비 허위 지출비 제출 사건으로 결국 의원직이 박탈당했다. 이후 1999년 재보궐 선거를 치러 새로 들어온 사람이 당시 한나라당 총재인 이회창.[24] 2017년 현재까지 국회의원 선거에서 무소속 국회의원으로 당선된 가장 마지막 서울특별시 지역구 국회의원이다. 재보궐선거까지 확대하면 2013년 상반기 재보궐선거에 당선된 안철수가 마지막이다.[25] 원래 지역구 의원인 김동길자민련 후보로 출마하려다 정계은퇴했다. 대신 노태우 정부에서 국무총리를 지낸 보수 인사인 노재봉이 무소속으로 출마했는데 4자 분열로 결국 신한국당 서상목 후보가 여유있게 당선된다.[26] 이 곳도 보수 우세 지역이라 영남 지역에서처럼 이인제, 이회창 양 후보의 표가 분열될 것으로 예상했으나 실제 서울 중산층 이상의 표심은 이인제로 분산될 것을 우려해서였는지 대부분 이회창으로 몰렸다.[27] 참고로 상대 한나라당 후보는 서초구 갑 의원이었던 마지막 관선 서울 시장 출신 최병렬. DJP연합에 따라 고건이 공천되자, 마찬가지로 야당에서도 서울시장 후보로 유력했던 국민신당으로 간 박찬종 씨가 사퇴하는 식으로 단일화했다.[28] 송파구, 용산구는 상당히 간발의 차로 노무현 후보가 승리했다.(송파구 0.3%차, 용산구 0.1%차)[29] 이미 압구정동, 반포동, 대치동 일부는 1990년대부터 한나라당의 초강세 지역이었다.[30] 예를 들어 LTV 도입, 공시가격 6억 이상 보유자에게 물리는 세금인 종합부동산세 등의 정책이 있었다. 하지만 무조건 규제만 한건 아닌데, 사실 땅값 잡으려고 나온 분양원가제 공개 정책 같은 부분은 노 전 대통령의 반대로 결국 시행되지 않기도 했다. 허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지역 주민들 입장에선 그 정도의 조치만으로도 자신들의 재산상 위협을 느꼈던 건 사실. 말이 부자지 실상은 가진게 아파트 밖에 없던 이들도 있었으니.[31] 노 전 대통령이 집권 시절 기득권으로 대표되는 이 지역에 반대되는 발언을 종종 하기도 했다. 심지어 대통령이 강남에 열등감 느끼는거 아니냔 말이 있을 정도였고, 실제로 "강남 사람과 밥을 먹고 차 마시는 사람이 정책을 펴기 때문에 강남 중심의 정책이 나온다고 밝힌 바 있었다"라고 말한 적도 있었다.[32] 다만 강남구 을의 경우 이 곳에서 꾸준히 선거를 준비하던 전현희 당시 비례대표 의원이 잘못된 공천 방식을 통해 결정됐다며 반발하기도 했다. 결국 다음 선거 때 또 나가서 절치부심한 끝에 당선.[33] 헌데 아이러니한건 민주당계 정당이 유리했던 송파 병에서 민주당 후보가 낙선해버렸다는 것이다. 덕분에 당시 야권은 강남3구에서 단 1석도 확보하지 못하고 만다. 물론 송파 병의 경우 배우 출신 새누리당 김을동 후보가 워낙에 네임드였고, 반면 민주당 후보는 상대적으로 덜 유명하긴 했다.[34] 모든 구에서 최소 6%(강북구)에서-최대 41%(강남구) 정도 앞섰다.[35] 송파구에서 민주당 계열 정당이 우세한 건 2002년 대선 이후 처음이다. 일부 지역구로 나뉜 국회의원 선거를 제외한 나머지 전국 단위 선거에서.[36] 제5회 전국동시지방선거 때 다른 지역에서는 곽노현 후보가 30%대로 박빙이였거나 앞섰는데, 강남구, 서초구에서만큼은 20% 후반의 득표율을 얻는데 그쳤다.[37] 게다가 보수성향 후보와의 격차도 좁혔다. (서초구 13%→3%) (강남구 15% → 8%), 송파구에서는 37.89%를 득표해서 33.97%를 득표한 문용린 교육감 후보를 앞질렀다.[38] 서초구-조은희, 강남구-신연희, 송파구-박춘희.[39] 송파 갑에서도 출구조사상으로는 박성수가 앞섰으나 뒤집혔다.(이후 2년 뒤 박성수는 송파구청장에 당선된다.) 송파 을 최명길은 이후 국민의당으로 당적을 옮겼으나 의원직을 상실한다.[40] 강남 을에서 전현희 후보가 야당 의원으로 24년만에 당선되었다.[41] 재미있는 사실은 당시 김성곤 후보의 경우 이미 총선 불출마를 선언한 더민주 전략공천위원장이었는데, 강남갑에 후보가 없자 서울에서 새누리당이 무투표 당선되는 꼴은 못본다고(...) 본인 스스로를 강남갑에 전략공천했다는 것이다. 그정도로 큰 기대도 안하고 나간 선거에서 45%를 득표했으니 강남에서 얼마나 반새누리 정서가 심했는지 알 수 있다.[42] 이 경우 더불어민주당이나 국민의당으로 지지를 돌린 경우도 있었지만, 새누리는 싫은데 차마 민주당도 못찍겠다며 아예 투표를 포기한 사람들도 있었다. 이런 영향인지 강남구 갑의 경우 투표율이 서울 꼴찌였다.[43] 교외 농촌 동네였다가 대규모 아파트 단지가 들어서면서 30대~40대가 대거 이주하면서 성향이 변한 사례다. 원래 1970년대 중선거구제 당시에도 신민당 정운갑 후보가 많은 표를 받았지만 11대 총선 당시 민주정의당 이태섭 후보가 이 동네에서 많은 표를 받았고 12대 총선 당시에는 그나마 세곡동에서 민주정의당 이태섭 후보가 세곡동에서는 1위를 했지만 당시 부촌의 야권 지지표로 인해 떨어졌으며 13대 대선 당시에는 노태우 후보의 득표율이 김영삼 후보의 득표율과 얼마 떨어지지 않은 지역이었고 보수계 후보 득표율을 합치면 6백표차로 민주당계가 우세했다. 다른 지역이 꽤 큰 표차로 앞서도 이 지역은 좀 5백표차 차이로 민주계 진영이 앞서는 데 그쳤다. 그 뒤 13대 총선에서는 민주정의당 이태섭 후보가 세곡동에서는 큰 표차로 승리하는데 당시 세곡동이 노인들이 사는 지역이라는 영향이 꽤 컸다. 이후 14대 대선에서는 김영삼 후보가 이 지역에서 앞섰으며, 정주영 후보 득표수를 합해도 보수의 득표율이 이 지역에서 높았다. 몇 개월 전 치뤄진 14대 총선에서는 민주당 홍사덕 후보가 앞섰으나 민자당 김만제 후보와는 세곡동에서만큼은 겨우 보수표를 합하면 4백표차에 불과했다. 이후 1회 지방선거에서 세곡동은 강남구청장 선거에서는 민자당 정원식 후보가 불과 4표차로 앞섰지만 서울시장 선거는 민자당 후보가 5백표차로 민주당 조순 후보에게 졌다. 그러나 15대 총선에서는 다른 지역에서는 무소속 홍사덕 후보가 우세했지만 세곡동은 신한국당 정성철 후보가 2표차로 우세했다. 이후 2회 지방선거에서 강남구청장 선거에서는 세곡동에서 자민련과 신한국당 등 보수정당 후보 득표율을 합해서 무려 1500표 넘는 득표율로 보수성향에게 힘을 보태줬으며 서울시장 선거에서도 한나라당 최병렬 후보가 우세했다. 이후 16대 총선부터 한나라당 오세훈 후보가 세곡동에서도 우세했으며 3회 지방선거에서는 서울시장 선거에서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가 우세, 강남구청장 선거에서도 보수후보 우세였으며 16대 대선에서는 역시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가 3백표차로 우세했다. 17대 총선에서도 한나라당 공성진 후보가 세곡동에서 우세했으며 4회 지방선거에서는 한나라당 오세훈 후보가 여기서 몰표를 받았다. 17대 대선에서도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가 이 지역에서 몰표를 받았을 정도로 세곡동 역시 보수우세 지역이었다. 18대 총선에서는 한나라당 공성진 후보가 이 지역에서 몰표를 받는 수준이었고, 5회 지방선거도 한나라당 오세훈 후보가 우세했으며, 강남구청장 역시 한나라당 후보가 표를 많이 받았다. 보궐선거에서도 한나라당 나경원 후보 우세, 19대 총선에서도 새누리당 김종훈 후보가 8백표차로 세곡동에서 우세했다. 18대 대선 때만 해도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가 이 지역에서 3백표차로 우세했지만 2014년부터는 택지지구가 조성되어 보금자리주택이 들어서 젊은층들이 유입되며, 상황이 달라져 지방선거에서 새민련 박원순 후보가 지지를 받는다.[44] 그래도 아직까지는 경합 지역이며 과거 선거에서는 전원주택촌으로, 새누리당계 정당이 지지를 많이 받은 동네였다. 특히 13대 대선부터 18대 대선까지 모두 보수후보가 승리했는데, 이 지역은 13대 대선에서도 당시 야당 성향이 강했던 강남3구에서 민주정의당 노태우 후보가 앞섰다. 임대주택, 보금자리주택이 입주하기 시작한 20대 총선에서 민주화 이전에는 야당 후보가 앞서기는 했지만 표차가 크지 않았다.[45] 강남대로와 테헤란로 주변의 사무실로 출근하는 이들인 경우가 많다.[46] 다만 반포동 같은 고가 아파트가 밀집해있는 동네의 경우 젊은층 인구가 늘어나도 여전히 보수정당 초강세 지역이다. 그러나 2010년대에 접어들면서는 이 지역도 보수 지지세가 예전보단 옅어졌단 반론도 있다.[47] 이 지역의 더불어민주당 소속 의원 세 사람들 중 하나였던 최명길 의원은 이듬해 4월에 국민의당으로 당적을 옮겼다가 같은 해 12월에 선거법 위반으로 의원직을 상실했다. 이후 2018년 재보궐선거 당시에 해당 선거구에서 당선된 최재성 의원이 그의 빈 자리를 채우게 된다.[48] 서울 전체로 봐도 20대 국회 기준 서울 총 49석 중 새누리당 의석은 단 2석밖에 남지 않게 되었다. 심지어 그 중 1석도 바른정당으로 갈 것이 유력시되던 대표적 비박계인 동작 을 나경원 의원이라, 사실상 온전한 친박계 새누리당 의원은 서울 도봉구 을 김선동 의원 한명밖에 남지 않게 되었다.(...)[49] 세 사람들 중 신연희친박 성향이었으며 나머지 두 사람들도 바른정당으로 간 이 지역 의원들과 깊은 친분을 갖고 있지는 않은 것이 영향을 끼쳤다.[50] 그 외 보수층 강세 지역으로 알려진 반포본동, 대치2동, 개포1동, 오륜동 등에서는 문재인 후보가 간발의 차로 이겼다.[51] 세곡동 신도시에 30대 젊은 층이 대거 입주한데다, 강남구 을의 핵심 지역구인 세곡동을 개발해놓고, 교통편에 대해 신경 안 쓴 구청장에게 분노했기 때문이다.[52] 물론 반포동 전 지역은 아니고 반포2동에서만 홍준표 후보가 근소한 차로 앞섰다. 아래 내용에 후술.[53] 홍준표 후보가 서울 1위를 여기서 차지했다.[54] 행정동 신사동의 경우 가로수길 주변 일반 주택가에 젊은 유권자들이 많이 살아서 그런지 강남권 치고는 의외로 민주당 쪽으로도 표가 간다. 그러나 주민 대부분이 부유층들인 신현대아파트와 미성아파트에서 압도적으로 보수 정당에 몰표가 나와 바로 상쇄된다. 옆 동네인 압구정동도 마찬가지.[55] 유승민 후보가 서울 수도권에서 가장 높은 득표율을 올린 행정동이다.[56] 홍준표 후보 부부가 선거 당시 아시아선수촌아파트에 거주했다.[57] 잠실7동 제외.[58] 유승민 후보 최고 득표율이 강남구와 서초구에서 나왔다. 서초동, 잠원동, 압구정동, 대치동 등 고가 아파트 밀집 지역일수록 10%가 넘는 득표율을 기록하며 보수 표를 분산시켰다.[59] 이 곳은 6회 지선에서 박원순 후보가 100표 차이로 정몽준 후보를 이겼던 곳이기도 했다. 다만 이 지역은 재개발로 인해 이미 이주가 완료된 단지들이 많아 예전에 비하면 선거인수가 크게 줄어들었다는 사실도 함께 감안해야 한다.[60] 민선 1기와 2기 송파구청장 자리는 민주당계 정당이 차지하고 있었다.[61] 민주당 이정근 후보에게 12%라는 상당히 큰 격차로 승리했으며 심지어 지역 내의 민주당 강세지역인 양재2동에서도 선전했다.[62] 강남구에서는 94,896:120,368로 35,472표 차이로 완승, 서초구에서는 88,047 : 96,915로 8,968표 차이로 승리했다.[63] 잠실2동, 오륜동 등은 구청장, 기초의원, 광역의원에서 진보진영이 승리했지만, 교육감 선거에서는 보수 후보에게 패했다.[64] 조희연 후보는 외고, 자사고 폐지 공약을 펼쳤는데 이는 해당 부류의 고교들에 진학할 준비를 하던 학생과 학부모들에게 상당한 반발을 살 수 있었다.[65] 다만 대표적인 잠실권 종부세 벨트인 송파구 갑송파구 을은 3~4%차이로 통합당이 겨우겨우 이겼다.[66] 한명숙, 김영선, 심상정, 유은혜, 김현미[67] 요새는 서울 집값 급등과 공시가 현실화로 인해 강남 주민들만의 문제라고 보기도 힘들고, 서울시민들 대부분이 피해자가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재인 지지자들은 집값 상승으로 인한 자산 증가를 불로소득으로 치부해 환수해야 한다고 주장한다.[68] 참고로 이 시절은 전반적으로 다 물가상승률이 경제성장률을 뛰어넘은 물가폭등시대였는데, 경제성장률이 물가상승률을 추월하는건 1983년부터다.[69] 노무현 정권의 몰락 1차 원인이 강남 집값이라는 이야기도 있다.[70] 강남구 4,135만원, 서초구 3,728만원.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1&oid=011&aid=0003189764[71] 분당의 서울편입 민원이 90년대에 있었는데 당연히 씹혔다.[72] 사실 대부분이 이렇다. 그렇기때문에 세금정책에 매우 민감한 반응을 보이는 원인중 하나로 꼽힌다. 실제 갑부들은 시세차익대비 세율이 낮다고 콧방귀나 뀌는 상황인셈[73] 주로 한남동이나 성북동에 거주.[74] 보행교 남측에 재건마을이라 불리는 판자촌이 있어서 반대한것이지 양재천 이남 지역의 생활수준이 떨어지는것은 아니다.[75] 2005년 인구주택총조사 때 조사된 서울시민 종교인구 순위는 개신교 >불교 >천주교 순이었지만, 강남3구와 양천구에서만큼은 개신교 >천주교 >불교 순이었다.[76] 대치동, 잠실7동 등 일부 행정동은 천주교 신도가 가장 많이 산다. 물론 개신교 신도 수 비율과 그리 큰 차이는 없다.[77] 대표적으로 사랑의교회, 광림교회, 소망교회, 충현교회 등. 이들 교회는 각각 서초동과 압구정동 아파트 단지 주변에 있는 조그마한 상가에서 시작하여 지금에 이르고 있다. 물론 지금에 와선 이런 대형교회들의 폐단이 언론에 자주 지적되고 있다. 애초 이 지역에서 기독교가 강세를 보이는 이유 중 하나는 신앙심보다는 고위층, 상류층 인맥 관리나 구혼 활동(...)을 위해 오는 사람들이 많은 것도 한 몫 한다. 실제로 고소득, 고학력, 고위 공직자들이 많은 강남지역 대형교회와 성당은 엄청난 기밀과 ㅎㄷㄷ한 정보들이 오고가는 곳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