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패

 

1. 조선시대의 신분증
1.1. 개요
1.2. 역사
1.3. 종류
1.4. 대중매체에서
1.5. 같이 보기
2. 웹툰 작가


1. 조선시대의 신분증



1.1. 개요


[image]
號牌. 호패법에 따라 조선시대에 사용된 신분증이다. 호패술과는 이름 빼곤 무관하다.
나무로 만든 팻말에 이름과 출생년도[1] 같은 개인정보를 앞면에 썼고 뒷면에는 관인을 찍었다.

1.2. 역사


호패는 원나라에서 시작해 고려시대 공민왕 치세를 거쳐 조선시대에 들어선 후 태종에 의해 처음 보급되었고 점차 활성화하기 시작했다. 다만 이때는 최초 시행과정에서 발생한 여러가지 문제점으로 인해 1413년부터 1415년까지 약 2년 동안만 실시하다가 곧 폐지하였고 실제로 본격적으로 시행된 것은 세조 5년인 1459년부터이다. 16세[2] 이상의 남성은 의무적으로 호패를 지녀야 했다.
대부분의 호적 체계나 문자의 발생 이유와 동일하지만, 호패가 만들어진 이유는 군역과 요역[3] 등을 효율적으로 관리하기 위해서이다.
호패의 위조는 철저하게 금지되었지만, 규격에만 맞다면 자기가 쓸 호패를 직접 만들고 관아에서 관인만 찍을 수 있고, 그럴 능력이 없을 땐 관아에 호패 제작용 목재를 바치면 목수가 대신 만들어주고 관인을 찍어주기도 한다.

1.3. 종류


벼슬을 사는 사람들은 나라에서 호패를 따로 발급해주었으며, 이 호패는 상아, 등의 재질로 만들어졌다. 물론 이것도 정승, 판서급이나 가능한 수준이고 나머지 관원들과 양인들은 나무로 만들어졌는데 신분에 따라 나무의 종류도 달라서 관원이나 양반들은 회양목, 소나무 같은 고품질 목재부터 하급관원은 자작나무를 썼으며, 그마저도 쓸 수 없는 양민들은 잡목으로 호패를 만들어야 했다.
정부는 중앙에서 효율적으로 인적관리를 할 목적으로 호패를 도입했으나 일반 민중들의 거부감은 상당했다. 왜냐면 결국 호패는 세금과 역(役) 때문에 생긴 거니까. 호패를 수시로 확인하고 호패 조사로 일만 시키니 서민들은 호패를 싫어하여, 일부러 호패를 두껍게 만든 다음에 관아에서 관인을 찍고 나면 호패를 깎아 위조하거나 호적상 양반의 노비로 옮겼다.[4] 이러한 범죄행위에 세조는 호패청을 두고 위조자를 극형에 처하고 외출 시 휴대하지 않으면 엄벌에 처하겠다고 경고했지만 많은 사람들이 지키지 않았고,[5] 숙종은 종이로 된 지패(紙牌)를 만들려는 시도를 했다.

1.4. 대중매체에서


  • 넷플릭스 오리지널 사극 드라마 킹덤(드라마)에서 세자 이창이 좀비사태에 불구하고 자꾸 갑질하는 사대부들을 찍어누르기 위해 자신의 신분을 드러내기 위해 자신의 호패를 던져서 보여준다[6] 시즌2에선 참형에 처해질 자신의 심복들의 가족들을 구해주기 위해 심복들과 같이 검문소 입구에서 의도적으로 자신의 호패를 보여준다.
  • 사극에선 신원확인을 하기위한 장치로 높은 확률로 보여준다. 가끔씩 위조된 호패라면서 도주자들을 잡아들이는데 어떤식으로 알아보는지는 의문.

1.5. 같이 보기



2. 웹툰 작가


작가 블로그
다음 만화속세상에서 활동했던 작가. 1983년 출생의 남성이다. 도전만화가에서 데스티니를 연재해 큰 인기를 끌어 정식 작가로 진출했다. 데스티니와 관련해서 총 3부작을 연재했는데 도전만화가 시절에 연재했던 내용과는 영 딴판인 평행세계를 다뤘다. 데스티니 3을 격주 연재한 것을 마지막으로 연재 소식이 없더니 2014년에 데스티니 시리즈를 전부 내려줄 것을 요청했다. 그뒤로 소식이 들리지 않더니 2015년 6월부터 네이버 웹툰에서 엄재경 작가와 함께 마법스크롤상인 지오를 연재하고 있다.[7] 2014년 데스티니 시리즈가 내려간 비하인드에는, 2010년 데스티니 3부를 연재 끝내고 나서 차기작 대신에 일을 하고 3년만에 들어오니 이미 자신이 연재를 할만한 공간이란 것이 없어져서 자신이 너무 도태된 작가임을 느끼고 다음 연재를 끝내기로 결심했기 때문이라고.[8]
작가의 블로그에 올라온 해명에 따르면 데스티니 연재가 힘에 부쳐 커리어를 쌓고 연재를 재개하려 했으나 재정난으로 인해 이어가지 못하고 결국 한동안 웹툰을 그만두고 택배업을 했었다고 한다. 이후 스토리 작가를 구해 연재를 시도했으나 연재처를 구하지 못했다 한다. 용케 신작을 시작할 여건이 되었으니 다행인 셈.

[1] 서력기원이 아닌 간지를 썼다.[2] 만 나이가 아닌 세는나이이다. 대한민국에서는 만 17세가 되는 해에 신분증을 만든다.[3] 부역이라고도 하는데 병역 의무 외에 나라에서 공적인 일에 국민을 동원하는 걸 말한다.[4] 천민은 병역이 면제됐다. 호패는 차야 했지만. 양반도 병역은 면제됐다. 만약에 21세기 한국에서 서민에게만 병역을 부과한다면 정부가 뒤집어지겠지만.[5] 그래서 조선시대에 실종 및 객사한 사람들의 신원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원인으로 이게 지목되기도 한다.[6] 제자의 것은 초록색 옥에 금으로 글씨를 써놓았다[7] 엄재경은 마이러브, 까꿍으로 유명한 작가이다.[8] 2014년 데스티니 카페에서 밝힌 내용.